나는 보다 못해 덤벼들어서 우리 포닥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논문을 더 읽혔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동물실험실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 밑에 네이쳐 리뷰 논문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논문을 읽지를 않는다. 나는 하릴 없이 포닥을 앉히고, 그 눈 앞에다 재임용 추천서를 들이댔다. 포닥은 집에 있는 마누라와 애들이 생각이 나는지, 논문을 읽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월화수목금금금은 매일같이 점교수한테 쪼임을 당하는데 댈 게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 주 논문을 읽히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포닥이 왜 그런지 수염이 덥수룩해져서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실험실을 어슬렁 거리며 졸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교수님이 볼까 봐서 얼릉 현미경실에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할 조교수가 필연 우리 실험실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현미경실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포닥을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동물실로 실험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SPF에 들어가려 방진복을 입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 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마우스에 종양세포를 찔러넣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실험실에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실험실 복도에 널려있는 디프리져 칸칸히 환자샘플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교수가 청승맞게스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앞에서 또 푸드덕, 푸드덕 하고 들리는 포닥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포닥을 집어 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게 지네 박사학생과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실험가운도 벗어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파이펫을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포닥이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렀다. 포닥도 포닥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학교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논문 잘쓰고 얼굴 예쁜 조교수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교수네 박사학생의 실험노트를 때려 엎었다. 실험노트는 푹 떨어진 채, 생채유래 폐기물통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매섭게 눈을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실험노트를 못 쓰게 만드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실험실 연구노트인데?”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이제 연구비도 떨어지고 연구실도 내쫓기도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서 실험복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다 점교수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터 내 실험 좀 할 테냐?” 하고 물을 때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 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무슨 실험을 하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 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 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인젠 네 실험해줄 테야.”


“연구노트는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디프리저로 다가간다. 그 바람에 디프리저문이 열려서 가득 환자 샘플이 쏟아졌다.


60대에서 80세까지 암환자들 혈액샘플과 종양 조직샘플에 나는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에서


“점교수! 점교수! 연구계획서 쓰다 말고 어딜 갔어?”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점순네 교실 주임교수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교수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복도 옆을 살금살금 기어서 회의실로 내려간 다음, 나는 디프리저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옥상으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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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정리


지은이: 작자미상

갈래: 단편소설

배경: 시간 (2010년대), 공간 (인심이 순하고, 순박한 지방 대학)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비정규 계약직 연구교수인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그리는 데 효과적이며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다.) 

주제: 지방대학 조교수와 연구교수의 순박한 공동연구

문체: 이 작품에는 실험실 토속어와 개인어가 풍부하게 구사된다. 이것이 이 소설에 활력을 주고 산문성을 확보하게 한다. 특히, 이 작자미상의 소설에는 실험실 약어, 영문이 많이 쓰인다.(특히 오덕한 포닥의 묘사에 유의)

구성: 현재-과거-현재의 역순행적 구성임

발단: 연구비로 점교수가 자꾸 나의 약을 올림 / 수난을 당하는 ‘나’의 포닥 (현재)

전개: 나흘 전, 연구비를 준 호의를 거절당한 점교수가 나의 포닥을 더욱 학대함 (과거)

위기: 나의 포닥에게 논문을 읽혀보나 BBRC에서도 리젝당함 (과거)

절정: 빈사지경이 된 포닥을 보고 화가 나서 점교수네 연구노트를 못 쓰게 함 (현재)

결말: 점교수가 연구노트 사건을 봐 주기로 하여, 점교수네 실험을 해주기 위해 환자 샘플을 둘러봄 (현재)

등장인물:

나: 1년마다 재계약하는 비정규 계약직 연구교수. 순박하고 천진하며 감수성이 둔한 편이나, 저 나름 실험과 연구를 한다. 우직한 인물의 전형

점교수: 전임 조교수. 깜찍하고 조숙하여 ‘나’의 무딘 연구를 자극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도발한다. 개성적 인물

역자의 변: SSRI는 참 좋은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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