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실 예과 시절에 누군가가 이 영화 보는 것을 극구 만류하여서, 당시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 보고 나면 우울해질 수 있는 영화라고.. 자살을 유도(?)하는 피아노 선율이 슬픈 영화라고 해서.. 그리고 유럽권 영화라고 해서.. 여하튼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일을 안 할 때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최근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가치관을 알게 되면서, 특히 "폴리 아모리"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 영화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정말 수작이고, 사람의 심리를 아주 절절히 다루는 괜찮은 영화였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시리즈물을 기획하면서 이 영화를 추천해준 오지의 마법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폴리 아모리라는 것과 글루미 선데이를 얼버무려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길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긴 호흡의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미리 밝혀두지만, 개인적으로 다양성과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그 가치관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30이 지나고 나서야 내 안에 체득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완벽히 체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정답이 없는 삶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이 글도 그런 맥락에서 쓰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어서 혹은 할 것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보니깐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삶도 있더라 라는 것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맹목적으로 정답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맥락에서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왜 의과학자 팀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리냐고 한다면.. 뭐.. 딱히 그 이유를 들 수는 없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고, 인류를 사랑한다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대의(?)를 들면서 글을 쓰고자 한다. 당연히 이 글은 폴리 아모리를 권장하는 글도 아니고, 권장하지 않는 글도 아니다. 이런 삶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존중해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개념에서 글을 쓰는 것이니,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폴리 아모리(poly amori)라는 개념은 우리네 상식에서는 아주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다. 사실 필자역시도, 이 개념을 이해는 하고 있지만(혹은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직접 실생활에서 나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글쎄요..." 이긴 하다. 그만큼, 개념이 아주 진보적이고, 우리의 상식선을 넘어 선다. 

Polyamori. 비독점적 다자 연애, 혹은 떼사랑이라고도 불리우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떼사랑이라는 용어는 의미가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그 용어를 만든 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특정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비독점적 다자 연애는 용어 자체가 길면서도 전문성을 가진 것 같아서 영어 표현을 그대로 적용한 “폴리아모리”를 선호한다.

폴리 아모리를 쉽게 설명하면, 한 사람이 다양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사랑을 꾸준히 추구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글을 있기에, 이 링크로 대신하고자 한다.(링크는 구글에서 검색어 넣은 것임. 궁금하시면 직접 클릭해서 읽어보세요 ^^) 혹자는 한사람이 두 명 이상을 만나는 것인데, 바람피우는 것 혹은 양다리, 문어다리 걸치는 것과 뭐가 다르냐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흔히들 말하는 "바람피는 것"과 다른 중요한 개념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점과 상대방에게 이런 관계를 사전에 정직하게 미리 알리고 동의를 구한다는 점이 아주 다르다. 그러니깐, "난 너를 사랑하고 있지만, 어제 만난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될 것 같아. 혹은 좋아하게 될 것 같아. 그러니깐 허락해죠”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통보라고 봐야하겠지만, 정확하게는 이런 언질을 주고자 하는 유대관계도 폴리 아모리 관계라면 사전에 상대방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깐, 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미리 알고 있기에, 사전에 서로에게 그런 관계를 오픈해 두자는 것이다. 

처음 이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주 진보적(?)이라서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사실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지만, 나름, 30세 이후에 조금더 개방적인 가치관과 상대성을 인정하고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알게된 개념이였다. 미국에서는 벌써 이런 폴리 아모리스트의 삶이 동성애와 같이 나름 보편성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한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이 폴리 아모리라는 개념 저변에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크게 두가지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는 내가 보는 바이기에 틀릴 수도 있다. 

첫번째는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해?” 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이성 혹은 동성을 만나게 되고, 그 중에 특정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결혼하기 전이라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거나 동거를 하게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결혼한 상황이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상황인데,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두근거리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작정 그 새로운 사랑을 접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사랑한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물론, 그런 두근거림, 사랑을 사전에 차단하면 충분히 될 일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에 마냥 접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닌 셈이다. 즉, 폴리 아모리스트들은, 평생동안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두는 셈이다. 

두번째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다른 사랑이 왔다고 해서, 그 전에 사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만 허락한다면 두 사람다 동시에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다. 사랑하면 굳이 헤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헤어지지 않고 두 사람다 동시에 사랑하면 더 좋은 거 아니냐는 맥락인 셈이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많은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해도 헤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여전히 사랑하니깐),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 뿐이고, 비 독점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뿐이니깐. 즉 폴리 아모리스트들은, 사랑을 한 번 하게 되면, 굳이 그 사람과 동의하에 헤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 헤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사랑하기 때문에. 

이 두가지 사랑에 대한 전제가 폴리 아모리를 유지시키는 가장 큰 축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고, 미리 사랑한 사람이랑 헤어질 수 없으니, 새로온 사랑도 함께 받아들이자는 것
이 폴리 아모리의 중요한 개념인 셈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폴리아모리스트가 가진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에게 이미 사랑한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닌가 하면서.. 일반 상식으로는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깐. 그리고 그렇게 동시에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도 사랑하고, 아빠도 사랑한다. 내 친구 철수도 친구로서 사랑하고, 장원이 형님도 형님으로서 사랑한다. 그렇게 따지면, 내 안에 생각보다 많은 사랑이나 우정이 존재하는 셈인데, "연인에 대한 사랑은 왜 둘이 될 수 없고 꼭 하나여야만 하는 것?"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연인에 관한 사랑은 "독점적일 수밖에 없고 단 하나 뿐이다"는 획일적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사회적으로 일부 일처제가 가진 안정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자)

실제로, 연인과의 사랑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그러면서 추억을 만들어 나가면서 더 공고해지고, 독점적으로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경험상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서로를 구속하게 되고, 그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게 된다. 그 사람의 시간을 소유하고 싶어서 연락을 자주하고, 함께 없을 때는 연락을 통해 안부를 묻고, 간섭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쌍방이 그걸 사랑으로 느낀다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한 쪽이 문제라고 느낄 수도 분명히 있다.

여기에 폴리 아모리스트의 개념이 또 하나 등장하게 된다. 사람은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 아니라, 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질 이유는 없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유까지도 내가 구속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정말 진보적이라서 한동안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있었다. 나는 그 전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던 것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소유”하고자 했던 셈이다. 물론 다행히도, 내가 “소유”하고자 했던 시간을 상대편은 “공유”라고 느꼈기에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타인을 만나지 말고, 사랑하지 말라고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다행히도 상대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간섭”이라고 느꼈기에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이는 침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소유하고자 했던 행위라고 느낄 수도 있다. 

추가로,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느냐는 점은 나도 충분히 동의를 했다. 단,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과연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걸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상대방은 그 사람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경우가 생기지 않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게 이야기 했지만, 핵심은 세상에는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손가락질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그러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에서는 그런 “다름”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탄력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많다.

결혼과 연인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회적 약속임일 뿐인데,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삶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너무나도 지탄받고 있고, 그것이 두려워서 소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큰 마음을 가지고 넓은 아량으로 그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정답”처럼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항상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냥 “정답”처럼 생각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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