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 관한 변주곡...키에 관한 변주곡...

Posted at 2015.11.10 16:33 | Posted in 생각들/일상의 생각들

이번에는 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더라고. 키에 관한 열등감 문제 같은 거. 뭐, SNS에 올리는 수준의 글이라서 그냥 반말체로 적겠습니다.)

  나는 키가 참 작다. 165센치니까 여고생 평균키 쯤 되는가? 여튼 반에서 4~5번째로 작았고, 30세경 논산에 징병의 훈련갔을 때는 40명중 두번째로 작았다. 그래서 2번을 달았어야하는데, 나보다 더 작아서 1번이 되어야했던 부산대 출신 안과 선생을 다른 부산대 출신들이 슬쩍 자기들 옆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내가 1번이 되어버렸다. 공식적으로는 2009년 징병의 훈련병들 중 최단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꽤 큰 쪽에 속해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튼 뒤쪽 2/3 정도에 앉았었다. 그러더니 중학교 때부터 잘 안 크더라. 의과대학에서 소아과학을 배울 때 자녀의 키를 예측하는 공식이 있었다. 그 공식대로 계산을 해보았더니 딱 지금의 내 키가 나오더라. 그런데 중학교 때는 그런 걸 알지도 못했었고, 만약에 알았더라도 무시하고 헛된 기대를 했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올라가니까 더 이상 아예 키가 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포기. 

그래도 키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억울하다는 경험을 당한 적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거의 없다. 키가 작다고 해서 큰 아이들이 괴롭히지도 않았고(키는 작아도 깡다구가 있다는 걸 알아서 건드리지 않았다. 두드려 맞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았다) 말이다. 단, 고 1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야, 이게 가족 사진이가? 너거 가족은 다 난쟁이고” 그 때는 그냥 웃고 지나갔었는데, 가족을 건드려서 그런가, 참 기분이 좋지 않았고 지금도 그 자식의 표정이 머리 속에 남아있다. 뭐, 그렇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다. 키 작다고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차피 교정 불가능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키라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한번 따져보자. 키가 크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인간은 왜 큰 키를 선호하는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키가 큰놈이 힘이 쌔다. 힘이 쌘 놈은 싸울 때 유리하다. 적에게 죽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키가 큰 놈이 살아남는다. 둘째, 키가 큰 게 보기 좋다. 이것은 성선택 영역으로 넘어가서 여자들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하게 만든다. 진화학적 시각으로 볼 때 크게 위의 이유 딱 두 가지라고 판단된다. 뭐, 농구를 잘 한다느니, 전구를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느니 하는 이유는 유전자 전달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므로 하찮은 것들이다.

그럼 현대 사회에서도 키 큰 놈이 유리한가? 중고등학교 때 키 큰 놈이 가오잡고, 싸움 잘 하고 이런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현대는 주먹으로 사람 때려죽여서 무언가를 쟁취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구석기 시대 지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럼 인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뇌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살인을 할 수 있는가. 그게 핵심이다.

 키가 콩알만 했던 로마 군인이 어떻게 해서 덩치 우람한 게르만 민족을 지배할 수 있었는가. 문명화에 그 답이 있다. 결국 뇌의 활용이라는 말이다. 키로 인한 자연 선택의 옵션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해도 무난할 듯 보인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유일한 요소는 성선택이다. 아무리 자연 선택의 측면에서 불리한 요소라 하더라도 암컷이 원한다면 그 요소는 발달을 하게 된다. 공작새의 깃털이 대표적인 예다. 인간에게는 키가 그런 요소 아니겠나 싶다. 키가 크면 보기 좋고, 섹스어필에 유리하다. 이건 어떻게 교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컷들은 다른 섹스어필 무기를 만들었다. 노래, 유머, 지능의 과시, 편지, 로맨틱한 언어들. 따져보면 결국 뇌를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래도 키가 큰 놈이 여전히 유리하다. 남자 역시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 키가 큰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성적 기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키가 작으니까, 그런 걸 자식에게 물려주기는 싫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압박이 상당한 것 같다.

솔직히 딱 까놓고, 현대 사회에서 키 작은 게 키 큰 거보다 유리하지. 음식을 먹어도 큰 놈이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같은 차를 타도 큰 놈이 타면 더 작게 느껴질 거고, 같은 집에 살아도 작은 놈이 더 유리하지. 우리가 만약 샤킬 오닐 같은 덩치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좁아터져서 어떻게 생활하겠나. 덩치 큰 놈은 더 큰 집, 더 큰 자동차를 사야하니까 작은 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하고 그렇지. 그래서, 나는 키가 작아서 참 좋다.(이게 바로 현실 부정을 통한 정신 승리? 아니면, 현실 직시? 어쨌든 저쨌든 정신 승리는 정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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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즐거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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