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기초의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수경선생에게 찾아간 제갈양!

제갈양은 과연 정규직이 되어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아름다운 우동면의 자태.


우동 가닥을 집어 후루룩 빨아들이면, 투명할 뽀얀 면발이 춤추듯 입술을 때리며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면은 탱탱하고 탄력이 있어 이빨을 밀어내는 기분좋은 반발력을 느낄 있지만, 결코 씹을 힘이 들어갈만큼 단단하진 않죠. 매끄럽고 탱탱하게 만든 우동을 먹을 느끼는 즐거움은 관능적이라고까지 말할 있을 정도입니다.

쫄깃한 우동을 맛보는 쾌감...!!![각주:1]

그렇다면 면의 쫄깃함이 쾌감[각주:2]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진 음식에 대한 본능적인 선호도는, 보다 유익한 먹이[각주:3] 섭취하고 해로운 먹잇감은 기피할 있도록 하는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맛이나 지방의 고소한 , umami[각주:4] 등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은 먹이가 가진 주요 영양소를 적극적으로 섭취할 있도록 인류가 진화해 왔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반면 쓴맛은 자연에 존재하는 알칼로이드 계열 독극물 등을 피할 있도록 불쾌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이는 뿐만 아니라 식감에도 적용이 되는데, 채소나 과일의 아삭아삭한 식감은 충분한 수분을 함유하고 있고 세포벽이 파괴되거나 변성되지 않은, 신선하고 미생물의 침입을 받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시사하므로 식욕을 돋우는 것이 합당하지만, 물컹물컹하거나 끈적끈적한 식감은 반대로 미생물이 번식하여 단백질이 변성, 파괴되고 세포벽등의 구조가 무너졌다 신호이므로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맛있는 것에 끌리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면이 가진 쫀득쪽득한 탄력을 쾌감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있겠습니다. 음식이 탄력을 가질 있는 것은 콜라겐 등의 탄성 단백질 덕분인데,  우리가 낙지 볶음을 먹고 쫄깃함을 느낄 있는 것은 낙지의 탄성 단백질 파괴되지 않고 사슬, 나선 혹은 그물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좋은 음식물이 가져야 하는 두가지 조건, 영양소가 풍부하며 신선하다 두가지 조건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탄력있는 식감인 것이죠.

 

찰지구나.[각주:5]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본능에 따라 음식을 섭취하는데 그치지 않고, 음식이 주는 쾌감을 보다 편리하게 극대화할 있도록 노력합니다. 설탕, 소금 천연 재료를 정제 혹은 농축해서 조미료를 만들고 발효를 통해 umami 주는 아미노산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절임 등의 저장방법을 통해 아삭한 식감을 오래 유지할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가 음식에서 느낄 있는 쾌감을 계절, 산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집에서 간편하게 느낄 있게 된것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쫄깃한 식감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 탄성 단백질의 구조에서 나오는 것으로 재현하기, 보존하기 쉬워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러한 쫄깃한 식감을 재현할 단서를 아주 오랜 세월 전에 찾아냅니다. 바로 글루텐이죠


글루텐의 구성


Glutenin gliadin으로 구성되는 단백질인 글루텐은 밀이 가진 단백질이며, 밀가루를 반죽하면서 gluten분자는 사슬 결합구조를 이루면서 탄력이 생기게 됩니다. 글루텐 분자가 hydration되면서 탄성은 커지죠.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국수는 무려 4천년전 것이라고 하는데, 이미 사람들은 밀이라는 곡식을 탈곡하고, 도정하고, 제분해서 물과 함께 반죽하면  이렇게 탄력이 생겨 국수를 만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응용했다는 뜻입니다. 때부터 이미 인류는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쫄깃한 식감 즐길 있게 것이죠. 면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말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국수 이외에도 인류의 놀라운 식문화 유산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국수가 만들어져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국수가 생겨났지만, 앞서 말한것처럼 우동의 식감은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동의 쫄깃함이란건 인간이 만들어낸 식감이지만, 기분 좋은 탄력에 비할만한 것은 천연 식재료 중에서도 얼마 없지 않을까요.

탄력에 비할 있는 것으로 제가 떠올릴 있는 것은 센불에 빠르게 볶아낸 낙지나 미디엄 정도로 절묘하게 삶은 꼬막, 데쳐서 얼음물에 헹궈 탄력을 살린 새우 정도….?? (왠지 떠올리다 보니 많이 생각나는 느낌도쿨럭)

게다가 우동은 물과 밀가루, 소금만 있으면 만들수 있다는 압도적인 가격 접근성의 메리트를 가지고 있지만…. ‘국물이, 끝내줘요.’ 하는 오래 인스턴트 우동 광고 에서 보듯이,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우동 자체보다는 국물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이고 정작 주인공인 우동 면은 함량 미달인 곳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요즘에 들어서는 일본 본토 수준에 가까운 우동집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같은데요.


이제 면발도 좀 끝내줍시다.


우동 면이 국물에 떠있는 탄수화물 덩어리 건더기가 아닌, 주인공의 역할을 당당히 보여주는 그런 우동집이 제가 한국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밤, 쫄깃쫄깃한 글루텐을 생각하면서 우동 한 그릇 어떨까요?


  1. https://www.youtube.com/watch?v=NjVugzSR7HA [본문으로]
  2. Pleasure. 영문 위키에서는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이 경험하는 긍정적이고, 즐거우며 추구할만한 정신적 상태를 총칭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신체에 주는 채찍과 당근 중 당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죠. [본문으로]
  3. 이 때는 인류로 진화하기 전이므로 음식이 아니라 먹이를 먹습니다. [본문으로]
  4. http://ko.wikipedia.org/wiki/%EA%B0%90%EC%B9%A0%EB%A7%9B [본문으로]
  5. http://blog.naver.com/undernation/130100558497 [본문으로]


공동연구는 어렵습니다.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아요. 특히 임상분들과의 협업에서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논문의 authorship이겠지요. 특히 꽁짜로 얻어 타는 분들이 많아지게 되는 경우에는 꼬인 authorship을 풀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공동연구자에서 연구자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 [공동연구]가 곧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임상교수와 부교수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포닥역 이정재의 열연과, 차기 주임교수자리를 두고 다투는 부교수 황정민과 조교수 박성웅의 치열한 알력다툼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화면을 수놓고 있습니다. 

곧 개봉할 이 영화의 스틸컷을 감상하시죠.







2015년을 뜨겁게 달굴 영화 [리젝]이 올 봄 개봉할 예정입니다.

장동건, 유오성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무장한 이 영화는 

젊은 연구자들의 애환을 잔잔하게 그린 휴먼 드라마입니다.


한편 이 영화의 명대사들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박사과정이 포닥에게) "내가 니 시다바리가?"

(연속된 리젝을 당하면서) "마...마이 무웃따 아이가, 고마해라." 

등, 많은 명대사들이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관객들을 끌어모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에 맞서는 영화 [억셉]역시 개봉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요,

이 영화 역시 명대사들로 수놓아져 있다고 합니다. 

시사회를 보고 나온 관객들에게 회자되는 이 영화의 명대사들. 한번 같이 감상해 보시죠.






신작 어플을 소개하는 본 코너에서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초거대 신작 "살아남아라! 연구자"를 소개합니다. 

본 게임은 2015년 출시될 예정이며 현재 오픈베타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특히 많은 치킨집 사장님들의 관심속에 본 게임은 iOS와 안드로이드용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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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다 못해 덤벼들어서 우리 포닥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논문을 더 읽혔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동물실험실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 밑에 네이쳐 리뷰 논문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논문을 읽지를 않는다. 나는 하릴 없이 포닥을 앉히고, 그 눈 앞에다 재임용 추천서를 들이댔다. 포닥은 집에 있는 마누라와 애들이 생각이 나는지, 논문을 읽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월화수목금금금은 매일같이 점교수한테 쪼임을 당하는데 댈 게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 주 논문을 읽히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포닥이 왜 그런지 수염이 덥수룩해져서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실험실을 어슬렁 거리며 졸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교수님이 볼까 봐서 얼릉 현미경실에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할 조교수가 필연 우리 실험실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현미경실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포닥을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동물실로 실험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SPF에 들어가려 방진복을 입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 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마우스에 종양세포를 찔러넣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실험실에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실험실 복도에 널려있는 디프리져 칸칸히 환자샘플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교수가 청승맞게스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앞에서 또 푸드덕, 푸드덕 하고 들리는 포닥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포닥을 집어 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게 지네 박사학생과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실험가운도 벗어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파이펫을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포닥이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렀다. 포닥도 포닥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학교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논문 잘쓰고 얼굴 예쁜 조교수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교수네 박사학생의 실험노트를 때려 엎었다. 실험노트는 푹 떨어진 채, 생채유래 폐기물통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매섭게 눈을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실험노트를 못 쓰게 만드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실험실 연구노트인데?”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이제 연구비도 떨어지고 연구실도 내쫓기도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서 실험복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다 점교수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터 내 실험 좀 할 테냐?” 하고 물을 때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 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무슨 실험을 하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 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 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인젠 네 실험해줄 테야.”


“연구노트는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디프리저로 다가간다. 그 바람에 디프리저문이 열려서 가득 환자 샘플이 쏟아졌다.


60대에서 80세까지 암환자들 혈액샘플과 종양 조직샘플에 나는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에서


“점교수! 점교수! 연구계획서 쓰다 말고 어딜 갔어?”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점순네 교실 주임교수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교수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복도 옆을 살금살금 기어서 회의실로 내려간 다음, 나는 디프리저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옥상으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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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정리


지은이: 작자미상

갈래: 단편소설

배경: 시간 (2010년대), 공간 (인심이 순하고, 순박한 지방 대학)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비정규 계약직 연구교수인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그리는 데 효과적이며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다.) 

주제: 지방대학 조교수와 연구교수의 순박한 공동연구

문체: 이 작품에는 실험실 토속어와 개인어가 풍부하게 구사된다. 이것이 이 소설에 활력을 주고 산문성을 확보하게 한다. 특히, 이 작자미상의 소설에는 실험실 약어, 영문이 많이 쓰인다.(특히 오덕한 포닥의 묘사에 유의)

구성: 현재-과거-현재의 역순행적 구성임

발단: 연구비로 점교수가 자꾸 나의 약을 올림 / 수난을 당하는 ‘나’의 포닥 (현재)

전개: 나흘 전, 연구비를 준 호의를 거절당한 점교수가 나의 포닥을 더욱 학대함 (과거)

위기: 나의 포닥에게 논문을 읽혀보나 BBRC에서도 리젝당함 (과거)

절정: 빈사지경이 된 포닥을 보고 화가 나서 점교수네 연구노트를 못 쓰게 함 (현재)

결말: 점교수가 연구노트 사건을 봐 주기로 하여, 점교수네 실험을 해주기 위해 환자 샘플을 둘러봄 (현재)

등장인물:

나: 1년마다 재계약하는 비정규 계약직 연구교수. 순박하고 천진하며 감수성이 둔한 편이나, 저 나름 실험과 연구를 한다. 우직한 인물의 전형

점교수: 전임 조교수. 깜찍하고 조숙하여 ‘나’의 무딘 연구를 자극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도발한다. 개성적 인물

역자의 변: SSRI는 참 좋은 약입니다. 







포닥 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 포닥이 막 쪼이였다. 내가 점심을 먹고 실험을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였다. 실험실에 들어가려니까 등 뒤에서, 포닥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옆 실험실 박사과정과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교수네 박사(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인데, 이번에 impact factor가 10점도 넘는 논문을 냈다)이 케이온의 미오가 프린팅된 티셔츠를 입은 뚱뚱한 우리 포닥을 함부로 해대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대는 것이 아니라, 클린벤치를 쓰고 뒷 처리를 잘 안 했다며 쪼고 물러 섰다가 또 CO2 incubator에서 곰팡이가 난다면서, 또 쪼아대었다. 그러면 이 못난 오덕 놈은 쪼일 적 마다 연신 땀을 흘려대며, 헉헉댈 뿐이였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 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 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파이펫을 메고 달려들어 점교수네 박사를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 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교수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 놈의 교수놈이 요새로 들어서서 1년마다 재계약하고 있는 연구교수인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렁거리는지 모르겠다. 


나흘 전 연구비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고놈의 조교수가 논문을 썼으면 썼지, 남 실험하는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실험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도 교수회의에서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척만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도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 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조교수가 남 웨스턴 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디?”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연구하기 좋니?”


또는,


“2월이나 되어야 연구재단 연구비 공고가 뜨는데, 벌써 연구계획서를 쓰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대인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실험실에 에어컨이 들어오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연구노트를 할끔할끔 돌아보더니, 파일에서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언제 땄는지는 몰라도 일반연구자지원사업 여성과학자 협약서가 손에 쥐였다.


“느 연구실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 소리를 하고는, 제가 연구비를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릉 써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여성과학자 연구비가 개꿀이란다.[각주:1]” 


“난 연구비 안 쓴다. 너나 써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글러브낀 손으로 그 협약서를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 때서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실험실에 들어온 것이 근 삼년 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교수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협약서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교수 휴게실로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학장님이, 


“너, 얼른 부교수 되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될 때 되면 어련히 될라구....” 


이렇게 천역덕스레 받는 점교수였다. 본시 부끄러움을 타는 교수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내 실험실의 디프리저를 한번 모지게 후려때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연구비를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연구실에는 이런거 없지?”는 또 뭐냐? 그렇잖아도 저희는 전임이고 나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실험을 하느라 일상 굽실거린다. 내가 이 학교에 들어와 연구실이 없어 곤란으로 지낼 제, 벤치를 빌리고 그 위에 센트리퓨지 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교수네 실험실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교수님도 실험할 때 연구비가 딸리면 점교수네 교실 가서 부지런히 빌려다 쓰면서, 인품 그런 교실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흔이나 된 것들이 수군 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학교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교수님이였다. 왜냐 하면, 내가 점교수하고 공동연구를 했다가는 점교수네 교실이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연구비도 떨어지고, 연구실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였다. 


그런데 이놈의 점교수놈이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계속)


  1. 여성과학자 연구비를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소설의 비유상 특정 집단만 신청할 수 있는 연구비 종류를 선정하다 보니, 여성 과학자 연구비가 선택되었습니다. [본문으로]

눈물을 흘리고 간 그 담날 저녁 나절이었다. 실험을 잔뜩하고, 연구실로 돌아오려니깐, 어디서 포닥이 죽는 소리를 친다. 어 뉘 실험실에서 포닥을 잡나 하고 점교수네 실험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래졌다. 점교수가 저희 실험실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아 이게 실험실 앞 복도에다 우리 포닥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 놈의 포닥. 니 인건비 할 연구비 따와라. 따와라.”


요렇게 암팡스레 혼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번 휘돌아보고야 그제서 점교수네 실험실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파이펫을 들어 후려치며,


“이 놈의 교수놈. 남의 포닥 논문 못 쓰게 하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뻑 질렀다. 


그러나 점교수는 조금도 놀래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포닥 가지고 하듯이 또 연구비 따와라, 따와라 하고 혼내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실험하고 돌아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포닥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너 보란 듯이 내 앞에서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실험실에 튀어 들어가 조교수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포닥이 혼날 적마다 파이펫으로 실험노트를 후려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아, 점교수! 남의 포닥 아주 죽일 터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팩스 옆으로 쪼르르 오더니 실험실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포닥을 내팽개친다.


“에이 쓸모없다!”


“쓸모없는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조교수 같으니”


하고 나도 실험실을 힝하게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라고 하는 것은, 포닥이 섬기는 서슬을 본다면 적어도 마음의 스크래치가 단단히 든 듯 싶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야 이 바보 연구교수 녀석아!”


“얘! 너 배냇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교수님이 논문도 못 냈대지?”


“뭐? 울 교수님이 그래 논문도 못내?”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 때까지 실험실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할 점교수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나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실험실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도 못 하는 걸 생각하니, 지난 달 미국 연구실에서 제의받은 연봉 없는 포닥자리라도 가버릴 껄 하면서, 분하고 급기야는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교수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컬쳐룸에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히 제 박사과정 학생을 몰고 와서, 클린벤치를 점령한다. 제 실험실 남자 박사과정 학생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실험이라면 홰를 치는고로, 으레 컬쳐룸에서 며칠이고 실험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포닥이 실험할 공간이 없어서, 슬리퍼 신고 책상머리에 앉아 케이온이나 보게 해놓는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포닥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회의실로 갔다. 포닥에게 네이처 논문을 읽히면, 해외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외국인 포닥이 컨포칼 결과 하나만 가지고 네이쳐 쓰는 것처럼 논문을 잘 쓴다 한다. 책장에서 네이처 논문을 잔뜩 들고 포닥에게 읽혀 보았다. 포닥도 네이처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년치 논문을 훌쩍 읽는다. 


그리고 읽고는 금세 실험을 못할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현미경실에다 가두어 두었다. 


웨스턴 한 두 판을 끝내고 나서 쉴 참에 포닥을 데리고 컬쳐룸으로 나왔다. 마침 컬쳐룸에는 아무도 없고, 점교수만 저희 사무실 안에서 연구계획서를 쓰는지 앉아서 노트북을 쳐다볼 뿐이다. 


나는 점교수네 박사과정 학생이 노는 실험테이블로 가서 포닥을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포닥은 여전히 얼리어 논문을 쓰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다. 점교수네 박사과정 학생이 멋지게 인트로덕션을 쓰는 바람에 우리 포닥은 겨우 저자목록만 쓰면서, 연신 땀만 흘리고 당췌 논문 진도는 나갈 생각을 안 한다.


그러나 한 번은 어쩐 일인지 한글을 열고 마우스도 쓰지 않고 테이블을 척척 만들어 가니, 점순네 박사학생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멀씰한다. 과연 우리 포닥이 과체중 때문에 행정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것이 키보드에서 손도 안 떼고 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옳다, 알았다. 행정병 출신에 네이쳐만 읽히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 때에는 연구실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교수도 입맛이 쓴지 살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벌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 한다! 잘 한다!”


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뻗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 하면 점순네 박사과정이 submission한 논문이 Immunity에 억셉되는 서슬에 우리 포닥은 BBRC에서도 리젝되어 막 곯는다. 이걸 보고는 이번에는 점교수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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