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your fault.

 

때로는 누군가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주인공인 윌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도, 어린 시절의 상처와 환경에 의해서 청소부로 일을 합니다.

 

우연히 재능을 알아본 MIT 수학과 램보 교수는 그와 함께 일을 하지만, 윌의 능력에 감탄하고, 좌절하고 벽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은 윌을 위로하고, 그가 겪은 고통을 들어내면서 그를 변화시킵니다.

 

이 장면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받은 장면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 그리고 앳된 모습의 멧 데이먼.

 

심금을 울리면서 여러번 반복되는 It's not your fault.

 

때로는 연구가 잘 안될 때, 그리고 세상이 나를 배신(?)한다고 느껴질때, 힐링이 되는 그런 한 마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Qht2yOX9Js

 

 

"슬기로운 질문 생활"

 

안녕하세요. MDPhD.kr입니다. 오늘부터 가끔씩 의료 윤리에 관한 질문을 하나씩 올리고자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만한, 그렇지만, 쉽게 답을 내기 힘든 의료 상황이나, 과학적 상황에 대해서 질문을 올리고자 합니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당연히 이 부분은 오픈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법률적으로 정답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법률적 정답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정답으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답에 대해서 최대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대편 의견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 상황이라면 어떤 액션을 취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질문 한토막" 코너의 취지입니다. 상황 자체의 가정에 대한 논의도 환영입니다. 그리고 글 자체가 언제든 시대 상황이 바뀔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게시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지난 글에도 답을 해 주실 수 있으면 답해 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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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슬기로운 질문 한토막 입니다.

 

상황입니다.

 

당신은 치프 레지던트입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이제 인턴들이 당신의 과에 몰려와서 던트 시험을 치겠다고 합니다.

총 2명을 뽑을 수 있고, 지원하는 인턴은 원내턴 6명과 원외턴 4명을 합쳐서 10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어플라이턴의 일처리 능력과 성적, 성격 그리고 전반적인 교수님의 평을 통해, 대략 어떤 사람을 뽑을지 의국 내에서는 결정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즉, 이 사실을 모르는 8명이 던트 시험을 치면, 1년이라는 기회를 날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8명에게 시험을 치지 말라고 조언한다면, 그 중 일부가 교육 수련부에 이 상황을 보고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8명의 인턴들에게 우리 과를 지원하지 말라고 조언해줘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요?

과연 어떤 선택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인턴선생님들에게 좋은 것일까요?

https://www.yna.co.kr/view/AKR20160518127200014

 

軍, 이공계 전문인력 활용방안 모색…병역특례 폐지 후속대책 | 연합뉴스

軍, 이공계 전문인력 활용방안 모색…병역특례 폐지 후속대책, 김귀근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16-05-18 16:28)

www.yna.co.kr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병역 의무를 완료한 사람으로, 사라져야할 제도 중 하나가 바로, 징병제라고 생각하고, 군에서 이공계를 "활용"한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큰 우려를 표하는 바입니다.

 

말이 좋아서 탈피오트이지, 사실상 바보 만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국방부에서 젊고 파릇파릇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할 20대 젊은 남자를 데리고 가서 "시다바리" 시키고, 바보 만들어서 제대 후 경직된 사고를 제거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 그리고 창의적인 사고와 유연한 사고를 할 기회를 빼앗는 기회 비용을 따지고 본다면, 저는 현재의 징병제는 아주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군인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도 등장할테고, 아무리 쪽수가 많아봤자, 제대로 만든 미사일이나 폭격 한 방에 훅 가는 것이 현대 전투인데, 지금 별달고 "장군"하는 사람들이 70년대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살고 있으니, 이런 대책이 나오는 거 아닌가 싶네요. 물론, 주변에 딸랑이들도 많겠죠.

 

사실상 국방의 의무는 남녀 차별의 가능성도 존재하고, 모든 무기들이 현대화되고, 기술의 첨병을 달리고 있는 전투에서는 1년-2년짜리 발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병제를 통해서 숙력되고, 제대로 된 군인을 만들어서 장기적으로 활용한다는 관점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답답한 마음 뿐입니다.

 

눈이 오면, 삽질을 군인들에게 시키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눈을 치울 수 있는 장비를 "제대로!!!" 사주고, 이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면 됩니다. 그러면, 100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2명 정도면, 많아도 5명 정도면 충분히 100명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돈만 쓰면, 뭐든지 제대로 할텐데 말이죠.

 

지금 군인은, 눈 치울 장비와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눈 올 때는 삽질하고, 비 올 때는 천막치고, 평소에는 내무반을 청소할 "SCV"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가끔 군인 코스프레하면서 완전무장하고 뺑뺑이 돌... SCV

사람이 많아 보이면 뭔가 있어보이고, 없으면 "가오"가 안서서, 사람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발상. 이제 접을 때도 되지 않았나요. 예전 6.25때는 인해전술이다 뭐다 했지만, 이제는 백병전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아요.

 

화장실 청소도 군인들 시키고, 빨래도 손빨래 시키고, 바느질도 군인이 하고, 내무반 청소도 군인이 하고, 모든 것을 군인이 하게 만드는 "군인 정신"을 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들을 모아 놓고, 한달 만에 바보를 만들어 버리는 "군인 정신"을 말이죠.

가장 창의적인 인재들이, 세상에서 가장 수동적으로 변신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똑똑한 "발통들"을 자기들 편하자고, 쓸데없어 보이는 반복적인 노가다에 넣어서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결과를 얻는 "군인 정신"을 보았죠.

 

나라를 지켜주는 일은 아주 고마운 일입니다만, 그거 다 우리 세금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 아시죠. 기껏 나무 침상 현대화하려고 6조 8000억원 준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아셔야 합니다. 국방부 한 해 예산은 39조입니다. 이게 얼만큼 큰 돈이냐 하면, 3년만 모으면, 코스닥 시장에 있는 모든 기업을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감이 안오신다면, 자동차로 유명한 "페라리" 라는 회사를 4개나 살 수 있는 금액이구요.

 

서울에 있는 제2롯데월드를 10개정도 지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그래도 실감이 잘 안오죠.

 

국민 모두에게, 오늘 태어난 신생아부터 시작해서, 100살 먹은 할머니까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80만원짜리 아이패드 혹은 갤럭시 s20 신형을 공짜로 줄 수 있는 금액이 바로 39조입니다. 4인 가족이면, 한대가 아니라 4대에요. 이런 금액이 바로 국방부가 한 해 쓰는 예산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매일 국방부 예산이라는 미명 아래, 저 "군인 정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일년에 한번씩, 아이패드 혹은 갤럭시 s20 하나씩, 갓난 애기까지 포함해서, 100살 먹은 할머니까지, 세금으로 바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뻘짓하는 거, 자기들만 생각하는 거,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건장한 젊은이들 착취(?)하는 거. 이제는 보고 있기가 힘드네요..

 

 

그리고 이에 관한 두번째 글..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6/05/351714/

 

[단독] "이공계 병역특례 2023년까지 폐지" - 매일경제

국방부가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이공계 출신들에게 부여해온 병역특례제도를 2023년까지 전면 폐지키로 결정했다. 특히 이공계 박사 과정 학생들이 꾸준한 연구를 위해 선택하는 전문연구요원 박사 과정에 대한 병역특례는 2019년

www.mk.co.kr

 

스타크래프트를 하는데 최고의 전략은 적절한 유닛들을 적시 적소에 만들고, 그들을 조화롭게 만들어서, 적의 기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바보들은, 주구장창 서플라이 디폿과 배럭만 만들어서 200이 꽉 찰때까지, 마린과 메딕만 만들어서 떼로 공격하기도 했다.

 

더 바보같은 사람들은 마린만 미친듯이 만들어서, 돌격 앞으로 하기도 했다.

 

그러다 뭐.. 다크템플러 같이 안보이는 유닛으로 공격하면, 뭐 할 말 없이 바보가 되거나, GG치는 것이지.... 그리고 친구들한테 평생 병-신 이라는 소리를 가루가 되도록 들을 것이다.

 

제대로 하려면, 사이언스 베슬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요새 국방부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 마린보다 못한 "저글링"들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눈덮힌 산에 삽질할 인력.

 

그리고 부대 청소만 하고자 하는 인력. 가끔씩 똥을 치우는 인력.

 

아.. 맞다. 이런 아이디어라면, 저글링 조차도 필요 없을테지.... 그냥 SCV나 드론 정도로 200 채울 분위기~

 

정말 인재를 대우해주고, "쪽수"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닌, 효율과 융통성을 발휘해서 고급으로 적절하게 쓸 수 있는 제도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응가 묻은 휴지를 버리는 화장실 휴지통.

 

이제는 진짜 없애야 하는 문화가 아닐까요.

 

의학적인 관점에서 따지고 보면, 화장실에 "응가" 묻은 휴지는, 아주 좋은 배지죠.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국민이 미생물 실험을 몇 십년간 하고 있는 셈인데, 안타깝게도 결과가 좋지 않은 듯 하네요.

 

개인적으로 예전 학교 청소 담당자 아주머니와 대화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네, 제가 주변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라 합니다) 남자 화장실보다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는 부수 쓰레기가 은근히 많다고 하더라구요. 남자 화장실은 휴지(?)... 밖에.. 그나마 담배 일부..

 

근데 여자 화장실의 경우에는 생리대나, 화장품 물휴지 등등이 많이 나와서, 휴지통이 무겁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화장실이 막히는 근본적인 원인은 "휴지"가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설사(?)를 제외하고는 "응가"가 밀도 측면에서나 부피 측면에서나 어디로 보나 두루말이 휴지를 통으로 넣지 안는 이상 휴지보다 객관적으로 "승리"에요.

 

그러니, "응가"가 잘 내려간다면, 그보다 작은 부수물인 "휴지"도 잘 내려갑니다. 참고로, 많은 나라에서 응가를 누면서 영역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1인으로서, 이제껏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에는 변기 주변에 휴지통이 아예 없어요. 똥 묻은 휴지를 버리려면, 옷 다 다시 입고, 그 걸 들고, 밖에 나가서 버려야 해요. 상상해보세요.

 

그러니, 변기에 쏙 버리죠.

 

다만, 생리대, 물휴지, 주먹보다 큰 휴지 등은 분명히 막히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생각해보면, 좁은 변기 배관에 이런 물건들은 걸리기 딱 좋죠. 요새는 기술이 좋아서 휴지가 물에 들어가면 잘 풀어집니다.

 

남자 화장실은 없애도 큰 문제가 없지 싶은데, 여자 화장실은 일단, 캠페인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휴지는 변기에, 다른 쓰레기는 휴지통에.

 

뭐. 계속 미생물 배지 놀이를 하고 싶다면야, 옆에 따뜻한 인큐베이터를 가져다 놓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연구비 X 프로젝트 하나 하는 것도 방법.

저는 연세대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운동 선수도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생각보다 이런 비리가 심심찮게 들리는데.. 크게 한가지 이유에서 이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가진 실력 여하에 불구하고, 학벌의 과대 평가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 즉, 명문대 간판만 있으면 그 사람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보는 사회적 시선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요.

 

모로가도 명문대 입학(졸업이 아닙니다)만 하면 인생이 핀다~ 뭐 이런 거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어딜가든 진검 승부에서는 대학 간판보다 실력이 훨씬 더 중요하더라구요.)

 

사실, 이런 스포츠 입시는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특히 유명 선수가 될만한 고등학생을 입도선매하고, 계약금을 줘가면서까지 입학시키는 예는 아주 많고, 그런 유명한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학교 이름으로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마케팅(?)의 대가로 입학을 허가주는, 명문대 입학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물론, 전국구 급이면 훨씬 더 입학이 쉽고, 전국구 급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공부를 잘하고, 운동도 그 이상으로 잘하면, 소위 말하는 미국 명문대 입학이 수월한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부분이 학교 재량이 맡겨지고, 학교는 어떤 학생을 뽑아야 "학교 이름을 드높이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그 자율성을 보장받습니다.

 

또 하나, 미국에 있는 제도는 기부 입학입니다. 근데, 여기서 말하는 기부금의 수준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그냥 1-2억 수준이 아니라, 최소 50억, 그리고 이름이 유명한 학교일수록 100억 수준은 우습게 여기면서 입학합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우리 학교에 정식으로 들어올 수 없는 덜 떨어진(?) 학생 한명을 받으면서 100억을 받으면, 그 돈으로 정말 뛰어나지만, 돈이 없는 학생 100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으니 윈윈 아니냐는 논리입니다. 추가적으로 저런 거부(?)의 자제를 받으면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는 논리도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입학 과정에서 그 자율성은 학교 내에서 충분히 논의를 이루고 공통적인 결론이 이루어진다면, 기부 입학도 스포츠 입학도 가능합니다.

 

단, 법대나 의대 등 공식 시험으로 자격증이 필요한 학과의 입학은 대부분의 경우 제한됩니다.(근데 따지고 보면, 그런 기부금 내고 들어갈 수준의 집안에서는 의사나 변호사 시킬 생각을 잘 안한다는 것이 함정.)

 

이런 미국 대학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차라리 짜잘하게 비리나 입시 의혹 1-2억 수준으로 하지 말고, 한 300억 정도 공식적!!!으로 기부하고, 떳떳하게(?) 기부 입학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비리가 오히려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사실상 이런 비리를 저지르는 건, 실력 있는 학생을 못 받아서, 학교 이름을 높일 기회를 빼앗는 기업으로 따지면 일종의 배임이에요.

 

자기 돈 얼마 벌어보겠다고, 학교의 잠재적 성장 기회(?)를 팔아먹는 뭐 그런 행위죠. 학교 측에서 눈감고 넘어간다면, 학교가 우리 학교 명성을 앞으로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인셈이죠. 앞으로 연세대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미국 학교들의 입학 사정관들은 학생 뽑을 때 우리 학교 이름을 어떻게 드높일까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찬 일종의 빠(!)들 집합소에요. 그러니, 일반 기준에 맞지 않고 주관적인 기준에서 학생을 뽑더라도, 왜 내가 제일 우리학교를 사랑하는데 뭘~!! 이러면서 자율권을 보장받죠.

 

에이~ 1억-2억 가지고 누구 코에 발라요.. 그 돈으로는 우리 학교 못 들어와요. 차라리 실력있는 학생 뽑는 게 훨씬 더 남는 장사에요. 한 300억 정도면 모를까. 뭐 이런 컨센선스 같은 거죠. 류현진으로 한화가 덕본 금액이 280억이니깐,

 

그리고, 현실적인 제한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고, 학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학교 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어요) 간판과는 달리, 실력으로 평가받고, 저런 소수의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실제, 간판과 실력은 대부분 비례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더라구요.. ^^

 

아니면 아예 대놓고 제도를 만들어서, 혜택을 많이 보게 해서 그 혜택받는 사람조차도 고맙다고 여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든지~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784753

 

교육부, '연세대 입시비리' 검찰 수사 의뢰…"입학 대가로 금품 수수 정황"

연세대 수시모집에서 아이스하키 특기생 합격자가 미리 결정돼 있었다는 폭로 등 연대 입시 비리 의혹을 저희가 꾸준히 보도해드리..

news.jtbc.joins.com

https://news.joins.com/article/19729755

 

대입 비리 한 번만 걸려도 스포츠계서 영구 퇴출

입시 비리에 한 번이라도 연루된 감독과 학생 선수는 스포츠계에서 영구 퇴출된다. 비리가 발생한 대학 운동부는 전국대회에 일정 기간 출전할 수 없고, 해당 대학은 학생 모집 정지 또는 지원금 삭감 등 불이익을 받는다.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같은 내용의 체육특기자 입시 비리 대책을 15일 발표했다. 지난

news.joins.com

알파카 페이스북

이번에는 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더라고. 키에 관한 열등감 문제 같은 거. 뭐, SNS에 올리는 수준의 글이라서 그냥 반말체로 적겠습니다.)

  나는 키가 참 작다. 165센치니까 여고생 평균키 쯤 되는가? 여튼 반에서 4~5번째로 작았고, 30세경 논산에 징병의 훈련갔을 때는 40명중 두번째로 작았다. 그래서 2번을 달았어야하는데, 나보다 더 작아서 1번이 되어야했던 부산대 출신 안과 선생을 다른 부산대 출신들이 슬쩍 자기들 옆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내가 1번이 되어버렸다. 공식적으로는 2009년 징병의 훈련병들 중 최단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꽤 큰 쪽에 속해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튼 뒤쪽 2/3 정도에 앉았었다. 그러더니 중학교 때부터 잘 안 크더라. 의과대학에서 소아과학을 배울 때 자녀의 키를 예측하는 공식이 있었다. 그 공식대로 계산을 해보았더니 딱 지금의 내 키가 나오더라. 그런데 중학교 때는 그런 걸 알지도 못했었고, 만약에 알았더라도 무시하고 헛된 기대를 했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올라가니까 더 이상 아예 키가 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포기. 

그래도 키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억울하다는 경험을 당한 적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거의 없다. 키가 작다고 해서 큰 아이들이 괴롭히지도 않았고(키는 작아도 깡다구가 있다는 걸 알아서 건드리지 않았다. 두드려 맞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았다) 말이다. 단, 고 1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야, 이게 가족 사진이가? 너거 가족은 다 난쟁이고” 그 때는 그냥 웃고 지나갔었는데, 가족을 건드려서 그런가, 참 기분이 좋지 않았고 지금도 그 자식의 표정이 머리 속에 남아있다. 뭐, 그렇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다. 키 작다고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차피 교정 불가능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키라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한번 따져보자. 키가 크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인간은 왜 큰 키를 선호하는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키가 큰놈이 힘이 쌔다. 힘이 쌘 놈은 싸울 때 유리하다. 적에게 죽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키가 큰 놈이 살아남는다. 둘째, 키가 큰 게 보기 좋다. 이것은 성선택 영역으로 넘어가서 여자들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하게 만든다. 진화학적 시각으로 볼 때 크게 위의 이유 딱 두 가지라고 판단된다. 뭐, 농구를 잘 한다느니, 전구를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느니 하는 이유는 유전자 전달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므로 하찮은 것들이다.

그럼 현대 사회에서도 키 큰 놈이 유리한가? 중고등학교 때 키 큰 놈이 가오잡고, 싸움 잘 하고 이런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현대는 주먹으로 사람 때려죽여서 무언가를 쟁취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구석기 시대 지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럼 인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뇌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살인을 할 수 있는가. 그게 핵심이다.

 키가 콩알만 했던 로마 군인이 어떻게 해서 덩치 우람한 게르만 민족을 지배할 수 있었는가. 문명화에 그 답이 있다. 결국 뇌의 활용이라는 말이다. 키로 인한 자연 선택의 옵션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해도 무난할 듯 보인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유일한 요소는 성선택이다. 아무리 자연 선택의 측면에서 불리한 요소라 하더라도 암컷이 원한다면 그 요소는 발달을 하게 된다. 공작새의 깃털이 대표적인 예다. 인간에게는 키가 그런 요소 아니겠나 싶다. 키가 크면 보기 좋고, 섹스어필에 유리하다. 이건 어떻게 교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컷들은 다른 섹스어필 무기를 만들었다. 노래, 유머, 지능의 과시, 편지, 로맨틱한 언어들. 따져보면 결국 뇌를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래도 키가 큰 놈이 여전히 유리하다. 남자 역시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 키가 큰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성적 기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키가 작으니까, 그런 걸 자식에게 물려주기는 싫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압박이 상당한 것 같다.

솔직히 딱 까놓고, 현대 사회에서 키 작은 게 키 큰 거보다 유리하지. 음식을 먹어도 큰 놈이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같은 차를 타도 큰 놈이 타면 더 작게 느껴질 거고, 같은 집에 살아도 작은 놈이 더 유리하지. 우리가 만약 샤킬 오닐 같은 덩치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좁아터져서 어떻게 생활하겠나. 덩치 큰 놈은 더 큰 집, 더 큰 자동차를 사야하니까 작은 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하고 그렇지. 그래서, 나는 키가 작아서 참 좋다.(이게 바로 현실 부정을 통한 정신 승리? 아니면, 현실 직시? 어쨌든 저쨌든 정신 승리는 정신 승리.)

"지구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다" - Edward O. Wilson, 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中에서-

"꽃 피는 식물(현화식물)과 조류와 포유류는 거의 대부분의 종이 발견되었지만, 미생물을 포함한 그 밖의 생물 집단에서는 대다수의 종이 발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세균보다 더 다양하며 수도 많으리라고 예상되는 것은 바이러스입니다." - 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中에서--

 마빈님의 글로 소개된 바와 같이 (http://mdphd.kr/236), 3년 전 인류에게 알려진 새로운 바이러스(MERS-CoV)가 한국에 상륙하여 국민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위의 인용에서와 같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인류에게 알려진 것은 일부에 불과하며 (그림1), 세균과 바이러스는 그보다도 덜 파악한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새로운" 바이러스의 발견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바이러스는 종 특이성(species tropism)이 있기 때문에, 그 "새로운" 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바이러스는 유전체(genome)와 몇몇 단백질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기에 혼자 힘으로는 복제를 할 수가 없는, 사실 생명체로 보기도 난감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생명체의 세포 안에 들어가서 세포의 살림을 뺏아 써야만 복제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아무 종의 아무 세포에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이러스의 표면에 발현된 특정 부착단백질(viral attachment protein)이 특정 세포에 발현된 특정 수용체(viral receptor)에 결합해야만 그 세포로 들어가서 빈대짓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림2). 

 위와 같은 사실 때문에 개의 감기 바이러스는 개 호흡기 세포에만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의 감기 바이러스는 사람의 호흡기 세포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감기에 걸린다고 해도 개는 그 감기에 전염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30년에 비해 한 세대가 매우 짧고 척추동물과는 달리 돌연변이를 수정하는 시스템도 가지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에서는 돌연변이가 매우 쉽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돌연변이를 통해서 박쥐 호흡기 수용체에만 결합하는 바이러스의 부착단백질이 사람의 호흡기 수용체에도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면 인수공통감염병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번 MERS Cononavirus(MERS-CoV)는 박쥐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개, 고양이 등과 심지어 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왜 개에게서 인간에게 넘어오는 신종 바이러스 소식은 없을까요? 사실은 수천년 전 개, 소, 말 등의 가축화를 시작하였을 때, 지금의 MERS처럼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현생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여러 병원체 중의 상당수가 가축으로부터 넘어와 변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천년을 함께했기에 가축과 우리는 이미 병원체를 나눌 만큼 나눈, 마치 이미 방귀 튼 지 오래된 부부나 마찬가지인 관계입니다.

 하지만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은 인류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와 세균을 무수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지구는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며, 인류에게 알려진 세균과 바이러스는 극히 일부라고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2014년 서아프리카를 강타하여 세계를 긴장시킨 Ebola virus (그림3), 그리고 그 친척뻘 쯤 되는 Marburg virus도 박쥐나 원숭이와 같은 야생동물에게서 사람에게 넘어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2년 중국 광동성을 시작으로 28개국에서 784명의 생명을 앗아간 SARS-CoV는 야생 사향고양이(우리집 고양이같은 고양이 아님, 그림4)를 식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에게 넘어온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지구의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은 차라리 인류에게 계속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현실적 최대치는 100억명이라고 알려져있는데, 세계 인구는 2011년 10월 70억명을 돌파했습니다. 팽창하는 인류는 생활하고 농작물을 만들 더 많은 개척지를 필요로했기 때문에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인 숲을 침범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격리되어 있던 야생동물과 인간들의 거주지가 겹치게 되었으며, 야생동물이 인간과 직접 접촉하거나, MERS-CoV처럼 야생동물인 박쥐가 인간의 가축인 낙타와 접촉을 하게 되었으며 이 때 "인류에게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달이 된 것입니다. 낙타에게 전달된 MERS-CoV가 낙타와 인간의 교류에 의해 2012년 사람에게서 처음 박쥐의 MERS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림5,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낙타와의 밀접한 접촉을 피해야하는 것 잘 알고 있으시죠?ㅋ 사실은 낙타가 박쥐랑 밀접한 접촉을 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 만남을 주선한 것은 인류입니다.)  

 

 인류가 지금과 같이 팽창적으로 지구를 소비해간다면 또다시 "새로운" 미지의 병원체가 소환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원 사용과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등의 인류의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절제하는 자세를 갖추어야한다는 사실을 이번 MERS사태를 통해서 지구가 인류에게 경고장을 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실 예과 시절에 누군가가 이 영화 보는 것을 극구 만류하여서, 당시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 보고 나면 우울해질 수 있는 영화라고.. 자살을 유도(?)하는 피아노 선율이 슬픈 영화라고 해서.. 그리고 유럽권 영화라고 해서.. 여하튼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일을 안 할 때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최근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가치관을 알게 되면서, 특히 "폴리 아모리"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 영화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정말 수작이고, 사람의 심리를 아주 절절히 다루는 괜찮은 영화였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시리즈물을 기획하면서 이 영화를 추천해준 오지의 마법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폴리 아모리라는 것과 글루미 선데이를 얼버무려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길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긴 호흡의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미리 밝혀두지만, 개인적으로 다양성과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그 가치관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30이 지나고 나서야 내 안에 체득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완벽히 체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정답이 없는 삶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이 글도 그런 맥락에서 쓰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어서 혹은 할 것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보니깐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삶도 있더라 라는 것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맹목적으로 정답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맥락에서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왜 의과학자 팀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리냐고 한다면.. 뭐.. 딱히 그 이유를 들 수는 없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고, 인류를 사랑한다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대의(?)를 들면서 글을 쓰고자 한다. 당연히 이 글은 폴리 아모리를 권장하는 글도 아니고, 권장하지 않는 글도 아니다. 이런 삶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존중해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개념에서 글을 쓰는 것이니,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폴리 아모리(poly amori)라는 개념은 우리네 상식에서는 아주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다. 사실 필자역시도, 이 개념을 이해는 하고 있지만(혹은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직접 실생활에서 나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글쎄요..." 이긴 하다. 그만큼, 개념이 아주 진보적이고, 우리의 상식선을 넘어 선다. 

Polyamori. 비독점적 다자 연애, 혹은 떼사랑이라고도 불리우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떼사랑이라는 용어는 의미가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그 용어를 만든 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특정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비독점적 다자 연애는 용어 자체가 길면서도 전문성을 가진 것 같아서 영어 표현을 그대로 적용한 “폴리아모리”를 선호한다.

폴리 아모리를 쉽게 설명하면, 한 사람이 다양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사랑을 꾸준히 추구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글을 있기에, 이 링크로 대신하고자 한다.(링크는 구글에서 검색어 넣은 것임. 궁금하시면 직접 클릭해서 읽어보세요 ^^) 혹자는 한사람이 두 명 이상을 만나는 것인데, 바람피우는 것 혹은 양다리, 문어다리 걸치는 것과 뭐가 다르냐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흔히들 말하는 "바람피는 것"과 다른 중요한 개념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점과 상대방에게 이런 관계를 사전에 정직하게 미리 알리고 동의를 구한다는 점이 아주 다르다. 그러니깐, "난 너를 사랑하고 있지만, 어제 만난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될 것 같아. 혹은 좋아하게 될 것 같아. 그러니깐 허락해죠”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통보라고 봐야하겠지만, 정확하게는 이런 언질을 주고자 하는 유대관계도 폴리 아모리 관계라면 사전에 상대방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깐, 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미리 알고 있기에, 사전에 서로에게 그런 관계를 오픈해 두자는 것이다. 

처음 이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주 진보적(?)이라서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사실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지만, 나름, 30세 이후에 조금더 개방적인 가치관과 상대성을 인정하고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알게된 개념이였다. 미국에서는 벌써 이런 폴리 아모리스트의 삶이 동성애와 같이 나름 보편성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한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이 폴리 아모리라는 개념 저변에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크게 두가지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는 내가 보는 바이기에 틀릴 수도 있다. 

첫번째는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해?” 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이성 혹은 동성을 만나게 되고, 그 중에 특정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결혼하기 전이라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거나 동거를 하게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결혼한 상황이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상황인데,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두근거리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작정 그 새로운 사랑을 접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사랑한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물론, 그런 두근거림, 사랑을 사전에 차단하면 충분히 될 일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에 마냥 접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닌 셈이다. 즉, 폴리 아모리스트들은, 평생동안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두는 셈이다. 

두번째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다른 사랑이 왔다고 해서, 그 전에 사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만 허락한다면 두 사람다 동시에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다. 사랑하면 굳이 헤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헤어지지 않고 두 사람다 동시에 사랑하면 더 좋은 거 아니냐는 맥락인 셈이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많은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해도 헤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여전히 사랑하니깐),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 뿐이고, 비 독점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뿐이니깐. 즉 폴리 아모리스트들은, 사랑을 한 번 하게 되면, 굳이 그 사람과 동의하에 헤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 헤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사랑하기 때문에. 

이 두가지 사랑에 대한 전제가 폴리 아모리를 유지시키는 가장 큰 축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고, 미리 사랑한 사람이랑 헤어질 수 없으니, 새로온 사랑도 함께 받아들이자는 것
이 폴리 아모리의 중요한 개념인 셈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폴리아모리스트가 가진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에게 이미 사랑한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닌가 하면서.. 일반 상식으로는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깐. 그리고 그렇게 동시에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도 사랑하고, 아빠도 사랑한다. 내 친구 철수도 친구로서 사랑하고, 장원이 형님도 형님으로서 사랑한다. 그렇게 따지면, 내 안에 생각보다 많은 사랑이나 우정이 존재하는 셈인데, "연인에 대한 사랑은 왜 둘이 될 수 없고 꼭 하나여야만 하는 것?"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연인에 관한 사랑은 "독점적일 수밖에 없고 단 하나 뿐이다"는 획일적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사회적으로 일부 일처제가 가진 안정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자)

실제로, 연인과의 사랑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그러면서 추억을 만들어 나가면서 더 공고해지고, 독점적으로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경험상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서로를 구속하게 되고, 그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게 된다. 그 사람의 시간을 소유하고 싶어서 연락을 자주하고, 함께 없을 때는 연락을 통해 안부를 묻고, 간섭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쌍방이 그걸 사랑으로 느낀다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한 쪽이 문제라고 느낄 수도 분명히 있다.

여기에 폴리 아모리스트의 개념이 또 하나 등장하게 된다. 사람은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 아니라, 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질 이유는 없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유까지도 내가 구속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정말 진보적이라서 한동안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있었다. 나는 그 전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던 것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소유”하고자 했던 셈이다. 물론 다행히도, 내가 “소유”하고자 했던 시간을 상대편은 “공유”라고 느꼈기에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타인을 만나지 말고, 사랑하지 말라고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다행히도 상대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간섭”이라고 느꼈기에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이는 침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소유하고자 했던 행위라고 느낄 수도 있다. 

추가로,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느냐는 점은 나도 충분히 동의를 했다. 단,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과연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걸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상대방은 그 사람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경우가 생기지 않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게 이야기 했지만, 핵심은 세상에는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손가락질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그러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에서는 그런 “다름”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탄력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많다.

결혼과 연인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회적 약속임일 뿐인데,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삶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너무나도 지탄받고 있고, 그것이 두려워서 소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큰 마음을 가지고 넓은 아량으로 그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정답”처럼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항상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냥 “정답”처럼 생각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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