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로 연구를 하면서, 대학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의사 입니다. 제 동기들과 아내는 임상 의사로서 소위 말하는 "의료 현장"에서 뛰고 있죠. 오늘도 아내는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 


최근 들어, 밤과 새벽에 사고를 당한 친구들의 전화가 자주 와서 이 글을 포스팅해 봅니다. 언젠가 한 번은 하려고 했던 응급실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하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본 글은 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에 따른 처치와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시고 읽어주시길 당부합니다. .또한, 본 글은, 사고가 생겼을 때, 응급실에 가지 말라는 글이 절대로 아님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본 글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급실은 말그대로 응급을 요하는 의료 공간입니다. 개인마다 분명히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의료인들은 일반적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를 응급 상황이라고 인식합니다. 예를 들면, 심한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절단되었다거나, 복부가 칼에 찔렸다거나, 갑자기 많은 양의 피를 토하는 상황은 누가 봐도 응급 상황이죠. 아울러 소위 말하는 "중풍"같은 뇌경색이나 뇌출혈과 같은 경우, 심장 마비 증상이 있는 경우도 응급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생명을 다루는 응급 질환들은 많이 있긴 합니다만, 개인이 판단하기가 쉽지 않죠. 가끔 증상 뒤에 숨은 질환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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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응급실 사진 by loveCUK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실제로 대부분의 환자들이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면, 늦은 처리에 따른 기다림, 지속되는 고통과 자신의 증상을 온전히 봐 주지 않는 의료진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 90년대 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응급실에서의 불친절, 기다림 문제는 "대학 병원은 불친절하다"라는 인식의 선봉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껍니다.


이런 문제가 왜 발생했느냐하면, "응급"을 인식하는 의료진과 "자신의 응급 상황"에 대한 일반인들의 차이에 근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도록 하죠.


혜린이라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밤에 술을 마시다가, 넘어져서 이마가 찢어진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갑자기 발생한 일이고, 피가 많이 흐르기 때문에, 환자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됩니다.  환자는 피도 많이 나고 아프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을 "응급"으로 생각합니다. 딱히 떠오르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 가까운 대학 병원을 찾게 됩니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지속되는 통증"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상황보다 자신의 병을 더 "응급 우위"에 두는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혜린이의 상황은 혼수 상태가 있거나, CT를 통해서 머리에 출혈이 있지 않는 한(그에 관한 검사들을 초반에 하게 되죠) "초 응급" 상황은 아닙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이 환자의 vital sign(활력 징후라고 하는데, 생명과 직결되는 혈압, 호흡 등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이 안정적이고, 외상의 정도가 뇌를 손상시킬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을 하면 의사의 "응급 우선 순위"에서 이 사람은 더이상 큰 우위에 있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이 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검사를 합니다. 다른 환자들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워낙 바쁘기 때문에 대충 묻는 것 같지만, "응급"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한 여러가지를 묻습니다. 혹시 외부 충격으로 머리를 강하게 부딪히지는 않았는지, 상처에 혹시 다른 이물질이 묻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거기에 따른 검사를 하거나 소독을 하게 됩니다.


이 경우, 혜린이를 처음 본 응급실 의사는, 사실상의 초기 조치가 끝난 것입니다. 이 때 만약 다른 응급 환자가 없다면, 혜린이의 상처는 바로 봉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응급 우선 순위에 있는 환자가 있거나 새로운 환자가 갑자기 온다면, 혜린이의 상황은 그 환자의 상황에 비교해서 우선 순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즉 의사의 입장에서는 생명과 직결되는 "우선 순위"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환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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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9_060 by Kevin Goebel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하지만, 혜린이 입장은 그게 아니죠. 아프기도 하고, 피도 나기 때문에, 자신은 무언가 빨리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기다리기만 합니다. 한 십분 정도 전에 의사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는 봤는데, 그 이후에는 그냥 다른 환자들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혜린이는 혹시나 이마의 상처에 흉터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간호사에게 흉터가 남지 않도록 부탁하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과 함께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곤 아무리 둘러 보아도, 자신처럼 피가 흐르는 환자는 없는 것 같고, 할아버지 할머니 기침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의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만 우선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냥 감기인 것 같은데, 왜 자신에게는 신경쓰지 않는지 의아하면서 슬슬 화가 나기도 합니다. (사실 감기처럼 보여도, 폐렴이거나, 심장 질환과 복합적으로 연계된 경우에는 "생명"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로 엠뷸런스를 타고 온 의식이 없는 "환자"가 들어옵니다. 저 사람은 딱 보기에도 자신보다 더 응급인 것 같고, 진짜 "환자"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자, 기다림은 짜증으로 변하고, 술기운에 고함을 쳐 보기도 합니다. 그제서야 성형외과 전공의가  와서 무언가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봉합을 완료하고, 퇴원을 하려고 의료비를 정산하니 무려 50만원이 나왔습니다. 기껏해봐야 5cm 정도를 봉합했을 뿐인데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학 병원에 대한 불신감이 더 커집니다. 


위 상황이 일반적인 대학 병원 응급실 풍경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아주 많이 발생하고, 제 주변에서 겪은 일을 각색한 것입니다. 혜린이 입장에서는 병원에 왔는데 아무 것도 안하는 것 같아 속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혜린이 말고 다른 환자들도 맡아야 하는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의료 우선 순위"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특히나 응급을 요하는 상황이 많은 대학 병원에서는 더 그러합니다. 


이 상황에서 혜린이가 대학 병원 응급실을 가지 않고, 밀려오는 환자가 조금 적은 2차 병원 응급실, 혹은 중소 개인 병원 응급실을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과적으로, 환자 상황에서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응급실에 가면 우선 순위에서 대학병원보다 훨씬 우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울러, 훨씬 더 친절한 대우를 받고, 의료비 역시 훨씬 더 저렴하게 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응급실의 현실.
우리나라 응급실의 현실. by yklee799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대학 병원 말고도, 야간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중소 병원만 하더라도, 응급실이 있다면, 대부분의 응급 처치가 가능하고, 필요한 검사 역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환자 수가 대학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처치가 가능한 상황이 많습니다. 


물론, 개인이 자신의 응급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의료 상황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안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본 글은 그런 "판단"을 강요하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무조건 본인을 응급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야간에 3차 의료 기관인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면, 환자 입장에서 우선 순위에 의해서 처치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큰 병원"이 좋은 것일 수는 있습니다만, 경미한 질환 같은 경우에는 바빠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큰 병원"보다는 바로 치료할 수 있는 "중소 병원"이 더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더불어, 비용도 적게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소 병원에서 처리하지 못할 질환이나 환자라면, 중소 병원에서 바로 대학 병원으로 전원을 보냅니다. 정확한 의학적 판단 아래, 환자의 응급 상황을 "우선 순위화"시키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이게 진정한 "의료 전달 체계"라 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는 의료 접근성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본 글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혹은 경험했던 많은 분들에게 작게 남아,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과학을 하다 보면, 다양한 논문을 읽게 됩니다. 자신의 분야를 다루는 논문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간혹 자신의 분야와 동떨어진 분야의 논문을 읽기도 합니다. 


실제로, 의과학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논문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는다"는 것과 동치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연구에서 논문이 차지하는 위치는 큽니다.


논문(Journal)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에 대해서 과학자라면 대부분 고민하고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설정하고 있겠지만, 조금 더 간략히 설명하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  


                  



사실, 논문은 따지고 보면, 주간지나, 월간지 같은 잡지일 뿐입니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연구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Nature도 따지고 보면 "주간 조선" 과 같은 잡지일 뿐입니다.


(명확한 독자층 호불호가 갈리는 주간 조선. 독자에 따라 찌라시인가 언론 매체인가의 평가가 극명하죠)

그렇지만, "주간 조선"과 Nature는  그 게재 기준이나, 독자 층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싣고자 하는 내용이 다릅니다.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이 역시 (Cell Sciece와 비교해)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찌라시라는 평은 절대 듣지 않을 과학 잡지 Nature) 


논문은 단순히 말하면, 연구 그룹이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논의하는 성과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주간 조선처럼 나오는 주간지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다른 과학자들이 그 결과와 증명 과정을 꼼꼼히 확인한다는 점이 차별화된 점이겠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개발한 을 이용해서 

감기 환자를 치료해 보았더니, 

며칠 뒤에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상황 자체로만 본다면, 이 약은 감기에 아주 효과적인 약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광고를 해대는 의료 기관도 있습니다. 무슨 비기, 비법하면서....) 하지만, 이 사실에서는 극단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진짜 약 때문에 나아진 것인지, 아니면 약은 효과가 없지만, 자연적으로 병세가 호전되었는지 단순히 위 환자 1개 사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이 "연구 결과"를 보고하면, 동료 과학자들은 "그게 무슨 약효를 증명하는 것이냐? 약효가 진짜 있는지 증명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연구가 아니다"라면 퇴짜를 놓겠죠. 아니면, "진짜 약효를 보려면 이런 이런 실험을 하거나, 비교 대상을 두고 실험해라" 라고 코멘트 하겠죠.


그럼 그 "약효 연구"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연구자(이 시점에서는 연구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는 다양한 비교 실험을 수행하고, 통계적으로도 진짜 약효가 있는지 확인하게 되겠죠.


그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감기에 "이 약이 효과가 있다"가 될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 통계적으로 무의미하고, 그냥 약이랑 상관없이 병세가 호전되었다"로 결론짓게 되겠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바로 논문이 나오는 과정입니다.


연구자가 자신의 가설을 설정하고, 그 설정한 가설을 토대로 실험을 전개한 후에, 논문에 게재 요청을 하게 되면, 그 논문을 출판하는 곳에서는 일련의 과학자(일반적으로 그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과학자)를 초청해서 꼼꼼히 검토를 하게 됩니다. 그 검토 결과, 충분히 학문적인 가치가 있다면 게재를 하고, 보완해야할 실험이 있으면, 실험을 한 연구자에게 추가 실험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하나의 연구가 의미있는 지식으로 재편되어, "논문"으로 출판되는 것입니다. 


위 과정에서 동료 과학자들이 꼼꼼히 실험을 검토하는 과정을 Peer Review라고 하고, 보완 실험을 하거나 추가로 데이터를 확인하는 과정을 Revision이라고 합니다. 


다시 주간 조선과 Nature의 이야기로 돌아 가면, 주간 조선의 경우, 편집인이 전반적인 방향 설정, 기사 주제 설정을 하고, 선발된 기자들이 그에 따른 기사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Nature는 위와 같은 Peer Review를 거쳐서 편집인이 최종 게재 승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물은 물론 잡지의 형태로 나오게 되죠. 


따지고 보면, 과학 잡지는 연구자 개개인이 기자가 되어 자신의 결과물을 보고하고 동료 과학자가 평가, 게재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편집인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잡지마다 편집인이 전권을 휘두른다거나, 보조적인 역할만 한다는 등 특징은 다릅니다. 


참고로, 학술적 가치가 높고, 잡지 수준이 높다는 것은 동료 과학자들이 조금 더 엄격하게 심사를 하고, 높은 수준의 결과 유의성을 보이고, 의과학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는 말과 궤를 같이 하긴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연구 시류나 유행 등을 따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연구 결과의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논문은 그 나름의 지식이 내포되어 있고, 항상 높은 수준의 논문만을 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논문의 가치는 논문의 내용과 과학적 추론의 방향 등으로 따져야 하지, 그 논문이 실린 잡지사의 평판으로 따져서는 안됩니다.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조그마한 결과 보고의 논문에도 출판된 이후에 감동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동은 소위 말하는 "큰" 논문을 내나, "작은" 논문을 내나, 자신에게 주관적으로 다가옵니다. 따라서, 출판한 논문으로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



실제로 논문 자체는 낮은 수준의 잡지에 실렸지만, 아주 큰 영향력을 가진 논문도 있고, 심지어, 컨퍼런스에 발표된 논문이 노벨상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His work was filed as a patent application in 1985, and after the patent application was made public reported at the Annual Conference of the Mass Spectrometry Society of Japan held in Kyoto

(학사 연구원으로 학사 졸업 논문으로 달랑(?) 

하나의 논문(특허)을 내고, 노벨상을 탄 연구자 고이치 다나카)


의과학 연구를 하는 모든 분들이 즐겁게 연구하면, 논문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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