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우여곡절 많았고 길기도 길었던 6년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생리학이라는 학문을 더 깊게 공부하며 평생 학문의 길을 걷기로 한지 벌써 두 달째가 되었습니다. 생리학 교실의 조교로서 본과 1학년 학생들을 실습과 수업시간에 자주 마주치게 되니 2010년의 제 본과 1학년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예과 때 동아리 행사나 동문회 행사등을 통해 만난 본과 선배님들은 항상 저희를 겁주셨었습니다.


  본과 생활은 '상상 그 이상' 일 것이라고.


  해부할 때 계속 맡게 될 포르말린 냄새가 매우 독하기도 할 뿐더러, 피부, 머리결도 다 망가질테니 그냥 포기하라고.


  공부량의 신세계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부학으로 본과 1학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들이 말씀하시던 것보단 할 만 했습니다.

  사실 해부학이 사체를 가지고 하는 수업이다 보니,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포르말린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해부하면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 말고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기증자분께 정말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가자고 다짐하고 열심히 실습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그 전리품으로 푸석해진 머리와 피부를 얻었고, 결국 해부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열심히 길렀었던 제 머리는 단발로 바뀌었죠...^^

 

  생리학, 생화학 등을 함께 배우고 공부하면서 처음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잠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밤을 못 샜습니다. 밤을 새면 다음 날에 좀비가 되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서 밤을 새지 않고 시험을 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뭐 제가 벼락치기 파였던 것도 있긴 하지만, 밤을 새지 않으면 시험 범위를 한번이라도 다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시험에 임하는 학생으로서 시험범위 만큼은 한번이라도 다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들과 열람실에서 서로 잠을 깨워주며 편의점을 들락날락 했던 기억이 납니다.

 

 

 

 

  5월 정도였던 것 같네요. 

  지금은 다 져 버린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랬죠. 저희 학교 캠퍼스도 나름 예쁘기로 정평이 난 학교인지라, 캠퍼스 곳곳에 참 사진 찍을 맛 나는 포토존이 많았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만큼 저와 제 친구들의 기분도 꽃가루처럼 둥둥 공중에 떠다녔었습니다만 시험과 실습에 치여 삼십분 정도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는 캠퍼스 나들이도 결국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해부학 실습과 수업이 모두 끝나고 기분 전환으로 같은 학번 동기들 다 같이 소풍 겸 해서 캠퍼스 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서 나름 신나게 봄을 만끽하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데, 다른 과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의대생들인가봐." 

 

 ????? 

 

  아니 우리가 얼굴이나 옷에 써붙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나 놀래서 주변의 동기들과 저를 돌아보았죠. 하... 그 이유를 알 만했습니다. 캠퍼스의 다른 사람들은 파스텔톤, 밝은 색의 옷들을 상큼하게 입고 있는데, 우리 동기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검은 색 옷인데다가, 옷 두께조차도 남달랐던 거죠.


한창 따뜻한 봄날씨인데도 추운 해부학 실습실과 강의실을 왔다갔다 하며 건물 안에서만 살다 보니 4-5월까지도 날씨 감각 없이 두꺼운 겨울옷을 입었던 겁니다. 아 그때 의대 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과 함께한 1쿼터와 함께 봄이 지나가고 2쿼터가 시작되어 3, 4 쿼터까지 면역학, 미생물학, 약리학 등 수많은 것을 배우면서 정말로 많은 양들을 머리에 구겨 넣었습니다.


오죽하면 "눈에 바른다"는 표현을 쓸까요. 정말로 눈에 한번 바르고 시험장 들어가서 그대로 시험지에 쓰고는 머리를 비우고 나오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원래 단순 암기에 약해서 이해를 통해 외우는 걸 최대한으로 줄여 공부하는 걸 제 방식으로 삼았었는데, 의대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더군요.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으니 하나하나 이해 하고 넘어가려면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엔 머리에 그 많은 지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도 없이 구겨넣을수밖에 없었던 거죠.


  처음에는 공부하면서 한 교수님께 최대한 이해해보겠다고 질문하러 가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나하나 파려다가는 성적 안 나온다고 그냥 외우라고 하시는 걸 듣고는 제 공부방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본과 1학년은 즐거웠습니다.^^

 원래 힘들수록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는 관계가 끈끈해지는 법이죠. 마치 고3때처럼요. 거의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투덜거리면서 동기들과 훨씬 더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열심히 해야 하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년에 얼마 안 되는 '비'시험기간에는 책표지도 펴 보지 않고 열심히 놀았기 때문에 나름 즐거운 기억도 많습니다. 진급만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신나게 놀 수 있었죠.


  비록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대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라기 보다는 의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라는 느낌이 드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로 '학문'의 길에 들어서려고 하는 지금에 와서는 '의학'을 하기 위한 인체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의 절대량이 많으니(비록 암기를 통한 지식이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싶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힘든 만큼 즐거웠던 나의 본과 1학년.  23살의 제 청춘이 문득 쪼끔은 그립네요.

  

   

 

  

입시공부 끝에 만난 대학생활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대학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지 하며 버텨내었던, 내 고등학교 생활이 허망할 정도로. 그 덕에 예과 때 맘껏 놀라는 본과 선배들의 말에 충실히 어영부영 예과 생활을 보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예과 2년동안 지내는 캠퍼스와 본과 4년 동안 캠퍼스가 지리적으로 달랐고, 그런 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커서 예과 때까지는 전혀 의대생이라는 자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장면까지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본과 캠퍼스 기숙사에 입사하며 이사를 한 후에야 내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자각과 중압감이 동시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입 후 처음 만났던 의대다운 학문은 모든 의대생들이 그렇듯이 골학이었다. 돌이켜보면 단순암기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 단순암기조차도 차후에 만날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하찮을 정도로 양이 작은 과목이었지만, 본과 수업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쏟아내고 하는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느끼며 배우게 된 과목이 생리학이었다. 생리학 또는 physiology, 이름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인 물리, physics랑 닮아있었고 과목 내용 자체도 그러했다. 의대 본과 1학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을 내 기준에서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은 형태에 대한 암기, 생화학은 핵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에 대한 암기(적어도 나에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라면 생리학은 세포, 기관,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는 과목이었다. 내가 생리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리학에서 배웠던 심장생리, 신장생리, 호흡생리 등등은 병리학, 더 나아가 임상과목 순환기학, 신장학 등등을 배울때 기반지식으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기생리 분야를 가장 즐겁게 공부했었는데, 전기화학평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막전압 방정식, 그러니까 Nernst 방정식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사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고 넘어가고 싶은데, "오지의 마법사"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짧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왼쪽항을 먼저 순서대로 살펴보면 몇가 이온인지 나타내는 z값, 1가 양이온 Na+라면 1, 2가 양이온 Ca2+라면 2, Cl-라면 -1 등으로 매겨진다. 전압 E은 세포막를 기준으로 양 쪽에 걸리게 되는 상대적인 전위차를 말하는데 이 세포막은 일종의 축전기같은 역할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전류가 직접적으로 흐르지 못하는 축전기나 인지질 이중막으로 이온이 잘 통과 못하는 세포막은 성격상 비슷하다. 패러데이상수 F는 단위가 C/mol로서 1몰의 전자가 가진 전하량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왼쪽항은 막 사이에 걸리는 전기적 에너지(전압x전하량)다. 

오른쪽항은 기체상수 R은 단위가 J/mol*k 이다. 1몰의 분자의 화학적 자유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온도 T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고, 세포막 안팎의 이온농도 C로 이루어진 항을 보면, 결국 농도차에 의해 생기는 세포막를 통과하려는 에너지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온의 전기에너지인 왼쪽항화학에너지인 오른쪽항평형에 이르는 지점을 찾는 방정식이다.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는 동시에 농도 구배에 영향받는 분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기화학적 에너지가 평형상태에 이른 상태의 평형전압, 또는 이온의 농도를 알 수 있다. 사실 아주 적은 농도의 이온 이동만으로 막전압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세포 안밖의 이온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평형전압을 알아내는데 쓰인다. 

이 방정식은 전기적 특성을 가진 이온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는 세포막을 만났을 때만 성립한다. 때문에 태초 생명 발생의 신비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초의 생명이 세포막으로 외부 환경과 구별짓고, 세포막 내부에 이온, 각종 단백질을 모아 생긴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시바다에서 최초로 생명체가 생성되려할때, 주변환경과 구별되는 경계를 세포막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포막 안에서는 유전체, 단백질 등을 구성했겠지. 그런데 이 물질들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음전하를 띠고 있다. 그래서 상보적인 양이온을 대량으로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하는데, 이게 K+ 이온이다. 그리고 세포막 바깥에는 원시바다에 풍부한 Na+ 이온과 Cl- 이온이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 상태의 세포는 K+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높고, Na+ 이온과 Cl-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낮다. 그 결과 안정상태의 세포의 막전압은 K+ 이온의 평형전압에 가깝게 된다. Nernst 방정식의 등장이다. Nernst 방정식에 세포 내의 K+ 농도 140mM, 세포 바깥 농도 5mM 을 넣으면 평형전압이 대충 -80mV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안정을 이룬 덕분에 세포는 삼투압으로 인해 세포막이 터지거나 하지 않고 외부환경과 분리된 내부환경을 이룰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불투과성인 Na+이온의 평형전압은 약 +40mV이상인데 (K+ 이온과 분포 양상이 반대이므로), 외부에 풍부한 Na+이온에 대해 투과성이 생기게 하면, 다른 말로 Na channel이 열리면 Na+ 이온이 세포 안쪽으로 유입되면서 세포의 막전압이 순간적으로 +40mV로 치솟게 된다. 이것은 전기생리나 신경생리에서 중요한 개념인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기전이다. 

여튼! Nernst 방정식은 생명 발생의 모습부터 활동전압이라는 개념까지 두루두루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자들이 행했던 노력들, 자연의 네가지 기본힘인 전기력, 중력, 강력, 약력을 통일하려 했던 그 노력들,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연상케 했다. 생명탄생의 신비 중 일부를 훔쳐본 마냥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님 말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마음 역시 수학,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생리학 수업 덕분이었다. 비록 공부를 더 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마음이 그렇게 쉽게 답을 내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뱀발. 요즘 신경과학의 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마음/뇌 문제는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서평을 쓰고 싶지만..읽는 속도가 영 느려서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달정도 읽어서 이제 180쪽 정도...OTL 아직 남은게 700여쪽...으하하하!


본과 1학년.

나의 본과 1학년은 1월부터 시작되었다.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의대 선배나 의대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골학OT[각주:1], 동아리에서 해주는 골학OT을 들으면서 예과 2학년 겨울방학을 보냈다. 예과 때 여유롭게 지냈던 다른 방학들과는 달리, 겨울 방학은 본과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언가 이제는 더이상 놀 수 없겠다라는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방학을 보냈던 것 같다. 동기들도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방학 때, 탐구 생활을 살펴보면서 방학 숙제를 하는 것처럼, 골학책(메뉴얼)은 본과를 곧 맞이할 예과 2학년들에게는 "탐구 생활" 책과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은 잠자리나 소금쟁이 대신 다양한 뼈 이름과 신경 다발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뿐. 탐구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골학책을 살펴 보면, 진짜 탐구할 것이 많긴 하다.

처음에는 이름도 외우기 힘들었다. 수많은 라틴어들과 정체모를 단어들. 해부학 용어와 짬뽕되어 있으면서도 알듯말듯한 단어들. 영어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에게도 의학 용어새로운 언어일 뿐이었다. 분명 영어로 쓰여져 있지만,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들을 접하면서 의학 용어를 깨달아 갔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골학은 해부학을 필두로 하는 의대 본과과정을 배우기 이전에 잠시 맛보는 시식 음식 같은 느낌이 있다. 다만, 맛보고 나서 맛이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인 시식 음식과는 달리, 본과 공부는 꾸역꾸역 집어 넣어야만 했다. 먹고 토할지언정 쏟아지는 정보를 온 몸으로 받아내어야만 했다.



골학은 말그대로 골학이다. 뼈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뼈들이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뼈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주변에 어떤 구조물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다. 골학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긴 하지만, 단순히 뼈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의대에서 쓰는 용어들을 배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학 용어의 틀은 대부분 이 때 완성되었던 것 같다.

아울러, 뼈는 어디까지나 인체의 기둥이 될 뿐. 그 외적인 부분, 예컨대, 뼈 주변에 붙은 근육들, 혈관계, 신경계 그리고 뼈가 담고 있는 내장기관, 뇌 등에 대해서도 간략히 배운다. "간략히" 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전혀 간략하지 않다. 골학을 공부하고 나면, 뼈에 대해서 다양하게 아는 것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피와 살이 되는 의학 지식을 배운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의대 학점에서 골학이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적다. 굳이 학점으로 따지면 0.1학점 혹은 0.5학점 내외일 것이고, 해부학에서도 차지하는 위상도 낮다. 하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골학을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이 해부학을 "초열심히"하는 현상은 그리 관찰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두쪽나지도 않는다. 골학은 어디까지나 골학이다. 자신이 의학에 처음 발딛는 학문이라고 본다면, 그 것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참고로, 난 골학때 선배가 가지고 있었던 두개골(skull)과 함께 2주를 살았었다. 지금은 인조 뼈로 공부하는 것 같던데, 당시만 해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사람 뼈를 전통처럼 가지고 있는 동아리나 고교 동문이 있었다. Skull 파트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골학 공부를 한창할 당시의 내 책상위에는 항상 두개골이 있었다. 누구 것인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책상 위에 Skull과 함께 Femur(장단지뼈)가 아주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Skull을 이리 돌리고 저리돌리면서 공부했지만, 내 동생은 항상 무서워 했다. 그리고 내가 없었던 하루, 그 skull 때문에, 동생은 혼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이 오기 전까지 하루 종일 밖을 배회했다. 미안하다 동생아. 지금에서야 사과한다.

상상해보라. 방 안에는 스탠드만 켜져 있고, 그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두개골 뼈를 들고 유심히 살펴 보고 있다. 책상 위에는 아주 긴 사람의 장단지 뼈가 놓여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스탠드만 켜져있는데, 방문이 아주 살짝 열려있고 당신이 그 걸 목격한다면. 빨리 도망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상황은 스릴러 속에서 범인을 보여줄 때 쓰는 장면 아닌가? "어떤 의대생이 방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면 당신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두개골에는 참 많은 구조물들이 있다. 구멍도 많고,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많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런 독특한 구조물 하나 하나마다 이름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사실은  그 이름을 무조건 다 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더 신기한 사실은 결국은 동기들 대부분이 그 구조물들의 이름을 다 외워서 서로 그 구조물에 대해서 농담을 하면서 논다는 사실이다. 너는 patella bone가 있네 없네, Zygomatic bone이 크네 작네... 하면서. 설마... 하겠지만, 본과 1학년이라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뼈를 가지고 보면서 모든 구조물은 나름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울러 어떤 사소한 구조물도 그냥 생긴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것이 생겨야할 조건을 수반한다. 예컨대, 뼈에 어렴풋이 발견되는 그루브(골-골짜기)이 있다. 대부분의 뼈에 있는 그루브는 정맥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자발적으로 피를 보낼 수 없는 정맥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뼈에 이런 중요 그루브들이 있다. 골학때는 이 그루브 이름을 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 중에 하나는 그 그루브가 왜 중요한지, 이유 역시 외워야 된다. 그냥 뭐든 말하면 외워야 한다. 외우다 보면 이해가 가더라... 누구는 그루브에 맞추어 리듬감 있게 춤을 추겠지만, 우리는 이 그루브에 맞추어 특정 정맥을 외워야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구조물에 이유가 있고, 나름의 설명도 있다. 충분히 재미도 있다. 설명을 곁들여 공부하면 아주 즐겁다. 하지만, 당신이 공부해야할 양은 "이해를 하고, 설명도 듣고, 교과서도 읽으면서 하기"에는 너무나도 양이 많다. 15시간을 공부해야만 모든 것을 한번 읽고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10시간밖에 없고, 그 시간안에 무조건 외워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의대 공부의 한계점이라면 한계랄까. 나도 글 읽을 줄 알고, 이해할 줄 알고, 설명을 곁들이면서 공부할 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의대, 병원... 모든 일들이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하루 24시간 동안 30시간 분량의 일을 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의대에서는 자연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겨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족보만 보고 공부하기에도 빡빡하다. 물론 "이런 것이 효율적이냐" 라고 한다면, 분명히 이론이 난무하고, 난상 토론이 될 것이다.  

그렇게 골학과 해부학이 지나가면, 벌써 봄이 끝나버린다. 남들은 벚꽃놀이도 가고, 봄의 따뜻한 온기를 즐기지만, 해부학 책만 파고 있는 의대생들에게는 봄이 없는 듯하다. 아니다. 가끔씩 이 힘든 상황에서 봄을 즐기고자 하는 외계인 무리인 "캠퍼스 커플"[각주:2]이 탄생하기도 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이 피어나는데 하물며 해부학 수업쯤이야.

  1. '골학'은 해부학의 입문과정으로, 뼈(골,bone)의 구조물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목이다. 선배들로부터 이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받곤 한다. [본문으로]
  2. 엄밀히 말하면 캠퍼스 커플(CC:Campus couple)이라기보다는 클래스 커플(Class couple)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의과학자 팀블로그 MDPhD.kr 편집장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의과대학생, 그리고 의사들에게 본과 1학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대 생활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이기도 하죠. 아울러, 본과 1학년때 대부분은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 미생물학, 병리학 등 현대 의학의 근거가 되는 "기초 의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됩니다.


한창 놀았던 예과 2년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삶. 빡빡한 시간 일정과 시험에 대한 압박은 본과 1학년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하지만,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견뎌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당시에 배웠던 지식들이 본과 2학년, 3학년, 4학년 지식의 밑거름이 되고, 저희와 같은 길을 걷는 의과학자들에게는 더욱 더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대부분의 필진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조교로, 포닥으로, 교수로 본과 1학년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 느꼈던 지식들과 현재 느끼는 지식이 주는 느낌이 다릅니다. 고통보다는 추억이 더 많이 남겨진 시점에서 바라보는 본과 1학년 생활. 영화에서 삽입되는 회고 장면처럼, 각자가 현재의 시점에서 본과 1학년 생활을 생각하면서, 글 연재를 구상하게 되었고, 5월부터 [우리들은 본과 1학년]이라는 시리즈물로 각각의 필진이 자신의 본과 1학년 경험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본과 1학년 해부학책들입니다. 대부분의 의대에서 본1을 맞이할 때 처음 접하는 학문이죠)


현재 본과 1학년인 사람들은, 이제 5월이 되어서 살짝 여유가 생길 타이밍일 것이고, 본과 2,3,4학년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은 "나도 그랬었지" 하면서 추억을 되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댓글로 남겨 주시면 훨씬 더 풍성한 글타래가 될 듯 합니다.


예과생들이나 의전원, 의대 입시 준비생들은, 본과 1학년 때, 이런 생활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시면서 자신의 계획을 잡으면 좋을 듯 합니다.현대 의학을 표방하고 있는 치대는 다른 치대 본과 학년 생활과는 달리, 본과 1학년 생활이 대동소이[각주:1]하기에, 치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자신의 경험이나 희망을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그 역시 기록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의대 생활과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의대생들이 이런 생활을 하는구나, 이런 과목을 배우는구나" 하면서 간접 경험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는 본과 생활을 다루지는 않기에,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의대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잘 모르는 용어나, 궁금한 점 역시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관련 글을 작성한 필진이나 다른 필진들이 답변을 달 것입니다.


실제로, 아주 고통스럽게 본과 1학년 생활을 끝낸 사람도 있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저공비행으로 본과 1학년을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패턴으로 본과 1학년을 보내기에, 여기에 적힌 글들이 모든 본과 1학년 생활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기에, 모든 생활에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경험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저희의 조그마한 경험들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저희로서는 글을 쓴 필진으로 아주 만족하면서 기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본과 1학년] 필진들의 글 연재를 시작합니다.


                      


(해부학 atlas의 최고봉인 CIBA를 그린 "Medicine's Michelangelo" 네터 선생님-

Frank H. Netter. 클릭하시면 네터 선생님의 소개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1.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제가 본과 1학년때 친한 치대생에게 자료를 빌려서 공부하기도 했고 제 자료를 공유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일단 의대라는 곳은 인체에 대해서 현재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업 공간인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의대는 예과에서 배우는 자연과학, 본과 1학년에서 배우는 기초 의학, 그리고 본과 2학년부터 졸업까지 배우는 임상 의학 다각도로 인체에 대해서 공부하고, 질병에 접근하는 시각을 그 어느 곳보다 잘 제시한다는 점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배경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by SendakSeus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본과 1학년은 전세계적으로 어디를 가나 비슷합니다. ^^ 

의대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교육 과정의 편차가 가장 적은 학과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인체의 질병에 대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연구라는 것은 하나를 깊게 매진하는 것인데, 의학은 그 학문 체계가 워낙 방대하여서, 의대 과정동안 하나를 자세하게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는 동안은 아주 자세하고 깊게 배우긴 하지만, 절대적인 할애량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모든 과정을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사들도 본격적인 연구는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관심있는 학생은 본1때부터 진행하기도 합니다.)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졸업과 동시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고, 임상 의학을 선택하면 빠르면 레지던트 3-4년차, 혹은 펠로우에 즈음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PhD가 대부분 학부 4학년때 혹은 석사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한다면 다소 늦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서 의대 학위는 환자를 대면하고 진료할 수 있다는 "의사" 라이센스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학문, 의학, 인체를 접근하는 틀과 다른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에 큰 장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작게는 주변 의대 동기, 선후배 등이 다 임상 의학을 하면서 진료 일선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고, 크게는 연구에서 임상까지 접근하는 Translational Medicine (중개 의학 - 링크)을 아우를 수 있습니다. 


pieces of you.
pieces of you. by NatShots Photography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해부학 책 중 하나인 Gray's anatomy)


물론 장점만 본다면 어느 곳이든 쉬워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기초 의학 자체가 의대 내에서 소수인 집단 (MDPhD.kr의 기초의학 글-링크) 입니다.  따라서 연구를 하는 시행착오 역시 오롯히 자신의 몫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임상을 하는 친구들과의 괴리감 역시 상대적으로 큽니다. 


아울러, 연구를 메인으로 하는 연구 중심 대학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포스텍) 등과 비교할 때, 교육에 대한 부담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더불어, 경제적인 측면 역시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절대적으로 본다면 일반 대학에 있는 대학원생과 비슷할 수 있지만, 자신과 의대 6년을 같이 공부한 동기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상황 (갈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짐)에 초연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울러, 정해진 임상 길과는 다르게, 모든 길을 자신이 개척해야하는 안개 같은 상황도 개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유로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사람은 한 학년에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의 기초 의학 전공자들이 중도 포기를 하고, 임상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전 그 선택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중도 포기와는 별개로, 기초 의학의 다양한 툴을 이용하면 임상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거든요. 아울러 위에 언급한 단점들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구요. 다만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은 있겠죠.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by phalinn 저작자 표시


따라서, 자신이 의대를 졸업하고 연구를 혹은 기초 의학을 선택한다면, 정으로 자신이 좋아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수가 되겠다.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단순한 생각입니다. 또 소위 말하는 뽀대(?)나 주변 시선을 신경쓴다면 더욱 이 길을 선택하면 안됩니다. 연구에서만큼은, 인생이라는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리턴이 결코 돈이나 지위와 같은 외부적인 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단순히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자신이 위와 같은 성향을 가졌다면, 임상을 선택했을 때 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예전 70-80년대에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교의 교수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의과 대학에서는 연구나 진료보다 학생 교육이 중심이었고(현재도 그러합니다만) 의사인 기초의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교육에 더 적합한 인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연구"가 의과 대학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무조건 기초 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의과대학 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그런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PhD가 의과대학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연구에서 강점이 크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의과대학에서 PhD를 교수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y estherase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따라서 연구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의대를 들어오지 않아도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시간이 많이 걸려도 인체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한 곳만 깊게 파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2000년도 이후에는 의대 자체를 들어오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에, 자신이 그 커트라인을 넘어서 의대를 들어올 수 있느냐도 위와 같은 선택의 변수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의사가 되어 기초 의학을 연구하고 싶어도 의대에 입학하지 못하면 MD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일종의 차선책인 셈이죠. 과연 재수 삼수를 해서 의대를 들어가야 하느냐? 현재로서는 그건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초 의학을 진로로 정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고민한 뒤에 진로를 선택하라는 것이고, 자신이 보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실 의대나 병원에 있으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과가 무슨 과에요?" 일 것입니다. 


묻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 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로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대답하기 난감한 혹은 곤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는 대체로


"기초 의학이라고 연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곤 합니다만... 뭔가 정답을 얻지 못한 듯한 표정을 보이시는 질문자를 보곤 합니다. 


그래서 시리즈물로, 의대를 들어오고 난 이후에, 겪는 일반적인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같은 의대생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학년에 따라서 예과생과 본과생이 나누어 있듯이, 의사라는 직업 안에서도 기초의와 임상의, 개원의, 교수 등 등 다양한 진로가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그에 관한 것이라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오늘은 의대 생활의 학년과 과정에 대한 글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의대 과정 일반에 대한 정보는 요기를 클릭하면 있습니다. ^^ 의대는 과연 몇 년 과정일까?  )


의대를 들어오는 방법은 현재 두가지가 있습니다. 의대와 의전원이 있습니다. 의대는 수능을 치고 난 고 3이 입학하는 것이고, 의전원은 4년제 대학을 마친 학부생이 입한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의대와 의전원의 차이는 크게 본다면, 예과 생활의 유무로 나누어 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의대에 준해서 작성됨을 먼저 밝히지만, 예과 생활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의대"를 들어오면, 일반적인 대학 생활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를 예과라고 부릅니다. 의대 예비 과정인 셈인데, 보통 2년이 걸립니다. 2년 동안은 실제적인 의학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인체를 다루기 전 과정과 다양한 교양 수업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주변에 의대생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예과생이나 본과생이냐에 따라서 의학 지식의 수준이 다릅니다. 예과생이 가진 의학 지식은 그저 "돌팔이 보다 조금 더 낫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돌팔이보다 못하다"라고 보는 것이 의료인의 "대세"입니다. 


예과 2년을 보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본과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고3생활 이상의 고통이 수반되는 고달픈 나날이 계속됩니다. 해부학부터 시작해서, 온갖 인체에 관계되는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통상적으로 본1때는 기초의학, 본2때는 임상의학을 배우게 됩니다. 


대체로 본과 1학년이라도 해도 의학 지식은 예과생보다 조금 더 나을 뿐, 본격적인 돌팔이를 벗어나진 못합니다. 본과 2학년부터 슬슬 돌팔이를 벗어나게 되는데, 이 것도 시험친 직후일 뿐, 대부분의 본과생 머리는 지식의 "순간 저장 창고"로서의 기능밖에 하지 못합니다. 기억하려고 해도 다른 지식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지식의 홍수 속에 허우적 거리는 것이 본과1,2학년의 모습입니다. 


(더 알아보실 분은 요기를 클릭하세요. 의대 과정. 왜 공부를 많이 해야할까?  (1-2학년 이야기))


본과 3학년을 진입하면 비로소 의사 가운을 입어 보게 됩니다. 실습생 혹은 PK 라고 불리는 시기인데 대부분 이 때, 가운을 입으면서 의대생으로서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병원 내에서는 가장 낮은 계급(예과부터 본과2학년 까지는 강의실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병원에 있는 사람 중에 가장 경험이 적습니다.)에 위치하기 때문이지만, 학생이라는 "무기"로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닐 "권리"가 있습니다. 


성의48
성의48 by loveCUK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대체로 본과 3학년 때는 생명과 연관된 임상 실습을 합니다. 학교별로 다르긴 하지만,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신과 등을 돌면서 환자에 대한 파악과 현장의 살아있는 강의를 교수님에게 듣곤 합니다. 학교 내에서는 비교적 높은 계급에 위치하기 때문에, 어깨를 펴고 다닙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가끔씩 찌들어 있는 인턴을 돕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파릇파릇하면서도, 얼굴이 좋아보이는 "의사같은" 사람이 있다면, 본과 3학년이거나, 레지던트 말년차일 가능성이 100%입니다.


본과 4학년이 되면, 마이너라고 불리는 과들(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비뇨기과 등)을 실습하면서 의사 국가 고시를 준비합니다. 한가지 꼭 알아야하는 사실은 아직까지 이들은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이고, 그 말인 즉 국가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돌팔이"라는 사실입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지식은 겨울 시험이 다가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집니다. 실습과 지식으로 무장한 그들은 가끔 레지던트 수준을 넘는 문제를 풀기도 하고, 대답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돌팔이"입니다. 


그렇게 국가 고시를 1월에 치면 비로소 "돌팔이"를 벗어나게 됩니다. 국가적으로 의사라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고, 졸업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맘때 쯤의 의대생에게는 졸업이란 사실이 그 어느때보다 뿌듯하지만, 졸업식을 참가하는 학생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바로 연결된, 병원생활 때문에, 졸업식에 모두다 참가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정리하면


예과 1학년 - 꼬꼬마, 고3을 마친 파릇파릇함. 의대의 발통. 모든 잡일의 시작점

예과 2학년 - 꼬꼬마의 형, 대학생의 파릇파릇함. 의대의 실질적 발통, 대부분 잡일의 실질적 수행

본과 1학년 - 꼬마. 의대생으로서의 찌듬. 발통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음. 잡일을 "조금씩" 시키는 사람

본과 2학년 - 초등학생. 본과 1학년을 마친자의 여유. 발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잡일의 대부분을 시키는 사람

본과 3학년 - 중학생. 병원에 들어가서 여유가 부족함. 병원의 발통. 잡일에 꼬투리를 잡는 사람. 

본과 4학년 - 고등학생. 본과 3학년을 보면서 웃음. 여전히 병원의 발통. 잡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경지. 국가적으로는 여전히 "돌팔이"


참고로, 용어 정리 

발통 -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수 있으면서,  그냥 할 때 보다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 가끔 문제가 생김


잡일 - 동아리나, 의대 생활 중에 생기는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지만, 꼭 모두가 해야하는 일은 아닌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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