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포닥을 준비하면서 책정리를 했는데, 다양한 책들이 나왔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책들은 의대 다닐 때 교과서들이구요. 정리를 하면서, "교과서에 대한 글"을 하나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글을 포스팅합니다. 추가로 최근 책에 대한 문의들이 많이 와서 겸사 겸사 글을 써 봅니다. ^^


정리하면서 나온 책들 - 기본적으로 대부분 본 1때 쓰는 책들입니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고, 후배들이 책에 관해서 물어올 때 마다 대답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 조교 생활을 하면서 기초에 남아 있다 보니, 주변 동기들 혹은 후배들이 책에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 많이 물어 보았기에, 그 내용도 어느 정도 첨가합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책이 주는 향기를 특히 좋아해서, 정말 많은 책을 사거나 모았습니다. ^^ 현재도 그러하구요. 1년에 이틀정도는 날을 잡아서 하루 종일 책을 사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교과서를 구입하여서 가지고 있었고, 항상 이사를 갈 때마다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그러하지 않죠. 일부 책만 구입하는데, 이 책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죠.


이번 포스팅은 주로 의대 교과서에 대한 글이 될 듯 합니다. 아울러 최근에 책들 일부를 판매 혹은 후배들에게 주었는데, 그 이유는 결국 참고는 하게 되지만, 진로가 비교적 확실히 정해진(?) 현재는 생각보다 찾을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입니다. 책은 필요하신 분께 가는 순간 다시금 살아나니깐 누이좋고 매부좋죠 ^^[각주:1]


의대에서는 많은 책을 보게됩니다. 당장 1년 동안에 배워야 하는 과목 수부터 상당하기 때문이죠. 당연히 시간이 많이 남아서, 교과서를 읽으면 좋긴 하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대표단이 만들었거나, 교수님께서 주시는 발표 자료 등을 편집해서 메뉴얼을 만들어서, 그 것을 보고 공부하게 됩니다. 저 역시 본1,2때는 교과서를 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유용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의 정석같은 존재인, 내과의 해리슨을 필두로한 다양한 교과서들


1.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메뉴얼이나, 교수님 PPT 자료는 기본적으로 축약본입니다. 앞뒤 서론이나, 그 학설이 제시된 근거 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단순히 중요한 factor를 기록하는데 급급합니다. 실제로 그 내용만을 익혀도 의사가 되는데 충분하지만, 앞 뒤 역사적 맥락과 고전적 개념을 이해해 두면, 왜 그런 내용이 등장하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게 됩니다. 


물론, 성적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긴 합니다. 의대 공부 자체가 주어진  한계 시간 안에 중요한 사항을 최대한 많이 익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시험 공부를 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중요 factor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야 하지만, 맥락을 알아 두면, 오래도록 기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교수님이 강의 중에 설명해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Textbook을 통해서 자신이 깨닫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2. 체계를 잡을 수 있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교과서를 읽어 버릇하게 되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학문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한 분야의 교과서는 그 분야의 대가가 나름의 편집 스토리를 가지고, 학문의 체계를 잡는 길잡이 역할을 제공하기 위해서 쓰여집니다. 내용 자체도 아주 solid evidence를 가진 부분만 다루기 때문에, 간혹 out of date가 될 수도 있지만, 학문의 체계를 잡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개인적으로 의대 공부는 4년(6년) 혹은 전문의 과정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으로 모든 과정을 외울 수 없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의대 공부를 할 때, 자신이 관심가질 시기에 다시 찾아 볼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Index 개념을 가지고 의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 친구들만 보아도, 아주 간단한 생화학 개념 조차도 까먹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실험을 해야할 때, 다시 공부하라고 한다면, 그 체계를 다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소한 한번은 학문의 체계를 잡았기 때문이죠. 그 체계를 다부잡고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는 교과서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과서로 공부하는데 꼭 신판을 이용해서 공부해야 하느냐


해부학 시절 최고의 교과서 중 하나인 로헨 anatomy 책 1,2,3판. Atlas이기 때문에,판이 중요하진 않죠.


에 대해서는, 제 개인적인 조언을 한다면, 모든 기초 교과서들이 그렇지만 "교과서 뼈대"만큼은 비슷합니다.


따라서,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 혹은 교수님 수업 스타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최신판을 구입하면 좋겠죠. 하지만, 의학책은 절대로 값이 저렴하지 않습니다. 추가로, 그 많은 책들을 모두 다 신판으로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자신이 그 학문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자비든 연구비든 신판으로 update된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공부해야 하겠지만, 의대생 혹은 개념을 잡기 위한 용도라면, 가격을 고려해서 굳이 최신판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학생 때, 교과서는 참고용으로 구입하고, 교수님 피피티나 필기를 주로 공부하는 스타일이라서 따로 이전판이라도 무리 없이 공부가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면, 교과서가 주는 "이해도"를 우선시 한다면, 이전 판이라도 큰 상관이 없을 듯 합니다.[각주:2]


그렇지만, 자신의 학교 교수님이 교과서 하나하나를 자세히 리뷰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전판을 보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 이 것 또한 피피티가 보통 복사실에 돌거나 교과서 파일을 구해서 주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데, 교과서를 읽으면서 이해한다는 측면에서는 조금 영향을 미치겠죠. 


또 하나는 자신의 공부 정도입니다. 사실 교과서는 정말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겁니다". 교과서만 열심히 파고 있으면 폴(유급)하기 딱 좋죠. 근데, 이해라는 큰 틀에서는 교과서 만한게 없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모두가 구판인 책들. 의대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교과서들이죠.

(병리학의 완결판 로빈슨(Robinson), 신경과 린제이(Lindsay), 예과 분자생물학 더 셀(The cell), 

해부학 소보타(sobotta), 내과 해리슨(Harrison), 약리학 가충(Katzung), 생리학 가이톤(Guyton)까지)


일부 책은 제가 신판이 없어서 모든 책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상 판이 바뀐다 하더라도 큰 내용의 변화는 없습니다. 소소한 업데이트나, 테이블 변동은 있지만, 교수님들이 교과서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기에, 내용이 그대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간혹 변한 부분에서 시험을 내실 순 있겠죠. 하지만, 이 부분은 대부분 수업 때 언급을 하게 됩니다. ^^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학교와 교수님 , 본인의 공부 스타일 차이이기 때문에, 이전판을 구입해서 아주 만족할 수도(사실 가격 이득이 상당하니깐요 대체로 신판을 구입하는 비용의 절반 이하로 구판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아님 수업 중간 중간에, 약간의 차이 때문에 불만족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많이 신경쓰는 사람이라면 통크게 신판으로~ 고고싱~ 하는 것이 좋고, 저처럼 책을 좋아라 하지만, 굳이 신판이 없어도 된다면, 이전판을 구입해서 공부하게 되겠죠. 


저도 모든 것을 구판을 구입한 것은 아니고, 관심있는 과목은 최신판, 관심이 덜 가지만 찾아 보고 싶은 것은 구판으로 구입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이전 판을 사거나 가지게 된 경우 수업 들을 당시 몇 페이지 펴라 할 때, 페이지 차이가 있어서 10초 정도 딜레이된 경우는 있긴 했지만, 결국은 똑같은 그림이 앞 뒤장에 있어서 그리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즉, 내용의 큰 틀은 변화가 크지 않으나, 일부 업데이트가 더 되었는데, 최근 신지식이다 보니, 큰 흐름, 대세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지요.(물론 영향을 미치는 진단 criteria가 변하는 경우는 있긴 하지만, 그건 ppt나 파워, 퍼시픽, 필기집 등 요약판 책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교과서는 굳이 안 사도 되지만, 전체적인 개념을 잡는데 필요하다는 것이죠.


끝으로, 교과서 자체는 이 질병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해를 목적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주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 




  1. 저는 짐을 줄이고, 필요한 사람은 책이 생기고 ^^ [본문으로]
  2. 대체로 이전판이라고 한다면, 5년 이내를 의미합니다. 그 이전이라면, 의학의 발달 속도 상, 체계가 많이 달라져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Vivien Theodore Thomas. 토마스 비비안

영화 Something the lord made에 나오는 주인공 중 한 명이죠. 다른 주인공인 알프레드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이전 포스트 알프레드 블라락 이야기를 보시죠 ^^


그는 정식 의사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명예 박사를 받습니다. 물론 그는 영화에서 알려진 것처럼 의학 박사를 받은 것이 아니고, 법학박사(Honorary Doctor of Laws)를 받고, Dr(Doctor)로 불리게 됩니다.그렇지만 그의 업적은 의학에 대부분 포진되어 있죠.

그는 1930년에 닥터 Alfred Blalock을 밴더빌트에서 만나면서 의학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원래는 대학학을 간 후에 의과대학(정확히 이야기 하면 의전원이죠-미국시스템)을 진학할 예정이였으나, 미국이 대공황에 빠짐과 동시에,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Dr.ALfred Blalock과 같이 일을 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shock은 혈액내에 있는 Toxin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이론이 팽배했었죠. 외상을 입으면, 그 toxin이 activation되어서 결국 죽음으로 이른다는... 현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론이 팽배했던 시절이였습니다. (자세한 쇼크에 대해서 아시고 싶으신 분은 링크로)

이 이론에 닥터 블라록은 의문을 품었고, 비비안과 함께 "혈액의 부족이 결국 Shock를 만들어 내고, 그 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혈액을 공급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라는 가설을 실험적으로 증명합니다.

당연히 이 때 비비안 토마스는 shock 동물 모델을 만들고, 실험적인 일들을 대부분 수행하게 됩니다. 사실상 토마스가 한 일은 현재의 개념으로 본다면 postdoc - 박사후 과정 혹은 senior researcher(선임 연구원)이 하는 수준이였죠.

Shock에 대한 치료법 개발로 Dr.Blalock은 존스홉킨스로 옮기게 되고, 비비안 역시 블라록의 권유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존스홉킨스 일대는 인종 차별이 심했고, 흑인에게는 단순 노동만 시켰던지라, 비비안 역시 janitor(현재로 본다면 병원 청소부)로서 대우를 받게 됩니다. 물론 하는 일은 포닥급이였지만요.

그들을 더 유명하게 해 준 사건은 바로 Tetralogy of Fallot (blue baby syndrome)-팔롯사징의 외과적 치료입니다.당시 이 질환에 대해서는 치료법이 거의 없고 부모로서는 애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어찌보면 아주 의사를 좌절시키는 질환 중 하나였습니다. 그 때, 비비안과 닥터 블라록이 동물 모델을 만들어 처음으로 사람에게 시도한 것이지요.

이 때 시도한 환자 이름은 Eileen Saxon. 18달밖에 되지 않은 소녀였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고, 의료법 상 의사가 아닌 비비안은, 블라록이 수술할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수술을 도왔다고 합니다. 

집도는 하지 않고. 지시를 했는 것처럼 영화에서는 나오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보조자로서 수술 참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은 구조적으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비비안이 기여한 것은 맞지만, 수술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지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는, 이 때 TOF를 치료하기 위해 만든 동물 모델 중 shunt 수술을 받은 Anna라고 불리는 개 초상화가 존스 홉킨스 벽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지요. 존스 홉킨스 의대에 걸린 유일한 동물 사진이라고 하네요.

비비안의 선구자적인 면모는 흉부외과 의학 기구 개발로 이어집니다. 당시 동물 수술을 하면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비비안은 수술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어 내죠. 당시만 해도 흉부외과라는 분야가 없었기에(비비안과 블라록 이후 현재 개념의 흉부외과가 생겨납니다) 당연히 기구도 없었겠죠. 비비안은 다양한 기구들을 만들어 내고, 직접 이용하기도 합니다.

위키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블라록이 수술한 3개의 케이스 18개월짜리 여아, 11세 여아, 그리고 6살 남자 아이에 대한 수술 보고가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에 실리게 되지만, 비비안에 대한 언급은 없죠. 수술의 기본적인 실험 모델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수술 자체나 임상 경과 결과 보고라는 논문 내용만 봤을 때는 분명히 비비안에 대한 언급을 할 필요가 없긴 합니다. 비비안 측으로는 분명히 억울할 수도 있지만, 수술 집도를 포함해 다른 임상적인 부분에는 비비안의 기여가 적거나 거의 없으니깐요. 다만, 실험적 모델 단독으로 논문을 제시했었더라면 비비안이 주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현재의 저자 개념으로 본다면 공동저자로 들어가거나, 최소한 acknowledgement 에는 들어가야 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비안의 술기 능력은 가히 뛰어났다고 합니다. 거의 수처 라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수술이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닥터 블라록은 그런 것을 보고 "이건 신이 만든 것 같군"이라고 이야기 했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죠. 그래서 결국 제목으로 선택되었지만요. (섬딩 더 로드 메이드 - Something the lord made) [각주:1]

물론 그도 정규 교육을 받아서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시간적인 면에서 너무 큰 난관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외과 일을 했고, 닥터 블라록이 암으로 죽은 이후에도 15년 동안이나 외과에서 일을 합니다. 결국 그는 외과 수련지도자로서 faculty 포지션을 받아서 외과 의사들을 양성하죠.

(비비안이 쓴 자서전)


그리고 결국 1968년도에는 그에게 교육받은 외과 의사 제자들에 의해서 초상화로 헌정되고, 닥터 블라록 옆에 자리하게 됩니다. 최고의 영광을 받게 된 것이지요.

스 홉킨스 의대에서는 매년 본과1학년 학생을 네그룹으로 나누어서 가르치는데 그 중 한 그룹의 이름이 비비안 토마스라고 합니다. 의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faculty라는 아주 영예로운 업무를 받은 것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서 의학자가 된 사람들이 도전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세계 최고의 의과대학이라는 존스 홉킨스 의대의 도전 정신사람에서도 나오지만, 그걸 만들어 내고, 칭찬하는 시스템에서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Journal of Surgical Case Reports라는 저널은 그 해 Best Report에게 토마스 상을 준다고 하는군요. 외과학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친지 알 수가 있겠죠?

비비안 토마스는 정식 의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의 선구자로서 흉부외과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아무도 이론을 달지 않습니다. 그가 가진 의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인종을 넘어선 실험 정신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현재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존경 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정신을 가지 의학자, 의과학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1. 여담이지만 제목이 조금 어렵거나 일반적이지 않아서 한국 내에서 큰 흥행을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목만 잘 만들었다면 정말 대박일텐데, 영어 제목은 정말 멋지거든요.근데 한글로 번역도 안하고 그대로 적은 것은 정말 치명적인 실수라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영화 something the lord made 에 나온 두 주인공이죠.

Dr. Alfred Blalock and Dr. Vivien Thomas

편의상 알프레드와 비비안이라고 칭하고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Cardiac surgery pioneers Alfred Blalock and Vivien Thomas


이번 포스트에서는 알프레드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들의 연구 업적, 그리고 그들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싶습니다. 

Dr. Alfred Blalock. 그는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학위를 받고 수련을 받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중에 하나는 알프레드가 내과학의 전설(?)로 알려진 해리슨과 아주 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입니다.테니스 복식조로 Nashville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Harrison이죠 ^^ 책을 펴면 제일 앞에 나오는 ^^)



 (해리슨은 내과학에서 세실과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는 교과서 이름 중 하나죠. 거의 매년 업데이트되고 내과학 교과서로 명성과 공신력이 대단하죠.)

Edi poses as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Edi poses as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by ragesoss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홉킨스에서 수련을 마치고 벤더빌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서 본격적인 의학 연구에 돌입합니다. 이 때 주로 연구한 것은 Shock에 대한 것이지요. 예전에 쇼크에 대해서 포스트를 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혈액이 적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재는 쇼크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치료가 수혈이나 수액 보충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입니다만, 당시 1930년도만 해도 외상으로 인한 출혈성 쇼크에 대해 마땅한 치료가 없었죠. 쇼크에 대한 초기 연구를 수행한 사람이 바로 알프레드였던 것이죠.

영화에도 잠시 언급이 되지만, 외상이나 출혈로 인해서 혈압이 낮아졌을 때,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의학적으로 처음 밝힌 것이 그였죠.(정확히 따지자면, 처음 밝혔다기 보다는 치료적 방법론 설정이 더 정확한 표현일껍니다)

 당시 수혈이 외상성 쇼크의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동물(개)모델을 이용해서 처음 보여 주었고, 그 연구는 후에 2차 세계 대전에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전쟁 중에는 외상으로 인해 출혈성 쇼크를 나타내는 환자가 많았고, 그 환자들을 수혈함으로써 살릴 수 있었던 것이죠.

안타깝게도 그는 밴더빌트 대학에 있는 동안 결핵에 걸리게 되고, 죽음 직전까지 간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런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 결국 그를 더욱 더 의학에 매진하게 하였겠죠.

1941년 그는 비로소 존스 홉킨스 의대로 초청받아 오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다양한 외과 기술을 이용해서 순환기 계열 질환을 치료하게 됩니다. 당연히 비비안도 같이 와서 다양한 실험을 같이 진행하게 됩니다.

ToF.AVSD
ToF.AVSD by HeartBabyHome 저작자 표시비영리


Tetralogy of Fallot (팔롯사징-TOF)이라는 선천성 심기형을 치료하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심장에 칼을 댑니다. (실제로 심장에 칼을 대는 것은 아니고, 그 주변부에 일늘 subclavian artery와 pulmonary artery를 연결하죠) 여하튼 선천성 심질환인 TOF를 "수술"로서 극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현재는 이 수술(Blalock-Thomas-Taussig shunt)는 더이상 이용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수술이였죠.

이 수술을 기점으로, 흉부 외과라는 과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심질환을 내과적 치료가 아닌 외과적 수술로 극복하는 개념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지요. 현대 흉부외과의 효시인 셈이지요.


이 수술로 1954년도에 임상 의학 부분으로 라스커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토마스 비비안은 빠져 있죠.
 



그리고 현재 존스 홉킨스 병원에는 그의 이름을 딴, Alfred Blalock Clinical Science Building도 있죠. 그리고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는 Helen B. Taussig-Alfred Blalock Research Prize로 명명된 상도 있죠.

한 분야에 대해서 효시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은 정말 명예로운 일인 것만큼은 사실이죠. 그리고 알프레드는 흉부외과의 선구자로, 의학자로서 그 명성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당시 존스 홉킨스로 몰려온 선천성 심장질환 소아 환자가 아주 많았습니다. 이는 결국 "세계 최고의 의대가 어느 곳이냐" 하는 논쟁에서 존스 홉킨스 의대가 하버드 의대를 한발짝 앞서 나간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한가지의 임상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서 사실 대단히 많은 실험적 증거가 필요하고, 당시 심장질환의 외과적 접근 역시 당연히 실험적 근거에 기반해서 수행되었습니다. 물론 현재보다는 훨씬 적은 수의 실험에서 수행되었지만, 당시에도 동물 실험과 같은 근거는 필수적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수술 역시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성공하였습니다. 집도의 개인의 실험적 근거 확신, 그리고 근거가 있는 도전에 대해서 관대한 교육적 문화, 의학과 환자 치료에 대한 열정을 가진 다양한 사람이 결국은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알프레드는 실제로 조금은 shy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시야로 현대 흉부 외과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의과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임상의학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근거 없는 경험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를 가진 과학으로 임상을 다룬 알프레드.

"당신의 열정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Alfred Blalock M.D.

(1899.4.5 - 196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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