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든 아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시기가 있을 뿐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아픈 시기는 정해져 있다. 소아 때, 그리고 노년 때. 사실 소아 때는 아프다기 보다, 대부분은 부모가 걱정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아플 수도 있겠지만, 그리 심한 병은 아닌 경우가 많고, 질병이라기보다는 사고인 경우가 많다.  

 

아주 예전에 인턴 친구를 만나러 응급실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다친 아이에서부터, 말기 암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아프다는 이유 하나로 병원에 모여 있었다. 

 

다들 의사를 찾고, 간호사를 찾고, 누군가 자신을 봐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질병, 통증 그리고 주관적 고통


학생 때 그토록 많이, 공부했던 것이지만, 정작 내가 당해 보지 않았던 병들에 대해, 그 환자 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 치료법이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아프다는 것. 병을 가진다는 것. 걱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  

 

결코,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일들이다.  


꼭 아파야만 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피부 질환 등은, 아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라면, 어디가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 이 때의 "질환"은 개인에 따라 상당히 주관적인 셈이다.  

 

탈모를 예로 들면, 탈모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탈모 환자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탈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질환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반대로 거의 대머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이 탈모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면 객관적으로 보기에 탈모 환자라고 볼 수 없겠지만, 주관적으로 탈모 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질환 자체도 상대적인 셈이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다. 아프지 않더라도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질환이나 질병을 치료받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서 누군가는 보이는 곳에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다. 의사는 직접적으로 치료를 하지만, 의학 연구자는 치료의 근거를 찾아 낸다. 그리고 그 근거는 제도적으로 철처히 증명받는다. "그냥 치료해보니깐 낫더라, 그렇더 카더라" 가 아닌,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한 치료 효과"라는 근거를 만들어 내는 증명 말이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약들, 치료법들이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존한 치료법은 진정한 약으로 거듭나고, 사람들을 위해 이용된다.


오늘 하루도 나를 위해, 그리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추후에 치료법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난 음악을 좋아한다. 대중 가요, 락, 클래식, 뉴에이지, 재즈 그리고 트로트(?)까지 좋아한다. 언제부터 음악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음악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 인디 음악을 즐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개인적으로 홍대 클럽에서 한 번도 라이브로 듣지는 못했지만, 홍대에서 시작된 인디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대부분 인디 음악으로서 괜찮거나 인정받은 노래가 있으면 어떻게든 찾아서 듣고자 한다. 시간과 기회가 허락된다면. 


하드코어적인 노래보다는 조금은 달달(?)한 노래를 좋아하는데, 얼마전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서 분석[각주:1]해보니 (이것도 직업병일 수 있다) 발라드나 브릿팝처럼, 그 장르 자체가 묻어나온 음악도 좋긴 하지만, 노래들 대부분에 위트와 유머가 들어 있었다. 가사나, 제목 심지어는 그룹이나 밴드의 이름에 유머와 위트가 들어 있는 노래가 내 리스트에 많았다. 


실제로, 인디 음악을 듣다 보면, 노래에 밴드(솔로도 있지만 대부분 밴드인 경우가 많았다)만의 색깔이 많이 묻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앨범 전체가 내 취향과 완전 틀려서 rule out[각주:2]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내 취향과 완전히 흡사해서 앨범전체가 다 마음에 드는 경우도 많았다. 인디 음악이나 밴드가 일종의 도자기 공방같은 느낌으로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대부분 대중성은 없지만, 대중성과는 별개로 나의 취향과 맞다면, 기성 가수들보다 오히려 내 귀에 듣기 좋은 음악이 더 많은 상황이 많이 있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어떤 경우에는 너무 좋다고 하기도 하지만, 항상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니었다.


혹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취향은 전세계 인구만큼 많은 것이기 때문에, 90%만 맞는 음악만 찾아도 아주 행복한 것이라고도 이야기하면서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의적(?) 해석을 내리기도 해 주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이 내게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느냐 물어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연구를 말해 주었다. 말하도 보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내가 재미있어 하는 부분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다 달랐다. (참고로 내 연구 분야는 탈모, 모발, pattern formation, 재생 의학 분야이다.) 표정이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 지인은,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남자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슬슬 M자로 진행되는 탈모가 어느 덧 30대가 넘어가면서 대머리처럼 되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말하는 모든 부분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들었고, 어떤 치료가 좋은지, 자기가 쓰고 있는 샴푸의 효능을 묻고, 연구에 있어서도 창의적인 질문이 많았다. 


두번째 지인은 탈모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였다. 남자 친구도 없고, 아버지가 탈모도 아니었다. 주변 지인 중에는 탈모와 연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따라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서두 정도만 듣고는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계속 카톡을 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세번째 지인은 남편과 아버지가 탈모로 고생하고 있는 여자였다. 정작 본인은 탈모가 전혀 없었음에도 첫번째 지인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혹시 자기 아들은 어떻게 될지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언제쯤 탈모가 정복되겠는지를 물어보고, 아버지가 탈모 제품으로 사기 당한(가격은 비싼데 효과를 보지 못한 - 실제로 이런 제품이 상당히 많다) 이야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대화가 되었다.


네번째 지인은 최근 원형 탈모로 고생한 여자였다. 2년 전 일이니깐 그리 최근은 아니지만, 당시 그것으로 인해서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듯 하였다. 치료제나 경과,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연구에도 큰 관심을 가졌으나, 원형 탈모와 남성형 탈모는 기전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지인은, 탈모와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당연히 주변 가족 중에 탈모가 없고, 아버지, 형제, 사촌들도 탈모가 없었고, 앞으로 탈모로 고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상식 수준에서만 알아 둔다는 느낌이 강했고,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정보만 취득해 갔고, 대체적으로 큰 관심이 없었다. 


아... 그러면서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연구는 인디 음악과 아주 비슷하구나..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아주 재미있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남들도 이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컸다. 아울러, 연구의 성과가 고통받고 있는 탈모인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고,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탈모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리 큰 재미가 아닐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된 것이다. 


그런면에서 돌이켜 보니, 나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이제야 탈모인들의 고통을 뼈저리게 알고 있지만, 내가 연구하기 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의대에서는 탈모에 대해서 1시간도 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나마 우리학교는 탈모 분야로 유명하신 교수님이 계셔서 조금 더 할애하지만,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도 탈모는 다분히 비중이 큰 질환이기 보다는 마이너한 질환이라는 것을. 


의학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연구는 인디 음악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는 본질적으로 모든 연구는 인디 음악 같은 취향을 가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는 "연구"라는 노래를 부르는 "인디 밴드 가수"인 셈이다. 


일례로, 난 바다에서만 살고 있는 미생물(혹은 석유를 분해하는 미생물)에 큰 관심이 없지만, 그 것에 대해서 "내가 탈모에 관심가지는 것"만큼 재미있어 하는 연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디 음악으로 따지자면,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 연구자의 취향에 맞는 음악인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인디 밴드도 존재하고 그런 연구자도 존재한다.(내 취향은 아니지만 엄연히 팬층이 존재하는 밴드는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연구는 "내 취향, 내 꿈, 내 재미,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새삼 느꼈다. 내가 재미없어 하는데, 타인의 취향(약물 개발)을 위해서 희생한다면, 그 연구는 태생부터 이율배반적인 상황인 셈이다. 


물론, 석사, 박사 과정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학습한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실험 자원의 제한과 지도 교수님의 취향에 따른 연구를 하게될 여지는 있지만, 그 이후에 자신이 랩을 꾸리려 한다면, 인디 밴드적인 접근으로 연구를 해야할 것 같다.  가끔, 인디 밴드에서 대중적인 밴드로 자리잡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빅 가이나, 이름있는 과학자들이 그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디 밴드와 연구를 연결시킨 것이 일견 이상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주제이긴 하니깐, 그렇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구와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 좋아하는 인디밴드가 나에게는 동일하게 다가 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오늘도 인디 음악을 들으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정말 즐겁다. 

  1. 기회가 된다면, 그 리스트를 공개하면서 음악을 나누고 싶기도 하다. [본문으로]
  2. 배제- 의학 용어로 많이 사용됨. 여러 검사로 특정 질병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경우 이용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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