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일기처럼 매일 글을 쓰고 있긴 하다. 글 쓰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논리를 생각하고, 그림을 생각하고, 잘 안 되는 한글(?)을 쥐어짜 내는 것. 모든 환경이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on-off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아~~~ 쉽지 않다. ^^ 

 

오늘은 일기같이 생각의 흐름을 그냥 쓸 생각이다. 주제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어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대다수의 한국인처럼, 나 역시도 내 분야가 아닌 영어에는 그리 밝지 못하다. 예를 들면, 채소 같은 것. 상추와 배추는 미국인 입장에서는 초등학생 수준[각주:1]만 되어도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인데, 내 기억으로 배추는 배운 적이 있어도, 상추는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이런 예들은 많다. 나 혼자 가서 장을 볼 때는 내가 굳이 상추가 "lettuce"인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상추가 무엇인지 모양도 알고, 맛도 알고 있고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추를 설명하거나, 상추 심부름을 외국인에게 시키려고 하면, 상추가 lettuce인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다양한 야채들. 나는 무슨 맛인지도 알고, 가격도 알고, 어떤 요리에 넣어야 하는지도 아는데, 용어를 몰라서 사오라고 시킬수가 없다.)


생각보다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참고로, 공인 영어 점수가 그 사람의 영어 실력을 완벽히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반영은 한다고 본다는 측면에서 나의 토플 점수와 토익 점수는 아주 높다. 자랑 같지만, 거의 만점에 근접하기 때문에,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 하고, 제대로 알아듣는다. 그리고 부당하게 느끼는 점이 있으면 따지는 것까지 충분히 한다. (얼마 전에도 항공사와 관련하여 일이 있어서 강력히 클레임을 걸었다.) 아울러, 그 분야가 학습이거나 내 분야를 다루는 것인 경우에는 거의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토플의 목표가 바로 영어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외국인과의 대화 중에 상추와 같은 단어가 있으면, 가끔씩 바보가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상추 말고도 그런 예는 많다. 식물 이름(예를 들면 밤나무, 상수리나무, 전나무, 고목 등등), 동물 이름(개미핥기, 도롱뇽, 뱀 말고 방울뱀, 청설모, 두더지 등등), 음식 이름(펜실베이니아 더치, 프렌치토스트) 채소 이름 (대파, 쪽파, 부추 등등[각주:2])등은 원어민 입장에서는 아주 기초적인 초등 수준의 단어[각주:3]이지만, 한국에서 나는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이런 단어가 대화 사이에 끼이면, 나는 크게 공감할 수가 없고 알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필요할 때마다 학습해서 배울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배울 수는 없다는 점이 한계라면 한계인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생활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일하는 것에도 큰 불편함은 없다. 굳이 상추를 몰라도 연구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진지하게 나랑 같이 일하는 애들(대학원생,석사생,학부생)을 모아 두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겠지만,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결론이 났었다. 

 

충분히 교육받은 사람들은 내가 외국인(한국인)이기 때문에 상추의 실체는 알지라도, 영어 이름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아울러,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은 내가 사고하는 방법이랑, 내가 연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것만 충분히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역시 그들은 처음 내가 일을 시작한 시점부터, 6개월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팀 리더인 "상추를 모르는" 나와 같이 일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팀이 현재 랩에 있는 팀들 중에서 가장 promising 한 결과를 내고 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  

 

물론 이제는 "상추"와 같은 용어까지 알아서, 영어로 농담 따먹기 하는 수준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고,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는 듯하다. 영어는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중요한 것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로서 Identity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실체는 영어보다 과학, 연구에서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이는 절대 영어만 잘 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참고하세요~ 채소와 그에 맞는 영어를 덧붙입니다. 모르는 채소도 많지만, 재미있기도 해요. 특히 가지는 영어로 계란식물 ^^)


따라서, 나는 영어를 native speaker 만큼 못해도, 비교적 당당한 편이다. 나는 영어로 교육받지 않았고, 한글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그 교육의 실체는 알고 있다"는 입장을 항상 견지하기 때문에, 최소한 영어로 주눅 들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것을 영어로 교육받고,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원어민 연구자들을 보면 부럽긴 하다. 

 

도구를 갈고 닦으면 더 멋지게 보일 수 있고, 영어가 좋으면, 내용물을 조금 더 좋게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포장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 도구에 신경을 아예 안 쓴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너무 도구에만 신경 쓰면 영어만 잘하는 미국 노숙자(?) 신세[각주:4]가 될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미국에 있는 노숙자들은 "그들의 의사"를 완벽하게 영어로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노숙자"가 되기보다는 영어를 잘 못해도 내용물로 꽉 찬 "학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이다. 내 평생의 대부분을 한국어로 의사소통 해왔기 때문에, 영어를 미국인보다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반해, 나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하지 않는가? 당당해 지자.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날카로운 글쓰기완벽한 발표 영어를 더 잘 하고 싶다. 더 노력하고 나를 갈고닦아야겠다. 결국 시간과 노력이 모든 것을, 아니 대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참고로, 한국 나이로 올해 5살 먹은 아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웬만한 채소 이름을 아는 걸로 보아, 대부분의 채소 이름은 초등 수준 이하의 단어임이 틀림없다. [본문으로]
  2. 만약 여기에 언급된 단어를 영어로 알고 있다면, 우연히 알게 되었거나, 경험으로 알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교육으로는 접하기 힘든 단어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조금 더 수준을 높이면, 수학 공식(미분,편미분,방정식, 원주, 마름모, 평행사변형 등등)과 물리 용어(유체역학, 전자기 유도, 전자기장, 상대성이론 등등)이 있다. 영어로 이 분야를 학습하지 않는 한, 일반적인 영어 교육에서는 이런 영어 단어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노숙자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직업성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을 지칭하는 맥락에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본문으로]

혹시 이 글을 처음으로 들어온다면 지난 포스팅을 참고해 보자.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1)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2)

자 이제 대안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는 호기롭게 7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1. 취업정보를 공유한다.

2. 연구비에서 교수급료로 지출되는 것을 제한한다.

- 미국의 경우 non-tenure 교수 연봉은 학교에 주는 것이 아니라 연구비에서 직접 가져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한국은 따로 교수급료를 연구비에서 가져갈 수 없으니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3. 연구-훈련의 연결고리를 약화한다. 

- 인력양성소인 대학원과 연구를 위한 연구소 분리하자는 것이다. 물리학의 경우 페르미, CERN 등 유명한 연구소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GIST, DGIST 등등이 역으로 대학원, 학부기능까지 하거나, 하려하고 있다.

4. 대학원 지원금을 개편한다.

5. 연구자원센터 등 과학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정책을 만든다.

6. 공동연구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한다.

- 이것은 노벨상을 겨냥한 것인데, 3명까지만 공동수상자로 선정되는 웃기지도 않는 제한때문이다.)

7. 연구비 예산 사용처를 구체화한다.

보다시피 꽤나 현실적인 대안들이다. 몇가지 토를 달아보자. 

취업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나라 BK21사업이후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다. 당연하게도 BK21사업을 통해 대학원생들에게 인건비 지원을 한 정부가 그 대학원생들이 졸업하고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문제는 대학원생들의 취업이 졸업 직후에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도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사 졸업 후 바로 정규직 취업이 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박사 후 연구원이라는 다소 불안정한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이후까지 구체적으로 추적할 필요가 있다. 몇년 동안 박사 후 과정을 거쳐 어느 대학, 또는 어느 연구소에 어떤 직급으로 취업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분야를 막론하고 이공계 석박사 통틀어 취업 조사해 통계 발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분야 별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궁금하다면 KISTEP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라)  물리, 수학, 화학, 생물, 공학 등등의 계열 별로 말이다. 그래야 각 분야에 있는 학생, 대학원생들이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며 과학도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원센터의 경우 아이디어는 괜찮은데, 개인적으로는 정부기관의 특성상 빠르게 기술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학 연구 중 글로벌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high-end 급의 연구에 대한 자원을 적시에 적절히 지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연구와 실험을 하다보면 지금 당장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항목을 미리 예상하여 신청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고, 그 지원이 연구와 발견 선점에 필수적인데, 그렇기 때문에 개별 연구자들은 정부기관을 통해 지원 받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경로를 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좋은 생각이며, (개인적으로 이용해본 경험은 없지만) 실제로 생물학자원센터가 있기도 하다.  각 대학의 연구기관이 모든 장비와 모든 형질전환 쥐를 관리할 수는 없고, 과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며 매번 구비하기도 어려우므로 국가 차원에서 이런 자원을 구비하고 관리하는 것은 필요할 것 같다. 

참고로 미국에서 포닥을 하고 있는 오지의 마법사 이야기를 빌리자면, 미국은 이런 코어 형태의 연구자원센터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깝게는 학교 내에서 구성될 수도 있지만, 최소한 각 주별로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는 마우스 facility가 이런 형태로 운영되어서 효율적으로 연구 자원을 적시에 공급하고 별도의 비용을 청구한다. 그 비용은 결코 싸지 않지만 개별적으로 구성하는 것보다는 시간적으로 그리고 비용적으로도 비교 우위에 있기 때문에 자원센터 자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한다. 

연구비 예산 사용처를 구체화하는 것은 국가 단위에서는 필요할지도 모르지만,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이야기하자면, "개개 과학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구와 실험의 특성상 앞으로 예산 사용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괄적인 틀자체를 설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인건비를 제외한, 재료비, 설비비, 회의비 등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쪼개고 항목별로 구성하는 것은 연구 능력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지금도 재료비, 설비비 등으로 나눠진 연구비를 1년 단위 결산할때 억지로 맞춰 쓰고, 맞지 않으면 용도 변경 신청을 하는데 생각보다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맞춰서 집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업체에 영수증 항목을 외상으로 이용하고 이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과학이라는 학문이, 또는 분야가 사회와 동떨어져 그들만의 객관적이고 우아하고 소위 과학적인 논리로 굴러가고 있지 않고, 도저히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필자의 서평은 성공이다. 

그런 관점에서 책에서 제시된 대안들, 그리고 필자가 단 투덜거림들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 또는 그에 버금가는 기관에 의해 주도되는, 또는 주도될 수 밖에 없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그 발전 양상을 보면, 그리고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이라는 것이 국가와 결부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는 과학을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파악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연구비 투자한다. 그렇기때문에 과학을 수행하는 주체가 표면적으로는 과학자들로 보이지만, 실상 깊이 들어가 보면 국가의 의지가 상당히 반영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주체는 국가[각주:1]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약간 관점을 바꿔보자. 과학의 결실, 그리고 부산물의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 모두, 즉 시민들이고 그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 대학원생들 역시 시민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생각을 바탕으로 과학의 주체를 시민으로 재설정해서 태어난 개념이 시민과학 또는 대안과학이다. 과학의 주체를 시민으로 놓고자 하는 개념 또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언뜻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개념이 생소하다면, '독립'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무언가를 생각해보라. 독립영화, 독립구단, 독립예술 등등. 국가나 자본에 귀속되지 않고, 수행하는 주체 또는 영향받는 사람들만을 오롯이 위한 무언가. 이제 감이 오는가? 과학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공학에서는 제 3세계를 위한 '적정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천문학에서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성과로 알려지기도 했고, 환경 보건 분야에서는 '시민단체'들의 보고서나 성과로 알려지기도 한다. 이들 모두 주류과학계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 주류 과학자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정치적인 영역이거나 사적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주류과학 역시 완전히 순수한 지적 영역에 속할 수 없고, 국가 또는 연구비 지급 기관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라는 면에서 충분히 '정치'이다. 

과학은 '양날의 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고전적이고 닳고 닳아 빠진 그런 흔한 얘기로 덮어서는 안된다. 과학은 저 멀리 앞서 달려나가고, 그 결실을 정치가나 산업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된다는 진부한 얘기는 과학자들의 주체성을 몹시 훼손하는 것과 동시에 과학을 하는 행위의 정치성을 가려버리고 만다. 과학은 수행되는 순간, 아니 그 이전 단계부터 그 검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봐야한다.

그런 과학의 정치성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과학자가 취할 수 있는 입장과 층위는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험실에서 논문을 쓰고, 파이펫을 쥐고 실험을 하는 행위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질질 끈 서평포스팅을 마친다. 


  1. 가만히 고등학교 시절 문과와 이과를 생각해보자. 국가의 의지를 수행하는 행정관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시절 문과를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과학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을 것 같은 "문과"로 대변되는 행정관이 역설적으로 과학 연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본문으로]

"표절"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 쓴다는 것인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과연 여기에 대해서 적합한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남의 글을 제 것인양 포장하는 것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것 같다. 그리고 남의 글을 스크랩하거나 긁어가는 것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그리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지만, 학문의 영역에서만큼은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 쓰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아주 강하게 지탄받는다.

오늘 표절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꺼내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긁어가기" 문화에 대해서 꼬집고자 이 글을 작성하였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내 글이 어딘가에 떡하니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한의사 커뮤니티에도 내 글이 있고, 의전원을 입학하고자 준비하는 커뮤니티에도 내 글이 있다. 그리고 유입 소스를 살펴보면, 그 쪽에서 유입된 것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난 그 커뮤니티의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글이 올라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 분석툴을 통해서 그 글이 어떤 글인가는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어떤 맥락인지, 그리고 왜 그 글을 긁어갔는지를 알 수 없다.

긁어가기는 기본적으로 아주 잘못된 현상이다. 아무리 출처를 반영한다고 해도, 원작자의 동의가 없으면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물론 긁어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소개하기 위해 혹은 정보를 보관하기 위해 라고 변명하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무조건 원문 모두를 다 긁어갈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요약을 하고, 링크를 걸어두는 것으로 충분한데, 그런 요약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 글을 쓴 사람들에게는 실례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특히나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Potential medical scientist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잘못되었다. 블로그의 글은 긁어 가도 괜찮고, 논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그런 이중 잣대로 자신에게 맞고, 편한대로 살아간다면, 도대체 누가 글을 쓰겠나? 또 그런 사람이 논문 조작을 안한다는 확신이 있겠는가?

사실, 문화라고 이름붙이기도 부끄럽지만, 이런 "긁어가기" 문화는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스크랩이라는 이름 하에 정보를 긁어가는 것인데, 이것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수 있다. 가끔 링크만 긁어갈 경우 그 링크가 사라지기 때문에 스크랩을 통해 정보를 보관한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빈약한 블로그 유저들에게 자신들의 블로그를 풍성하게 보이게끔 하는 착시 도구일 뿐이다. 


첫째로 정보를 보관하는 용도라면 굳이 블로그 공개나 글을 오픈할 필요가 없다. 그냥 에버노트처럼 보관함만 만들면 될 뿐이다. 아울러, 따지고 보면 링크를 사라지게 하는 것 혹은 글을 삭제하는 것도 글을 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인데, 그 것에 대한 존중은 하나도 없다. 그저 긁어가는 사람의 편리함만을 생각할 뿐이다. 

둘째로 글을 쓰는 일은 정보를 생산하는 일이고, 정보를 생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노동은 일련의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고, 그 정보에 대한 Authority를 가지겠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Authority가 없다면 장기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게 될 것이고, 아무도 좋은 정보를 생산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 있는 글을 긁어가서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 블로그 인지도를 확장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이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블로그를 개인적으로 나눔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Ctrl+C/ Ctrl+V를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개인적으로 나눔을 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점차 이런 일들이 많아 진다면, 블로그를 폐쇄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블로그와 책은 아주 다른 매체이긴 하지만, 글을 쓴다는 시간 노동만을 본다면, 나에게 비슷한 일인 것이 사실이다. 블로그 글을 줄이고, 책이나 다른 Autority를 가질 수 있는 매체로 전환하는 것은 잠재적 독자들과 나에게도 더 유용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다. 정보를 제공한다는 가치를 보존하고 싶기 때문이다. 

최소한 원문 모두를 긁어 가는 것은 지양하자. 최소한 의학에 관심이 있고,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런 쓰레기같은 추악한 짓은 그만 두자. 요약이나 서두 발췌 정도만 하고 링크를 걸어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다. 긁어 가는 글들로 풍성해진 블로그나 커뮤니티는 결국 자신이 쓴 글은 없고, 알맹이처럼 보이는 허상만 있을 뿐이다.


과학자의 양심은 논문과 같은 거창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글 복사 하나에도 나의 양심이 숨을 쉬고 있다. 


지난 포스팅에서 예고한 바 대로 과학자라는 직업을 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자. 그리고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글의 대부분은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라는 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neuroclimber의 생각도 섞여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책을 읽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를 선택하는 동기에는 금전적 동기 외에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는 것, 명성과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는 욕구가 동기가 된다고 말한다. "내가 이 분야에서는 짱이야." "내가 이건 처음 발견했어" 등의 욕구다. 그리고 그렇게 "최초의 발견"만이 인정되는 과학계는 승자독식 현상이 자연스레 생길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로트카법칙, 매튜법칙 등으로 발현된다. 

승자독식 현상은 단순히 논문발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자라는 직업군이 형성되는 과정 더더욱 살벌한데, 대학원생->교수가 되는 과정은 피라미드형태의 인적구조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경쟁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BK21사업이후 대학원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그 양태가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각주:1]. 간단히 말하면 박사학위 소지자는 많은데, 취직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박사학위 소지자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원생이 임시직의 형태를 띠는 것은 더욱 문제이다. 대학실험실을 하나의 일터, 직장이라고 볼때 모든 대학원생은 임시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각주:2] 그리고 그 인력을 유지하는 비용은 정부 또는 산업계에서 나오는 연구비로 충당된다.


         덕분에 (좀 과장되긴 했지만) 이런 웃기고도 슬픈(웃픈)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전부터 미국에서는 과학계의 인적구조에서 최하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지원금과 졸업생 연봉을 공유하고자 한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또는 교수들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그 이유는 대학원생이나 대학원졸업생 대부분이 박봉의 임시직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MBA 졸업생 연봉정보는 아주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이런 박봉의 임시직을 견디고,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교수임용이라는 험난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 박사 후 과정의 70~80%가 교수직을 희망한다. 하지만 25%만이 교수가 된다. 그 중 tenure를 받는 종신교수의 비율은 35~40%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여성인력과 외국인 인력이 대거 유입된 것과 과학계 인력이 부족하다는 대학과 교수들의 적극적 요구로 인해 대학원생 지원금이 증가된 것이 주요 요인이다. 더욱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졸업 후 취직할 곳이 줄어들자, 학부졸업생 중 대학원생 비율을 더욱 증가되었다. 그에 비해 대학에서는 tenure 교수 연봉에 대한 부담때문에 비정규형태의 교수직을 늘리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증가하고 있는데, 괜찮은 일자리를 줄고 있다

그렇다보니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박사후과정(post-doc, 포닥)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1980년에서 2008년 사이 공식적으로 집계된 박사후연구원의 수는 1만3000명 수준에서 3만6000명이상으로 3배로 성장했다. 이런 성장세는 고용인(교수)의 입장에서 박사후연구원은 대학원생에 비해 비교우위의 인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은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를 추가로 지원해줘야 하지만, 박사후연구원은 적절한 연봉을 주면 되고, 뭣보다 연구실적을 쌓아 더나은 직장을 구하려는 동기가 뚜렷한 경우가 많아 열심히 실험하고 논문을 쓸 뿐더러, 당연하게도 그 일을 대학원생에 비해 잘한다. 박사후연구원 입장에서는 교수자리나 산업계의 좋은 취직자리가 생기길 기다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인력시장 상황이 좋지 않거나,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자리가 나지 않는다면 그 기간이 터무니 없이 (때론 10년까지도) 길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학력소지자인데도 불구하고 임시직의 불안정한 자리다 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해, 미국의 경우 2003년에 전미박사후연구원협회(NPA)를 결성했다. 그외도 각 대학별 노동조합 형태로 대학과 교섭을 진행해 복리후생과 일자리 전망 같은것을 논의하는 등 박사후연구원의 처지를 스스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수들은 대학원을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기 보다는 과학자로서의 장미빛 미래만을 언급한다. 또한 언제나 인력이 부족하다며, 학위과정생을 더 받으려고 하고, 대학원생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과학계 인력이 부족한지, 과학자 자체가 정말 부족한 건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이 되기로 맘먹었다면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더라도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과학자라는 직업자체가 주는 재미(수수께끼 풀이, 명성)를 다른 직업에서는 느끼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난 할 수 있다. 난 달라'라는 주문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덕적 해이로 인한 교수의 꼬드김(?) '넌 잘할거야, 넌 내가 키워줄게'가 더해진다. 

요약하자면, 과학이라는 학문이 주는 재미에 이끌리고 자신감도 있는 학부생, 또는 취직할 곳이 없어 대학원 밖에 갈 곳이 없는 학생이 교수가 보여주는 전망에 따라 학문의 세계에 발딯는다. 하지만 임시직 형태의 대학원과정, 그리고 박사후과정을 밟게되는데, 이 과정의 독특한 점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다 밟는다 하더라도 교수 또는 괜찮은 정규직 연구원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럼 다음 포스팅에서는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BK 21(Brain Korea) 사업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업으로 인해 박사 학위자 과잉 양성이라는 현상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 것의 장단점은 논외로 하고 말이다. [본문으로]
  2. 여기 대학원생집단을 직업군 또는 노동자로 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대학원을 배움의 연장선 상으로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laboratory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 대부분의 연구과 실험은 지식 '노동'으로 이루어 진다. [본문으로]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

저자
폴라 스테판 지음
출판사
글항아리 | 2013-04-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식을 향한 사랑만 있으면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과학계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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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경제학자인 저자가 과학이란 학문이 돌아가는 것을 경제학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길 과학이라는 것은 상아탑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특히나 기초과학 분야는 사회과 동떨어져 있다고 가정하기 쉬운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과학은 돈이 많이 들기때문이다. 2~3번 반복실험하는데 드는 시약비용이나 형질전환된 쥐 한마리가 몇십~몇백만원하기도 하고, 레이저현미경 설비 한 대가 수십억하기도 한다.

      형질전환을 통해 형광단백질이 발현되도록 한 쥐(양 옆, 가운데는 Wild-type). 출처는 Wikipedia.

 결국 과학을 하는 것 자체도 먹고사는 문제과 뗄래야 뗄 수 없으며, 과학자라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이며, 과학이라는 분야도 사회의 일부라는 것을 경제학적인 접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제부터 나오는 서평은 책 저자의 생각이 대부분이지만, neuroclimber의 생각도 포함되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책을 읽고 판단하길 바란다. 

경제학자 답게 경제학적 법칙이 나오는데, 두가지 법칙을 보도록 하자.

1. 로트카 법칙 : 1907~1916년 사이에 Chemical abstract(이때는 물리, 화학이 잘 나가던 시절이다)에 투고된 눈문과 그 저자들을 분석해 본 결과, 약 6%의 과학자가 전체논문의 절반을 발표한다는 것 발견하여 자기 이름을 따서 명명한 법칙이다. 

2. 매튜법칙: 명성있는 과학자들의 공헌을 더 크게 인정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더 낮게 평가한다는 법칙이다. 이 매튜법칙에 따라 논문이 게재되면 로트카 법칙에 부합되게 논문 비율이 형성될 것이다. 

이 정도는 사실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실력이 있는 과학자이니 당연히 명성도 있을 것이고, 논문도 많이 투고했을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 실력과 명성이 더 알려지고 말이다. 선순환관계일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PNAS라는 저널은 contributed라는 항목이 따로 있어 일정 수준이상의 과학자 논문을 동료평가없이 게재한다.

하지만 이런 순환구조에서는 신인과학자, 젊은 과학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에게는 게재기회가 높지 않다라는 점이 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잘 아는 많은 학생, 대학원생, 박사후 연구원들은 좀더 유명하고, 인정받는 boss가 운영하는 실험실에 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문과 명성에 관련된 얘기말고도, 경제학자답게 돈문제도 상당히 언급하는데 그 중 빼놓을 수 없는게 과학자들의 '연봉'이다.


천재과학자이자 군수업 사장인 토니 스타크. 재산 115조원으로 히어로 중 1위.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은 토니 스타크나 아마르 보스(Amar Bose)[각주:1]처럼 자기 사업을 꾸리기보다는 대학에 소속된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 연구를 하기에 안정적일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많다. 하지만 이 안정적이고 균등해보이는 교수라는 직업도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과 같은 선진자본주의 국가, 그리고 그 미국을 뒤따라가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의 소득불평등은 갈 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과학자나 교수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다. 1970년 교수들의 소득불평등정도가 0.1 (0이면 모두 연봉이 같고, 1이면 누군가는 연봉이 0원이라는 지니계수)이었다면, 2000년대 소득불평등정도는 0.2정도로 증가되었다.[각주:2] 그 이유는 성과와 연봉의 상관관계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교수가 교육공무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유럽식 모델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 성과나 연구비를 따오는 정도에 따라 연봉이 다르게 측정된다. 특히나 종신교수직인 tenure를 받기 전까지 이름이 교수일뿐 언제 재계약 임용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되는데, 그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 역시 성과과 연봉 간의 상관관계 형성시키는 요소이다. 성과가 좋으면 tenure를 일찍 딸 확률이 높고, 그러면 연봉이 상승하게 된다. 

지위 상승 문제말고도 발표되는 논문의 질과 양에 의해 직접적으로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이 책에서 동아시아의 예로 중국과 우리나라를 들고 있는데, 이 두 나라는 상위학술지(Cell, Nature, Science 등) 에 논문을 게재할 경우 정부와 대학 차원에서 보너스를 지급한다. 그 정도가 연봉의 20%에 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논문게재에 따른 보너스 말고도 연구에 따른 특허로 인한 수입까지 포함할 경우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진다고 추가한다. 특히나 특허가 돈이 된다는 사실은 대학 뿐만 아니라, 연구를 수행하는 교수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특허 출원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특허로 인한 수입 역시 증가 추세이다. 

특허는 과학을 함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연구 동기를 부여해 지식의 발전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지만 역으로 특허로 보호된 지식의 확산속도가 느려지기도 한다. 상상해보라. 암에 걸리기 쉬운 쥐인 Oncomouse에 대한 특허를 듀퐁사가 그대로 배타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1988년 이후 암 연구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당시 이러한 듀퐁사의 특허 출원에 반발한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듀퐁사는 결국 1999년 비영리적인 사용에 한해 Oncomouse 사용할 수 있게했다. 그리고 그렇게 특허가 유지되던 약 10여년의 기간에 비해 재산권이 느슨해진 이후에, Oncomouse를 발견한 논문을 인용한 논문이 21% 증가 했다고 한다. 즉 Oncomouse를 이용한 연구 자체가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과학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은 경제적인 문제와 분리할 수 없지만, 과학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과학자라는 직업 자체의 경제적 메리트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학사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는 경우, MBA를 취득하는 경우, 박사 과정을 밟는 경우를 비교했을 때, 박사를 하는 경우 기대연봉, 평생 소득 모두 최하였다. 그 중에서도 생명과학분야는 박사학위 소지자의 1~10년차 연봉이 학사학위의 1.1배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후의 연봉 역시 그렇게 차이가 벌어지진 않았다. 평균 박사학위까지 하는데 추가 교육기간을 7년 이상 소요된다고 가정하고, 그 기간 동안의 소득차(기회손실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그 차이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2001년 미국에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MBA졸업생에 비해 생명과학자의 평생소득이 약 200만달러(한화 약 20억원 상당)적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들어오는 사람들처럼 과학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쫓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금전적인 보상을 포기한 만큼 보상을 받을 것 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얘기해보자. 


  1. 음향과학자. MIT 교수직을 역임하던 중, 기내에서 음악감상을 하다가 빡쳐서(?) 음향학을 연구하고, 직접 헤드폰 회사를 차린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BOSE headphone. [본문으로]
  2. 결국 과학자 집단 내에도 연봉의 차이가 많이 나게되었다는 것이고, 그 분포도는 2배 증가하였다는 이야기 [본문으로]

난 음악을 좋아한다. 대중 가요, 락, 클래식, 뉴에이지, 재즈 그리고 트로트(?)까지 좋아한다. 언제부터 음악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음악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 인디 음악을 즐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개인적으로 홍대 클럽에서 한 번도 라이브로 듣지는 못했지만, 홍대에서 시작된 인디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대부분 인디 음악으로서 괜찮거나 인정받은 노래가 있으면 어떻게든 찾아서 듣고자 한다. 시간과 기회가 허락된다면. 


하드코어적인 노래보다는 조금은 달달(?)한 노래를 좋아하는데, 얼마전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서 분석[각주:1]해보니 (이것도 직업병일 수 있다) 발라드나 브릿팝처럼, 그 장르 자체가 묻어나온 음악도 좋긴 하지만, 노래들 대부분에 위트와 유머가 들어 있었다. 가사나, 제목 심지어는 그룹이나 밴드의 이름에 유머와 위트가 들어 있는 노래가 내 리스트에 많았다. 


실제로, 인디 음악을 듣다 보면, 노래에 밴드(솔로도 있지만 대부분 밴드인 경우가 많았다)만의 색깔이 많이 묻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앨범 전체가 내 취향과 완전 틀려서 rule out[각주:2]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내 취향과 완전히 흡사해서 앨범전체가 다 마음에 드는 경우도 많았다. 인디 음악이나 밴드가 일종의 도자기 공방같은 느낌으로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대부분 대중성은 없지만, 대중성과는 별개로 나의 취향과 맞다면, 기성 가수들보다 오히려 내 귀에 듣기 좋은 음악이 더 많은 상황이 많이 있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어떤 경우에는 너무 좋다고 하기도 하지만, 항상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니었다.


혹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취향은 전세계 인구만큼 많은 것이기 때문에, 90%만 맞는 음악만 찾아도 아주 행복한 것이라고도 이야기하면서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의적(?) 해석을 내리기도 해 주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이 내게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느냐 물어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연구를 말해 주었다. 말하도 보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내가 재미있어 하는 부분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다 달랐다. (참고로 내 연구 분야는 탈모, 모발, pattern formation, 재생 의학 분야이다.) 표정이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 지인은,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남자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슬슬 M자로 진행되는 탈모가 어느 덧 30대가 넘어가면서 대머리처럼 되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말하는 모든 부분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들었고, 어떤 치료가 좋은지, 자기가 쓰고 있는 샴푸의 효능을 묻고, 연구에 있어서도 창의적인 질문이 많았다. 


두번째 지인은 탈모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였다. 남자 친구도 없고, 아버지가 탈모도 아니었다. 주변 지인 중에는 탈모와 연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따라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서두 정도만 듣고는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계속 카톡을 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세번째 지인은 남편과 아버지가 탈모로 고생하고 있는 여자였다. 정작 본인은 탈모가 전혀 없었음에도 첫번째 지인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혹시 자기 아들은 어떻게 될지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언제쯤 탈모가 정복되겠는지를 물어보고, 아버지가 탈모 제품으로 사기 당한(가격은 비싼데 효과를 보지 못한 - 실제로 이런 제품이 상당히 많다) 이야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대화가 되었다.


네번째 지인은 최근 원형 탈모로 고생한 여자였다. 2년 전 일이니깐 그리 최근은 아니지만, 당시 그것으로 인해서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듯 하였다. 치료제나 경과,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연구에도 큰 관심을 가졌으나, 원형 탈모와 남성형 탈모는 기전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지인은, 탈모와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당연히 주변 가족 중에 탈모가 없고, 아버지, 형제, 사촌들도 탈모가 없었고, 앞으로 탈모로 고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상식 수준에서만 알아 둔다는 느낌이 강했고,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정보만 취득해 갔고, 대체적으로 큰 관심이 없었다. 


아... 그러면서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연구는 인디 음악과 아주 비슷하구나..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아주 재미있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남들도 이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컸다. 아울러, 연구의 성과가 고통받고 있는 탈모인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고,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탈모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리 큰 재미가 아닐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된 것이다. 


그런면에서 돌이켜 보니, 나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이제야 탈모인들의 고통을 뼈저리게 알고 있지만, 내가 연구하기 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의대에서는 탈모에 대해서 1시간도 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나마 우리학교는 탈모 분야로 유명하신 교수님이 계셔서 조금 더 할애하지만,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도 탈모는 다분히 비중이 큰 질환이기 보다는 마이너한 질환이라는 것을. 


의학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연구는 인디 음악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는 본질적으로 모든 연구는 인디 음악 같은 취향을 가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는 "연구"라는 노래를 부르는 "인디 밴드 가수"인 셈이다. 


일례로, 난 바다에서만 살고 있는 미생물(혹은 석유를 분해하는 미생물)에 큰 관심이 없지만, 그 것에 대해서 "내가 탈모에 관심가지는 것"만큼 재미있어 하는 연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디 음악으로 따지자면,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 연구자의 취향에 맞는 음악인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인디 밴드도 존재하고 그런 연구자도 존재한다.(내 취향은 아니지만 엄연히 팬층이 존재하는 밴드는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연구는 "내 취향, 내 꿈, 내 재미,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새삼 느꼈다. 내가 재미없어 하는데, 타인의 취향(약물 개발)을 위해서 희생한다면, 그 연구는 태생부터 이율배반적인 상황인 셈이다. 


물론, 석사, 박사 과정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학습한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실험 자원의 제한과 지도 교수님의 취향에 따른 연구를 하게될 여지는 있지만, 그 이후에 자신이 랩을 꾸리려 한다면, 인디 밴드적인 접근으로 연구를 해야할 것 같다.  가끔, 인디 밴드에서 대중적인 밴드로 자리잡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빅 가이나, 이름있는 과학자들이 그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디 밴드와 연구를 연결시킨 것이 일견 이상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주제이긴 하니깐, 그렇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구와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 좋아하는 인디밴드가 나에게는 동일하게 다가 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오늘도 인디 음악을 들으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정말 즐겁다. 

  1. 기회가 된다면, 그 리스트를 공개하면서 음악을 나누고 싶기도 하다. [본문으로]
  2. 배제- 의학 용어로 많이 사용됨. 여러 검사로 특정 질병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경우 이용됨 [본문으로]

처음에는 기초 의학을 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모두 다가 박사는 아니었지만,

MDPhD.kr라고 이름을 지었다. 뭐 시작 자체는 기초 의학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고, 의학, 의과학에 대한 설명글도 필요하고. 군문제 해결. 전문연구요원. 등등 이유가 있긴 했지만, 결론은 "기초 의학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야 겠다" 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3일전 무려 25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이 블로그를 찾아 주었다. 정확히는 2496명... 파워블로거의 만명에 비하면 아주 적은 인원이지만, 평소에 500-800명을 왔다 갔다 했는데, 갑작스럽게 3배가 넘는 인원이 블로그를 찾아 왔는 것이다. 사실 1000명만 넘어도 많은 인원인데, 2400명이라니... 깜짝 놀랐다. 블로그 운영을 거의 1년 정도 했는데(연 것은 2007년이지만...), 이런 인원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일시적인 것이라 현재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주제도 일반인들이 관심가질 만한 소위 말하는 파워 블로그 주제 같은 영화, 연예, 요리.. 뭐 이런 것도 아닌. 의학. 오로지 의과학 뿐이어서 놀랐다. 


자세히 메타 정보를 통해서 살펴 보니,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우리 글 중 하나 "병무청 군의관 관련 글""응급실"  링크로 공유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엄청난 페북 친구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공유한 것을 타고, 무려 150명에 가까운 사람이 "공유하기 혹은 좋아요"를 눌렀고, 결과적으로 폭풍과 같은 나비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정말 네트워크 효과가 엄청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 또 건너... ^^ 여하튼 많은 사람이 찾아서 정보를 보고 갔다는 것에 대해서 나름 뿌듯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내가 들어올 때도 그러하였지만, 아직까지 의대를 다니는 의대생이나, 졸업한 의사라 할지라도 "기초의학이 어떤 곳인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어떤 제도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렴풋이 기초는 "연구하는 곳이다" 라고만 알고 있다. 실제로 의대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기초 학문이 어떤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지.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해서 의사나 의대생들은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초를 진로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의대에서는 아주 극소수인데... 이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경제적 보상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정보의 부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머 이유를 찾자면 끝이 없겠지만, 적어도 기초 의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이 길을 잘못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이 팀블로그 (www.MDPhD.kr) 가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기초 의학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후배들에게 의대생이 어떤 형태로 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전문연구요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쑥스럽긴 하지만, 군의관 관련 글로 다음 1위이긴 하다.)

사실, 이 블로그에는 유난히 비밀 댓글이 많다. 그만큼 자신의 진로가 불확실해서 공개하기를 꺼리는 것도 이유가 있지만, 무언가 직접 물어보기 힘든 진로 관련글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점을 보았을 때, 의과학자 진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정보 갈증 혹은 멘토의 부재 느끼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여기 와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다. 그와 관련해서, 개별적으로 답변한 글들을 최대한 익명화, 일반화 시켜서 "진로 상담" 관련 시리즈글을 작성할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중간에 짬을 내서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뭐 글을 길게 썼지만... 작은 정보들이 모여서 인류 문화를 발전시키 듯이, 우리 팀블로그의 소소한 글들이 의학의 발전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아주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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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6개월만에 첫 글을 쓰게 되네요.

지난 12월, 필진에 참여해 달라는 주인장의 부탁에 흔쾌히 수락했지만, 여러가지 바쁘다는 핑계로 (딸아이 출산, 전문연구요원 종료, 영국에서의 적응 등등)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어 왔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달까요.

글에 대한 생각 역시 저를 가둔 면도 있습니다. 몇개월을 고민고민해 쓴 논문이라도, 1년후에 읽어보면 아쉬운 부분이 군데군데 발견됩니다. 10년전에 어디엔가 쓴 제 글을 다시 읽으면, 마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읽는 것 마냥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서 '명쾌하게 써놓은 글'의 오류에 대한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한 이유는, 이 분야 (의학/의학 연구)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언제나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의과대학에 진학할때도, 졸업 후 의과대학 기초의학 (앞으로 기초 대신 '연구'라 부를까 합니다) 학위 과정에 들어올때도, 그리고 그 이후의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도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정보의 부족은 계획의 부재, 감성적 (혹은 즉흥적)인 결정으로 이어지고 시행착오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연구 의학 분야에 가뜩이나 사람도 많지 않은데 기록마저 없다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 역시 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 밖에 없겠죠. 이런 의미에서 제 경험이나 생각을 하나의 참고용 기록으로서 남겨보고자 합니다. 필진에 제 실명을 밝힌 것은, 조금이라도 더 책임감을 가지고 과장없이 남겨보고자 하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현재 10명 가까운 필진이 있지만 쓰여지는 모든 글이 필진 사이에서 'consensus'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쓴 글 역시 저의 상황에서 일어난 특수한 기록이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블로그를 이용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쓰는 여러 글들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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