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의료는 어떻게 가능할까? 약동학, 약력학 그리고 약물 유전체학 -
10년 전 의과대학 1학년 시절 배웠던 약리학을 지금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배경 지식에 따라, 경우에 따라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 질문을 남겨 주시면 답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약리학이란 이름 그대로 풀이하자면 약의 이론에 대해서 공부하는 학문이다.
약이
인체 내부로 들어온 이후 발생하는 모든 변화에 대해서 탐구하는 일이 약리학 전공 연구자가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약리학에는 더 세분화된 많은 분야가 있지만 약리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약리학을 세 가지의 큰 카테고리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1)약동학 2)약력학 그리고 3)약물 유전체학이 그 세가지 큰 카테고리이다.
우리가 약을 먹으면 약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대로 약이라는 물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리 몸 또한 약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약리학을 크게 세분하는 두 가지 개념인 약력학과 약동학이다.
약동학: 인체가 약에 미치는 영향 (몸에 의에 영향을 받는 약의 농도 변화)
약력학: 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약의 힘)
물론 약동학과 약력학이 언제나 서로 연관되어 작용한다는 사실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다음의 간단한 사례를 통해서 약력학과 약동학 상호 작용의 예를 찾을 수 있다.
24세 남자가 세 시간 전부터 열이 나서 타이레놀을 먹었다.
40분 정도 지나자 체온이 정상 온도로 회복되었다.
이 남자에게 일어난 타이레놀의 약동학과 약력학적 작용을 지금부터 알아보자.
<그림 1, 타이레놀 경구 투여 이후의 혈중 농도 그래프 >
타이레놀의 약동학적 작용: 위 그림과 같이 약을 먹은 후 타이레놀은 흡수되어 혈중 농도가 30분 이내에 최고치가 될 것이다. 이후 각 조직과 장기로의 분포, 간에서의 대사, 신장 등에서 배설을 거치면서 혈중 농도는 점차 낮아지게 되는데 뒤쪽에서는 반감기인 2-3시간을 주기로 반씩 낮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그림 2, NSAIDs의 프로스타글란딘 억제 작용,>
타이레놀의 약력학적 작용: 타이레놀은 흡수된 후 중추신경계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의 방출을 억제하여 열 조절 센터에서의 발열을 회복시켜준다.
이렇게 인체가 약에 미치는 영향, 약의 혈중 농도 변화 추이를 연구하는 분야가 약동학이며, 약의 효과에 대한 기전을 연구하는 분야가 약력학이다.
예로 들었던 문장 자체에는 약력학적 작용만이 드러나 있지만 (체온이 정상 온도로 회복되었다) 약동학과 약력학은 언제나 서로 맞물려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평소 약을 복용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서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이는 약효가 좋고, 어떤 이는 약효가 느리게 나타나거나, 심지어 약에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동일한 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도 사람마다 약동학과 약력학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 분야가 ‘약물 유전체학’이다. 사실 유전체학이라는 연구 분야가 이미 존재하는데, 유전체학을 약리학에 적용시킨 것이 약물 유전체학이다.
유전체학은 2000년대 초반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어 사람의
유전자 서열 정보가 모두 드러난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학문 분야이다. 유전체학은 모든 학문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며 예를 들면 질병의 발생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질병 유전체학 (인간 유전자 서열에 따라서 질병의
발생 확률이 달라짐을 연구한다) 이라는 이름으로 연구 분야가 개척되어 있다.
유전체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분은 현재 유전학 분야에서 맹렬한 연구를 하고 있는 eveningTea가 쓴 유전체 관련 글(Human Genome (인간 유전체) 그리고 의학) 을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지금까지 알아보았던 약리학의 큰 두 가지 분야, 약동학과 약력학에 관여하는 유전자 염기 서열의 개인간 차이를 바탕으로 약동학과 약력학적 현상에 차이를 보이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약리학과 유전체학의 접목인 약물 유전체학이다.
<그림 3, 약물 경구 투여시의 혈중 농도 그래프, 참고로 타이레놀 복용시의 그래프는 아니므로, 그래프 양상만을 참고하자, >
타이레놀을 하루에 두 번씩 꾸준히 먹는다면 반감기의 4-5배 정도 지난 시간부터는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게 된다 (녹색). 그런데 유지된 농도가 너무 낮으면 (파란색) 약효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너무 높다면 (빨간색) 독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타이레놀이 간에서 CYP2E1이라는 효소에 의해서 대사된다고 할 때, 효소의 활성이 높아서 타이레놀을 잘 분해시키는 사람은 파란색 그래프의 혈중 농도를 보일 것이다. 이는 같은 용량의 타이레놀을 복용해도 그 사람의 상대적으로 혈중 농도가 낮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효소의 활성이
낮아서 타이레놀이 잘 분해되지 않는 사람이 계속 타이레놀을 복용한다면 빨간색 그래프의 양상을 보일 것이다. 같은 용량을 먹어도 상대적으로 이 사람의 경우에는 혈중 농도가 높아서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각기 다른 효소의
활성 정도는효소를 발현시키는 정보가 담겨있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DNA의 염기 서열에 따라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것이 바로 약물 유전체학의 핵심이다.
예컨대, 효소 활성이 높아서 파란색 그래프를 보이는 사람은 녹색의 농도로 맞추기 위해서 약을 더 자주 혹은 높은 용량으로 복용할 수 있겠고, 효소 활성이 낮아서 빨간색 그래프를 보이는 사람은 약 복용 주기를 늘리거나 용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약물 유전체학의 최종 목표는 사람에 따라 최적화된 약물 처방을 하는 ‘맞춤의료’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약리학은 크게 약동, 약력, 약물 유전체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각에 대해서 더욱 세분화된 연구 분야가 있지만, 약리학 전공자가 아닌 분들은 이 정도만 알고 계셔도 충분할 것같다. 기회가 된다면 오늘 다룬 약리학의 분야를 바탕으로 ‘약리학 전공 의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소개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