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 (김영란 전 권익 위원장 이야기 3)
3.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가르치고 싶은 법학자.
이제 권익위원장을 그만두고 서강대 로스쿨에서 강의를 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쓸모없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생각이라고 한다.
실제로 쓸모 없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법이라는 테두리에 있는 소수 의견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파악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선거도 그러하고, 의회 입법이나 모든 대부분의 사항들이 표결이라는 결과를 수용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대의원칙으로 자리잡으면서, 옳지만 다수결에 의해서 배제된 소수 의견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할까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옳기는 하지만(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의견. 객관적인 증거에 따른 결론을 중시하는 과학과 다르게 인문학(법학까지 포함)은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다.
예를 들면, 혼인 빙자 간음죄가 그런 경우가 될 수 있다.
남성 우월적인 전통 사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남성이 여성을 농락하고, 결혼을 빙자해서 간음하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성적 자기 결정권이 확대된 시점에서 혼인 빙자 간음법은 더이상 법률로서 존중받지 못하게
되어서 결국은 위헌 판결이 났다. 여러번 시도되어서 7년전에는 합헌이던 법률이 최근 들어서 위헌으로 판결나는 것은 사회적 환경
변화가 큰 이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 의견은 중요하다. 모든 인문학과
법학에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 스며들어 있다. 사회의 시대상이 변한다면, 틀릴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는 것이고, 이를 파악해서
소수의 가능성에 대해서 항상 배려해야 하는 것이고, 시대적 관점에 따라서 소수 의견은 다수 의견으로 바뀔 여지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쓸모 없어 보이는 "소수 의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칫 소모적일 수 있긴 하지만, 사회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그 소수 의견이 왜 나왔으며, 어떤
가치를 반영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다수의 판결이 나왔는지 왜 그 의견이 배제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역으로 상황이 변할 경우 이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과학에서도 소수 의견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다만,
북쪽을 다수결로 정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되듯이, 정확하고 논리적인 증거에 의해서 나온 과학 이론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패러다임이라는 틀이란 것은 다분히 사회 인문학적인 가능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역시 완고한 과학적 증거와 실험을 깨부술 정도라고
하기는 힘들다. 과학적 소수 의견이라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실험에 대한 혹은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가설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번에 판사 김영란, 전 권익 위원장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앞으로도 사회의 소수 의견을 반영하여,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맡은 바
소임을 꾸준히 해 주시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