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렇게 중요한 어깨수술 강의를 왜 한시간만 배정한거야?" (의대에서의 공부량)
의대에서의 공부량 (객원 필진 윤홍균 선생님의 글)
윤홍균 선생님은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시고, 서울 마포구에서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고 계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의대에서의 공부량에 대해서 써놓은 글인데, 아주 큰 공감이 가서 저희 블로그에 포스팅합니다. 참고로, https://www.facebook.com/addictyoon 에 원글이 있습니다. http://yoonmaum.com/ 에 블로그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글을 쓰기는 사실 꺼려졌었다. 왜냐하면 요즘은 의대생이나, 의대생 아닌 사람이나 다들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의대를 다니던 시절,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나 청춘 드라마와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기에 이 글을 남긴다.
이 글에서의 의과대학에서의 공부량은 전적으로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것임을 밝힌다. 그동안 학제는 많이 바뀌었고, 학교마다 다른 커리큘럼이 있기에 경험은 모두 다를것이라는 점도 이해를 바란다. 나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다.
의대에 입학했다. 정확히 의예과에 입학했다. 예과과정에서 공부부담은 별로 없다. 그래도 중요한 과목이 한과목 정도 있다. 가령, '일반 생물학'같은 과목이다. 이 과목의 공부량은 나머지 공부량을 다 합친것 정도 된다.
만일 일반 생물학과 5과목을 첫학기때 만난다면, 나머지 다섯과목 합친게 일반 생물학과 비슷하다. 이런 일반 생물학을 '메이저'라고 부른다.나머지 그러니까 컴퓨터 실습이나, 영어회화같은 과목들이 있었다. 이런 과목들이 마이너였다. 평소엔 수업을 듣는등 마눈둥하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공부를 한다. 뭐 잘치면 잘치는 거고 말면 마는거다.
다음 학기가 되면 또 한가지 메이저 과목이 있고, 나머지 과목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그 마이너 과목들이 다 '일반 생물학'정도 된다. 그리고, 그 마이너들을 다 합친것이 '세포학'이라는 메이저 만큼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학기가 되면 또 메이저과목이 하나 생긴다. 마이나과목이 공부량은 또 그전 학기의 메이저 같은 것이다. 그런식으로 유전학이라는 메이저를 만나고, 뭐 그런식이다.
그러다가 본과에 진입한다. 예과를 벗어나서 의학과과정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진입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본과 첫학기에는 네개의 메이저를 만난다. 해부학, 생화학,생리학, 조직학. 공부 량은 해부학이 가장 많다.
그런데 해부학에서 공부해야할 양은 그냥 예과때 배웠던것 전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3학기 정도동안 외웠던 분량은 한과목에서 외운다. 물론, 생화학, 생리학, 조직학도 많다. 그외에 여러 기타과목들도 있다. 이런것들도 공부할것은 많다. 해부학 만큼은 아니지만, 예과 메이저보다는 훨씬 많았던것 같다.
본과 2학년이 되면 병리학이라는 학문을 만난다. 병리학의 분량은 1학년때 메이져였던 네과목을 합친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여러 기타과목들이 있다. 뭐 계속 그런식이다. 전학기보다 두배 정도씩 차곡차곡 쌓인다. 1
급기야 본과 4학년이 되면, 정말 눈을 의심할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첫시간에 평생을 어깨 수술만 하신것 같은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어깨수술 강의를 왜 한시간만 배정한거야?"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강의를 하신다.
그리고 두번째 시간에는 평생 손목 수술만 강의하신분이 들어오셔서 "손목 수술만 강의해도 하루를 잡아야되는데, 왜이렇게 시간이 없어?"하면서 엄청난 진도를 나가신다.
그런식으로 강의가 이어진다. 평생 혈액암만 연구하신분, 갑상선의 내과치료만 연구하신분, 갑상선의 수술치료만 하신분이 본인이 공부한 모든 것을 한두시간동안 적어놓고 나가신다.
한 교시가 끝날때마다 책이 한권씩 생긴다. 정말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범위도 잘 모르겠고, 내가 들은게 전 학기에 들은건지, 이번학기에 들은건지도 잘 모르겠더라.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어느새부턴가 필기는 포기하고 그냥 듣는 거 정도하다가, 말다가 했던것 같다.
필기를 해봤자, 그게 맞는말인지도 모르겠고, 적다보면 진도나가있고, "이건 해부학 시간에 배웠지?" 뭐 이러시는데 전혀 기억은 없고, 뭐 그런식의 수업이 이어진다. 아이고 글쓰다보니 심계항진이 오네.
어쨌든 그렇게 본과 4년이 지나간다. 결론은 공부할게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학문은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데, 의대 4년동안 모든 과의 지식을 한번씩을 훑고 가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것 같다. 뭐 어떻게 해야한다.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의과대학의 공부량은 엄청나게 많았다.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공부량이 많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라던가 그런말은 사실 현실적이지가 않다. 사실 그렇게 될지 몰랐고, 설마 그렇게 많아지겠어? 에이..하면서 분량이 점점 늘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도 싶었고,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뭐 따로 할것도 없어서 어쩔수 없이 졸업까지 떠밀려떠밀려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량이 많았다고 다 공부한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공부량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 것은 "공부해야할 양"을 적은 것이다. 공부한 양은, 저것보다 확연히 적었다고 생각한다. 기억나는 것도 사실 별로 없다. 그냥 아 되게 많았네. 정도. 그게 나의 양심고백.
의대생 여러분, 공감하시나요?
- 이는 의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