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여러가지 문제로 의료 사회가 시끄러운 것 같다. 특히, 실력과는 별개로 쇼닥터라든지 TV에 자주 나오는 의사에 대해서 많은 불신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근거가 없는 치료를 하는 의사들과 한의사들을 과학인으로서, 그리고 환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인간으로서, 아주 싫어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친 임상시험이나, 근거가 충분히 마련된(동료 평가와 재현성이 확보된) 치료는 언제든지 개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쓴 글이긴 하지만, 오늘에서야 여기에 포스팅을 한다. 

오늘은 "의료 광고"만이 가진 특수성에 대해서 포스팅[각주:1]하고자 한다. 

의료 광고는 필연적으로 자신과 병원을 알리기 위한 한 방편으로 봐야 하지만,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던 중 특이한 뉴스를 듣게 되었다.

아무리 수술 케이스가 많은 자신을 알리고 싶어 했어도 해야 할 일과 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뉴스는 극단적인 마케팅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광고는 무엇을 알리기 위한 매체이다. 

기본적으로 서비스나 상품을 알리기 위해서 광고가 이용된다. 광고가 좋으면 물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물건이 더 잘 팔리게 된다. 요새 많이 나오는 이미지 광고, 감성 광고 등도 사실은 직접적으로 물건을 판다기보다는 호감도를 높여서 "이 물건을 사면 좋은 느낌이 들 것이다" 하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결국, 궁극적으로 모든 광고는 물건 혹은 서비스를 팔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의료 광고는 광고 시장에서 아주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광고를 하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 의료의 특수성이 광고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과장 광고, 허위 광고 등은 아주 엄격히 심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잘못하면 환자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다. 의료 광고를 자세히 보면, 과장과 홍보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의료 광고들이 많은데, 이는 "의료"라는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허위 광고를 보고 온 환자를 치료해서 "허위" 혹은 "효과가 미미함"이라는 기준 자체가 경우에 따라서 주관적이고, 이 치료가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를 환자가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의료 광고는 철저히 검증된 치료에만 국한하고, 그것조차도 아주 신중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의료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심의를 거쳐야만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의료"라는 부분에서 일반적으로 광고가 차지하는 영역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일단, 내가 겪는 질환이 갑작스럽거나, 가벼운 것이라면 근처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는, 의료 광고나 인지도보다는 병원의 위치(접근성)가 더 중요할 것이다. 주변 사람을 통해서 조금 더 인지도 있거나 용하다(?)고 알려진 병원에 갈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간단한 질환이라면, 자기 주변에 있는 병원(로컬 병원)을 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로컬 병원 입장에서는 굳이 돈을 들여서 광고를 할 필요가 없는 셈[각주:2]이다.

만약, 내가 중한 병이라고 진단받았다면,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가고자 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큰 병원, 혹은 대학 병원으로 가길 원할 것이고, 이 때는 초기 진단을 내린 의사에 의존하거나, 주변 사람들 혹은 풍문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동료 평가에 의한 명의를 찾아갈 여지가 크다"는 이야기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광고를 통해서 병원을 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대학 병원, 혹은 큰 병원 입장에서는 동료 의사들의 평판을 높이기 위한 학회 활동이 더 중요하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광고는 큰 소득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생돈을 날려서 이미지 광고를 몇 판 때리는 것보다, 병원에 있는 교수들의 실력을 높이고, 학회 참여를 권장하는 것이 비용 대비 더 큰 효과를 얻는 셈이다. 물론, 자본력이 있는 병원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미지 광고를 슬슬 시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자의 입장에서도 그러하다. 질병이라는 이유로, 한 번밖에 없는 치료 기회를 광고에 의존해서 그 병원에 가기에는 너무나도 큰 리스크가 수반된다. 광고만 믿었다가, 이 의사가 허위 광고를 하는 것이라면... 이 의사가 경험이 미천한 의사라면... 이 의사가 실력은 없는데 광고만 많이 해서 이름만 알려진 상황이라면그래서 결국 내가 수술받았는데 부작용이 생긴다면...   등등 수많은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에, 선뜻 광고만 의존해서 병원을 선택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 환자들의 인식이다. 


 (이제 병원도 마케팅 시대??)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의료" 혹은 "보험 의료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소위 말하는 "미용 치료- 비보험 의료 영역"에서는 광고가 차지하는 부분이 정말 엄청나다. 오히려 안 하면 손해가 되는 상황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얼짱 의사, 그리고 매스컴 플레이. SBS에서 나온 의사, MBC에 출현했던 의사, KBS 스펀지 자문 의사 등등 매스컴에 노출된 의사들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매스컴에 노출되면 득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지도가 높으면 결과적으로 많은 환자들이 온다. 더 친근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그 의사들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하고 근거 있는 의료 지식을 제공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의학 지식"인양 근거 없는 정보를 퍼붓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각주:3]. 자신은 인지도를 얻고 많은 환자를 얻겠지만, 최소한 임상적으로 근거 있고 체계적인 의학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TV, 마케팅에 목매는 의사(?)를 무조건 막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비판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맛집 소개 TV에 나와서 자기 음식점을 알리는 음식점 주인과 비슷한 행위인 셈이다.[각주:4]

 

의료 광고 영역에서 광고로 포지션 할 수 있는 부분은 "인지도" 외에도 교수, 전문의라는 "타이틀" 등등 많은 것이 존재한다. 특히 "성형"이라는 영역에서는 "잘 된 사례와 수술 경험"이 큰 포션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 지하철에 떡하니 붙여 놓은 잘 된 성형 케이스 하나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해서 존스 홉킨스에서 성형외과 수련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막강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성형"의 영역에서만큼은 "학벌"이 큰 영향을 못 미치는 것 역시 의료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각주:5]

실질적으로 비보험 영역에서 "의료 광고"는 환자가 일단 병원 문턱에 들어오기까지 아주 큰 효과를 발휘한다. 환자가 문턱으로 오는 것만으로도 광고의 기능은 다 한 것이고, 그 의료 광고는 소위 말하는 돈값을 한 셈이다. 한명의 환자라도 더 방문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할 기회가 있는 셈이기 때문에, 제법 잘 나간다고 하는 병원에서는 광고를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의료 광고는 문턱을 깎는다)

 

아울러, 환자의 입장에서도 돈을 주고 평생 한 두 번밖에 할 수 없는 수술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조금 더 잘하는 곳, 조금 더 알려진 곳을 찾기 마련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뿐만 서울이든 대구든, 부산, 광주 등지를 찾아, 제일 잘 할 수 있으면서도 적절한 가격을 가진 병원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마땅한 정보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네이버 지식인 검색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인터넷이나 다른 광고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비보험" 병원 원장 형님이 방학 기간 동안에 지출되는 키워드 광고료가 정말 많다(수치는 적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 키워드 광고 단가 자체가 경쟁이기도 하지만, 성수기 한 철을 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환자가 형님의 처음 예상과는 달리 온라인을 통해서 문의를 해 오고 실제로 수술을 받으러 온다는 것이었다. 

 

의료 광고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성형 병원에게는 더 이상 옵션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그리고 인지도, 수술 경험 홍보 등과 같은 복합적인 이유로 과다한 마케팅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휴넷 MBA의 안병민 이사의 말을 빌리자면 "마케팅은 고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고객의 불편한 점, 힘든 점, 어려운 점을 찾아서 해결해 줌으로써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마케팅의 본질이다. 의료 광고 역시 마케팅의 일종이라고 보았을 때, 수술이나 병원 서비스도 고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환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치료를 통해서 행복해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의료 마케팅,광고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케팅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 상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1. 예전에 뼈기둥이라는 마케팅으로 양악수술을 선전한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글을 썼었는데, 댓글로 소송 운운해서, Fact만을 선정해서 다시 포스팅하오니, 참고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성형외과 이름을 글 어느 곳에도 적시한 적이 없으며, 왜곡된 사실을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사진 자료 역시 병원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내용만을 게시하였습니다만, 병원측에서 관련 자료 삭제를 요청하는 바, 그와 관련된 자료는 요청을 받아들여 삭제를 하고, 재포스팅합니다. [본문으로]
  2. 물론, 100% 그런 것은 아니다. 요새는 일반 비보험 병원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좋은 자리에 똑같은 병원이 두세군데 있어서, 광고를 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 [본문으로]
  3. 물론 자세히 비판적으로 들어보면, 일부는 자신 혹은 자신이 소속된 병원에게 약간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뉘앙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으로]
  4. 보건 의료와 음식점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의사"를 인술, 의술로 몰아가고 돈을 멀리해야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것같아서 한 말이다. 의사나 병원도 따지고 보면 개인 사업자인데… [본문으로]
  5. 강호의 수술 고수가 모두 소위 말하는 명문대(?)라는 학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학술은 학벌에 비례할 연관성이 있지만(그 것도 현재 상태라면 거의 의미가 없지만), 의술이나 반복되는 기술은 학벌에 의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본문으로]

저는 주로 연구를 하면서, 대학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의사 입니다. 제 동기들과 아내는 임상 의사로서 소위 말하는 "의료 현장"에서 뛰고 있죠. 오늘도 아내는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 


최근 들어, 밤과 새벽에 사고를 당한 친구들의 전화가 자주 와서 이 글을 포스팅해 봅니다. 언젠가 한 번은 하려고 했던 응급실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하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본 글은 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에 따른 처치와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시고 읽어주시길 당부합니다. .또한, 본 글은, 사고가 생겼을 때, 응급실에 가지 말라는 글이 절대로 아님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본 글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급실은 말그대로 응급을 요하는 의료 공간입니다. 개인마다 분명히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의료인들은 일반적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를 응급 상황이라고 인식합니다. 예를 들면, 심한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절단되었다거나, 복부가 칼에 찔렸다거나, 갑자기 많은 양의 피를 토하는 상황은 누가 봐도 응급 상황이죠. 아울러 소위 말하는 "중풍"같은 뇌경색이나 뇌출혈과 같은 경우, 심장 마비 증상이 있는 경우도 응급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생명을 다루는 응급 질환들은 많이 있긴 합니다만, 개인이 판단하기가 쉽지 않죠. 가끔 증상 뒤에 숨은 질환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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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응급실 사진 by loveCUK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실제로 대부분의 환자들이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면, 늦은 처리에 따른 기다림, 지속되는 고통과 자신의 증상을 온전히 봐 주지 않는 의료진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 90년대 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응급실에서의 불친절, 기다림 문제는 "대학 병원은 불친절하다"라는 인식의 선봉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껍니다.


이런 문제가 왜 발생했느냐하면, "응급"을 인식하는 의료진과 "자신의 응급 상황"에 대한 일반인들의 차이에 근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도록 하죠.


혜린이라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밤에 술을 마시다가, 넘어져서 이마가 찢어진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갑자기 발생한 일이고, 피가 많이 흐르기 때문에, 환자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됩니다.  환자는 피도 많이 나고 아프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을 "응급"으로 생각합니다. 딱히 떠오르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 가까운 대학 병원을 찾게 됩니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지속되는 통증"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상황보다 자신의 병을 더 "응급 우위"에 두는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혜린이의 상황은 혼수 상태가 있거나, CT를 통해서 머리에 출혈이 있지 않는 한(그에 관한 검사들을 초반에 하게 되죠) "초 응급" 상황은 아닙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이 환자의 vital sign(활력 징후라고 하는데, 생명과 직결되는 혈압, 호흡 등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이 안정적이고, 외상의 정도가 뇌를 손상시킬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을 하면 의사의 "응급 우선 순위"에서 이 사람은 더이상 큰 우위에 있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이 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검사를 합니다. 다른 환자들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워낙 바쁘기 때문에 대충 묻는 것 같지만, "응급"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한 여러가지를 묻습니다. 혹시 외부 충격으로 머리를 강하게 부딪히지는 않았는지, 상처에 혹시 다른 이물질이 묻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거기에 따른 검사를 하거나 소독을 하게 됩니다.


이 경우, 혜린이를 처음 본 응급실 의사는, 사실상의 초기 조치가 끝난 것입니다. 이 때 만약 다른 응급 환자가 없다면, 혜린이의 상처는 바로 봉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응급 우선 순위에 있는 환자가 있거나 새로운 환자가 갑자기 온다면, 혜린이의 상황은 그 환자의 상황에 비교해서 우선 순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즉 의사의 입장에서는 생명과 직결되는 "우선 순위"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환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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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9_060 by Kevin Goebel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하지만, 혜린이 입장은 그게 아니죠. 아프기도 하고, 피도 나기 때문에, 자신은 무언가 빨리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기다리기만 합니다. 한 십분 정도 전에 의사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는 봤는데, 그 이후에는 그냥 다른 환자들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혜린이는 혹시나 이마의 상처에 흉터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간호사에게 흉터가 남지 않도록 부탁하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과 함께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곤 아무리 둘러 보아도, 자신처럼 피가 흐르는 환자는 없는 것 같고, 할아버지 할머니 기침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의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만 우선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냥 감기인 것 같은데, 왜 자신에게는 신경쓰지 않는지 의아하면서 슬슬 화가 나기도 합니다. (사실 감기처럼 보여도, 폐렴이거나, 심장 질환과 복합적으로 연계된 경우에는 "생명"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로 엠뷸런스를 타고 온 의식이 없는 "환자"가 들어옵니다. 저 사람은 딱 보기에도 자신보다 더 응급인 것 같고, 진짜 "환자"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자, 기다림은 짜증으로 변하고, 술기운에 고함을 쳐 보기도 합니다. 그제서야 성형외과 전공의가  와서 무언가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봉합을 완료하고, 퇴원을 하려고 의료비를 정산하니 무려 50만원이 나왔습니다. 기껏해봐야 5cm 정도를 봉합했을 뿐인데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학 병원에 대한 불신감이 더 커집니다. 


위 상황이 일반적인 대학 병원 응급실 풍경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아주 많이 발생하고, 제 주변에서 겪은 일을 각색한 것입니다. 혜린이 입장에서는 병원에 왔는데 아무 것도 안하는 것 같아 속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혜린이 말고 다른 환자들도 맡아야 하는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의료 우선 순위"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특히나 응급을 요하는 상황이 많은 대학 병원에서는 더 그러합니다. 


이 상황에서 혜린이가 대학 병원 응급실을 가지 않고, 밀려오는 환자가 조금 적은 2차 병원 응급실, 혹은 중소 개인 병원 응급실을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과적으로, 환자 상황에서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응급실에 가면 우선 순위에서 대학병원보다 훨씬 우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울러, 훨씬 더 친절한 대우를 받고, 의료비 역시 훨씬 더 저렴하게 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응급실의 현실.
우리나라 응급실의 현실. by yklee799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대학 병원 말고도, 야간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중소 병원만 하더라도, 응급실이 있다면, 대부분의 응급 처치가 가능하고, 필요한 검사 역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환자 수가 대학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처치가 가능한 상황이 많습니다. 


물론, 개인이 자신의 응급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의료 상황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안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본 글은 그런 "판단"을 강요하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무조건 본인을 응급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야간에 3차 의료 기관인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면, 환자 입장에서 우선 순위에 의해서 처치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큰 병원"이 좋은 것일 수는 있습니다만, 경미한 질환 같은 경우에는 바빠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큰 병원"보다는 바로 치료할 수 있는 "중소 병원"이 더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더불어, 비용도 적게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소 병원에서 처리하지 못할 질환이나 환자라면, 중소 병원에서 바로 대학 병원으로 전원을 보냅니다. 정확한 의학적 판단 아래, 환자의 응급 상황을 "우선 순위화"시키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이게 진정한 "의료 전달 체계"라 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는 의료 접근성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본 글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혹은 경험했던 많은 분들에게 작게 남아,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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