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다양한 동기로부터 연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가장 이상적인 사례다!), 졸업, 승진/취업, 또는 연구비 수주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그냥 해야 되나보다 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봤다. 이렇게 다양한 동기로 시작된 연구의 끝은 하나로 수렴한다. 논문 출판. 자기가 얻은 결과를 정리하여  자신의 언어를 통해 다른 연구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줌'으로써 끝나는 것이다연구를 '계획'하고, 이론 작업이나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이를 해석하여 '새로운 지식' 을 얻는 과학적인 활동은 일면 격식을 차린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문적 성과는 최종적으로 논문으로 정리된다. 따라서 '훌륭한' 과학자는 '효과적인 논문 작성' 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를 진행한다. 훌륭한 과학자는 결국 효과적인 글쟁이다.

(출처 - 링크)

논문을 통해서 전파되는 '새로운 지식 발견'의 영광은, 논문을 작성한 '저자'에게 돌아간다. 특히나 저자가 많은 '의생명과학' 논문들의 credit은 제1저자 (first author), 마지막 저자 (last author), 그리고 책임저자 (corresponding author) 가져가는 일이 많다. 보통은 마지막 저자가 책임저자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 저자가 그 연구의 전체 책임자이다. 제1저자는 보통 그 연구 자체를 일선에서 직접 수행한 박사과정 학생이나 박사후 연구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중간 저자는 제1저자와 마지막 저자가 아닌 저자들이다.

우리의 비극은 한 연구의 수확이 '논문의 특정 저자'에게 불균등하게 돌아가는 데에서 시작한다. 한 연구를 마치는 데 참여한 개개인 과학자의 공헌을 수치화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공동연구가 더 많아지고 있는 최근 연구에서는, 심지어 저자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기여도가 더 큰지 알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논문을 읽는 독자들은 수 많은 저자들 중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알 방법이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사람들에게는 앞뒤 다 자르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만 남아있기가 쉽다. "A 교수" 그룹에 있는 "B" 연구자가 "C"를 발견했대. 다시, "A"는 마지막 저자나 책임저 자일 가능성이 높고, "B"는 제1저자이다. 졸업/승진/취업/연구비수주 등 논문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과실을 얻기 위하여 현대의 과학자는 논문의 "중요한 저자"가 되어야만 한다. 연구를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논문의 제1저자나 교신저자가 되는 순간, 그 연구의 영광을 대부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학계의 일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문의 '저자됨 (authorship)'을 가지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First authorship이나 corresponding author를 놓고 공동 연구자들 끼리 또는 심지어 같은 실험실 안에서도 science와는 거리가 먼 눈치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주 드물지 않게 공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명예 저자'가 되는가 하면, 많은 공헌을 하였지만 불합리하게 저자 목록에서 빠질 수도 있다 (유령 저자). 자신이 기여한만큼 좋은 authorship을 갖지 못했다는, 교수님이 내 연구성과를 논문이 간절히 필요한 (졸업 등을 위하여) 누구에게 주어버렸다는 볼멘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좋은 authorship을 향한 경쟁은 현대를 살아가는 과학자들에게 불가피한 것이지만, 의외로 이를 명확히 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없다. 그리고 소위 'MD lab'에서 일어난다는 많은 분쟁(?)들도 기원을 찾아들어가면 'authorship' 인 경우가 많다.

필자는 아직 연구 책임자 급도 아닐 뿐더러 학위과정 초기부터 시작해도 아직 채 10년이 되지 않은 초짜 과학자일 뿐이지만 (그래서 authorship을 정할 위치는 아니지만...) authorship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은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authorship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 최종 authorship 결정 권한은 연구 책임자에게 있다.

모든 저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툼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결정은 연구 책임자가 내린다. 이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만약 연구 책임자가 공정하지 못한 사람일 경우, 열심히(!) 연구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이나 연구원은 본인이 아무리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도 현실적으로 그 결정에 반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그 연구실에 합류하기 전, 지금까지 쭉 그 실험실의 authorship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publication들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실험실 사람들과 인터뷰하면서 그 실험실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공정하지 못한 실험실이라고 판단되고 자신이 authorship에 민감할 경우 그 실험실에 합류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런 것도 알아보지 않고 덜컥(!) 실험실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어리석은 일이다.

2) First author는 논문 draft를 직접 작성해야 한다. 

"논문"의 "제1" 저자이다. 첫번째 저자가 논문을 직접 작성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이상하다. 개인적으로는 실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것 만큼 '논문'을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문을 직접 쓴 사람은 그 연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어떤 display item (figure/table)을 어떤 위치에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어떤 story를 만들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한데 녹여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이것은 실험을 직접 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고 고통스런 작업이다.

자신이 first author가 될 정도로 이 연구를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면, 논문을 쓰는데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Draft를 쓰지 않았다면 first author가 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난 크게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 연구 책임자의 스타일상 책임자가 직접 논문을 쓴다면, 적어도 main table 과 figure들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경우에도 논문의 draft를 직접 쓰는데 참여하도록 지속적으로 시도하여야 한다. 

3) 책임저자 그리고 마지막 저자.

사실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 저자는 그 연구그룹에서 가장 senior로서 연구를 주도하였거나, 가장 큰 연구비를 마련한 사람이 되는 것이 되는 것이 무리가 없다고 본다. 두 세 연구팀이 공동 연구를 하였다면, 공동 연구팀의 책임자들이 책임저자를 공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드문 경우로 그 연구가 책임senior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실질적으로 주도되었다면, 마지막 저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책임저자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4) 중간 저자

어려운 문제이지만 연구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한 사람이면 저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식'생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예를 들면 중요한 샘플을 제공하였다든가 의뢰를 받고 단순 실험을 한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이들이 도움이 없다면 연구를 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원할 경우 중간 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선까지 저자가 될 수 있느냐는 연구 책임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 사람의 과학적인 성과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혹시 논문 한 두 편 정도야 우연히 좋은 저자가 될 수도, 반대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그 사람이 출판한 논문들을 모아놓고 보면 그 사람이 '평균적으로' 어떤 과학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따라서 authorship이 공정하게 정해진다는 '신뢰'가 있고 호흡을 길게 가져갈 수 있으며, 그 사람의 가치를 논문에 적인 저자 리스트가 아니라 실제 능력으로 결정하는 환경에서는 논문 한두편의 authorship에 크게 민감해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졸업/승진/취업/연구비 수주에 논문 편수와 impact factor, 그리고 authorship이 매우 중요한 것이 우리 현실이라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답은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개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잘못된 환경들을 바꾸어 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공정치 못한 연구 환경에서 authorship을 얻기 위해 분산되는 그 시간과 노력만큼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science를 바로 앞에 두고!


전 의과대학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MD입니다. 이 분야를 선택하는 MD가 거의 없지만 (전체졸업생의 1%도 안됩니다.) 연구에 흥미를느껴 선택했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는 매력을 주는 연구가 너무나도 재미있습니다. 이 분야로 와서 제 친구들은 다들 전문의가 되었으니 벌써 여기온 지도 꽤나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가끔씩 보이는 MD PI 매도 때문입니다. 브릭에서 글을 읽다가 한 분이 댓글을 적은 것을 보고 이 글을 씁니다. 그 댓글에 단 내용과 비슷하지만, 다시 한번 글을 적어봅니다


(브릭에도 이 글을 올려 두었습니다.)


실제로 BRIC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저는 참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제가 한 번쯤을 했을 고민과 해봤지만 고민되는 상황에 대해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선배들의 답변을 보면서 정말 "솔로몬의 지혜다" 라고 느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답변을 보면서 그 사람이 MD인지 PhD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답변을 한 그 사람의 "답변"만을 보지, 그 사람이 어떤 "직함" 을 가진지를 보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은 PI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야에 몸담은 이후로 다양한 논문을 읽어보았지만, 일부 논문을 제외하고는 그 논문에서 그 사람이 MD인지 PhD인지를 밝히지는않습니다. 심지어는 PhD를 받지 않은 사람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물론 운이 좋았다고 있겠지만 현재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주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백그라운드나 위는 그 사람이 가진 과거를 표현할 뿐이지, 그 사람을 속한 집단을 100% 반영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도 연구분야가 임상과 기초를 동시에 반영하는 중개 연구라는 특성상, 다양한 형태의 PhD 선생님과 MD 선생님들을 보게 됩니다. 세계적으로도 나가봐도 마찬가지이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만으로 집단을 평가할 수도 없고 평가해서도 안된다"


제 주변을 보면 정말 열심히 연구를 하시는 의과대학 교수님들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대부분 학생을 자식처럼 대하고, 교육이라는 수단이 학생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책임을 다하시려는 분도 꽤나 많습니다. 대부분은 의과대학 특성상 MD이지만 PhD 교수님도 계십니다. 물론 분들은 절대 MD PhD라는 학위로 구분지어질 수 없습니다. 왜나하면 각기 교수님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압니다. 예전에는 일부 몰지각한 임상에 계시는 혹은 연구나 실험을 모르시지만, 연구비를  MD 중 일부가, 척박한 대우와 인격적인 고통을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에게 강요한 일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저도 그런 사람을 알고는 있습니다. 근데 제 기준에서 보면 "그 사람은 그 사람" 일 뿐입니다. 제 기준에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PhD PI도 있고, 정말 천사같고 인격적으로 본받을 만한 MD도 있습니다. 그들도 다 그냥 명의 사람일 뿐입니다. "절대 이들이 집단을 대변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이 제 기준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실일 뿐입니다


현재 의과대학이나 병원에서 중개연구나 임상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를 수행하시는 교수님들을 보면, 인격적으로 연구원을 대하고 여러 처우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경향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고, 그런 추세는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험을 잘 모르는 임상의사들은, 좋은 PhD를 연구 조언자로 생각하고, 연구원들을 자신이 잘 모르는 실험을 할 수 있는 협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 일이란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안 좋은 일이 발생할 여지는 있으나, 이 역시 자연대나 다른 공대 부분에서도 발생 가능한 확률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색안경을 끼고 자신에게 발생한 안 좋은 현상을 바라본다면,  마치 그 사람이 MD이기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여기게 되는 과학적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논리적 근거의 심각한 비약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제가 받은 의과대학 6년의 교육, 그리고 제 주변 친구들이 받은 5년의 수련기간동안, "연구원을 막대하고 아래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자연대나 공대에서도 이런 교육을 주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문제를 발생시킨  PI가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발생할 빈도는 당연히 인간 집단인 이상 어느 조직이든 비슷하게 발생할 가능성이높습니다.(이런 것은 통계처리하기도 어렵고 통계처리한다고 한들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 애매합니다. 사회학에서 이용되는 "인간집단은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가정을 넣었습니다 - 사족)


다만, 연구원의 다수는 MD이기보다는 PhD이거나, 석사를 마친 자연대,공대 학생일 가능성이 높고, 그 사람들이 병원이나 의대에서 일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MD 밑에서 일한 사람이 불만을 제기한 N수가 높을 는 있지만, 그 비율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글을 본 사람이 "MD라면 그래" 라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면, 내 결론이 맞았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대학원생이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연구원이 부당한 처우를 받아서 글을 올리면,  "PI MD인가요?" 하는 댓글이 있거나,  "MD 밑에서 일하면 원래 그래유~" 하는 댓글을 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아니요 "PI PhD에요" 라고하면, "PhD 밑에서 일하면 원래 그래요~" 라기보다는 "이상한 교수를 만나면 고생입니다" 하는 댓글이 다수가 됩니다.  


안 좋은 사건을 저지를 PI MD라면, MD라서 당연한 것이고, PhD라면 그 사람이 예외적인 특수한 상황이라고 보는 것은 과학적 토론의 장인 BRIC에서 어딘가 모르게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씁쓸함을 남깁니다. 그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MD 집단 자체가 매도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가 절대 MD가 착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쓰레기같은 PI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PI도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MD PhD냐는 사실은 그 집단이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PI는 절대 집단을 대변할 수 있는 깜냥을 가진, 소위 말하는 대표성을 가진 예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자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을 보면 MD 밑에서 일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라는 글도 종종 보입니다. 제가 바라는 바는, 그냥 그 이상한 PhD를 만나면 이상한 교수라고, 운이 없는 케이스라고 바라보듯이, PI로서 MD를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냥 그 사람은 이상하고 쓰레기같은 교수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MD라는 사실이  MD 모두다가 그럴 것이다고 매도되는 것은 너무 슬픕니다.  


쓰다가보니 글이 길었습니다. 공감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당하신 분 입장에서는 공감하실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 좋은 일을 겪으신 분께는 이 자리를 빌어 기초연구를 하는 제가 대표성을 띨 수는 없겠지만, 유감스러운 일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 MD들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


2015.6.10 update.

처음부터 조금 그랬었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1시간 정도만 같이 일을 해보면 이 사람이 나랑 맞을지 안 맞을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은 그 사람이 유능하냐 아니냐에 큰 상관이 없다. 스타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세상에 나와 안 맞는 사람이 분명히 있긴 있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과 같이 일을 하면 확실히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이기적이다는 말은 개인적이다는 말과 약간 경계를 넘나들긴 하지만, 확!실!히! 이기적인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험실 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공동으로 해야하는 일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일은 누군가의 몫이고,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일은 실험실이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만드는 일이고, 꼭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안 할 수는 없게 된다. 

따라서, 누군가가 해야만 한다. 

아주 사이가 좋고, 이기적인 사람이 없어서 다같이 즐겁게 하면 좋겠지만, 사람일이 꼭 그렇지 않다. 항상 Free Ride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일이 많고, 무언가 자료를 모아서 결정을 해야하는 일이라면 더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결정권자가 가장 돋보이긴 하지만, 그 사람이 이기적이고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군가 다른 사람이 결정을 위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많은 노동을 해야만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해야한다는 말이다. 

수직적인 구조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결정권자라는 말은 경험이 많고, 많은 경험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자리이기에, 꼭 일을 많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갭이 비교적 크기에, 쉽게 그 결정권자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수평적인 구조에서도 꼭 결정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노가다를 해서 모인 자료를 통해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본인은 자료는 모으지 않고... 결정만 하겠다고 하면 외부적으로 보기에는 마치 일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일들이 지속되면, 결과적으로 그 사람과 일하기를 꺼려하게 된다. 특히나 똑같은 보상을 받게 된다면, 더 손해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일이란 것이 서로 다른 수준이 존재한다. 결정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합적으로 판단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제대로 잘 하려면, 분명히 어렵다. 

잘못된 결정은 삽질을 많이 하게 만들고, 제대로 결정하면 한 번에 될 것을 서너번 삽질하게 만든다. 밑에 일하는 사람이 일을 그르치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많은 사람을 이끄는 리더가 일을 그르치면,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끼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실험실에서는 최소한 박사 2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나 그 이후에 이런 결정에 많이 노출되면 좋은 것 같다. 그전에 결정을 많이 하려고 하면, 실제적 실험에서 깨달아야할 시행착오를 안 겪어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임상에서 실험을 시작했거나 큰 랩에서 많은 연구원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 (2-3년에 걸친 육체적 실험을 통한 시행착오) 을 겪어야만 자신과 같이 일하는 연구원의 실험 시행착오를 수정 - 코멘트해 줄 수 있다. 안 그러면 탁상 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이 부분 때문에, 많은 PhD 선생님들과 MD 선생님들의 의견차이라든지, 반목이 발생하는 것 같다. 

공동 연구를 할 때, 결정권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굉장한 신뢰다. 특히나 같은 랩에서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실험을 타인에게 맡기면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이 잘 처리되거나, 그 사람이 자기 일처럼 열심히 일해줬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은 마음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일을 전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공동 연구, 혹은 랩에서 같이 일을 할 때는, 조심히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그 기술을 익혀서 본인이 직접하는 것이 훨씬 더 결과가 빠르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 


반대로, 멘토나 PI의 입장에서도 공동연구 혹은 랩내 co-work을 도모할 때, 많은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사람은 자신에게 오는 이득을 많이 고려하고, 가용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길 원한다. 물론, 아무런 조건없이 도움을 주고, 그 안에서 배우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졸업을 위해 매진해야만 하는 학위 기간과 성과를 위해서 달려야하는 포닥 기간 동안, 기부와도 같은 도움을 PI가 그냥 바란다면 아주 힘들어 하는 경우가 생기고 심한 경우에는 일이 안되는 경우도 생긴다. 일에 따른 인센티브(경제적 혹은 업적면)는 물론, 이 프로젝트가 왜 필요한지 완벽하게 이해시켜서 프로젝트를 Promising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물론 항상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동 연구 역시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교수들이나 PI들은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고민해보고 추진하기 마련이지만, 포닥이나 학위 과정생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언가 하고 있는 일이 있고, 그 일들의 진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공동 연구가 끼어들면, Main 일이 늦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물론, 공동연구로 대박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반화하긴 어려운 일이다.

공동 연구를 추진할 때는 다른 과 일을 할 학생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프로젝트로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일에 따른 authorship과 기여도를 사전에 어느 정도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아니면, 최소한 귀뜸이라도 해주면 좋을 듯하다. 실컷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한다고 했는데, 자신이 main이 되지 못하는 경우에 학생이나 연구원이 느끼는 배신감은 생각보다 크다. 배우고 경험을 쌓았다고 하기에는 보낸 시간과 투여한 역량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씁쓸한 소주만 들이키게 된다. 


아주 주관적이긴 하지만, 내 스스로를 내가 평가한다면, 처음 공동 연구를 하거나, 만나서 일을 할 때는, 손해나 이득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다. 내가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일을 되게 하고 돌파구를 찾다 보면, 내가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조금 더 하는 것은 큰 대수가 아니고, 결과가 나오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하다보면 일이 될 때가 더 많다. 

공동 연구를 하는 그룹은 그 자체로 목적이 있고, 거기에 따른 결과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협조를 잘 하는 편이긴 하다. 물론, 사전에 내가 하기 힘든 일은, No를 하는 편이긴 하다. (우리 블로그에도 글이 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할 일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무조건 책임지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일하는 과정은 항상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가끔씩은 free ride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추가로, 일을 안 하는 그룹원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그 결과 전체적인 일정이 딜레이되는 경우도 많다. 이 때, 그쪽에서 하는 실험 과정을 정확히 모르거나, 관련 지식이 전혀 없으면,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예전에 그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하면, 10분만 투자하면 되는 일인데, 한달을 끌어서 내가 직접 그 랩에 찾아 간 적이 있었다. 그 쪽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고, 제대로 몰랐었다. 당연히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야하는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한 감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정작 가서 나타나니, 내가 보는 앞에서 10분만에 일이 끝난 경우도 있었다. 그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가 처음 이메일을 주고 일을 할 때 10분만에 일을 처리해 주었다면, 정말 멋진 공동 연구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 그 사람과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주변 사람이 그 랩을 물어볼 때,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다. 

공동연구를 하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말이 공동 연구이지, 실제로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두 극단에 있는 사람이 정말 열심히 해야지만 제대로된 시너지가 난다. 그렇지 않다면 일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시간 낭비에 재료 낭비 등 시도하지 않은만 못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공동 연구를 하면서 일처리를 미루고, 성깔부리고 투정하고... 질질 끌다가 일 마무리하고...해주기로 해 놓고서는 차일피일 미루고... 연락하면 그때서야 마지못해 일처리를 하거나, 안하무인격으로 일을 못하겠다 하는 사람. 정말 화가 난다.

반대로, 자신의 성격이 아주 나빠도,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 당장 성과가 생기기 때문에, 자기 잘난 맛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좁고, 성격도 좋으면서 일처리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은 언제든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등장하면, 일처리를 아주 최고 수준으로 해결하지 않는한, 성격나쁜 사람과 일하기 보다는, 일처리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마무리가 좋은 사람과 일을 하고자 한다. (세상을 살다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긴 하더라만...왜나하면 그런 좋은 사람은 항상 밀려드는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 성과가 많을수는 있어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사람이 자신을 꺼리고 있는 현실을 발견할 수 있게된다. 밑에 있는 학생들이나 포닥들까지 이 랩에서 논문만 내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Free rider. 

무임 승차는 처음에는 아주 달콤하다. 

차비가 굳었고, 그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탕을 살 수 있다. 


아주 달콤하고, 이득을 본 것 같다. 나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버스 운전사도 모르고 다른 승객들도 모른다. 오로지 나만 몰래 이득을 얻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뿐이다. 


지속되는 무임 승차는 주변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다. 


다만, 자신만이 여전히 몰래 이득을 얻었고,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생각할 뿐... 돌이켜 보자. 내가 밑에 사람들과 일하면서 무임 승차하지는 않았는지. 주변 사람들과 일하면서 무임 승차하지 않았는지... 공동 연구를 하면서 일을 딜레이하지는 않았는지... 인생 전체가 무임 승차는 아닌지... 

이런 글을 쓰는 나도 가끔은 무임 승차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본다. 무임 승차를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고맙게도 많이 존재하더라. 그래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의지하게 되고,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에서 있어서 만큼은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과 공동연구를 하고 싶다. 나 역시도 그런 마인드를 갖고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네요. 이번 수상자를 예측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초기 연구가 1971년도에 시작되었으니 더 그렇기도 하겠지요. 참고로, 노벨상 수상 시점과 연구 시점에서 가장 큰 간극이 있는 상이 바로 생리의학상이죠. 초기 발견부터 그 의미가 다시금 재해석되는데 많은 시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물리나 화학은 바로 이론을 실용화시키는 것이 생물보다는 훨씬 더 쉽게 가능하죠.


올해 수상자는 John O´Keefe May-Britt Moser and Edvard I. Moser 입니다. 참고로 후자 두분은 부부죠.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비율이 1/2 : 1/4,1/4 입니다. 보통은 1/3 인 경우가 많은데, 연구의 중요성과 시기로 인해서 이런 비율이 등장한 것 같아 보입니다. 



positioning system in the brain 에 기여한 바로 수상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저희 팀블로그 필진 중 한 분이 설명드릴 것 같습니다. ^^


간략하게 설명드리면, 뇌에서 어떻게 정보가 기억되고, 그 정보의 기억 장소가 특정한 곳에 지정되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기억과 관련하여 브레인이 작동되는 원리를 밝힌 셈인데,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요기를 클릭하시면, 언론을 대상으로 한 정보가 있습니다. 물론, 영어입니다. ^^


조금 더 자세하게 읽어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노벨상 위원회에서 작성한 설명 글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The Brain's Navigational Place and Grid Cell System.


이건 조금 더 세분화되어 있어서, 관련 분야에 연구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영어겠죠. ^^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우리 나라 과학계는 이 수상에 목을 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노벨상과는 큰 관련이 없는 중개 연구를 하는 입장을 떠나서라도, 노벨상에 너무 목 맬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과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즐겁게 하다보니깐 노벨상과 같은 큰 상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절대 노벨상을 폄훼하는 것은 아닙니다. ^^


노벨상을 아직 받지 못했지만, 아니면 받지 못했던 연구들 중에서도 아주 멋진 연구들이 많습니다. 일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엄밀히 따지면,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죠. 그렇다고 해서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못 받은 것은 아니지만요. 광전 효과로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죠. 하지만, 과학적 사실은 상대성 이론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이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중요성이 덜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핵심입니다. 그리고 전 아인슈타인이 노벨상만을 받기 위해서 물리 연구를 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학문을 즐기다 보니깐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물론, 노벨상을 받게 되면, 그 연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관련 분야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에게도 영광이고, 국가적으로도 영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본질은 노벨상과 같은 외적 업적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무 노벨상 노벨상 그러는 세태는 조금 지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때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소소한" 연구가 개인에게는 더 없이 큰 행복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평생을 연구만 하는 사람 혹은 앞으로 연구만 할 사람이다. 의사이긴 하지만, 임상 진료를 업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 보험의 실제 폐해에 대해서는 몸소 겪어본 적이 없다. 특히나 보험 심사를 통해서 진료 청구 후, 청구 금액이 삭감되거나, 환수된 경험은 더군다나 없다. 가끔씩 환자를 보기도 하고, 연구 기간 동안 환자를 보기도 했지만, 개원을 했거나, 개원가에서 일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의사로서 현장에서 뛰고 있는 내 가족들과 내 주변 동기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있다. 현재 나는 한국에 있지 않고, 한동안 한국에 들어갈 예정은 없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연구하는 입장으로 다양한 코웍과 임상 현장을 느끼면서, 여기는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대표 편집인인 "오지의 마법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조금은 한국 의료계에 시사적인 글을 쓰고자 한다. 내 의견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내 의견이 무조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칫하면 넘길 수 있는 혹은 현재까지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조금은 "꼬집어가면서 의식하는 일"이 의료계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남기고자 한다.

가족이 연계되어 있고, 나 자신이 의사이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성 혹은 중립성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임상 진료를 하지 않는 기초 연구자로서 혹은 제 3자로서의 시각이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동료 의사들의 입장보다는 "조금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형태가 올바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니, 생산적인 비판이나, 댓글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오늘은 시작하는 글로 노환규 전임 회장의 "의사, 환자 정부 그리고 민간 보험 회사"에 대한 슬라이드와 "과학자의 중립성 그리고 깨어있는 생각"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의료 시스템이라는 곳에서 희생을 하고 있다. 의사도 그러하고, 환자도 그러하다. 일견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내재된 문제는 안 보인다 뿐이지, 항상 존재한다. 마치 통증을 겪기 전에 전이되고 퍼지는 암처럼. 다만, 섣불리 건드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와버렸고, 갑자기 고치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있고, 더군다나 많은 돈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애써 안 보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다. 

항상 윤리란 것은 상대적이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을 것 같은 윤리에서 "옳고 그르다는 것이 상대적이다" 라는 말은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여기 미국에서는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많이 하면서, 모든 것이 상대적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고 윤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대부분의 가치들은 비슷하고, 한국에서 괜찮은 놈들은 미국에서도 괜찮고, 미국에서도 괜찮은 놈들은 한국에서도 괜찮은 놈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사, 환자, 정책 입안자(정치인) 그리고 보험 회사)이 걸려있는 의료 시스템에서의 "어떤 것이 더 올바른가"에 대한 윤리는 훨씬 더 복잡하다. 모두들 한꺼번에 만족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 전임(!) 의사협회장이신 노환규 선생님의 슬라이드가 있다.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단지 하나의 슬라이드일 뿐이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명확하게 문제를 꼬집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밥그릇보다 더 큰 밥그릇을 가진 사람들은 무대 뒤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만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의사도 보지만, 궁극적으로 환자도 보게 된다.

대한민국 의사들 왜 투쟁하는가 from Hwan-Kyu Roh 화살표를 클릭하시면서 넘기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확대해서 보시길 권장합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라도 꼭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이 곳이 의과학자 블로그인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보면 시사적인 혹은 의료 시스템을 꼬집는 글이 블로그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의과학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언젠가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알아야할 정보라 언급했다. 아울러, 연구를 하는 혹은 하고자 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환자가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과학은 항상 객관적인 근거로 승부하고,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이용하는 사람은 중립적이지 않을 가능성을 언제든 내포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것이 과학 정책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라는 이유로, 또는 중립적이고 싶다는 이유로, 그 정책을 만드는 것에 의견내는 것을 외면한다면, 내가 중립적으로 만든 결과로 타인이 미래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너무 정치 편향적인 과학자도 옳지 않지만, 너무 무관심한 과학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항상 깨어있는 생각. 거창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항상 깨어있을 필요도 없다. 가끔씩 나를 스쳐가는 사안에, 조금의 생각을 보태는 것. 단, 그 생각에는 고민이 있고, 근거가 있고, 대안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할 것은 변한다. 하지만, 내 사소한 생각 하나가, 미래 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촛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014.5.25 나비 검객.

미국에 와서 일기처럼 매일 글을 쓰고 있긴 하다. 글 쓰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논리를 생각하고, 그림을 생각하고, 잘 안 되는 한글(?)을 쥐어짜 내는 것. 모든 환경이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on-off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아~~~ 쉽지 않다. ^^ 

 

오늘은 일기같이 생각의 흐름을 그냥 쓸 생각이다. 주제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어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대다수의 한국인처럼, 나 역시도 내 분야가 아닌 영어에는 그리 밝지 못하다. 예를 들면, 채소 같은 것. 상추와 배추는 미국인 입장에서는 초등학생 수준[각주:1]만 되어도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인데, 내 기억으로 배추는 배운 적이 있어도, 상추는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이런 예들은 많다. 나 혼자 가서 장을 볼 때는 내가 굳이 상추가 "lettuce"인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상추가 무엇인지 모양도 알고, 맛도 알고 있고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추를 설명하거나, 상추 심부름을 외국인에게 시키려고 하면, 상추가 lettuce인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다양한 야채들. 나는 무슨 맛인지도 알고, 가격도 알고, 어떤 요리에 넣어야 하는지도 아는데, 용어를 몰라서 사오라고 시킬수가 없다.)


생각보다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참고로, 공인 영어 점수가 그 사람의 영어 실력을 완벽히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반영은 한다고 본다는 측면에서 나의 토플 점수와 토익 점수는 아주 높다. 자랑 같지만, 거의 만점에 근접하기 때문에,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 하고, 제대로 알아듣는다. 그리고 부당하게 느끼는 점이 있으면 따지는 것까지 충분히 한다. (얼마 전에도 항공사와 관련하여 일이 있어서 강력히 클레임을 걸었다.) 아울러, 그 분야가 학습이거나 내 분야를 다루는 것인 경우에는 거의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토플의 목표가 바로 영어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외국인과의 대화 중에 상추와 같은 단어가 있으면, 가끔씩 바보가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상추 말고도 그런 예는 많다. 식물 이름(예를 들면 밤나무, 상수리나무, 전나무, 고목 등등), 동물 이름(개미핥기, 도롱뇽, 뱀 말고 방울뱀, 청설모, 두더지 등등), 음식 이름(펜실베이니아 더치, 프렌치토스트) 채소 이름 (대파, 쪽파, 부추 등등[각주:2])등은 원어민 입장에서는 아주 기초적인 초등 수준의 단어[각주:3]이지만, 한국에서 나는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이런 단어가 대화 사이에 끼이면, 나는 크게 공감할 수가 없고 알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필요할 때마다 학습해서 배울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배울 수는 없다는 점이 한계라면 한계인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생활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일하는 것에도 큰 불편함은 없다. 굳이 상추를 몰라도 연구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진지하게 나랑 같이 일하는 애들(대학원생,석사생,학부생)을 모아 두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겠지만,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결론이 났었다. 

 

충분히 교육받은 사람들은 내가 외국인(한국인)이기 때문에 상추의 실체는 알지라도, 영어 이름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아울러,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은 내가 사고하는 방법이랑, 내가 연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것만 충분히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역시 그들은 처음 내가 일을 시작한 시점부터, 6개월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팀 리더인 "상추를 모르는" 나와 같이 일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팀이 현재 랩에 있는 팀들 중에서 가장 promising 한 결과를 내고 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  

 

물론 이제는 "상추"와 같은 용어까지 알아서, 영어로 농담 따먹기 하는 수준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고,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는 듯하다. 영어는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중요한 것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로서 Identity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실체는 영어보다 과학, 연구에서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이는 절대 영어만 잘 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참고하세요~ 채소와 그에 맞는 영어를 덧붙입니다. 모르는 채소도 많지만, 재미있기도 해요. 특히 가지는 영어로 계란식물 ^^)


따라서, 나는 영어를 native speaker 만큼 못해도, 비교적 당당한 편이다. 나는 영어로 교육받지 않았고, 한글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그 교육의 실체는 알고 있다"는 입장을 항상 견지하기 때문에, 최소한 영어로 주눅 들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것을 영어로 교육받고,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원어민 연구자들을 보면 부럽긴 하다. 

 

도구를 갈고 닦으면 더 멋지게 보일 수 있고, 영어가 좋으면, 내용물을 조금 더 좋게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포장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 도구에 신경을 아예 안 쓴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너무 도구에만 신경 쓰면 영어만 잘하는 미국 노숙자(?) 신세[각주:4]가 될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미국에 있는 노숙자들은 "그들의 의사"를 완벽하게 영어로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노숙자"가 되기보다는 영어를 잘 못해도 내용물로 꽉 찬 "학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이다. 내 평생의 대부분을 한국어로 의사소통 해왔기 때문에, 영어를 미국인보다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반해, 나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하지 않는가? 당당해 지자.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날카로운 글쓰기완벽한 발표 영어를 더 잘 하고 싶다. 더 노력하고 나를 갈고닦아야겠다. 결국 시간과 노력이 모든 것을, 아니 대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참고로, 한국 나이로 올해 5살 먹은 아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웬만한 채소 이름을 아는 걸로 보아, 대부분의 채소 이름은 초등 수준 이하의 단어임이 틀림없다. [본문으로]
  2. 만약 여기에 언급된 단어를 영어로 알고 있다면, 우연히 알게 되었거나, 경험으로 알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교육으로는 접하기 힘든 단어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조금 더 수준을 높이면, 수학 공식(미분,편미분,방정식, 원주, 마름모, 평행사변형 등등)과 물리 용어(유체역학, 전자기 유도, 전자기장, 상대성이론 등등)이 있다. 영어로 이 분야를 학습하지 않는 한, 일반적인 영어 교육에서는 이런 영어 단어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노숙자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직업성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을 지칭하는 맥락에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본문으로]

연구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고,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런 면에서 정부가 각계 연구자들을 위해서 사업 설명회를 진행하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연구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우리 역시 정부가 어떤 복안을 가지고 R&D를 진행하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사업설명회에 참가해 보세요. ^^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서 시기를 달리해서 진행한다는 것 역시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일단 의대라는 곳은 인체에 대해서 현재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업 공간인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의대는 예과에서 배우는 자연과학, 본과 1학년에서 배우는 기초 의학, 그리고 본과 2학년부터 졸업까지 배우는 임상 의학 다각도로 인체에 대해서 공부하고, 질병에 접근하는 시각을 그 어느 곳보다 잘 제시한다는 점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배경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by SendakSeus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본과 1학년은 전세계적으로 어디를 가나 비슷합니다. ^^ 

의대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교육 과정의 편차가 가장 적은 학과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인체의 질병에 대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연구라는 것은 하나를 깊게 매진하는 것인데, 의학은 그 학문 체계가 워낙 방대하여서, 의대 과정동안 하나를 자세하게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는 동안은 아주 자세하고 깊게 배우긴 하지만, 절대적인 할애량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모든 과정을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사들도 본격적인 연구는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관심있는 학생은 본1때부터 진행하기도 합니다.)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졸업과 동시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고, 임상 의학을 선택하면 빠르면 레지던트 3-4년차, 혹은 펠로우에 즈음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PhD가 대부분 학부 4학년때 혹은 석사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한다면 다소 늦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서 의대 학위는 환자를 대면하고 진료할 수 있다는 "의사" 라이센스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학문, 의학, 인체를 접근하는 틀과 다른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에 큰 장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작게는 주변 의대 동기, 선후배 등이 다 임상 의학을 하면서 진료 일선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고, 크게는 연구에서 임상까지 접근하는 Translational Medicine (중개 의학 - 링크)을 아우를 수 있습니다. 


pieces of you.
pieces of you. by NatShots Photography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해부학 책 중 하나인 Gray's anatomy)


물론 장점만 본다면 어느 곳이든 쉬워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기초 의학 자체가 의대 내에서 소수인 집단 (MDPhD.kr의 기초의학 글-링크) 입니다.  따라서 연구를 하는 시행착오 역시 오롯히 자신의 몫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임상을 하는 친구들과의 괴리감 역시 상대적으로 큽니다. 


아울러, 연구를 메인으로 하는 연구 중심 대학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포스텍) 등과 비교할 때, 교육에 대한 부담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더불어, 경제적인 측면 역시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절대적으로 본다면 일반 대학에 있는 대학원생과 비슷할 수 있지만, 자신과 의대 6년을 같이 공부한 동기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상황 (갈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짐)에 초연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울러, 정해진 임상 길과는 다르게, 모든 길을 자신이 개척해야하는 안개 같은 상황도 개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유로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사람은 한 학년에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의 기초 의학 전공자들이 중도 포기를 하고, 임상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전 그 선택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중도 포기와는 별개로, 기초 의학의 다양한 툴을 이용하면 임상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거든요. 아울러 위에 언급한 단점들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구요. 다만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은 있겠죠.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by phalinn 저작자 표시


따라서, 자신이 의대를 졸업하고 연구를 혹은 기초 의학을 선택한다면, 정으로 자신이 좋아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수가 되겠다.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단순한 생각입니다. 또 소위 말하는 뽀대(?)나 주변 시선을 신경쓴다면 더욱 이 길을 선택하면 안됩니다. 연구에서만큼은, 인생이라는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리턴이 결코 돈이나 지위와 같은 외부적인 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단순히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자신이 위와 같은 성향을 가졌다면, 임상을 선택했을 때 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예전 70-80년대에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교의 교수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의과 대학에서는 연구나 진료보다 학생 교육이 중심이었고(현재도 그러합니다만) 의사인 기초의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교육에 더 적합한 인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연구"가 의과 대학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무조건 기초 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의과대학 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그런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PhD가 의과대학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연구에서 강점이 크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의과대학에서 PhD를 교수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y estherase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따라서 연구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의대를 들어오지 않아도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시간이 많이 걸려도 인체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한 곳만 깊게 파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2000년도 이후에는 의대 자체를 들어오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에, 자신이 그 커트라인을 넘어서 의대를 들어올 수 있느냐도 위와 같은 선택의 변수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의사가 되어 기초 의학을 연구하고 싶어도 의대에 입학하지 못하면 MD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일종의 차선책인 셈이죠. 과연 재수 삼수를 해서 의대를 들어가야 하느냐? 현재로서는 그건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초 의학을 진로로 정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고민한 뒤에 진로를 선택하라는 것이고, 자신이 보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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