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상호라고 합니다. 현재 정신과 의사 봉직의이며 보통 페이스북에 글을 끄적대는 편인데, 블로그 주인장께서 이곳에도 글을 올려보라고 추천해 주셔서 처음으로 올려봅니다. 보통 제 글에는 깊은 내용은 없고요. 저질스러운 내용들도 많아서 큰 기대하지 마시고 심심풀이 땅콩 삼아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우리의 고등학교 입시 때를 생각해보면 자기 점수로 어느 대학 간판을 딸 수 있을지만 따져보았지, 전공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게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의대야 의사가 되는 게 확실했으니 두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기계과, 컴퓨터공학과, 토목과, 건축과, 기초과학 분야등 그 쪽으로 전공을 선택했을 때 어떤 진로가 앞에 기다리고 있는지 사실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 우리 스스로도 크게 알려고도 한 것 같지도 않다. 

대학에 들어가면 교수들이 고교 선생님들처럼 끌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대학들도 웃기는 게 입시생들에게 명확한 진로를 제시해 주는 목적의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수능 점수 좋은 아이들을 뽑아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잡고 행동을 했다. 

예컨대, 서울공대의 경우, 과 이름들을 원래보다 더욱 모호하게 만들어 버려서 선택에 더욱 혼란을 주는 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토목과면 토목과지, 지구환경시스템 공학과는 뭐임? 그거 알아보려면 전문가의 설명을 또 들어야한다. 입시 시절 거기에 원서를 넣으려다가 서울공대 출신 교수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그곳이 어떤 종류의 공부를 하는 곳인지 알게 되었다. 


그 과가 나쁘다라는 게 절대 아니라,

괜히 모호하게 포장을 했을 때, 

애매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는 거다. 


결국 진로의 가능성을 더 넓혀준다는 착각을 주는 것인데, 나는 그런거 전혀 동의를 못하겠다. 무엇이든 명확한 게 좋다. 잠시 옆으로 새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에 진심으로 충고를 해주고, 제대로 된 자료를 손에 쥐어줄 수 있는 멘토가 시스테믹하게 곳곳에 포진되어야 좋은 환경이다" 라는 것이다. 

우리 고등학교 때만해도 무조건 서카포연고 숫자 놀음이나 했지 진지한 인생 충고를 해주신 분은 극소수였다. 기억에는 딱 한분의 선생님, 우리 고딩 동기의 아버지. 평소 굉장히 무뚝뚝하신 분이지만 그 분은 제대로 말씀해주셨다. 더 넓고 길게 보도록. 아마 아버지의 마음으로 충고를 해주신 것 같다. 지금도 그분이 보통의 서연고카포 외치던 분들과 다른 주장을 하시던 게 생생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우리에겐 진로 선택에 고민할 시간도 너무 적었고, 제대로된 충고를 해주는 분도 거의 없었다. 아마 지금의 고딩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덫붙이는 이야기 이지만, 한때 한의대에 진학을 했던 성적 우수자들이 한의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았다면 과연 그 길로 진학을 했을까? 해답은 자명하다. 결국 정보의 부족이 가져온 참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MD 기초의과학자 연합 심포지움을 소개하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포스팅합니다.


전국적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기초의학교실에 남아 연구를 하시고 계시는 신진 MD 기초의과학자 (석박학위생, postDoc 및 최근 조교수 발령자)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전국에 30여명정도라고 추축하고 있지만, 다같이 모일 수 있는 학회나 모임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어느대학, 어느교실에 남아서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 계신지를 알아야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공동연구를 통해 훌륭한 연구 성과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따라서 MD 기초의과학자가 소수에 불구하지만, 서로를 파악하고 교류를 통해 의학 연구와 교육에 시너지를 만들어 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끼리, 과정 동안의 힘든 점에 대해서 또 성공한 선배들의 사례에 대해서 접해봄으로써 힘든 연구자의 수련 과정에 힘을 얻을 수도 있고, 든든한 파트너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 또 서로 지역과 연구분야는 다르지만,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더 나아가 한 단체로써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가 오리라 생각이 됩니다.

최근 우수인재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림에 따라, 정부에서도 기초의학 연구에서 MD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후배들 중에서도 기초/임상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저희 신진 MD 기초의과학자 연합 심포지움은 많은 분들에게 관심이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의학계의 여러 힘든 사정들로 진로에 고민이 많은 후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작년 (2013719)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대구)”에서 제 1회 신지 기초의과학자 연합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습니다. 관련 자료를 참고해 보세요

제1회 신진 기초 의과학자 연합 심포지움 소개 (2013.7.19)

전국에서 20명정도 MD 의과학자 분들이 모여 각자의 연구분야도 발표하고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동료를 알게되었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도 2회 신진 MD 기초의과학자 연합 심포지움을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동산의료원)에서 개최하려 합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의과학자분들을 모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Plenary lecture, 포스터 세션 등 좀 더 다양한 시간들을 마련하였고, 의사협회 연수평점 또한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시는 829일 금요일 오전 10부터 시작하며, 마치는 시간은 오후 5입니다.

장소는 대구 중심에 위치한 동산의료원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동산캠퍼스)3층 마펫홀입니다. 동대구역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타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에게도 큰 부담이 되시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세션 I에서는 Plenary lecture "System Biology"에 대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은퇴) 엄융의 교수님께 강연을 부탁드렸고, 세션 II에서는 최근 조교수로 발령받으셔서 의과대학 기초교실에서 연구 및 교육에 힘쓰고 계신 젊은 교수님들의 연구에 대한 강연을 마려하였습니다. 마지막 세션 III에서는 PostDoc.으로써 의과대학 기초교실에서 수련 중이신 젊은 MD 선생님들의 연구에 대한 강연을 마련하였습니다

심포지움 이후에는 의과학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익한 교류의 시간 또한 준비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연구 분야의 M.D. 기초 의과학자 분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또한, 이러한 심포지움을 통해 기초-임상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 - 참고 하실 분은 링크로)의 발판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고, 또 참석하여 주시어 각자의 경험과 최신 지견을 나눌 수 있는 유익한 교류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하여 많은 정보와 동료를 알게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아시는 분이 없어 혼자 오시기에 어색하시더라도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면, 반갑게 맞이하여 필요하신 부분을 채워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처 : 김신 (god98005@dsmc.or.kr), 박재형 (physiopark@naver.com)

 

나는 평생을 연구만 하는 사람 혹은 앞으로 연구만 할 사람이다. 의사이긴 하지만, 임상 진료를 업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 보험의 실제 폐해에 대해서는 몸소 겪어본 적이 없다. 특히나 보험 심사를 통해서 진료 청구 후, 청구 금액이 삭감되거나, 환수된 경험은 더군다나 없다. 가끔씩 환자를 보기도 하고, 연구 기간 동안 환자를 보기도 했지만, 개원을 했거나, 개원가에서 일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의사로서 현장에서 뛰고 있는 내 가족들과 내 주변 동기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있다. 현재 나는 한국에 있지 않고, 한동안 한국에 들어갈 예정은 없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연구하는 입장으로 다양한 코웍과 임상 현장을 느끼면서, 여기는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대표 편집인인 "오지의 마법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조금은 한국 의료계에 시사적인 글을 쓰고자 한다. 내 의견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내 의견이 무조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칫하면 넘길 수 있는 혹은 현재까지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조금은 "꼬집어가면서 의식하는 일"이 의료계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남기고자 한다.

가족이 연계되어 있고, 나 자신이 의사이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성 혹은 중립성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임상 진료를 하지 않는 기초 연구자로서 혹은 제 3자로서의 시각이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동료 의사들의 입장보다는 "조금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형태가 올바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니, 생산적인 비판이나, 댓글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오늘은 시작하는 글로 노환규 전임 회장의 "의사, 환자 정부 그리고 민간 보험 회사"에 대한 슬라이드와 "과학자의 중립성 그리고 깨어있는 생각"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의료 시스템이라는 곳에서 희생을 하고 있다. 의사도 그러하고, 환자도 그러하다. 일견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내재된 문제는 안 보인다 뿐이지, 항상 존재한다. 마치 통증을 겪기 전에 전이되고 퍼지는 암처럼. 다만, 섣불리 건드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와버렸고, 갑자기 고치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있고, 더군다나 많은 돈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애써 안 보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다. 

항상 윤리란 것은 상대적이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을 것 같은 윤리에서 "옳고 그르다는 것이 상대적이다" 라는 말은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여기 미국에서는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많이 하면서, 모든 것이 상대적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고 윤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대부분의 가치들은 비슷하고, 한국에서 괜찮은 놈들은 미국에서도 괜찮고, 미국에서도 괜찮은 놈들은 한국에서도 괜찮은 놈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사, 환자, 정책 입안자(정치인) 그리고 보험 회사)이 걸려있는 의료 시스템에서의 "어떤 것이 더 올바른가"에 대한 윤리는 훨씬 더 복잡하다. 모두들 한꺼번에 만족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 전임(!) 의사협회장이신 노환규 선생님의 슬라이드가 있다.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단지 하나의 슬라이드일 뿐이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명확하게 문제를 꼬집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밥그릇보다 더 큰 밥그릇을 가진 사람들은 무대 뒤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만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의사도 보지만, 궁극적으로 환자도 보게 된다.

대한민국 의사들 왜 투쟁하는가 from Hwan-Kyu Roh 화살표를 클릭하시면서 넘기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확대해서 보시길 권장합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라도 꼭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이 곳이 의과학자 블로그인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보면 시사적인 혹은 의료 시스템을 꼬집는 글이 블로그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의과학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언젠가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알아야할 정보라 언급했다. 아울러, 연구를 하는 혹은 하고자 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환자가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과학은 항상 객관적인 근거로 승부하고,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이용하는 사람은 중립적이지 않을 가능성을 언제든 내포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것이 과학 정책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라는 이유로, 또는 중립적이고 싶다는 이유로, 그 정책을 만드는 것에 의견내는 것을 외면한다면, 내가 중립적으로 만든 결과로 타인이 미래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너무 정치 편향적인 과학자도 옳지 않지만, 너무 무관심한 과학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항상 깨어있는 생각. 거창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항상 깨어있을 필요도 없다. 가끔씩 나를 스쳐가는 사안에, 조금의 생각을 보태는 것. 단, 그 생각에는 고민이 있고, 근거가 있고, 대안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할 것은 변한다. 하지만, 내 사소한 생각 하나가, 미래 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촛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014.5.25 나비 검객.

사람들은 언제든 아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시기가 있을 뿐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아픈 시기는 정해져 있다. 소아 때, 그리고 노년 때. 사실 소아 때는 아프다기 보다, 대부분은 부모가 걱정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아플 수도 있겠지만, 그리 심한 병은 아닌 경우가 많고, 질병이라기보다는 사고인 경우가 많다.  

 

아주 예전에 인턴 친구를 만나러 응급실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다친 아이에서부터, 말기 암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아프다는 이유 하나로 병원에 모여 있었다. 

 

다들 의사를 찾고, 간호사를 찾고, 누군가 자신을 봐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질병, 통증 그리고 주관적 고통


학생 때 그토록 많이, 공부했던 것이지만, 정작 내가 당해 보지 않았던 병들에 대해, 그 환자 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 치료법이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아프다는 것. 병을 가진다는 것. 걱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  

 

결코,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일들이다.  


꼭 아파야만 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피부 질환 등은, 아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라면, 어디가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 이 때의 "질환"은 개인에 따라 상당히 주관적인 셈이다.  

 

탈모를 예로 들면, 탈모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탈모 환자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탈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질환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반대로 거의 대머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이 탈모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면 객관적으로 보기에 탈모 환자라고 볼 수 없겠지만, 주관적으로 탈모 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질환 자체도 상대적인 셈이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다. 아프지 않더라도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질환이나 질병을 치료받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서 누군가는 보이는 곳에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다. 의사는 직접적으로 치료를 하지만, 의학 연구자는 치료의 근거를 찾아 낸다. 그리고 그 근거는 제도적으로 철처히 증명받는다. "그냥 치료해보니깐 낫더라, 그렇더 카더라" 가 아닌,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한 치료 효과"라는 근거를 만들어 내는 증명 말이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약들, 치료법들이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존한 치료법은 진정한 약으로 거듭나고, 사람들을 위해 이용된다.


오늘 하루도 나를 위해, 그리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추후에 치료법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본과 1학년.

나의 본과 1학년은 1월부터 시작되었다.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의대 선배나 의대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골학OT[각주:1], 동아리에서 해주는 골학OT을 들으면서 예과 2학년 겨울방학을 보냈다. 예과 때 여유롭게 지냈던 다른 방학들과는 달리, 겨울 방학은 본과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언가 이제는 더이상 놀 수 없겠다라는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방학을 보냈던 것 같다. 동기들도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방학 때, 탐구 생활을 살펴보면서 방학 숙제를 하는 것처럼, 골학책(메뉴얼)은 본과를 곧 맞이할 예과 2학년들에게는 "탐구 생활" 책과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은 잠자리나 소금쟁이 대신 다양한 뼈 이름과 신경 다발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뿐. 탐구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골학책을 살펴 보면, 진짜 탐구할 것이 많긴 하다.

처음에는 이름도 외우기 힘들었다. 수많은 라틴어들과 정체모를 단어들. 해부학 용어와 짬뽕되어 있으면서도 알듯말듯한 단어들. 영어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에게도 의학 용어새로운 언어일 뿐이었다. 분명 영어로 쓰여져 있지만,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들을 접하면서 의학 용어를 깨달아 갔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골학은 해부학을 필두로 하는 의대 본과과정을 배우기 이전에 잠시 맛보는 시식 음식 같은 느낌이 있다. 다만, 맛보고 나서 맛이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인 시식 음식과는 달리, 본과 공부는 꾸역꾸역 집어 넣어야만 했다. 먹고 토할지언정 쏟아지는 정보를 온 몸으로 받아내어야만 했다.



골학은 말그대로 골학이다. 뼈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뼈들이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뼈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주변에 어떤 구조물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다. 골학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긴 하지만, 단순히 뼈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의대에서 쓰는 용어들을 배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학 용어의 틀은 대부분 이 때 완성되었던 것 같다.

아울러, 뼈는 어디까지나 인체의 기둥이 될 뿐. 그 외적인 부분, 예컨대, 뼈 주변에 붙은 근육들, 혈관계, 신경계 그리고 뼈가 담고 있는 내장기관, 뇌 등에 대해서도 간략히 배운다. "간략히" 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전혀 간략하지 않다. 골학을 공부하고 나면, 뼈에 대해서 다양하게 아는 것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피와 살이 되는 의학 지식을 배운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의대 학점에서 골학이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적다. 굳이 학점으로 따지면 0.1학점 혹은 0.5학점 내외일 것이고, 해부학에서도 차지하는 위상도 낮다. 하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골학을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이 해부학을 "초열심히"하는 현상은 그리 관찰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두쪽나지도 않는다. 골학은 어디까지나 골학이다. 자신이 의학에 처음 발딛는 학문이라고 본다면, 그 것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참고로, 난 골학때 선배가 가지고 있었던 두개골(skull)과 함께 2주를 살았었다. 지금은 인조 뼈로 공부하는 것 같던데, 당시만 해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사람 뼈를 전통처럼 가지고 있는 동아리나 고교 동문이 있었다. Skull 파트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골학 공부를 한창할 당시의 내 책상위에는 항상 두개골이 있었다. 누구 것인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책상 위에 Skull과 함께 Femur(장단지뼈)가 아주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Skull을 이리 돌리고 저리돌리면서 공부했지만, 내 동생은 항상 무서워 했다. 그리고 내가 없었던 하루, 그 skull 때문에, 동생은 혼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이 오기 전까지 하루 종일 밖을 배회했다. 미안하다 동생아. 지금에서야 사과한다.

상상해보라. 방 안에는 스탠드만 켜져 있고, 그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두개골 뼈를 들고 유심히 살펴 보고 있다. 책상 위에는 아주 긴 사람의 장단지 뼈가 놓여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스탠드만 켜져있는데, 방문이 아주 살짝 열려있고 당신이 그 걸 목격한다면. 빨리 도망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상황은 스릴러 속에서 범인을 보여줄 때 쓰는 장면 아닌가? "어떤 의대생이 방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면 당신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두개골에는 참 많은 구조물들이 있다. 구멍도 많고,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많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런 독특한 구조물 하나 하나마다 이름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사실은  그 이름을 무조건 다 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더 신기한 사실은 결국은 동기들 대부분이 그 구조물들의 이름을 다 외워서 서로 그 구조물에 대해서 농담을 하면서 논다는 사실이다. 너는 patella bone가 있네 없네, Zygomatic bone이 크네 작네... 하면서. 설마... 하겠지만, 본과 1학년이라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뼈를 가지고 보면서 모든 구조물은 나름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울러 어떤 사소한 구조물도 그냥 생긴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것이 생겨야할 조건을 수반한다. 예컨대, 뼈에 어렴풋이 발견되는 그루브(골-골짜기)이 있다. 대부분의 뼈에 있는 그루브는 정맥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자발적으로 피를 보낼 수 없는 정맥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뼈에 이런 중요 그루브들이 있다. 골학때는 이 그루브 이름을 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 중에 하나는 그 그루브가 왜 중요한지, 이유 역시 외워야 된다. 그냥 뭐든 말하면 외워야 한다. 외우다 보면 이해가 가더라... 누구는 그루브에 맞추어 리듬감 있게 춤을 추겠지만, 우리는 이 그루브에 맞추어 특정 정맥을 외워야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구조물에 이유가 있고, 나름의 설명도 있다. 충분히 재미도 있다. 설명을 곁들여 공부하면 아주 즐겁다. 하지만, 당신이 공부해야할 양은 "이해를 하고, 설명도 듣고, 교과서도 읽으면서 하기"에는 너무나도 양이 많다. 15시간을 공부해야만 모든 것을 한번 읽고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10시간밖에 없고, 그 시간안에 무조건 외워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의대 공부의 한계점이라면 한계랄까. 나도 글 읽을 줄 알고, 이해할 줄 알고, 설명을 곁들이면서 공부할 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의대, 병원... 모든 일들이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하루 24시간 동안 30시간 분량의 일을 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의대에서는 자연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겨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족보만 보고 공부하기에도 빡빡하다. 물론 "이런 것이 효율적이냐" 라고 한다면, 분명히 이론이 난무하고, 난상 토론이 될 것이다.  

그렇게 골학과 해부학이 지나가면, 벌써 봄이 끝나버린다. 남들은 벚꽃놀이도 가고, 봄의 따뜻한 온기를 즐기지만, 해부학 책만 파고 있는 의대생들에게는 봄이 없는 듯하다. 아니다. 가끔씩 이 힘든 상황에서 봄을 즐기고자 하는 외계인 무리인 "캠퍼스 커플"[각주:2]이 탄생하기도 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이 피어나는데 하물며 해부학 수업쯤이야.

  1. '골학'은 해부학의 입문과정으로, 뼈(골,bone)의 구조물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목이다. 선배들로부터 이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받곤 한다. [본문으로]
  2. 엄밀히 말하면 캠퍼스 커플(CC:Campus couple)이라기보다는 클래스 커플(Class couple)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본문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민국은 슬픔과 불신으로 가득 차서 하루하루 사는 낙이 없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것 같다. 나름 임상이 아닌 기초로 오고 나니 의사라기 보다는 선생님으로 8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어린 학생들의 참사라 더욱 가슴이 아프다. 고속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름아래, 우리사회는 앞만 보고 달려왔지 너무나 많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갔기에 사고가 생길 때마다 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누구인들 처음에 일 할 때 잘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원칙과 철칙을 지키고 자기만의 이상을 이루어보리라 꿈꿔보지 않았겠던가?!


하지만 시간과 세월 속에 묻혀놓은 그 이상과 원칙들은 단 한번의 사고와 함께 한번에 무너지곤 한다.


    


해부학을 시작한지 8년째, 나름 10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지나갔고 그 중 반은 이제 의사가 되어 환자를 보며 사회인이 되었다. 매년 재미있고 즐거운 아이템을 찾기도 하고 학생들과 추억을 쌓고자 노력도 했었다. 날씨 좋아지면 하루쯤은 해부실습을 하다 다같이 꽃놀이로 소풍을 가기도 하고,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들에게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나만의 상을 주기고 하고, 조별로 술 한잔씩 나누며 잠시나마 사제지간이 아닌 인간미를 나누기도 해보았다


가끔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실수를 앞에서 하는건 당연하며 수업 중에 말이 헛나와서 식은땀을 흘려보기도 하며 지극히 친근한 선생님이였다. 그만큼 잘 지냈기에문제될 일이 크게 없었기에 이러한 수업과 생활패턴은 8년째 쳇바퀴가 돌듯이 돌아돌아 시간이 흘렀다. 작년에 해오던 수업을 또 하면 되고, 이러한 학생들에게는 또 이렇게 하면 되었으니 이런 태도로 지냈으며, 그렇게 나의 하루하루도 반복되었다. 농담 삼아 8년째 수업을 반복하듯이 연애도 8년째 반복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MD조교가 2명이나 밑에 들어왔다. 나름 실습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대화하고 공부도 같이 하였는데, 이 둘에게 그 기회를 준다는 명목아래 나는 실습 시간에 조금 뒤로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8년째 해왔듯이쯤이면 이렇게 해야하는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도, 혹은 반대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2달이 지나며 학생들과 작년과 같지 않은 친근함을 나누고 있었고, 이러한 거리감은 강의 중의 소통능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듯 하였다.


기초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해부학이라는 과목을 통해서 단지 인체의 구조에 대한 지식이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의사로서 인술을 펼치기 위한 마음을 가르치고자 했던 나의 초심은 나태함과 핑계거리에 조금은 뒷전이 되고 있지 않았나 싶다. 가끔 나름 인기과를 갔다고 태도가 달라지는 후배들을 보며 야단을 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조교가 들어오고 직급이 올라가며 초심을 잊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조직학이 끝나고 해부학만 하면 올해의 본과 1학년 학생들과는 함께 할 시간이 없다. 그나마 지금이나마 반성을 하고 다시 예전과 같이 다가가서 내가 진정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겠다.


조교 1년차 때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학생들을 괴롭혀줘야지 ^.^


우리 후배님들도 그 때 떨리고 힘들었던 해부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환자들을 봐주겠지? 그리고 가끔 학생시절을 되돌아보았을 때 행복한 미소 지어질 수 있도록 공부한다고 힘든 시절이였지만 좋은 추억과 행복한 기억도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며 학생들과 술한잔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워보자.


처음처럼은 소주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나는 초심의 마음을 느끼고자, "처음처럼"에 취해 학생이라는 가장 큰 스승 앞에 고개를 숙여야겠다.

 

성시경이 부릅니다 '처음'



 

안녕하세요. 의과학자 팀블로그 MDPhD.kr 편집장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의과대학생, 그리고 의사들에게 본과 1학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대 생활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이기도 하죠. 아울러, 본과 1학년때 대부분은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 미생물학, 병리학 등 현대 의학의 근거가 되는 "기초 의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됩니다.


한창 놀았던 예과 2년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삶. 빡빡한 시간 일정과 시험에 대한 압박은 본과 1학년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하지만,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견뎌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당시에 배웠던 지식들이 본과 2학년, 3학년, 4학년 지식의 밑거름이 되고, 저희와 같은 길을 걷는 의과학자들에게는 더욱 더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대부분의 필진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조교로, 포닥으로, 교수로 본과 1학년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 느꼈던 지식들과 현재 느끼는 지식이 주는 느낌이 다릅니다. 고통보다는 추억이 더 많이 남겨진 시점에서 바라보는 본과 1학년 생활. 영화에서 삽입되는 회고 장면처럼, 각자가 현재의 시점에서 본과 1학년 생활을 생각하면서, 글 연재를 구상하게 되었고, 5월부터 [우리들은 본과 1학년]이라는 시리즈물로 각각의 필진이 자신의 본과 1학년 경험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본과 1학년 해부학책들입니다. 대부분의 의대에서 본1을 맞이할 때 처음 접하는 학문이죠)


현재 본과 1학년인 사람들은, 이제 5월이 되어서 살짝 여유가 생길 타이밍일 것이고, 본과 2,3,4학년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은 "나도 그랬었지" 하면서 추억을 되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댓글로 남겨 주시면 훨씬 더 풍성한 글타래가 될 듯 합니다.


예과생들이나 의전원, 의대 입시 준비생들은, 본과 1학년 때, 이런 생활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시면서 자신의 계획을 잡으면 좋을 듯 합니다.현대 의학을 표방하고 있는 치대는 다른 치대 본과 학년 생활과는 달리, 본과 1학년 생활이 대동소이[각주:1]하기에, 치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자신의 경험이나 희망을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그 역시 기록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의대 생활과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의대생들이 이런 생활을 하는구나, 이런 과목을 배우는구나" 하면서 간접 경험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는 본과 생활을 다루지는 않기에,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의대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잘 모르는 용어나, 궁금한 점 역시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관련 글을 작성한 필진이나 다른 필진들이 답변을 달 것입니다.


실제로, 아주 고통스럽게 본과 1학년 생활을 끝낸 사람도 있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저공비행으로 본과 1학년을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패턴으로 본과 1학년을 보내기에, 여기에 적힌 글들이 모든 본과 1학년 생활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기에, 모든 생활에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경험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저희의 조그마한 경험들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저희로서는 글을 쓴 필진으로 아주 만족하면서 기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본과 1학년] 필진들의 글 연재를 시작합니다.


                      


(해부학 atlas의 최고봉인 CIBA를 그린 "Medicine's Michelangelo" 네터 선생님-

Frank H. Netter. 클릭하시면 네터 선생님의 소개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1.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제가 본과 1학년때 친한 치대생에게 자료를 빌려서 공부하기도 했고 제 자료를 공유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으로]

Hibrain.net에서 기초 의학을 선택하면 무조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쓴 글입니다. 


일전에 교수가 되려면 "무조건 의대에 가서 의대의 "비 인기과"인 기초 의학을 선택하면 100%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비록 아직 교수가 되지 못한 존재이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다보니, 긴 글이 되었네요. 길지만, 제 작은 글이 기초 의학을 선택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면서, 글을 올립니다.

답변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저에 대한 소개를 잠시하자면, 위와 같은 루트(의대를 졸업하고 기초 의학을 선택)를 탄 의대 출신 전공자입니다. 그리고 현재 포닥을 나와 있으며, 2년 뒤에 임용 시장에 도전할 사람입니다. 주관적으로 볼 여지는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주어진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연구를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의대 졸업, 의대 석사, 박사를 하고 나서, 외국에서 현재 포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2년 뒤에 내가 임용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임용 시장은 항상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위 분의 말씀은 "20년 전"에는 맞는 말이 맞습니다. 당시만 해도, 의대에서 "연구"보다 "교육"을 더 우선시했기 때문에, 의대를 졸업하면, 최소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의대 출신이 더 나은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의사 출신 기초 의학자는 임용 1순위였습니다. 물론, 그 때 뽑히신 분들이 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분위기가 그러하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의대는 교육 자체가 "인체를 다루는 특수성"이 있고 배우는 학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양 또한 방대하기 때문에, 기초 의학자로서 진로를 선택해서, 10년 이상 의대 교육을 받고,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의대생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면허 자체는 임상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의사 출신 기초 의학자도 진료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 연구에 올인을 하기 때문에, 의사 면허 자체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농 면허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죠. (진료를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15년 전부터, 의대도 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기초를 가지 않는 현상과 더불어서 의대 자체가 연구 실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기초 의학 교실은 대부분 "비 의사"(non-MD) 출신들이 포진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MD, Non-MD 이렇게 나누는 것도 의미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의사 출신이 기초 교실에 가지 않아서 뽑을 사람이 없다.
2. 상대적으로 비 의사 출신(예컨대 미국 박사)의 연구 실적이 우위에 있다.


라는 이유로, 비 의사 출신들이 기초 의학 교실에 많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결과, 기초 의학 교실은 자연대 다른 학과랑 비슷한 풍토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임용 시장도 실적과 실력에 근거해 뽑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의사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뽑았다가는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기본적인 예로, 공고로 나온 의대 기초 교실 임용 선발 심사표를 살펴보시면 대략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고, 과마다 특징이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일 학교 내의 자연계열 기준과 거의 흡사하거나 오히려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의사라고 해서, 어드벤티지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는 분위기입니다.

이유는, 임상은 과 특성상 의사를 뽑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상대적으로 연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의대 입장에서는 부족한 연구 능력을 기초 의학에서 보충해야하는 구조적인 이유가 생깁니다. 따라서 소위 말해, 의대를 졸업하고, "더 비 인기과(?)"인 기초 의학을 선택한 의사 출신은 연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후순위가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비슷하다면,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할 수 있으나,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연구하면서 좋은 보스 밑에서 강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과 교육을 하면서 연구를 수행하는 의대 졸업생과 비슷하다는 전제 조건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죠.

그리고, 기초 의학이 현재 의대 내에서 비인기과보다 훨씬 더 "비 인기과"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서 "비 인기과"를 선택한 제가 변명을 조금 하자면,의대 교육 자체가 4년 동안 배워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임상보다 연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건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어디도 다 비슷합니다. 의대의 존재 목적은 의사를 양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기초를 선택한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은, 잘 나가는 임상 의사(아무도 자기가 망한다고 생각하지 않죠. 따라서 기대는 항상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의대 4년 동안, 기초 의학의 매력을 느끼기란 상대적으로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아울러, 4년 동안 봐온 "의사" 이미지는 임상에 가 있는데, 연구를 하는 것은 의사 같아 보이지도 않고. 동료들 99%가 임상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정말 굳은 심지가 아닌 이상 기초를 선택하기란 힘듭니다. 그리고, 기초를 선택해서 중간에 하다가 임상으로 가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따라서 기초 의학을 "비 인기과"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솔직히 속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주변을 살펴 보면,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경우는, "교수" 그 자체가 되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하는 사람보다, 연구가 주는 매력, 인체의 신비를 찾을 수 있는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선택이라는 측면을 보자면, 저 역시도 학교 내에서 극소수 선택자입니다. 저 때는, 동기생 150명 중 2명이 기초 의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위-아래로 5년을 통합해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 숫자로만 본다면, "비인기과"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주변에서 보는 "기초를 선택하면 무조건 교수가 될 수 있다"라는 의견에는 강한 반감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20년 이 전에는 사실이었을 수도 있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항상 그래왔듯이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정자도 물리치면서 실력으로 담판 승부할 수 있는 것이 임용 시장 아니겠습니까? 생각보다 많은 "기초 의학 전공" 의사들이 낙마를 합니다. 다만, 사람들 눈에는 된 사람만 보이겠죠. 연예계에서 서울대 출신 김태희도 있지만, 김태희가 되지 못한 서울대생들이 안 보이는 것처럼요.

그리고, 현재, 표현하신대로, 산골짜기 지방 의대도 설대 공대보다 입결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1998년IMF 시절 이후부터, 그 현상이 훨씬 심해졌고, 최근 10년간은 수능 수석이 의대를 가지 않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각 고등학교들도 서울대 합격생보다는 의대 합격생으로 학교의 질을 따질 정도로 의대 입학 성적이 높은 기형적인 구조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수 인재들이 의대에 들어온다는 것이겠죠. (물론, 수능 성적과 연구 능력, 인생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가 주목적인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자연대와 비교해, 교육에 초점을 두었던 의대에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10년전부터는 평가와 임용의 공정성으로 연구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성과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기초 의학을 선택한 사람들 역시, 높아진 임용 기준 역시 채우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고 싶은 바는, 의대 출신이라서 당연히 기초 의학 교실에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추후에 의대를 졸업한 학생(= 의사)이라고 해서 임용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하지만, 동일 선상이라면, 의대를 졸업한 학생이 상대적으로 더 집요하게 연구를 할 포텐셜을 가졌을 가능성이 클 수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 포텐셜을 연구로 연결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겠지만요.(여기 누군가가 말씀하신 것처럼, 서울대 순혈 주의가 순혈을 뽑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잘 하는 사람들이 서울대에 가서 여전히 잘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울대 출신이 뽑히는 것이라고..)

답답한 마음에 길게 글을 썼지만, 요약하자면,

1. 의대를 나왔다고 무조건 기초 의학 교수가 되는 건 아니다. 20년 전에나 해당하는 이야기.
2. 의대는 전통적으로 교육을 우선시 했지만, 현재는 연구도 중요시하고 있다.
3. 현재 기초 의학 임용 시장은 연구 실적을 동일 혹은 그 이상의 자연대 학부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다.
4. 의대를 졸업하고 임용이 되는 경우는 그 요구 수준을 만족했기 때문에 된 것이지, 의사라고 해서 무조건 뽑아주는 시대는 아니다.


P.S. 그리고 현재도 저를 포함한, 임용이 되지 못한 의사 출신 기초 의학자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올바르지 않는 정보로, 경우에 따라서는 임용시장에 도전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간질 혹은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글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울러, 글을 쓴 이상, 이 글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달리는 질문과 댓글에 제가 아는 한도에서 이 글타래를 통해, 제가 시간날 때마다,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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