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공부 끝에 만난 대학생활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대학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지 하며 버텨내었던, 내 고등학교 생활이 허망할 정도로. 그 덕에 예과 때 맘껏 놀라는 본과 선배들의 말에 충실히 어영부영 예과 생활을 보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예과 2년동안 지내는 캠퍼스와 본과 4년 동안 캠퍼스가 지리적으로 달랐고, 그런 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커서 예과 때까지는 전혀 의대생이라는 자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장면까지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본과 캠퍼스 기숙사에 입사하며 이사를 한 후에야 내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자각과 중압감이 동시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입 후 처음 만났던 의대다운 학문은 모든 의대생들이 그렇듯이 골학이었다. 돌이켜보면 단순암기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 단순암기조차도 차후에 만날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하찮을 정도로 양이 작은 과목이었지만, 본과 수업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쏟아내고 하는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느끼며 배우게 된 과목이 생리학이었다. 생리학 또는 physiology, 이름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인 물리, physics랑 닮아있었고 과목 내용 자체도 그러했다. 의대 본과 1학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을 내 기준에서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은 형태에 대한 암기, 생화학은 핵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에 대한 암기(적어도 나에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라면 생리학은 세포, 기관,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는 과목이었다. 내가 생리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리학에서 배웠던 심장생리, 신장생리, 호흡생리 등등은 병리학, 더 나아가 임상과목 순환기학, 신장학 등등을 배울때 기반지식으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기생리 분야를 가장 즐겁게 공부했었는데, 전기화학평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막전압 방정식, 그러니까 Nernst 방정식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사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고 넘어가고 싶은데, "오지의 마법사"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짧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왼쪽항을 먼저 순서대로 살펴보면 몇가 이온인지 나타내는 z값, 1가 양이온 Na+라면 1, 2가 양이온 Ca2+라면 2, Cl-라면 -1 등으로 매겨진다. 전압 E은 세포막를 기준으로 양 쪽에 걸리게 되는 상대적인 전위차를 말하는데 이 세포막은 일종의 축전기같은 역할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전류가 직접적으로 흐르지 못하는 축전기나 인지질 이중막으로 이온이 잘 통과 못하는 세포막은 성격상 비슷하다. 패러데이상수 F는 단위가 C/mol로서 1몰의 전자가 가진 전하량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왼쪽항은 막 사이에 걸리는 전기적 에너지(전압x전하량)다. 

오른쪽항은 기체상수 R은 단위가 J/mol*k 이다. 1몰의 분자의 화학적 자유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온도 T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고, 세포막 안팎의 이온농도 C로 이루어진 항을 보면, 결국 농도차에 의해 생기는 세포막를 통과하려는 에너지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온의 전기에너지인 왼쪽항화학에너지인 오른쪽항평형에 이르는 지점을 찾는 방정식이다.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는 동시에 농도 구배에 영향받는 분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기화학적 에너지가 평형상태에 이른 상태의 평형전압, 또는 이온의 농도를 알 수 있다. 사실 아주 적은 농도의 이온 이동만으로 막전압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세포 안밖의 이온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평형전압을 알아내는데 쓰인다. 

이 방정식은 전기적 특성을 가진 이온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는 세포막을 만났을 때만 성립한다. 때문에 태초 생명 발생의 신비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초의 생명이 세포막으로 외부 환경과 구별짓고, 세포막 내부에 이온, 각종 단백질을 모아 생긴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시바다에서 최초로 생명체가 생성되려할때, 주변환경과 구별되는 경계를 세포막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포막 안에서는 유전체, 단백질 등을 구성했겠지. 그런데 이 물질들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음전하를 띠고 있다. 그래서 상보적인 양이온을 대량으로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하는데, 이게 K+ 이온이다. 그리고 세포막 바깥에는 원시바다에 풍부한 Na+ 이온과 Cl- 이온이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 상태의 세포는 K+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높고, Na+ 이온과 Cl-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낮다. 그 결과 안정상태의 세포의 막전압은 K+ 이온의 평형전압에 가깝게 된다. Nernst 방정식의 등장이다. Nernst 방정식에 세포 내의 K+ 농도 140mM, 세포 바깥 농도 5mM 을 넣으면 평형전압이 대충 -80mV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안정을 이룬 덕분에 세포는 삼투압으로 인해 세포막이 터지거나 하지 않고 외부환경과 분리된 내부환경을 이룰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불투과성인 Na+이온의 평형전압은 약 +40mV이상인데 (K+ 이온과 분포 양상이 반대이므로), 외부에 풍부한 Na+이온에 대해 투과성이 생기게 하면, 다른 말로 Na channel이 열리면 Na+ 이온이 세포 안쪽으로 유입되면서 세포의 막전압이 순간적으로 +40mV로 치솟게 된다. 이것은 전기생리나 신경생리에서 중요한 개념인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기전이다. 

여튼! Nernst 방정식은 생명 발생의 모습부터 활동전압이라는 개념까지 두루두루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자들이 행했던 노력들, 자연의 네가지 기본힘인 전기력, 중력, 강력, 약력을 통일하려 했던 그 노력들,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연상케 했다. 생명탄생의 신비 중 일부를 훔쳐본 마냥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님 말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마음 역시 수학,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생리학 수업 덕분이었다. 비록 공부를 더 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마음이 그렇게 쉽게 답을 내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뱀발. 요즘 신경과학의 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마음/뇌 문제는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서평을 쓰고 싶지만..읽는 속도가 영 느려서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달정도 읽어서 이제 180쪽 정도...OTL 아직 남은게 700여쪽...으하하하!


전기생리학이 단어를 들으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처음 들어보신 분들은 전기생리이렇게 따로 따로 단어를 떼어 생각하실테고


배워본 적이 있으신 분들은 호치킨헉슬리오징어축삭나트륨칼륨등등에서 심전도까지 생각 나실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려는 것은 바로 전기생리학으로 연구하는 실험실은 어떻게 굴러가나하는 실질적인 내용입니다전기생리학은 어떤 학문이다라고 하는 건 너무 지겹기도 하고어렵기도 하니깐요. ^^


그렇다 하더라도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전기생리학은 살아있는 세포조직기관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활동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왜 살아있는 생물에서 전기적 활동이 생기나하실 수 있는데요우리 인체는 70%가 물이고그 물에녹아있는 이온(+,-를 띤)이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전류가 흐릅니다친숙한 예로는 뇌파가 있구요앞에서 얘기한 심전도 역시 이런 활동의 결과입니다.



      

  Hodgkin                 Huxley   


그럼 그 전기적 활동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알아볼까요조직이나 기관 수준에서 생겨나는 전류는 간단히 전극을 설치함으로써 해결됩니다그래서 병원에서 뇌파와 심전도를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죠하지만 단일세포의 전기활동을 기록하는 일은 만만치가 않습니다그래서 옛날 사람들은정확히 호치킨과 헉슬리 할아버지는 큰 세포를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오징어 거대 축삭인거죠. 


                                             

오징어 축삭 직경이 1mm정도로 두꺼워 전극을 직접 넣기 용이했다고 합니다.


이 기법은 말 그대로 세포 안과 밖에 전극을 설치해 세포막을 통해 오가는 이온전류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일견 쉬워 보이지만, 1950년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견이었습니다이 공로로 1963년에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크지 않은 일반 세포는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전극 측정시 이용되는 유리관입니다.)



유리관을 아주 얇고 길게 뽑아서 세포막에 찔러 넣어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포막전압의 변화를 기록을 할 수 있지만이온통로의 전류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옴의 법칙 V=IR에서 전류I를 구하려면 전압V와 막저항R을 알아야 하는데, V를 측정한다고 하더라도막저항 R은 시간에 따라서도 변하고막전압V에 따라서도 변하기 때문이죠


쉽게 얘기하면 나트륨 통로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이게 전압에 따라서 막 많이 열렸다가적게 열렸다가 하는거에요그래서 막전압의존적 이온통로라는 말이 등장합니다공돌이스럽게 얘기하면 막전압V에 따라 변하는 가변저항이라는 거에요이 개념은 어렵지만 중요하니 다음 기회에 길게 써보도록 하죠.


사실 이 문제는 호치킨헉슬리도 해결했어요오징어 축삭에 다가 전극을 두 개를 꽂아서 하나는 전압 측정용또 하나는 피드백 전류를 흘려서 전압을 고정하는 것으로요이 기법이 막전압 고정법입니다이렇게 하면 V=IR에서 V와 R이 고정되어 I를 측정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작은 일반 세포로 돌아가보죠일반 세포에 찔러 넣은 유리관은 너무 얇고 길어 그 자체의 저항이 너무 컸습니다그래서 피드백 전류를 흘려 보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죠게다가 막에 찔러 넣었으니유리관과 세포막사이의 틈을 통해 질질 흐르는 leak 전류도 컸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patch-clamp 기법이에요이 기법은 네어(Neher)와 사크만(Sakmann) 아저씨가 개발했습니다. 


                                                                                                                                  Neher(왼쪽)와 Sakmann(오른쪽)



상대적으로 구멍이 크게(3~4Mohm) 유리관을 뽑은 후 세포막 근처에서 살짝 빨아 당겨 줍니다그럼 유리관 끝과 세포막이 찰싹 달라 붙으며 그 사이로는 새어나가는 전류가 거의 없게 되요이 상태를 On cell 이라고 해요그 때 뽁~! 하고 순간 더 빨아 당기면 안 쪽에 있는 세포막이 뚫리면서 Whole-cell 모드가 됩니다이렇게 되면 세포막 전체를 통과하는 전류를 기록할 수 있게 되죠유리관 구멍의 저항도 앞에 설명한 것보다 작기에 막전압 고정도 가능하구요.



(이 기법을 개발한 공로로 1991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죠.)


 (from http://www.nature.com/nprot/journal/v1/n4/fig_tab/nprot.2006.266_F4.html)



일반적인 patch-clamp set의 모습이에요막전류나 막전압을 기록할 수 있는 기록계컴퓨터 등이 보이고세포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 보이죠그리고 대물렌즈 양 옆으로는 기록용 전극 (여기 유리관을 꽂아요)과 그 전극을 미세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 manipulator(로봇팔)가 보입니다. 

그리고 대학원생이나 post-doc이 저 앞에 앉아 열심히 모니터를 보며 기록을 하고가끔 용액의 조성을 바꾸기도 하고원하는 약물을 타 넣기도 하고….그러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참고 사항 하나 댓글 답니다. 2012년 5월 30일로 헉슬리 선생님이 타계하셨다고 하네요. 

2012년 Nature 부고에도 실린 글이나 다른 기사(과학동아)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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