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의사가 되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

Posted at 2013.06.19 08:52 | Posted in MD : Doctor/Medical Doctor

아래의 글은 짧았던 제 인턴 경험을 토대로 작년에 썼던 일기입니다.

Ph.D의 길을 고른 제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임상을 보는 의사도 충분히 멋진 길이라는 걸 알려 드리기 위해서 씁니다.

The Stethoscope
The Stethoscope by Alex E. Proimos 저작자 표시비영리

신장내과로 턴을 시작한 첫날[각주:1]. 크기 7*7 cm에 깊이 3.5cm정도 되는 욕창 드레싱[각주:2]이 있었다. 하루에 세번(TID[각주:3])이나 드레싱을 해야하고, 크기도 컸기 때문에 많은 신경이 쓰였다. 거기다가, 환자분 의식은 드라우지(drowsy) 혹은 딜리리어스(delirious)[각주:4]했다. 한마디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보호자분(할머니)은 인턴에게 한없이 높아 보이는 교수님과 소리 지르며 싸울 정도로 날카로운 상황이었다. 그 것도 교수님께서 많은 레지던트를 대동하면서, 회진 도시는 중에 일어난 일이니, 이 보호자는 한 낱 인턴 따위가 상대해볼 사람이 아니였다. 

... 에휴 한숨만...... 어떻게 한달을 버티지.....

설상가상이라고, 남동생분도 한 분 입원해계시는데, 그 쪽은 더 가관이였다. 보자마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지나가는 강아지 부르듯, 턱짓으로 날 가리키더니, 명령조로 "드레싱 잘해"라고 하셨다. 다짜고짜 반말이다. 인턴을 하면서 납작 엎드린 자존심. 하지만, 인턴의 가슴 한켠에서 서서히 무언가가 올라온다. 인턴도 서비스에 종사하는 의료인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인격체다. 참기가 쉽지 않다. 허나, 어쩌랴....

애써 말을 무시하고[각주:5] 하던 일 하려고 했는데, 자꾸 뭐라고 반말로 말한다. 나도 모르게, "이 아저씬 뭐지?"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말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노발대발하며 "병원이고 나발이고, 교수 나와라, 과장 나와라"며 소리친다. 나중일을 생각하기 힘들기도 하고, 상황정리가 귀찮아 도주해버렸다. 

또 할머니랑도 몇일 후에 한판. 드레싱 하는데 뭐가 그리 불평이 많은지... 잔소리가 너무 많으셨다. 매일 매일 불평하는 사람 앞에 이길 사람 없다. 나도 모르게, "그럼 직접하시라고 난 모르겠다"고 소리 지르고 나와버렸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시작했다.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by phalinn 저작자 표시

그래도 인턴 시작하고 처음 맡아보는 병동일[각주:6]이고, 처음하는 드레싱이라 누가 뭐라고 하든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 항상 그 할머니에게 듣는 것은 불평, 불만 그리고 잔소리.. 

해본 사람만 알수있는데, 꼬리뼈쪽에 뼈가 밖에서 만져질 정도로 깊은 욕창 드레싱을 하는 건 정말 많은 정성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것도 베타딘(흔히 말하는 빨간약)을 거즈에 왕창 묻혀서, 욕창 부위를 가득채우고, 위를 덮는 것은 한 번만 해도 진이 다 빠질 정도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하루 세번... 아마 나도 처음이 아니였다면, 그렇게까지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하진 못 했을꺼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믿기기 못할 정도로 성실히 치료를 해줬다. 무언가 홀린 것처럼. 욕창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그렇게 욕창과 싸우길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그 깐깐하고 제멋대로이던 보호자가 "우리 선생님, 너무 열심히 해주신다"며 조금 마음을 열어 보였다. 그리곤 이어진 대화에서, 나에게 보호자로서 어려움을 토로하셨고, 별거 아닌 인턴 나부랭이인 나에게 지어지는 부담감과 함께 더 잘하고 싶다 작은 욕심이 생겼다.


여기저기 선배 의사나 아는 사람에게 욕창이 더 호전될 만한, 좋은 드레싱은 없는지, 물어도 보고, 내 인턴 생활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논문도 찾아보기도 했다.(비록 긴시간은 아니였지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지만 상처는 점점 누런 농만 차 가고 있었다. 

또다시 입에서 한숨만..에휴....

상처 부위가 낫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점점 의욕이 떨어져만 가고,무언가 한계 상황에 봉착한 느낌이었다. 더 열심히 치로를 하는데, 자꾸만 후퇴하고, 더 나은 대책은 찾기 힘든... 사면초가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아프다고 소리만 지르던 할아버지께서 드레싱이 끝나고 한 마디 작게하셨다. 너무 작은 소리라 듣지도 못했다. 그렇게 다 끝나고, 인사를 하고 가는데,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아들 할아버지가 선생님 수고 했어" 라고 말해주셨다.

Doctor greating patient
Doctor greating patient by hang_in_there 저작자 표시

영화라면 이쯤에서 왈칵 눈물이 나야겠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다만 하나 달라진게 있다면 정말로 진심으로 "할아버지가 낫기를" 바라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매일 매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담아서 환자가 낫기를 희망하며, 의사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썼던 글입니다. 페북에 올렸던 글을 옮기느라 약간의 어휘 수정과 어투를 손보긴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가능하면 손대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달 사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저 사이엔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가 글 솜씨가 부족한 관계로 간단히 썼습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경제적인 것과는 별개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충분히 멋지고 좋은 직업입니다.


이 글을 의대생 분들이 보실지 모르겠지만, 그 점 항상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하고 싶으신 분들은 Ph.D의 길로 오십시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1. (병원의 인턴들은 일의 숙련도와 원할한 일처리를 위해 4주 혹은 매달 과를 바꾸면서 일을 합니다. ^^) [본문으로]
  2. 욕창 드레싱 : "소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상처부위를 빨간약으로 닦아주는거죠 ㅎㅎ [본문으로]
  3. Tid (Three times a day, 즉 하루에 3번) [본문으로]
  4. 의식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용어로, 대략 "횡설수설, 헛소리 가끔하시고, 사람 잘 못알아보시는 상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5. 이거 중요! 인턴하다보면 정말 많은 경우를 겪는데,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일 하다 보면 대부분 이렇게 되요 [본문으로]
  6. 인턴은 주로 수술방/중환자실/병동/응급실로 배정이 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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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태호
  1. 비밀댓글입니다
    • 2013.11.13 02:50 신고 [Edit/Del]
      일장 일단이 있겠지만, 대체로 큰 장점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장점은, 임상의 전선에서 조금 더 경험을 할 수 있다. 임상적인 지식을 버무려서 기초에 응용할 수 있다 정도인데,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그런 내공을 쌓으려면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의대를 졸업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실질적으로 function을 하려면 적어도 전문의가 되거나 그에 상응하는 임상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턴을 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시 임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물론 기초를 하고난 이후에 다시 임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진로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을 때는 인턴을 가는 것이 정확한 진로 선택을 위한 발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단점은 역시나 시간이겠죠. 대체로 인턴이 하는 일이 의사로서 환자를 메인으로 보면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 교수님이나 레지던트의 일 중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일을 하기 보다는 다분히 수동적이고 의무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초 의학에 직접적으로 도움되는 부분은 생각보다 적다고 하겠습니다.

      오히려 연구를 위해서라면 관심있는 분야의 교수님과 면담을 하거나, 따로 시간을 내어서 허락을 받고 수술실에 들어간다든지, 간접적인 임상 경험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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