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your fault.

 

때로는 누군가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주인공인 윌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도, 어린 시절의 상처와 환경에 의해서 청소부로 일을 합니다.

 

우연히 재능을 알아본 MIT 수학과 램보 교수는 그와 함께 일을 하지만, 윌의 능력에 감탄하고, 좌절하고 벽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은 윌을 위로하고, 그가 겪은 고통을 들어내면서 그를 변화시킵니다.

 

이 장면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받은 장면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 그리고 앳된 모습의 멧 데이먼.

 

심금을 울리면서 여러번 반복되는 It's not your fault.

 

때로는 연구가 잘 안될 때, 그리고 세상이 나를 배신(?)한다고 느껴질때, 힐링이 되는 그런 한 마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Qht2yOX9Js

 

응가 묻은 휴지를 버리는 화장실 휴지통.

 

이제는 진짜 없애야 하는 문화가 아닐까요.

 

의학적인 관점에서 따지고 보면, 화장실에 "응가" 묻은 휴지는, 아주 좋은 배지죠.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국민이 미생물 실험을 몇 십년간 하고 있는 셈인데, 안타깝게도 결과가 좋지 않은 듯 하네요.

 

개인적으로 예전 학교 청소 담당자 아주머니와 대화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네, 제가 주변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라 합니다) 남자 화장실보다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는 부수 쓰레기가 은근히 많다고 하더라구요. 남자 화장실은 휴지(?)... 밖에.. 그나마 담배 일부..

 

근데 여자 화장실의 경우에는 생리대나, 화장품 물휴지 등등이 많이 나와서, 휴지통이 무겁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화장실이 막히는 근본적인 원인은 "휴지"가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설사(?)를 제외하고는 "응가"가 밀도 측면에서나 부피 측면에서나 어디로 보나 두루말이 휴지를 통으로 넣지 안는 이상 휴지보다 객관적으로 "승리"에요.

 

그러니, "응가"가 잘 내려간다면, 그보다 작은 부수물인 "휴지"도 잘 내려갑니다. 참고로, 많은 나라에서 응가를 누면서 영역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1인으로서, 이제껏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에는 변기 주변에 휴지통이 아예 없어요. 똥 묻은 휴지를 버리려면, 옷 다 다시 입고, 그 걸 들고, 밖에 나가서 버려야 해요. 상상해보세요.

 

그러니, 변기에 쏙 버리죠.

 

다만, 생리대, 물휴지, 주먹보다 큰 휴지 등은 분명히 막히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생각해보면, 좁은 변기 배관에 이런 물건들은 걸리기 딱 좋죠. 요새는 기술이 좋아서 휴지가 물에 들어가면 잘 풀어집니다.

 

남자 화장실은 없애도 큰 문제가 없지 싶은데, 여자 화장실은 일단, 캠페인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휴지는 변기에, 다른 쓰레기는 휴지통에.

 

뭐. 계속 미생물 배지 놀이를 하고 싶다면야, 옆에 따뜻한 인큐베이터를 가져다 놓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연구비 X 프로젝트 하나 하는 것도 방법.

이번에는 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더라고. 키에 관한 열등감 문제 같은 거. 뭐, SNS에 올리는 수준의 글이라서 그냥 반말체로 적겠습니다.)

  나는 키가 참 작다. 165센치니까 여고생 평균키 쯤 되는가? 여튼 반에서 4~5번째로 작았고, 30세경 논산에 징병의 훈련갔을 때는 40명중 두번째로 작았다. 그래서 2번을 달았어야하는데, 나보다 더 작아서 1번이 되어야했던 부산대 출신 안과 선생을 다른 부산대 출신들이 슬쩍 자기들 옆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내가 1번이 되어버렸다. 공식적으로는 2009년 징병의 훈련병들 중 최단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꽤 큰 쪽에 속해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튼 뒤쪽 2/3 정도에 앉았었다. 그러더니 중학교 때부터 잘 안 크더라. 의과대학에서 소아과학을 배울 때 자녀의 키를 예측하는 공식이 있었다. 그 공식대로 계산을 해보았더니 딱 지금의 내 키가 나오더라. 그런데 중학교 때는 그런 걸 알지도 못했었고, 만약에 알았더라도 무시하고 헛된 기대를 했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올라가니까 더 이상 아예 키가 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포기. 

그래도 키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억울하다는 경험을 당한 적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거의 없다. 키가 작다고 해서 큰 아이들이 괴롭히지도 않았고(키는 작아도 깡다구가 있다는 걸 알아서 건드리지 않았다. 두드려 맞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았다) 말이다. 단, 고 1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야, 이게 가족 사진이가? 너거 가족은 다 난쟁이고” 그 때는 그냥 웃고 지나갔었는데, 가족을 건드려서 그런가, 참 기분이 좋지 않았고 지금도 그 자식의 표정이 머리 속에 남아있다. 뭐, 그렇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다. 키 작다고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차피 교정 불가능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키라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한번 따져보자. 키가 크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인간은 왜 큰 키를 선호하는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키가 큰놈이 힘이 쌔다. 힘이 쌘 놈은 싸울 때 유리하다. 적에게 죽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키가 큰 놈이 살아남는다. 둘째, 키가 큰 게 보기 좋다. 이것은 성선택 영역으로 넘어가서 여자들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하게 만든다. 진화학적 시각으로 볼 때 크게 위의 이유 딱 두 가지라고 판단된다. 뭐, 농구를 잘 한다느니, 전구를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느니 하는 이유는 유전자 전달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므로 하찮은 것들이다.

그럼 현대 사회에서도 키 큰 놈이 유리한가? 중고등학교 때 키 큰 놈이 가오잡고, 싸움 잘 하고 이런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현대는 주먹으로 사람 때려죽여서 무언가를 쟁취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구석기 시대 지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럼 인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뇌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살인을 할 수 있는가. 그게 핵심이다.

 키가 콩알만 했던 로마 군인이 어떻게 해서 덩치 우람한 게르만 민족을 지배할 수 있었는가. 문명화에 그 답이 있다. 결국 뇌의 활용이라는 말이다. 키로 인한 자연 선택의 옵션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해도 무난할 듯 보인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유일한 요소는 성선택이다. 아무리 자연 선택의 측면에서 불리한 요소라 하더라도 암컷이 원한다면 그 요소는 발달을 하게 된다. 공작새의 깃털이 대표적인 예다. 인간에게는 키가 그런 요소 아니겠나 싶다. 키가 크면 보기 좋고, 섹스어필에 유리하다. 이건 어떻게 교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컷들은 다른 섹스어필 무기를 만들었다. 노래, 유머, 지능의 과시, 편지, 로맨틱한 언어들. 따져보면 결국 뇌를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래도 키가 큰 놈이 여전히 유리하다. 남자 역시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 키가 큰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성적 기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키가 작으니까, 그런 걸 자식에게 물려주기는 싫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압박이 상당한 것 같다.

솔직히 딱 까놓고, 현대 사회에서 키 작은 게 키 큰 거보다 유리하지. 음식을 먹어도 큰 놈이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같은 차를 타도 큰 놈이 타면 더 작게 느껴질 거고, 같은 집에 살아도 작은 놈이 더 유리하지. 우리가 만약 샤킬 오닐 같은 덩치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좁아터져서 어떻게 생활하겠나. 덩치 큰 놈은 더 큰 집, 더 큰 자동차를 사야하니까 작은 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하고 그렇지. 그래서, 나는 키가 작아서 참 좋다.(이게 바로 현실 부정을 통한 정신 승리? 아니면, 현실 직시? 어쨌든 저쨌든 정신 승리는 정신 승리.)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실 예과 시절에 누군가가 이 영화 보는 것을 극구 만류하여서, 당시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 보고 나면 우울해질 수 있는 영화라고.. 자살을 유도(?)하는 피아노 선율이 슬픈 영화라고 해서.. 그리고 유럽권 영화라고 해서.. 여하튼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일을 안 할 때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최근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가치관을 알게 되면서, 특히 "폴리 아모리"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 영화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정말 수작이고, 사람의 심리를 아주 절절히 다루는 괜찮은 영화였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시리즈물을 기획하면서 이 영화를 추천해준 오지의 마법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폴리 아모리라는 것과 글루미 선데이를 얼버무려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길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긴 호흡의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미리 밝혀두지만, 개인적으로 다양성과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그 가치관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30이 지나고 나서야 내 안에 체득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완벽히 체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정답이 없는 삶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이 글도 그런 맥락에서 쓰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어서 혹은 할 것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보니깐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삶도 있더라 라는 것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맹목적으로 정답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맥락에서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왜 의과학자 팀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리냐고 한다면.. 뭐.. 딱히 그 이유를 들 수는 없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고, 인류를 사랑한다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대의(?)를 들면서 글을 쓰고자 한다. 당연히 이 글은 폴리 아모리를 권장하는 글도 아니고, 권장하지 않는 글도 아니다. 이런 삶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존중해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개념에서 글을 쓰는 것이니,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폴리 아모리(poly amori)라는 개념은 우리네 상식에서는 아주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다. 사실 필자역시도, 이 개념을 이해는 하고 있지만(혹은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직접 실생활에서 나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글쎄요..." 이긴 하다. 그만큼, 개념이 아주 진보적이고, 우리의 상식선을 넘어 선다. 

Polyamori. 비독점적 다자 연애, 혹은 떼사랑이라고도 불리우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떼사랑이라는 용어는 의미가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그 용어를 만든 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특정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비독점적 다자 연애는 용어 자체가 길면서도 전문성을 가진 것 같아서 영어 표현을 그대로 적용한 “폴리아모리”를 선호한다.

폴리 아모리를 쉽게 설명하면, 한 사람이 다양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사랑을 꾸준히 추구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글을 있기에, 이 링크로 대신하고자 한다.(링크는 구글에서 검색어 넣은 것임. 궁금하시면 직접 클릭해서 읽어보세요 ^^) 혹자는 한사람이 두 명 이상을 만나는 것인데, 바람피우는 것 혹은 양다리, 문어다리 걸치는 것과 뭐가 다르냐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흔히들 말하는 "바람피는 것"과 다른 중요한 개념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점과 상대방에게 이런 관계를 사전에 정직하게 미리 알리고 동의를 구한다는 점이 아주 다르다. 그러니깐, "난 너를 사랑하고 있지만, 어제 만난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될 것 같아. 혹은 좋아하게 될 것 같아. 그러니깐 허락해죠”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통보라고 봐야하겠지만, 정확하게는 이런 언질을 주고자 하는 유대관계도 폴리 아모리 관계라면 사전에 상대방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깐, 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미리 알고 있기에, 사전에 서로에게 그런 관계를 오픈해 두자는 것이다. 

처음 이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주 진보적(?)이라서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사실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지만, 나름, 30세 이후에 조금더 개방적인 가치관과 상대성을 인정하고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알게된 개념이였다. 미국에서는 벌써 이런 폴리 아모리스트의 삶이 동성애와 같이 나름 보편성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한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이 폴리 아모리라는 개념 저변에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크게 두가지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는 내가 보는 바이기에 틀릴 수도 있다. 

첫번째는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해?” 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이성 혹은 동성을 만나게 되고, 그 중에 특정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결혼하기 전이라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거나 동거를 하게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결혼한 상황이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상황인데,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두근거리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작정 그 새로운 사랑을 접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사랑한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물론, 그런 두근거림, 사랑을 사전에 차단하면 충분히 될 일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에 마냥 접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닌 셈이다. 즉, 폴리 아모리스트들은, 평생동안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두는 셈이다. 

두번째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다른 사랑이 왔다고 해서, 그 전에 사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만 허락한다면 두 사람다 동시에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다. 사랑하면 굳이 헤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헤어지지 않고 두 사람다 동시에 사랑하면 더 좋은 거 아니냐는 맥락인 셈이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많은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해도 헤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여전히 사랑하니깐),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 뿐이고, 비 독점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뿐이니깐. 즉 폴리 아모리스트들은, 사랑을 한 번 하게 되면, 굳이 그 사람과 동의하에 헤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 헤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사랑하기 때문에. 

이 두가지 사랑에 대한 전제가 폴리 아모리를 유지시키는 가장 큰 축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고, 미리 사랑한 사람이랑 헤어질 수 없으니, 새로온 사랑도 함께 받아들이자는 것
이 폴리 아모리의 중요한 개념인 셈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폴리아모리스트가 가진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에게 이미 사랑한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닌가 하면서.. 일반 상식으로는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깐. 그리고 그렇게 동시에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도 사랑하고, 아빠도 사랑한다. 내 친구 철수도 친구로서 사랑하고, 장원이 형님도 형님으로서 사랑한다. 그렇게 따지면, 내 안에 생각보다 많은 사랑이나 우정이 존재하는 셈인데, "연인에 대한 사랑은 왜 둘이 될 수 없고 꼭 하나여야만 하는 것?"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연인에 관한 사랑은 "독점적일 수밖에 없고 단 하나 뿐이다"는 획일적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사회적으로 일부 일처제가 가진 안정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자)

실제로, 연인과의 사랑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그러면서 추억을 만들어 나가면서 더 공고해지고, 독점적으로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경험상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서로를 구속하게 되고, 그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게 된다. 그 사람의 시간을 소유하고 싶어서 연락을 자주하고, 함께 없을 때는 연락을 통해 안부를 묻고, 간섭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쌍방이 그걸 사랑으로 느낀다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한 쪽이 문제라고 느낄 수도 분명히 있다.

여기에 폴리 아모리스트의 개념이 또 하나 등장하게 된다. 사람은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 아니라, 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질 이유는 없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유까지도 내가 구속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정말 진보적이라서 한동안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있었다. 나는 그 전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던 것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소유”하고자 했던 셈이다. 물론 다행히도, 내가 “소유”하고자 했던 시간을 상대편은 “공유”라고 느꼈기에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타인을 만나지 말고, 사랑하지 말라고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다행히도 상대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간섭”이라고 느꼈기에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이는 침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소유하고자 했던 행위라고 느낄 수도 있다. 

추가로,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느냐는 점은 나도 충분히 동의를 했다. 단,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과연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걸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상대방은 그 사람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경우가 생기지 않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게 이야기 했지만, 핵심은 세상에는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손가락질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그러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에서는 그런 “다름”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탄력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많다.

결혼과 연인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회적 약속임일 뿐인데,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삶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너무나도 지탄받고 있고, 그것이 두려워서 소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큰 마음을 가지고 넓은 아량으로 그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정답”처럼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항상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냥 “정답”처럼 생각하고 있을 뿐...



나는 이전에는 메탈 매니아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쿵쾅대는 시끄러운 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이나 이소라, 김광석 등이 부르는 가슴이 짠해지는 멜로디의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너무 이런 음악만 골라서 듣다보니 궁상맞다고, 옆에서 듣는 사람도 나른해 진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슬픈 음악이 우울 기분에 악영향을 미치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노!”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슬픈 음악은 오히려 우울한 사람의 마음에 공감을 해주고,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는 연구들은 많다 (http://www.dailymail.co.uk/…/Feeling-listen-SAD-music-Melan…).


우리가 우울했을 때를 상기해보자. 우울할 때 슬픈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기분이 더 우울해진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 오히려 기분이 차분해지고,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는가. 슬픈 음악 때문에 사람이 더 슬퍼졌다면, 그런 슬픈 음악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혹자는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글루미 선데이 모르세요? 그 노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살했는지 몰라요?”


안 그래도 자살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후배의 오더를 받고 이제껏 이름만 들어왔던 그 유명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감상하게 되었다. 배경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주인공으로는 아름다운 헝가리안 걸, 유태인 식당 주인, 우울하게 생긴 피아니스트, 헝가리안 걸을 짝사랑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정통 아리안 독일남 이렇게 4명이 등장한다.


주인공 세 남성의 공통점은 이 아름다운 헝가리안 걸에게 홀딱 빠져있다는 점이다. 외모, 행동, 인성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이 여인을 두고 세 남자는 우정과 질투 사이의 경계선을 왔다갔다 넘나들며 경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작곡하게 되는데, 이 곡이 너무나 슬퍼서 그 음악을 듣다가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을 한다.


실제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자살 사건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여 주인공도 정말 아름답고).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이런 의문이 들지는 않았나? 


"정말로 사람들이 자살을 했던 것이 이 음악 때문이었을까?"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나? 슬픈 노래를 들었으니 슬퍼져서 자살을 했겠지라는 생각은 너무나 일차원적이고, 이치에도,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무언가 맞지 않다고 의심이 되지 않나? 그렇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자살 사건들은 음악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원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진 곳이고,(헝가리의 별명이 자살 공화국이다), 우연찮게 이 음악(당시 굉장한 히트를 쳤으니 축전기가 있는 집에서는 다들 이 앨범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을 듣다가 자살한 사람 몇몇이 있었고, 호사가들이 들러붙어서 사람을 죽이는 음악으로 ‘글루미 선데이’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마치 영국의 한 찌라시 신문이 투탕카멘의 저주 ‘구라’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자살은 여러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 계획적 자살, 충동적 자살,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무통제적 자살 등등 학자와 학풍에 따라 세분화가 된다. 어쨌든 이타적 자살(카미카제 등)을 제외한 모든 것이 우울증과 관련이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자살을 한 사람들을 부검 해보면 뇌간과 전두엽피질에서 세로토닌과 그 대사물인 5-HIAA가 줄어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자살 전에도 뇌척수액에서 5-HIAA가 줄어들어있음이 보고되었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계열의 약을 써서 세로토닌의 농도를 올리는 시도를 한다. 글루미 선데이가 자살을 일으키는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있는데, 이 SSRI도 마찬가지로 자살 누명을 덮어쓴 적이 있다. 자살한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SSRI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인데, 이게 어떤 종류의 오류인지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잘 아실 것이라고 믿는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가수 김광석이나 이소라의 음악들 등등 슬픈 음악은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려있다. 그런데 이런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의 자살 성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 중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실제로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이 있는지? 만약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그 음악과는 별개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는 바이다. 
글루미 선데이에게 씌여진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


슬픈 음악은 자살 촉매제가 아니라 치료제이다.



참으로 공감가면서도 실천하기 힘든 글인  같습니다앞으로 공존 지수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  글은 검정색(원글 소스가 어디인지를 찾기 어려워요아시는 분은 링크 주세요 ^^)으로 생각은 붉은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전(2008년)에 써두어둔 글인데, 우연히 다시 발견했는데, 현재에도 여전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게시합니다. 



공존지수

           
요즘 엔큐(NQ·Network Quotient·공존지수.네트워크지수)라는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공존지수란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을 재는 지수다공존지수가 높을수록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쉽고소통으로 얻은 것을 자원으로 삼아 더 성공하기 쉽다는 개념이다.물론 내가 속한 집단은 잘 되고 다른 집단은 소외시킨다는 ‘패거리’ 개념이 아니라 서로 잘 살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타적 개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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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나중에 큰 코다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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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공감 가는 글 귀 입니다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힘 있는 사람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만사람에 대한 무시는 결국 날카로운 칼로 돌아오는 법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제 의도가 아니게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는데그 경우 까지 없도록 하는 것이 진정 중요하겠지요.

2. 
평소에 잘해라.

    
평소에 쌓아둔 공덕은 위기 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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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입니다평소에 잘하는 것아주 힘든 일이지요평소에 성실한 생활 태도가 결국은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네 밥값은 네가 내고 남의 밥값도 네가 내라.

   
기본적으로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는 것이다.
   
남이 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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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일입니다근데결국은 돌아 오게 됩니다. GIVE and TAKE이 아니라 완전한 GIVE and GIVE!!! 의 삶을 살면결국 멋진 친구들을 얻게 됩니다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데쉽지 않더군요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듯 싶습니다.

4. 
고마우면 고맙다고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큰 소리로 말해라.

   
입은 말하라고 있는 것이다마음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사가 아니다.
   
남이 네 마음속까지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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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비교적 잘 하는 것 중에 하나 입니다. (^.^) 고맙다미안하다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인생에서 큰 후회를 만들지 않게되는 소중한 문장입니다.

5. 
남을 도와줄 때는 화끈하게 도와줘라.

   
처음에 도와주다가 나중에 흐지부지하거나 조건을 달지 마라.
   
괜히 품만 팔고 욕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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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제일 큰 공감을 얻은 글귀입니다화끈하게 도와줘라 !!! 글쓴 분의 용어 선택이 아주 멋있습니다화끈하게!!! 조건 없이 !!! 일단 도와준다면확실히못 도와 줄 것 같으면 딱 끊어서 안된다고 말할 것!!! 이에 관한 글도 블로그에서 오지의 마법사가 하나 작성했었죠. 관심있으신 분은 클릭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다. 할려면 제대로 하자 !!!)


6남의 험담을 하지 마라.

   
그럴 시간 있으면 팔굽혀 펴기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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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어느 집단에 소속되면어쩔 수 없이 듣거나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되도록이면 안하는 것이 좋겠지요험담을 하는 경우라면화제를 적절히 돌리고못 돌리게 된다면불특정 다수(콕 찝어서 이야기 하지말고)를 향한 이야기로 공감을 유도하세요~

7. 
회사 바깥 사람들도 많이 사귀어라.

   
자기 회사 사람들하고만 놀면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그리고 회사가 너를 버리면 너는 고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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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 같습니다네트워크가 바로 생명이지요네트워크 네트워크한 다리 건너면 모든 사람이 통할 수 있습니다.그건 한국이든 세계든 어디든 적용됩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의사 소통으로 내 테두리를 넓히자 !!!

8.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마라.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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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이야기 입니다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적당히 넘어 가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그렇다고뒤에 가서 그 사람이 틀렸다고 하면오히려 역효과입니다논쟁은 줄이되논리를 가지고감성적으로 접근하면그 사람이 내 편에 올 수 있습니다그리고 첨언하자면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습니다그러니 그 본성을 어느 정도 아시고 사람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9. 
회사 돈이라고 함부로 쓰지 마라.

   
사실은 모두가 다 보고 있다.
   
네가 잘 나갈 때는 그냥 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이유로 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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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공감 백배함부로 쓰는 "공돈"은 결국 돈문제가 붉어 질 때야 비로소 벼락처럼 떨어 집니다사람들은 돈에 대해 약간 신중하면서도타인과의 돈거래에 대해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공돈의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여러 가지 기준이 시시 때때로 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조금 더 설명하자면부러워 하면서도아까워 하면서도정직하게 썼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도 ... 등등. ~ "하면서도".. 라는 특성이 있습니다조심해야 하는 것바로 돈입니다

10. 
남의 기획을 비판하지 마라.

     
네가 쓴 기획서를 떠올려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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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그렇지만진짜 아닌 경우에는, 터놓고 이야기할 타이밍이 있을 때솔직히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좋은 매너로요그렇다고 입만 나불거리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남의 기획을 비판할 때는어느 정도의 아이디어와 조사무장된 지식으로 타인의 공감을 얻으면서준비한 사람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게 조심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1.자기가 당하게 되고, 2. 사람들이 떠나 가게 됩니다.
어떻게 되었든,좋든 싫든준비한 그 사람의 소중한 정성이 칼과 같이 기획서에 배여 있습니다.그 칼을 자기 편으로 만드느냐그 칼로 자신을 찌르느냐는말하는 태도에 달려 있겠지요.

11. 
가능한 한 옷을 잘 입어라.

     
외모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할인점 가서 열 벌 살 돈으로 좋은 옷 한 벌 사 입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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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일 못하는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으네요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으니깐요. 아직까지 운동하고시원한 것이 좋아서 옷을 잘 차려 입지 못합니다수술복이나가운을 입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 조금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 외모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맞는 말입니다실천해야 하겠습니다 .^-^

12. 
조의금은 많이 내라.

     
부모를 잃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이다.
     
사람이 슬프면 조그만 일에도 예민해진다. 2,3만 원 아끼지 마라.
     
나중에 다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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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 돌아 온다이 말을 들으니이상하게도 홍대 앞 락 콘서트 때관중들을 믿고 자신을 관중에게 던지는 락커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결국 그 사람을 믿고힘든 시기에 도움을 주면 결국 그 사람도 나를 믿게 됩니다."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나 생각했어?" 하면서요.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돈의 액수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더군요. 그 사람의 진심.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3. 
수입의 1퍼센트 이상은 기부해라.

     
마음이 넉넉해지고 얼굴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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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꼭 수입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기부에 대한 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만자신이 할 수 있는 기부가끔씩 책상 청소를 한다든지주변 사람을 위한 봉사그 것도 기부가 아닐까요소중한 내 노동력의 기부 ^_^

14. 
수위 아저씨청소부 아줌마에게 잘해라.

     
정보의 발신지이자 소문의 근원일 뿐더러네 부모의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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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결국, 1번 글과 동치이지 않을까요모든 사람에게 잘 하는 것소문의 근원이라서 잘 하는 것이 아니라이웃이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15. 
옛 친구들을 챙겨라.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느라 지금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을
     
소홀히 하지 마라정말 힘들 때 누구에게 가서 울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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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연락을 해도 친한 친구는 여전히 친한 친구입니다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니가 술 사라" 하면서도 술값이 아깝지 않은 그런 친구옛 친구입니다돈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신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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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발견해라.

     
다른 사람들 생각하느라 너를 잃어버리지 마라.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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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투자과연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은 10살 이후로 계속 진행되는 고민입니다옛 친구에게 나를 한번 물어 보세요어떤 사람인지그리고 어떻게 변해 가는지그리고 어떻게 변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요그럼 결국 인생이 내 모습에 나타나게 됩니다.

17.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나중에 네 인생의 가장 좋은 추억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음껏 즐겨라.

-->"
즐겨라" 라는 표현이 아마도 현재에 충실하면서 모든 일들을 즐기면서 해라 라는 뜻인 것 같네요모든 순간을 즐기는 것그것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에너지 아닐까요?

18. 
아내(남편), 현재 당신 옆에 있는 남친,여친 사랑해라.

     
너를 참고 견디니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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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당연한 말이니 설명이 필요 없겠습니다.


*   
이 열여덟가지를 꾸준히 실천한 당신당신은 가장 인기가 좋은 성공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 18
가지만 실천해도 정말 멋진 인생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잘 못해요. ^^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여행을 가고,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 역시, 오늘 하루 운동을 하고, 해야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났다.

생각해 보면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누군가는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나를 스쳐갔던 "사람"들일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일 수도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꿈 속에서조차도 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난다.

친구, 연인, 가족... 아는 사람 그리고 모르는 사람.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운 좋게 만난 모든 사람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를 만날 수밖에 없고, 그 때마다, 나는 더 이상 그 당시, 그 사람들이 기억하는 예전의 "나"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하루라는 차이가 있고, 그 사람이 기억하는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를 만났던 사람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기대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더 좋아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일이나 미래에 있을 나와의 만남이, 항상 그 사람이 나에 대해 느끼는 최고의 경험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대상이 사랑하는 가족이든, 나를 아끼는 친구이든, 미래에 있을 내가 가르칠 제자이든. 아니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든.

The best is yet to be.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미래의 만남들이 최고가 될 수 있게끔,


내가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인 "나 자신"을 조금 더 보살펴야 겠다.



사람들은 언제든 아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시기가 있을 뿐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아픈 시기는 정해져 있다. 소아 때, 그리고 노년 때. 사실 소아 때는 아프다기 보다, 대부분은 부모가 걱정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아플 수도 있겠지만, 그리 심한 병은 아닌 경우가 많고, 질병이라기보다는 사고인 경우가 많다.  

 

아주 예전에 인턴 친구를 만나러 응급실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다친 아이에서부터, 말기 암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아프다는 이유 하나로 병원에 모여 있었다. 

 

다들 의사를 찾고, 간호사를 찾고, 누군가 자신을 봐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질병, 통증 그리고 주관적 고통


학생 때 그토록 많이, 공부했던 것이지만, 정작 내가 당해 보지 않았던 병들에 대해, 그 환자 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 치료법이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아프다는 것. 병을 가진다는 것. 걱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  

 

결코,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일들이다.  


꼭 아파야만 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피부 질환 등은, 아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라면, 어디가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 이 때의 "질환"은 개인에 따라 상당히 주관적인 셈이다.  

 

탈모를 예로 들면, 탈모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탈모 환자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탈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질환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반대로 거의 대머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이 탈모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면 객관적으로 보기에 탈모 환자라고 볼 수 없겠지만, 주관적으로 탈모 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질환 자체도 상대적인 셈이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다. 아프지 않더라도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질환이나 질병을 치료받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서 누군가는 보이는 곳에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다. 의사는 직접적으로 치료를 하지만, 의학 연구자는 치료의 근거를 찾아 낸다. 그리고 그 근거는 제도적으로 철처히 증명받는다. "그냥 치료해보니깐 낫더라, 그렇더 카더라" 가 아닌,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한 치료 효과"라는 근거를 만들어 내는 증명 말이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약들, 치료법들이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존한 치료법은 진정한 약으로 거듭나고, 사람들을 위해 이용된다.


오늘 하루도 나를 위해, 그리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추후에 치료법을 만들어 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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