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생리 의학상 2012년에 드디어 교토대 신야 야마나카 교수가 탔군요.
언젠가 탈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타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영국의 존 거든 경(교수)과 동시 수상인데 미국의 톰슨이 같이 타게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네요. ^^
일단 존 거든 경에 대해서는 추후에 기회가 되면 글을 포스팅하도록 하고 오늘은 신야 야마나카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존 거든 경에 대한 글을 작성 완료 하였습니다. 보시고 싶으신 분은 클릭 ^^)
저는 아주 운좋게도 우연한 기회에 그의 강연을 들어 보았습니다. 2008년 제가 교토에 학회가 있어서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 때, 야마나카 교수가 강연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것도 제가 중점적으로 듣는 Hair research symposium에서요.
제가 참가한 학회는 International Investigative Dermatology 2008 (IID 2008)구요. 거기 있는 야마나카 섹션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있더군요.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게 되나? 하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2008.5.14) 야마나카 교수가 iPS에 대해서 Cell에 논문을 낸 것이 2006년 8월이니깐, 딱 2년이 지난 시점이였습니다.
일단 야마나카 교수의 Cell 논문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로 들어가셔서 보시면 됩니다.
pdf 파일은
여기를 타고 들어가 보세요. (2013.3.16 update)
사실 야마나카 교수는 올해 50세로 노벨상 생리의학상을 받기에는 사실 젊은 편(?)입니다.
노벨 생리 의학상은 상이 가진 본질적 특성상, 하나의 가설이 제시되고 그 제시된 가설이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지요.
역대 노벨과학상 중에서 물리관련 수상자들의 평균 나이가 제일 어리고, 그 다음이 화학상, 그리고 제일 연장자가 많이 있는 분야가 생리의학상입니다.
물리라고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법칙의 연계성과 실용적 연관성이 원리 발견과 동시에 응용 가능성이 보이는데 반해, 생리의학의 경우, 그 가능성이 하나의 개체에서 발견되고, 모든 생물 개체와 궁극적으로 인간까지 다 적용되어야만 비로소 가설이 인정받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실제로 이번에 상을 같이 받게 된 존 거든 경의 경우 처음 논문을 제시한 것이 1962년도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야마나카의 경우는 아주 빠르게 받은 것이지요. 6년 만에 받은 것이니, 사실상 제일 빠른 수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의 의미는 역분화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에 있습니다. 존 거든 경은 그 가능성을 파충류(개구리에서 처음 시연을 했었죠)에서 핵 치환을 통해 실험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즉 개체 수준의 세포가 역분화하여 초기 발생 단계로 갈 수 있음을 보여 주었죠. (간단히 말하면 그렇습니다만, 실제로는 실험적 과정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그 것을 조금 더 구체화 하고, 유전자 수준에서 역분화되는 과정을 포유류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야마나카 교수입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 대한 설명서- Yamanaka factor 를 동시에 제시했죠
야마나카 교수는 오사카 출신으로 고베 의대에서 의사 과정(MD)을 마칩니다. 1987년에 의대를 졸업하고 오사카 병원에서 정형외과 의사로서 수련을 받습니다.(일본은 우리와 제도가 조금 달라서 연수의라고 해서 전문의 과정을 대신하는 특수한 도제 수련 방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술을 진행하는 의사로서 수술시간이 너무 걸렸습니다. 꼼꼼함 혹은 신중함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수술을 업으로 해야하는 정형외과의사가 적성에 안 맞았던 것이였습니다. 학부시절에 럭비를 엄청 좋아했던 야마나카는 엄청난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 의대생의 대부분이 정형외과 의사로서을 삶을 동경합니다.
류머티스 환자를 보면서 기초 연구로 눈을 돌렸고 그 때부터 임상보다는 기초 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사실 심한 류머티스 환자를 보면, 정말 누구나가 다 도움을 주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정말 심한 환자의 경우 관절이 90도로 꺾여 있을 정도니깐 그 안타까움을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UCSF Gladstone 에서 연수를 시작합니다. 이 때 여러가지 연구 방법과 다양한 강연을 통해 시야가 커졌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 때 Innerarity, T.L. 교수와 주로 연구한 것이 adipolipoprotein에 대한 것이였습니다. 심혈관계 질환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한 것이지요. 1994년도부터 같이 연구를 진행했는데, 클로닝부터 시작해 Transgenic mouse까지 다양한 툴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 때 PNAS, JBC, Genes Dev 등 유수의 논문을 출판하게 되고, 그런 연구 과정은 1998년도까지 계속됩니다.
그 이후에 귀국을 해서 2000년도 부터 교신저자로서 논문을 쓰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의 논문이 Genomics와 연계가 있는 논문입니다. 유전체 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만, 여러 매체에서 접한 정보를 종합하면, 상당히 많이 좌절한 시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각 실험에 대한 테크니션과 분업화가 확실히 정착된 미국과는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맡아서 해야 하는 일본에서의 연구는 상당히 힘들었던 것이지요. 실제로 연구에만 집중하기 힘든 시스템에서 연구만 집중하는 시스템과 싸운다는 것은 상당히 힘듭니다. 남들이 총을 구입해서 총쏘는 연습만 하는데 반해, 자신이 직접 총을 만들어서 총쏘는 연습을 하는 상황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우리 나라 역시 아직 그런 부분이 많지요.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라-Nara"에 있는 연구소로 자리를 옮깁니다. 우리로 따지면, DGIST나 GIST 를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여기서 좋은 연구를 많이 진행하다가 교토대로 옮긴 것이 2004년입니다.
이 때부터 폭발적으로 좋은 논문이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다루는 논문을 살펴보면 그것이 더 드러나는데, 많은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하면서 iPS Factor 예상인자들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물론 야마나카 교수가 주도적으로 진행을 하긴 하지만, 이 때만 해도 iPS에 대한 연구는 개념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듯 합니다.
종양에 대한 연구를 같이 진행하다가 드디어 2006년에 Takahashi K, Yamanaka S 두 사람의 이름으로 iPS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이 전설이 되어버렸죠.
단순히 실험적인 부분만 잘 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적으로도 그 가능성을 빨리 발견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죠.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가과학자 수준의 10배 정도 되는 예산을 교토대에 폭격(?)해 주었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야마나카의 연구는 아주 중요한 연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도 아주 중요한 연구였었고, 그 가능성을 빨리 알아챈 주변 상황이 오늘날의 야마나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리의학의 경우, 그런 발견 자체가 아주 드물고, 발견을 했다고 해도 그 것이 전파되는 것에는 한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국가적인 지원도 아주 중요하거든요. 마케팅과 임상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국가적 능력이 연구 결과의 파급성을 많이 좌우합니다
다 분화된 세포를 다시 리셋한다는 개념 자체도 신선하지만, 그 개념을 이용해서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파시키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일본은 훨씬 앞서가고 있는 건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게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구요.
일본은 연구 스타일 자체가 유럽풍을 받아들여서 그런지 몰라도, 혼자 깃발을 세우면서 꾸준히 한 분야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야마나카의 경우는 그런 경향에서 살짝 빗겨가긴 하지만, 한 분야를 고수한 포텐(?)이 2006년에 터진 것이지요.
또한 일본의 경우, 학문 분야나 의학 분야를 보면 리더를 기준으로 아래로 뻗어나가는 도제식 교육이 잘 정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시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죠. 물론 무조건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리더와 비전을 중심으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Top-down 방식이든 Bottom-up 방식이든 아주 중요하니깐요. CiRA 를 포함한 일본 유수의 연구 그룹들이 Top-down 방법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참고로 야마나카 교수 밑으로 교수급만 9명에 학생, 연구원은 50명이 넘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iPS application을 비전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니,세계의, 어떤 그룹이든 경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방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일본의 방법이 강력하고 세계에 통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산들이 아주 많아 보이긴 하지만(특히 관리 교수급 인건비, 직업 안정성, 학생 관리 등) 자율적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야마나카 교수 수준의 아이디어와 비전이 있다는 가정하에....
Nobel prize IMG_3591 by OZinOH
사실 생리의학 분야에서 나온 노벨상의 경우에는 하나같이 기존의 체계를 엎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거나 발명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감히 이야기하건데, 현재의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한동안은 쉽게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단 획기적인 아이디어 라는 것이 쉽게 튀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튀어나온다 해도 그걸 완벽히 보여줘야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만으로 진행하기에는 리스크가 큽니다. 제가 생각하는 노벨상 가능성 있는 연구자는
1. 전문가급에 오른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외연을 확장하거나,
아예 다른 독특한 접근에 올인하는 것
- 일종의 기득권 혁신인 것이죠.
2. 아예 처음부터 노벨상을 바라보고,
아이템을 무수히 많이 조합해서,
그 중 하나를 정해 일생을 받치는 것
- 이건 리스크가 너무 크고,
아이템이란 것이 자신의 분야를 벗어나기 아주 힘듭니다.
3. 기초분야에 완전 매진했는데,
우연히 그 발견이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오는 것
- 이것 역시 연구자가 그 가능성에 대해 홍보하지 않는다면,
요즘에는 거의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 역설적으로 보기에는 3번이 탈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정도라고 보는데, 야마나카의 경우 3 혹은 1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2는 있을 순 있겠지만, 거의 존재하지 않고, 3의 경우는 대부분의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해당됩니다.
아주 우연하기도 하고 독특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의 경우가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이긴 하지요.
항상 그렇지만 노벨상은 정말 멋집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정말 중요하다 싶은 것만 탁탁 골라서 상을 주니깐, 그 권위가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톰슨이 빠진 이유도 원론적으로는 원조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야마나카가 2006년에 쥐로 iPS cell을 만든데 반해. 위스콘신의 제임스 톰슨은 2007년 11월에 사람 iPS를 개발했죠. 위키에 있는 http://ko.wikipedia.org/wiki/유도만능줄기세포 을 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벨상이 전부다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노벨상이 정말 가치있는 상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
동양인으로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이 단 두 사람인데, 그 두사람이 일본 사람이면서 교토대와 연관 있는 것을 아시나요? 도네가와 스스무와 이번에 탄 신야 야마나카. 단 두사람 뿐입니다. 동양인으로. 사실상 도네가와 스스무 역시 교토대 석사까지 나오고 미국 가서 거의 외국에서 활동했기에, 신야와는 케이스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교토대의 저력은 대단하지요.
공교롭게도 도네가와 스스무는 면역학으로 상을 받았기에, 면역학 강의 중에 종종 언급이 됩니다. 여하튼 노벨상이 상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 상이 가지는 의미는 여느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실험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는 것이지,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가치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언젠가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타나 채워지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FineQ_OJ
야마나카 교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은 2009년도에 nature에 나온 commentary를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