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다" - Edward O. Wilson, 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中에서-

"꽃 피는 식물(현화식물)과 조류와 포유류는 거의 대부분의 종이 발견되었지만, 미생물을 포함한 그 밖의 생물 집단에서는 대다수의 종이 발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세균보다 더 다양하며 수도 많으리라고 예상되는 것은 바이러스입니다." - 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中에서--

 마빈님의 글로 소개된 바와 같이 (http://mdphd.kr/236), 3년 전 인류에게 알려진 새로운 바이러스(MERS-CoV)가 한국에 상륙하여 국민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위의 인용에서와 같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인류에게 알려진 것은 일부에 불과하며 (그림1), 세균과 바이러스는 그보다도 덜 파악한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새로운" 바이러스의 발견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바이러스는 종 특이성(species tropism)이 있기 때문에, 그 "새로운" 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바이러스는 유전체(genome)와 몇몇 단백질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기에 혼자 힘으로는 복제를 할 수가 없는, 사실 생명체로 보기도 난감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생명체의 세포 안에 들어가서 세포의 살림을 뺏아 써야만 복제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아무 종의 아무 세포에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이러스의 표면에 발현된 특정 부착단백질(viral attachment protein)이 특정 세포에 발현된 특정 수용체(viral receptor)에 결합해야만 그 세포로 들어가서 빈대짓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림2). 

 위와 같은 사실 때문에 개의 감기 바이러스는 개 호흡기 세포에만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의 감기 바이러스는 사람의 호흡기 세포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감기에 걸린다고 해도 개는 그 감기에 전염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30년에 비해 한 세대가 매우 짧고 척추동물과는 달리 돌연변이를 수정하는 시스템도 가지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에서는 돌연변이가 매우 쉽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돌연변이를 통해서 박쥐 호흡기 수용체에만 결합하는 바이러스의 부착단백질이 사람의 호흡기 수용체에도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면 인수공통감염병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번 MERS Cononavirus(MERS-CoV)는 박쥐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개, 고양이 등과 심지어 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왜 개에게서 인간에게 넘어오는 신종 바이러스 소식은 없을까요? 사실은 수천년 전 개, 소, 말 등의 가축화를 시작하였을 때, 지금의 MERS처럼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현생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여러 병원체 중의 상당수가 가축으로부터 넘어와 변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천년을 함께했기에 가축과 우리는 이미 병원체를 나눌 만큼 나눈, 마치 이미 방귀 튼 지 오래된 부부나 마찬가지인 관계입니다.

 하지만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은 인류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와 세균을 무수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지구는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며, 인류에게 알려진 세균과 바이러스는 극히 일부라고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2014년 서아프리카를 강타하여 세계를 긴장시킨 Ebola virus (그림3), 그리고 그 친척뻘 쯤 되는 Marburg virus도 박쥐나 원숭이와 같은 야생동물에게서 사람에게 넘어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2년 중국 광동성을 시작으로 28개국에서 784명의 생명을 앗아간 SARS-CoV는 야생 사향고양이(우리집 고양이같은 고양이 아님, 그림4)를 식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에게 넘어온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지구의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은 차라리 인류에게 계속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현실적 최대치는 100억명이라고 알려져있는데, 세계 인구는 2011년 10월 70억명을 돌파했습니다. 팽창하는 인류는 생활하고 농작물을 만들 더 많은 개척지를 필요로했기 때문에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인 숲을 침범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격리되어 있던 야생동물과 인간들의 거주지가 겹치게 되었으며, 야생동물이 인간과 직접 접촉하거나, MERS-CoV처럼 야생동물인 박쥐가 인간의 가축인 낙타와 접촉을 하게 되었으며 이 때 "인류에게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달이 된 것입니다. 낙타에게 전달된 MERS-CoV가 낙타와 인간의 교류에 의해 2012년 사람에게서 처음 박쥐의 MERS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림5,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낙타와의 밀접한 접촉을 피해야하는 것 잘 알고 있으시죠?ㅋ 사실은 낙타가 박쥐랑 밀접한 접촉을 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 만남을 주선한 것은 인류입니다.)  

 

 인류가 지금과 같이 팽창적으로 지구를 소비해간다면 또다시 "새로운" 미지의 병원체가 소환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원 사용과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등의 인류의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절제하는 자세를 갖추어야한다는 사실을 이번 MERS사태를 통해서 지구가 인류에게 경고장을 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고유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현상을 일으키며, 그에 대해 우리 몸도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모습은 매우 다이나믹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의대 미생물학은 수많은 병원성 세균과 바이러스를 공부해야하다보니 의대생들에게 그다지 인기있는 과목은 아니다. 때문에 교수님들에 대한 학생들의 인상도 좋지는 않은 편이라, '미생물학을 전공하면 마음도 micro해지는 것이냐?'는 등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이러스만 보더라도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다(그림1).

 때문에 수업이 나열식이고 암기식일 수 밖에 없으며, 의대생들의 본능에 따라 위와 같은 표를 디립다 외우려 하지만 못외우고 괴로워한다. 필연적으로 강의도 지루해지기 쉽다.

 9월부터 의학미생물학 강의를 시작해야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 사실은 더욱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나는 재밌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되고 싶은데, 미생물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상 참 쉽지가 않다. 강의에 다루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이 제각기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녀석들이니 어느 하나 띵기고 넘어갈 수 없는 입장이다. 

 사실 이 고민은 의과대학 전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의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의학지식의 양도 팽창하고 있으니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할 내용은 점점 늘고 있으며, 이것은 수업시간을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고민에서 나온 것이 Problem-based learning(PBL)이라는 의대의 교육 방식이다. 조금씩 정보가 제공되는 환자 증례를 가지고서 소그룹이 토론과 자율학습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수업이다 (그림2).

튜터(교수)는 있지만, 조율 이상의 '강의'를 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지금은 많은 의과대학들이 강의방식의 수업에 PBL을 추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논란이 매우 많았던 교육 방식이다. 반대하는 교수들의 의견은 "필요한 내용을 강의를 통해 가르치지 않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지식을 가질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었다. 이에 Harvard 의과대학에서 절반의 학생은 강의방식으로, 절반의 학생은 전면PBL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학업성취도를 비교해봤더니 '차이가 없다'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PBL교육방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역시 모든 것은 실험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게 교육 방법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의 '자율학습능력'은 생각보다 훌륭했던 것이다. 교육선생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모습이다.

 지금의 미생물학 강의는,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총론과, 각각의 세균과 바이러스와 그에 의한 질병을 배우는 각론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힘없는 막내교수라 내 주장을 강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미생물학 또한 PBL도입의 사례에서 본 바와같이 학생들의 자율학습능력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수업시간 수를 줄이고, 강의는 총론 위주로 해야한다. 각론을 강의 하더라도, 병원체 중심의 분류 방식에 따른 강의가 아닌, 증상과 전염경로 등 임상 진료상황에 맞춘 카테고리로 강의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그로써 학생들의 흥미 유도와 자율학습 장려에 도움이 되어, 의대생들이 미생물학을 재미있는 과목으로 꼽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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