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나오면 인턴, 레지던트를 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때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뜩이나 적은 의국원, 혹은 전공의에서 한 사람이라도 휴가를 가게되면, 그 업무량은 인수 인계까지 합할 경우, 두배가 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휴가는 본인도 가게될 것이기 때문에, 쌤쌤(?)이 되지만, 과연 이런 일이 전공의 기간 동안 꾸준히 이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그 상황을 사회적인 가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까요?

 

박민우 선생님이 최근에, 연세대 의대를 입학한 전병건 군의 상황을 보면서 만든 가상의 "픽션"이지만, 한 번 쯤은 생각해볼 글일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는 성공적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개인의 피해를 감수할 만한 이타심 체계가 잡혀져 있는가... 이타심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이런 상황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사회 시스템 문제라고 하지 않고, 개인 탓만 하는 현실은 아닌지.. 라는 고민을 던져 보면서 글을 공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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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애를 딛고 명문대 의대에 합격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증상이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야 자신의 천형(天刑)이 선천성 근무력증임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병을 형벌로 생각하지 않고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생각했다. 근육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대신 생각을 많이 했다. 국어와 영어 같은 언어 사고 능력이 중요한 과목에서 그는 남들보다 단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수학은 가끔 긴 계산을 필요로 하기에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과목이었으나 그 또한 대부분의 계산을 암산으로 해냄으로써 극복했다.

그는 자신의 학교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고 최종적으로 명문대 의대에 합격함으로써 모든 세상의 주목과 축복을 받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어 자신의 질병의 원인을 찾고, 자신처럼 고통받는 이를 치료하고 싶다 말했다.

과연 그가 입학한 학교는 명문대가 맞았다. 단순히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은 학교가 아니었다. 이 학교에선 신체적 약자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과 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었고 그는 자신의 신체적 불편함 때문에 학업을 방해받는 일이 없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으레 이기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노력해본 적 없는 사람들의 질투와 편견이리라. 의과대학교수들뿐만 아니라 입학 동기, 선배, 후배들까지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동기들은 빠른 속도의 수업 내용을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그에게 필기 복사본을 구해다 줬다. 해부학, 조직학 실습에서도 동기들은 그를 도왔다. 그는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실습 시험을 무난히 치를 수 있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진급하여 졸업을 앞두게 됐고 의사 고시를 준비하게 됐다.

여태까지 잘 해낸 그였지만 의사 고시엔 그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잘 해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의사 고시엔 실기 시험이 있는데 그중 OSCE는 실제 환자 모형을 두고 처치를 해야하는 시험이었다. OSCE의 여러 항목이 완력과 정교한 손놀림을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심폐 소생술은 실제 흉부 압박을 5-6cm 깊이로 분당 100-120회 시행해야 했는데, 이것은 선천성 근무력증인 그가 결코 해낼 수 있는 술기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봉합술, 혈액 배양술 등도 자유롭지 못한 손놀림을 가진 그에게는 장벽이었다.

그가 속한 의대의 교수들은 회의를 열었고 한국 보건 의료인 국가시험원과 접촉했다. 학교가 입학 시켰으니 의사 고시도 마땅히 학교가 책임져 합격시켜야 한다는 이유였다. 국시원에 그의 특별한 사정을 알려 그에게만 특별히 물리적 힘이 필요하지 않은 항목들로만 출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시원도 출제위원들을 모았고 며칠을 토론했다. 한 사람에게만 시험 항목을 선별해 출제한다는 건 찬반이 어느 정도 엇갈린 일이었다. 하지만 국시원도 언론이 주목하는 그의 어떠한 상징성에 압박을 받았고 결국 그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항목만을 출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의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고 다시금 6년 만에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부터였을까, 그는 가끔씩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한 느낌을 등 뒤로 받아야 했다.

입학 때부터 그의 꿈은 재활의학과 의사였다. 간혹 주변에서 의사가 되어 겪는 신체적 피로와 한계는 학생 때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며 그냥 인턴을 하지 말고 기초의학으로 빠지는 게 어떠냐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이제까지 해냈는데 앞으로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그는 망가져갔다. 육체는 이미 굳어있었기에 정신이 망가져갔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병원은 학교와 다르게 이론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가야 하는 전쟁터였다. 내과 인턴을 돌 때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수십 개의 정맥혈 채혈, 동맥혈 채혈을 마쳐야 했는데 그에겐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가 하지 못한 몫은 고스란히 동료 인턴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의 동료 P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힘든 낯을 하나도 비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동료 L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L은 타교 출신이었고, 그와 어떠한 정신적 유대를 갖기도 전에 그의 일을 떠맡아야 했다. L은 대놓고 그에게 적의를 표하진 않았으나 마찬가지로 대놓고 살갑게 굴지도 않았다.

대놓고 그의 인턴 스케줄을 거부하는 과도 있었다. 몇몇 수술하는 과들은 애당초 우리 과 일을 도울 수 없으니 다른 인턴으로 스케줄을 바꿔달란 요청을 했다. 이건 하겠다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의지는 무시되고 스케줄은 조정됐다. 그가 빠진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는 다른 인턴들이 두 번씩 도는 것으로 결정됐다. 서서히 원망의 목소리가 병원에 깔리기 시작했다.
학생 동기들은 이타적이었으나 의사 동기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기적인 게 아니고 이타적이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쉬지 못하고 자지 못한 동기들은 더 이상 그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으므로 결코 이타적일 수 없었다. 동기들은 차츰 그와 엮이면 피곤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를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다.

인턴이 실수할 때마다 대놓고 욕을 하는 모과의 레지던트도 그를 의식하여 그에게만은 욕하지 않았다. 병원의 야만이 그만은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그때마다 그는 말이 아닌 모멸의 시선을 받았으므로 야만은 감춰져 있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의 주치의였던 소아 신경과 교수 C는 넌 수술만 빼고 다 할 수 있을 거라 말했었지만, 결코 이런 것들은 말해주지 않았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육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인턴 생활도 2/3가 지나가고 원서를 넣을 때가 됐다. 그는 언제나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재활의학과에 지원할 수 없었다. 그의 선발을 막은 건 병원도 교수도 아니었다. 그건 의외로 학생 때 그에게 잘해주던 그의 선배들, 즉 재활의학과 레지던트들이었다. 교수들은 존스홉킨스 이승복 교수를 예로 들며 그를 선발하면 의국도 돋보일 거라 생각하고 그의 선발을 바랐다. 하지만 실제로 바쁘게 일을 하는 레지던트들은 달랐다. 레지던트들은 그가 의국에 들어옴으로써 그가 하지 못하는 여러 일들을 자신들이 떠맡아야 함을 예상했고, 때문에 교수들의 결정에 반발했다. 교수들과 레지던트들의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거기에다 재활의학과는 하겠다면 그냥 시켜주는 비인기과가 아니었다. 그 말고도 재활의학과를 바라는 인턴들은 많았으므로 더욱 그의 입장은 곤란해졌다.

그는 처음으로 포기란 걸 했다.

그는 재활의학과에 원서를 넣지 않았다. 대신 모교 생리학 교실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생리학 교실에 들어가 근무력증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꿈의 한 조각이 빠져나간 그는 비틀거렸지만 그제야 비로소 야만의 정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편안해졌다. 그는 한 번 실패했을 뿐이었고 결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무력한 근육에 힘을 들여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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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픽션, 가슴으로 미칠듯한 응원을 보냅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19230239?fbclid=IwAR1I1CkeDbRhSxrTdWPkAxS177yAn9xR_CjortzslTiDyJpW0dIe8jkOkP4

 

“내가 걸린 근무력증 원인 찾겠다” 장애 딛고 의대 진학

연세대 의대에 합격한 전병건군은 “장애를 겪는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연세대 의대가 태어날 때부터 근무력증을 앓아온 서울 동성고 3학년 전병건(18)군을 올해 수시모집 신입생으로 10일 선발했다. 근무력증 환자는 작은 힘은 쓸 수 있으나 큰 힘은 쓸 수 없다. 부축을 받아

news.joins.com

 

가급적이면,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은, 쌍방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으면 쉽게 결론내리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 사건은 녹취를 들어본 결과, 명확한 증거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겠네요. 쓰다보니 글이 좀 깁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하네요.

 

의대 내에서 잘못된 점 쉬쉬하는 분위기,이건 이제 버려도 되지 않을까요?

 

의대는 기본적으로 위계 질서가 다른 과보다 강한 편입니다. 군기라고 하죠. 선배가 말하면 뭐든 다 듣고, 실행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부조리한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다들 쉬쉬하는 경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학교 다니는 시절에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후배라는 이름하에 맞아본 적도 있고, 말도 안되는 소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지인은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2년간 개처럼 맞으면서도 꾸역꾸역 참았습니다. 선배들이나, 있는 자(?)들(가해자라고 통칭하겠습니다)은 다 추억이야 하면서 넘어가지만, 맞았던 당사자나, 소문의 피해자들은 부들부들 이를 갈면서 생활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서 특히 신경써야할 부분 중에 하나는, 저런 부당한 일이 생기더라도, 가해자들이 의기양양하게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피해자 너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때리는 것이다. 니가 당하는 것에는 항상 이유가있다. 그러니깐 맞아야 한다."는 이론이죠.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가 예과 시절.. 아주 궁금하면서 순진한(?) 눈으로

 

"선배님, 왜 밑에 년차 선생님들을 때리나요?" 라고 물었을 때, 그 선배님의 대답은...

"응. 그렇게 때리고 나면 다른 일보다 내 일을 먼저 해."

 

당시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예과생이였고, 사회생활의 틀이 자라나는 시기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였죠. 물론, 그 선배는 아주 리더십이 강하고, 대외적으로 멋지고 능력있는(?) 선배였습니다. 항상 자신의 일은 먼저 되어 있었으니깐요.

 

그렇지만, 이런 소문은 쉽게 퍼지지 않습니다. 어떤 과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구린 일을 하고 있는지 내부적으로는 알지언정, 외부적으로는 절대 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소문이 외부적으로 퍼지게 되면, 그 과나 학교 이름에 먹칠이 되고,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쉬쉬하게 되는 것이지요. 교수님도 알면서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전에 있었던 K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역시, 학교 내에서 부단히도, 밖으로 소문내지 않게 많은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안이 아주 중대하고, 피해 여성이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단단히 마음을 먹으면서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그 가해자들은 학교에서 출교 처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압니다. 그 "학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이번 사건도 C학교 내부에서는 "연인 사이의 일이다. 아직 법적 판결이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일이 커지지 않게 신경을 쓴 것처럼 보입니다만.. 결국, 일이 훨씬 더 커져버렸고, 지금처럼 녹취록이 공개되었습니다.

 

녹취록을 들으면서, 그 여학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두려워하면서 맞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 여학생의 목소리는 오원춘 사건의 피해자 여성의 목소리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우리는 이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어느 학교에서 벌어진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늘 해왔던 대로 해 왔고, 학교 측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 의대 전체에서 이 문제는 크게 퍼지고 있고,일반인들의 시선도 아주 날카롭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어떻게 해결할지, 입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해자 학생을 감싸고 방어를 쳐주는 이상한 학교가 될지, 아니면, 높은 도덕 의식으로 다시금 학교의 난국을 극복할지. 그건 이제 학교의 선택이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일이 생겨서, 밖으로 소문이 나게 되면, 가뜩이나 몇 개 없는 의과대학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될 것을.

 

하지만, 그 후속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먹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 의대생 그리고 소문을 만들어 내는 모든 사람에게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어떤 안 좋은 소문이 나면, 결국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없는 일반 사람들은 한쪽 편을 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가해자는 똑똑하기 때문에, 변명에도 이유가 그럴 듯하고, 그 주변친구들이 잘 감싸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보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여학생이 호소하고 있는 2차 피해 역시 이 테두리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없었더라면, 이 여학생은 그냥 소문의 피해자가 되었겠죠.

 

이 여학생은 어떤 맞을 짓도 하지 않았고, 맞아서도 안되는 학생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남녀 둘사이의 일"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폭행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의대라는 닫힌 사회의 특성상, 학교 측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가해자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내야만 하고, 실습도 같이 해야 합니다. 조별 과제 등도 말이죠. 아마도 이 여학생에게는 창살없는 감옥과 같은 생활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 사회에서 이 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를 더 소중하게 다뤄줘야 하고, 2차적으로 피해가 가지 않게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상,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생겨서 내부 고발을 하거나, 부조리를 지적한 사람이 한국에서 보호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습니다. 일이 지나간 뒤에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일을 당한 장본인인, 피해자인 저 사람 때문에 이렇게 일이 크게 되었고 이름에 먹칠이 되었다고 소문을 내면서 이야기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 인간만 없었으면... 하면서..

역겹습니다. 이런 상황들.

 

이제, C학교 동기나 선후배들은,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이 여학생 때문이라고 지적하지 않고, 피해자를 어떻게 더 배려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여학생은 앞으로, 의대라는 좁은 테두리의 특성상, 이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꼬리표를 떼고, 멋진 의사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역시,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요?

 

P.S. 그리고 이 사건의 당사자 여학생!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해 지세요. 앞으로 누군가 자기를 보면서 수군거린다는 생각이 들때도 많을 것이고, 어딜 가든 피해의식이 생기거나, 주눅들 때도 많을 거예요. 그리고 남자 친구를 사귈 때도 걱정이 많이 들거예요.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본인의 상처를 감싸줄 멋진 남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본인이 당당하게 사는 것이 멋지게 복수하는 길입니다.

 

꼬리표를 붙이면서, 수군거리는 사람은 어딜가나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건 한 순간이고, 본인이 가진 이쁜 인생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요. 학교 측에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학교 측도 이제는 바꿀 준비가 되어 있을 거예요. 만약에 바뀌지 않는다면, 빨리 졸업하고, 보란 듯이 멋지게 성공해서, 학교를 놀라게 해주세요.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151130141513416?fbclid=IwAR1rKo2zef5hZijwLy2EgeqTlF467EJAVKK2BfXjigK7KSzUSTG56zJTfNg

 

[취재파일] 여자친구 4시간 반 폭행하고 맞고소까지 한 예비의사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 히포크라테서 선서 中 인간의 생명을 누구보다 소중히 해야 할 의사들의 양성소 의학전문대학원 안에서 한 사람의 인격까지 말살하는 끔찍한 폭력행위가 벌어졌습니다. 데이트 폭력입니다. ● “왜 전화를 싸가지 없게 받아?” 여자친구 4시간 반 감금, 폭행 올해로 31살 된 피해자 이 모

news.v.daum.net

알파카 페이스북 원문 글

의대에서의 공부량 (객원 필진 윤홍균 선생님의 글)


윤홍균 선생님은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시고, 서울 마포구에서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고 계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의대에서의 공부량에 대해서 써놓은 글인데, 아주 큰 공감이 가서 저희 블로그에 포스팅합니다. 참고로, https://www.facebook.com/addictyoon 에 원글이 있습니다. http://yoonmaum.com/ 에 블로그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글을 쓰기는 사실 꺼려졌었다. 왜냐하면 요즘은 의대생이나, 의대생 아닌 사람이나 다들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의대를 다니던 시절,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나 청춘 드라마와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기에 이 글을 남긴다.


이 글에서의 의과대학에서의 공부량은 전적으로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것임을 밝힌다. 그동안 학제는 많이 바뀌었고, 학교마다 다른 커리큘럼이 있기에 경험은 모두 다를것이라는 점도 이해를 바란다. 나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다.


의대에 입학했다. 정확히 의예과에 입학했다. 예과과정에서 공부부담은 별로 없다. 그래도 중요한 과목이 한과목 정도 있다. 가령, '일반 생물학'같은 과목이다. 이 과목의 공부량은 나머지 공부량을 다 합친것 정도 된다.


만일 일반 생물학과 5과목을 첫학기때 만난다면, 나머지 다섯과목 합친게 일반 생물학과 비슷하다. 이런 일반 생물학을 '메이저'라고 부른다.나머지 그러니까 컴퓨터 실습이나, 영어회화같은 과목들이 있었다. 이런 과목들이 마이너였다. 평소엔 수업을 듣는등 마눈둥하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공부를 한다. 뭐 잘치면 잘치는 거고 말면 마는거다.


다음 학기가 되면 또 한가지 메이저 과목이 있고, 나머지 과목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그 마이너 과목들이 다 '일반 생물학'정도 된다. 그리고, 그 마이너들을 다 합친것이 '세포학'이라는 메이저 만큼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학기가 되면 또 메이저과목이 하나 생긴다. 마이나과목이 공부량은 또 그전 학기의 메이저 같은 것이다. 그런식으로 유전학이라는 메이저를 만나고, 뭐 그런식이다.


그러다가 본과에 진입한다. 예과를 벗어나서 의학과과정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진입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본과 첫학기에는 네개의 메이저를 만난다. 해부학, 생화학,생리학, 조직학. 공부 량은 해부학이 가장 많다.


그런데 해부학에서 공부해야할 양은 그냥 예과때 배웠던것 전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3학기 정도동안 외웠던 분량은 한과목에서 외운다. 물론, 생화학, 생리학, 조직학도 많다. 그외에 여러 기타과목들도 있다. 이런것들도 공부할것은 많다. 해부학 만큼은 아니지만, 예과 메이저보다는 훨씬 많았던것 같다.


본과 2학년이 되면 병리학이라는 학문을 만난다[각주:1]. 병리학의 분량은 1학년때 메이져였던 네과목을 합친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여러 기타과목들이 있다. 뭐 계속 그런식이다. 전학기보다 두배 정도씩 차곡차곡 쌓인다.


급기야 본과 4학년이 되면, 정말 눈을 의심할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첫시간에 평생을 어깨 수술만 하신것 같은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어깨수술 강의를 왜 한시간만 배정한거야?"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강의를 하신다.


그리고 두번째 시간에는 평생 손목 수술만 강의하신분이 들어오셔서 "손목 수술만 강의해도 하루를 잡아야되는데, 왜이렇게 시간이 없어?"하면서 엄청난 진도를 나가신다.


그런식으로 강의가 이어진다. 평생 혈액암만 연구하신분, 갑상선의 내과치료만 연구하신분, 갑상선의 수술치료만 하신분이 본인이 공부한 모든 것을 한두시간동안 적어놓고 나가신다.


한 교시가 끝날때마다 책이 한권씩 생긴다. 정말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범위도 잘 모르겠고, 내가 들은게 전 학기에 들은건지, 이번학기에 들은건지도 잘 모르겠더라.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어느새부턴가 필기는 포기하고 그냥 듣는 거 정도하다가, 말다가 했던것 같다.


필기를 해봤자, 그게 맞는말인지도 모르겠고, 적다보면 진도나가있고, "이건 해부학 시간에 배웠지?" 뭐 이러시는데 전혀 기억은 없고, 뭐 그런식의 수업이 이어진다. 아이고 글쓰다보니 심계항진이 오네.


어쨌든 그렇게 본과 4년이 지나간다. 결론은 공부할게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학문은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데, 의대 4년동안 모든 과의 지식을 한번씩을 훑고 가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것 같다. 뭐 어떻게 해야한다.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의과대학의 공부량은 엄청나게 많았다.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공부량이 많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라던가 그런말은 사실 현실적이지가 않다. 사실 그렇게 될지 몰랐고, 설마 그렇게 많아지겠어? 에이..하면서 분량이 점점 늘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도 싶었고,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뭐 따로 할것도 없어서 어쩔수 없이 졸업까지 떠밀려떠밀려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량이 많았다고 다 공부한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공부량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 것은 "공부해야할 양"을 적은 것이다. 공부한 양은, 저것보다 확연히 적었다고 생각한다. 기억나는 것도 사실 별로 없다. 그냥 아 되게 많았네. 정도. 그게 나의 양심고백.


의대생 여러분, 공감하시나요? 


  1. 이는 의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의전원으로 들어와서 접한 의대생활...

첫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학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의학공부인 골학해부학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었죠.

제가 아는 분 중에 예과 2년 마친 후 골학 시작하고 힘들어서 약대로 가신 분이 계셨는데 합격 소식 들리자마자 골학에 대해 엄청나게 압박을 주셨었어요...


역시...  듣던대로 명불허전이였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시간도, 외울 시간도 없이 머리속에 넣는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였죠.

마치 온갖 산해진미를 씹지도 않고, 삼키지도 않고... 바로 Stomach으로 쑤셔 넣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그런 느낌... 익숙해서 만성이 되었지만... ^^;;;


학교마다 골학을 공부하는 방법이 다른데 우리 학교는 학생회에 주관 하에 모든 신입생이 골학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1년 선배가 튜터가 되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골학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본과 수업이 시작됩니다.


1학년 때는 대부분 기초 과목인 해부학, 태생학, 생화학, 생리학, 약리학, 면역학, 병리학과 미생물학 등을 배우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대생이라면 느끼셨겠지만... 본과 1~2학년이란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고, 매 과목마다 산처럼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1학년 수업의 꽃인 해부학... 이 꽃밭을 무사히 지나치기 위해서 필기 시험에 더불어...

 

심장이 쫄깃해지는 '땡시'가 있습니다. 


가운에 여분 볼펜 필수! 빨리 글씨를 쓰는 능력까지 평가 받는 시간이죠. 매일 반복되는 카데바 해부 실습[각주:1]에 수업에 공부까지... 1년 중 가장 빡빡한 수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나마 골학과 해부학은 보이는 것,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저로선 재미있는 과목이였습니다. 


그런데 해부학이 끝나고 생화학에 들어가니 정말 갈피를 못 잡겠더군요...


의학과에서 흔히 전공자라 일컫는 생물이나 화학 전공 관련 학부 출신이 아니었던 저는 새로운 공부에 Sudden attack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부 때 듣던 수업이 수학, 물리, 프로그래밍과 신호처리 관련 과목이 대다수 였는데, 생화학에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단위 까지 알아야 했고, 그렇게 작은 세포 안에 그렇게 많은 Signal이 있다는 사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학부 때 1년에 걸쳐 했다던 수업을 한달 안에 끝내니 해부학 때 쑤셔넣은 배움의 체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힘들더군요. 해부학 끝나고 선배들이 산 넘어 똥밭이라고 하더니 선배들이 했던 말들이 여실히 와 닿았습니다. 산은 힘들고.. 똥은 더럽듯...  전부 힘든 상황이지만 힘든 포인트가 조금씩 다르더군요.제일 충격이였던 건...


저보다 공부를 훨씬 안 하던 생명공학부 출신 친구가 저보다 더 빨리 습득하고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전공한 친구에게 교수님 강의를 한장 한장 넘기며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며 공부를 해 나갔습니다.

 <http://i3.kym-cdn.com/photos/images/original/000/250/567/0e6.jpg>


그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했던 말이 떠 오르는군요
"너무 조바심 내지마. 그래도 마치고 나면.. 의사가 될 수 있잖아." 라며... 서로를 위로했었던 말... ^^

근데 그 땐 공부를 할 수록 그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였죠...

전문가가 나와서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시간 관리를 잘 하는 방법을 예전엔 흘려 들었었는데 그 흔히들 말하는  공부 방법이란 것도 본과 1학년 들어와서야 적용해 볼만큼 저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아웅다웅 하였던 시간이였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겐 공부만큼이나 Sudden attack 이였던 학부때와는 다른 학교의 분위기!!!!

모두 함께 가자
!!!
 라는 느낌의 의대 분위기는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올라가기위한 노력은 아름다웠으나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었던 저에겐 모두 함께라는 미션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비전공자라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인식까지 박혀버렸는데 갈수록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 느낌인데다가 모두 같이 가자고 하며, 개인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 슬로건 덕분에 한 해 한 해 올라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절대 혼자할 수 없고 , 같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의대공부인 듯 합니다. 1학년은 나를 중심으로 일정을 짜는 것이아니라 학교의 일정에 나의 생활을 맞춘 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자고 마음 먹는 것이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1학년도 지나고 나니  뭐 그렇게 했었나 후회도 되고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도 남고 그렇네요.

그리고 지나고 보니 느껴지는 것은 학부 전공과 의대 성적은 상관관계가 크게 없다는 것! 학부 뿐 만아니라... 전적대 또한 학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 모두 말하죠... 의대오면 머리는 비슷하고 1등과 꼴찌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쌓이고 쌓이면... 큰것 같습니다만...^^;;)

비전공자들... 겁먹지 마십시오~!!! 지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체력과 지구력만이 1학년을 잘 버틸수 있는 Key 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 보기 위한 사이트! 

 

http://www.med-ed.virginia.edu/specialties/Home.cfm 를 소개합니다.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100가지 이상의 질문들로  자신에게 맞는 과의 리스트를 정리 줍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받다보면 나의 상황이나 사람들의 잣대에 휩쓸려 가기 쉬운데 의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적성에 맞는 과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벌써, 기나긴 의대 생활을 마치고, 인턴을 하고 있네요. ^^

  1. 카데바 - 사체 [본문으로]

 2014년 4월, 우여곡절 많았고 길기도 길었던 6년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생리학이라는 학문을 더 깊게 공부하며 평생 학문의 길을 걷기로 한지 벌써 두 달째가 되었습니다. 생리학 교실의 조교로서 본과 1학년 학생들을 실습과 수업시간에 자주 마주치게 되니 2010년의 제 본과 1학년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예과 때 동아리 행사나 동문회 행사등을 통해 만난 본과 선배님들은 항상 저희를 겁주셨었습니다.


  본과 생활은 '상상 그 이상' 일 것이라고.


  해부할 때 계속 맡게 될 포르말린 냄새가 매우 독하기도 할 뿐더러, 피부, 머리결도 다 망가질테니 그냥 포기하라고.


  공부량의 신세계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부학으로 본과 1학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들이 말씀하시던 것보단 할 만 했습니다.

  사실 해부학이 사체를 가지고 하는 수업이다 보니,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포르말린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해부하면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 말고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기증자분께 정말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가자고 다짐하고 열심히 실습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그 전리품으로 푸석해진 머리와 피부를 얻었고, 결국 해부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열심히 길렀었던 제 머리는 단발로 바뀌었죠...^^

 

  생리학, 생화학 등을 함께 배우고 공부하면서 처음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잠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밤을 못 샜습니다. 밤을 새면 다음 날에 좀비가 되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서 밤을 새지 않고 시험을 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뭐 제가 벼락치기 파였던 것도 있긴 하지만, 밤을 새지 않으면 시험 범위를 한번이라도 다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시험에 임하는 학생으로서 시험범위 만큼은 한번이라도 다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들과 열람실에서 서로 잠을 깨워주며 편의점을 들락날락 했던 기억이 납니다.

 

 

 

 

  5월 정도였던 것 같네요. 

  지금은 다 져 버린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랬죠. 저희 학교 캠퍼스도 나름 예쁘기로 정평이 난 학교인지라, 캠퍼스 곳곳에 참 사진 찍을 맛 나는 포토존이 많았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만큼 저와 제 친구들의 기분도 꽃가루처럼 둥둥 공중에 떠다녔었습니다만 시험과 실습에 치여 삼십분 정도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는 캠퍼스 나들이도 결국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해부학 실습과 수업이 모두 끝나고 기분 전환으로 같은 학번 동기들 다 같이 소풍 겸 해서 캠퍼스 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서 나름 신나게 봄을 만끽하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데, 다른 과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의대생들인가봐." 

 

 ????? 

 

  아니 우리가 얼굴이나 옷에 써붙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나 놀래서 주변의 동기들과 저를 돌아보았죠. 하... 그 이유를 알 만했습니다. 캠퍼스의 다른 사람들은 파스텔톤, 밝은 색의 옷들을 상큼하게 입고 있는데, 우리 동기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검은 색 옷인데다가, 옷 두께조차도 남달랐던 거죠.


한창 따뜻한 봄날씨인데도 추운 해부학 실습실과 강의실을 왔다갔다 하며 건물 안에서만 살다 보니 4-5월까지도 날씨 감각 없이 두꺼운 겨울옷을 입었던 겁니다. 아 그때 의대 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과 함께한 1쿼터와 함께 봄이 지나가고 2쿼터가 시작되어 3, 4 쿼터까지 면역학, 미생물학, 약리학 등 수많은 것을 배우면서 정말로 많은 양들을 머리에 구겨 넣었습니다.


오죽하면 "눈에 바른다"는 표현을 쓸까요. 정말로 눈에 한번 바르고 시험장 들어가서 그대로 시험지에 쓰고는 머리를 비우고 나오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원래 단순 암기에 약해서 이해를 통해 외우는 걸 최대한으로 줄여 공부하는 걸 제 방식으로 삼았었는데, 의대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더군요.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으니 하나하나 이해 하고 넘어가려면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엔 머리에 그 많은 지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도 없이 구겨넣을수밖에 없었던 거죠.


  처음에는 공부하면서 한 교수님께 최대한 이해해보겠다고 질문하러 가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나하나 파려다가는 성적 안 나온다고 그냥 외우라고 하시는 걸 듣고는 제 공부방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본과 1학년은 즐거웠습니다.^^

 원래 힘들수록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는 관계가 끈끈해지는 법이죠. 마치 고3때처럼요. 거의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투덜거리면서 동기들과 훨씬 더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열심히 해야 하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년에 얼마 안 되는 '비'시험기간에는 책표지도 펴 보지 않고 열심히 놀았기 때문에 나름 즐거운 기억도 많습니다. 진급만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신나게 놀 수 있었죠.


  비록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대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라기 보다는 의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라는 느낌이 드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로 '학문'의 길에 들어서려고 하는 지금에 와서는 '의학'을 하기 위한 인체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의 절대량이 많으니(비록 암기를 통한 지식이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싶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힘든 만큼 즐거웠던 나의 본과 1학년.  23살의 제 청춘이 문득 쪼끔은 그립네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고유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현상을 일으키며, 그에 대해 우리 몸도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모습은 매우 다이나믹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의대 미생물학은 수많은 병원성 세균과 바이러스를 공부해야하다보니 의대생들에게 그다지 인기있는 과목은 아니다. 때문에 교수님들에 대한 학생들의 인상도 좋지는 않은 편이라, '미생물학을 전공하면 마음도 micro해지는 것이냐?'는 등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이러스만 보더라도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다(그림1).

 때문에 수업이 나열식이고 암기식일 수 밖에 없으며, 의대생들의 본능에 따라 위와 같은 표를 디립다 외우려 하지만 못외우고 괴로워한다. 필연적으로 강의도 지루해지기 쉽다.

 9월부터 의학미생물학 강의를 시작해야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 사실은 더욱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나는 재밌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되고 싶은데, 미생물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상 참 쉽지가 않다. 강의에 다루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이 제각기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녀석들이니 어느 하나 띵기고 넘어갈 수 없는 입장이다. 

 사실 이 고민은 의과대학 전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의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의학지식의 양도 팽창하고 있으니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할 내용은 점점 늘고 있으며, 이것은 수업시간을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고민에서 나온 것이 Problem-based learning(PBL)이라는 의대의 교육 방식이다. 조금씩 정보가 제공되는 환자 증례를 가지고서 소그룹이 토론과 자율학습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수업이다 (그림2).

튜터(교수)는 있지만, 조율 이상의 '강의'를 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지금은 많은 의과대학들이 강의방식의 수업에 PBL을 추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논란이 매우 많았던 교육 방식이다. 반대하는 교수들의 의견은 "필요한 내용을 강의를 통해 가르치지 않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지식을 가질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었다. 이에 Harvard 의과대학에서 절반의 학생은 강의방식으로, 절반의 학생은 전면PBL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학업성취도를 비교해봤더니 '차이가 없다'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PBL교육방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역시 모든 것은 실험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게 교육 방법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의 '자율학습능력'은 생각보다 훌륭했던 것이다. 교육선생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모습이다.

 지금의 미생물학 강의는,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총론과, 각각의 세균과 바이러스와 그에 의한 질병을 배우는 각론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힘없는 막내교수라 내 주장을 강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미생물학 또한 PBL도입의 사례에서 본 바와같이 학생들의 자율학습능력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수업시간 수를 줄이고, 강의는 총론 위주로 해야한다. 각론을 강의 하더라도, 병원체 중심의 분류 방식에 따른 강의가 아닌, 증상과 전염경로 등 임상 진료상황에 맞춘 카테고리로 강의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그로써 학생들의 흥미 유도와 자율학습 장려에 도움이 되어, 의대생들이 미생물학을 재미있는 과목으로 꼽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저는 학생신분으로 생리학 강의를 들은 것이 10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2007년도에 생리학교실에 조교로 남아 실습강의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3년째 신경생리와 신장생리 부분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생리학강의와 공부접근법에 대해 학생 때 느낀 점과 현재 입장에서 느끼는 점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본과 1학년 때 저는 해부학보다는 생리학을 더 좋아했습니다. 저는 암기보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부분이 더 공부하기가 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의를 해주시는 교수님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원서를 읽어서 인체생리를 이해하기에는 시간도 없었고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부분은 공부 잘 하는 친구에게 의존하거나 족보에 의존하였습니다. 사실 족보만 다 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했으니까요

(생리학 교과서 중 하나인 가이톤(Guyton))

저는 생리학에서 특히 세포막 채널, 전기생리학 그리고 신장생리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또한 생리학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순환생리부분 시험을 치를 때 보상반응 전 상황으로 시험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야 할지, 아니면 보상반응 후 상황으로 시험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야 할지 모호한 부분이었습니다.

본과 3, 4학년이 되면서 생리학이 정말 중요한 과목이였음을 느꼈고, 아마도 다들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과 3, 4학년 때는 다시 생리학 책을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PK실습준비와 국시준비로 다시 생리학 공부를 하기가 어려웠던 부분도 있고, 본과 1학년 때 생리학 교제라든지 정리본들을 모두 잃어버려, 생리학 원서를 보기에는 너무 힘든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 처음 조교가 되어 생리학 강의를 다시 들어보니, 훨씬 이해가 잘 되었고 기억에 남았지만, 한 가지 느낀 점은 교수님들께서 너무 많은 내용을 다 알려주시는 것은 아닌가, 또 너무 기초적인 부분까지도 자세히 강의하시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초의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생리학의 기초적인 내용인 세포막 채널, 전기적 성질, 세포내 신호전달 등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과연 본과 1학년 학생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의사로써 꼭 알아야할 내용인지 등이 의심도 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신경생리와 신장생리를 강의하면서 이러한 자세한 기초적인 내용은 간략하게 강의하고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대신 전체 신경생리와 신장생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를 쉽고 간략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 본과 1학년 후배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교수님마다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과 강의스타일이 다르니,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 다 외우려 하지 말라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정부분 생리를 이해하고 큼직큼직한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한글판 인체생리학 책을 잘 이용하라입니다. “이석강 또는 김영규 저, 인체생리학 (고문사)”김기환, 엄융의, 김전 저 생리학 (의학문화사)” 책이 좀 오래되긴 하였지만, 나름 한글로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다양한 한글판 인체 생리학 책들)

세 번째는 강의록에 기록을 잘 해두던지, 공부 잘 하는 친구의 노트를 복사해두던지, 아니면 자신만의 정리노트를 만들어보라입니다. 이런 습관을 들이면 과목이 진행되어갈수록 전체를 볼수 있고, 진급을 하고나서도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생기게 됩니다

마지막은 첫 번째 내용과 비슷합니다만, 의사가 될 사람으로서 생리학에서 꼭 기억하고 이해해야할 내용이 무엇인지 잘 선별하여 공부하고 기억하라입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겠지만, 모든 의과대학 과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방대한 모든 지식을 다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 이를 위해서는 수업을 주의 깊게 잘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도 시험기간이라 밤새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보이네요. 저는 생리학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의과대학 공부는 항상 얕고 넓게 아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다시 반복과 반복을 하면서 살을 붙여나가야 합니다

시험기간전에 일주일동안 한 과목을 한번 보았다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임상과목 공부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주 얕고 넓은 지식을 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시험범위 전체를 공부하고 (반드시 하루만에), 그 과정을 적어도 다섯 번 이상 반복을 하면서 조금씩 살을 붙여가야 하겠습니다 (반복할수록 오히려 속도가 느려지겠지요). 이러한 공부방법이 국시공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교육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의 경험담과 느끼는 점들이 의과대학생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계명의대 생리학교실 연구강사 박재형



입시공부 끝에 만난 대학생활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대학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지 하며 버텨내었던, 내 고등학교 생활이 허망할 정도로. 그 덕에 예과 때 맘껏 놀라는 본과 선배들의 말에 충실히 어영부영 예과 생활을 보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예과 2년동안 지내는 캠퍼스와 본과 4년 동안 캠퍼스가 지리적으로 달랐고, 그런 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커서 예과 때까지는 전혀 의대생이라는 자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장면까지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본과 캠퍼스 기숙사에 입사하며 이사를 한 후에야 내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자각과 중압감이 동시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입 후 처음 만났던 의대다운 학문은 모든 의대생들이 그렇듯이 골학이었다. 돌이켜보면 단순암기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 단순암기조차도 차후에 만날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하찮을 정도로 양이 작은 과목이었지만, 본과 수업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쏟아내고 하는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느끼며 배우게 된 과목이 생리학이었다. 생리학 또는 physiology, 이름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인 물리, physics랑 닮아있었고 과목 내용 자체도 그러했다. 의대 본과 1학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을 내 기준에서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은 형태에 대한 암기, 생화학은 핵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에 대한 암기(적어도 나에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라면 생리학은 세포, 기관,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는 과목이었다. 내가 생리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리학에서 배웠던 심장생리, 신장생리, 호흡생리 등등은 병리학, 더 나아가 임상과목 순환기학, 신장학 등등을 배울때 기반지식으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기생리 분야를 가장 즐겁게 공부했었는데, 전기화학평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막전압 방정식, 그러니까 Nernst 방정식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사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고 넘어가고 싶은데, "오지의 마법사"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짧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왼쪽항을 먼저 순서대로 살펴보면 몇가 이온인지 나타내는 z값, 1가 양이온 Na+라면 1, 2가 양이온 Ca2+라면 2, Cl-라면 -1 등으로 매겨진다. 전압 E은 세포막를 기준으로 양 쪽에 걸리게 되는 상대적인 전위차를 말하는데 이 세포막은 일종의 축전기같은 역할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전류가 직접적으로 흐르지 못하는 축전기나 인지질 이중막으로 이온이 잘 통과 못하는 세포막은 성격상 비슷하다. 패러데이상수 F는 단위가 C/mol로서 1몰의 전자가 가진 전하량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왼쪽항은 막 사이에 걸리는 전기적 에너지(전압x전하량)다. 

오른쪽항은 기체상수 R은 단위가 J/mol*k 이다. 1몰의 분자의 화학적 자유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온도 T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고, 세포막 안팎의 이온농도 C로 이루어진 항을 보면, 결국 농도차에 의해 생기는 세포막를 통과하려는 에너지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온의 전기에너지인 왼쪽항화학에너지인 오른쪽항평형에 이르는 지점을 찾는 방정식이다.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는 동시에 농도 구배에 영향받는 분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기화학적 에너지가 평형상태에 이른 상태의 평형전압, 또는 이온의 농도를 알 수 있다. 사실 아주 적은 농도의 이온 이동만으로 막전압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세포 안밖의 이온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평형전압을 알아내는데 쓰인다. 

이 방정식은 전기적 특성을 가진 이온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는 세포막을 만났을 때만 성립한다. 때문에 태초 생명 발생의 신비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초의 생명이 세포막으로 외부 환경과 구별짓고, 세포막 내부에 이온, 각종 단백질을 모아 생긴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시바다에서 최초로 생명체가 생성되려할때, 주변환경과 구별되는 경계를 세포막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포막 안에서는 유전체, 단백질 등을 구성했겠지. 그런데 이 물질들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음전하를 띠고 있다. 그래서 상보적인 양이온을 대량으로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하는데, 이게 K+ 이온이다. 그리고 세포막 바깥에는 원시바다에 풍부한 Na+ 이온과 Cl- 이온이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 상태의 세포는 K+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높고, Na+ 이온과 Cl-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낮다. 그 결과 안정상태의 세포의 막전압은 K+ 이온의 평형전압에 가깝게 된다. Nernst 방정식의 등장이다. Nernst 방정식에 세포 내의 K+ 농도 140mM, 세포 바깥 농도 5mM 을 넣으면 평형전압이 대충 -80mV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안정을 이룬 덕분에 세포는 삼투압으로 인해 세포막이 터지거나 하지 않고 외부환경과 분리된 내부환경을 이룰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불투과성인 Na+이온의 평형전압은 약 +40mV이상인데 (K+ 이온과 분포 양상이 반대이므로), 외부에 풍부한 Na+이온에 대해 투과성이 생기게 하면, 다른 말로 Na channel이 열리면 Na+ 이온이 세포 안쪽으로 유입되면서 세포의 막전압이 순간적으로 +40mV로 치솟게 된다. 이것은 전기생리나 신경생리에서 중요한 개념인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기전이다. 

여튼! Nernst 방정식은 생명 발생의 모습부터 활동전압이라는 개념까지 두루두루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자들이 행했던 노력들, 자연의 네가지 기본힘인 전기력, 중력, 강력, 약력을 통일하려 했던 그 노력들,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연상케 했다. 생명탄생의 신비 중 일부를 훔쳐본 마냥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님 말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마음 역시 수학,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생리학 수업 덕분이었다. 비록 공부를 더 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마음이 그렇게 쉽게 답을 내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뱀발. 요즘 신경과학의 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마음/뇌 문제는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서평을 쓰고 싶지만..읽는 속도가 영 느려서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달정도 읽어서 이제 180쪽 정도...OTL 아직 남은게 700여쪽...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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