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임상을 보면서 환자에게 유용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대 교수가 되는 법" 이라고 제목을 썼지만, 실제로 그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글은 아닙니다.
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과학자로서 임상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아직까지는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지만, 제가 이때까지 경험한 바에 근거하여 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생각임을 먼저 밝히고, 이 생각은 현재 쓴 시점에서의 생각이고 시간과 환경이 변하면서 바뀔 수도 있음을 전제하고 시작합니다.
블로그 질문 글이나 댓글로 진로 상담을 하는 글을 보면, "임상을 보면서 환자에게 유용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대 교수가 되는 것"을 꿈으로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다른 제목을 붙였다가, 이 걸 제목으로 붙여 보았습니다. 제목 자체가 거창하긴 하지만, 실제로 이 글은 그런 방법을 말하는 글이 아닙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그 모습(임상 교수)이 어떤지를 유추하고 그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포스팅의 목적입니다.
실제로 임상 의과학자로 진로를 잘 선택해서 academic position에서 성공을 한다면 그 것보다 더 멋진 길을 없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환자도 보고, 실험도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가설들을 환자에게 적용하고, 하나의 치료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는.. ^^ 생각만 해도 너무 뿌듯하고 아름답죠.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주 단순한 임상 데이터 조차도 "환자 모으기" 부터 "가설 설정-확인"까지 적어도 2-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중간,중간에 있는 좌절이란 상당하겠죠.
제일 힘든 부분은 제대로 된 "연구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자신의 시간에 할애해야만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임상에서 연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대부분 교수님)은 안식년에 해외에 가서 제대로 트레이닝 받았거나, 초반부터 펀드가 많아서 PhD 연구자를 실무진으로 고용했거나, 기초에 자기 남편, 혹은 부인, 아니면 아주 친한 동기나 선후배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였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아주 유수한 랩을 꾸려왔기 때문에, 항상 좋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는 말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라는 것은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자신의 가설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틀을 익히는 시간은 필연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틀은 절대 논문만을 읽어서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지식이라 생각합니다. 소위 말해서 "실험실에서 쫌 굴러봐야" 한다는 것이죠.
트레이닝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예를 하나 들어 보도록 하죠.
개인적으로는 실험을 하시는 도중에 negative 결과를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결코 한번에 성공하는 실험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험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좌절이였죠. 책에서 봤을 때는 당연히 한번에 되고, 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더군요. 아무리 익숙한 실험이라 할 지라도 시행착오는 필수적이고, negative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원인들을 찾다보면 결국 어디엔가는 원인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가장 긴 제 negative 결과에 대한 trouble shooting은 무려 2년 반이였습니다. (중간에 파일럿 실험 이후 이 것 저 것 시도해보다가 접은 기간이 있어서 딱 2년 반이다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처음 그 실험을 하고 나서 결실을 맺기까지 2년 반이 걸렸습니다.) 정말 오만가지 삽질을 하기도 했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다른 프로젝트와 병행하면서 해결해야했기에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그 문제만은 가지고 최소한 3개월 정도는 고민했었던 것 같습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게 풀렸구요.
그 일을 겪고난 후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결과가 안 나오더라도, 그 것이 왜 안나왔는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해 보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좌절하거나, 압박을 받으면 그 실험을 포기하거나, 황우석 박사 케이스가 등장하게 되겠죠.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는 분명 나중에 자신의 데이터를 해석하는데 큰 밑거름이 됩니다. 아울러, 학생들을 지도하거나 디스커션을 할때 아주 큰 자산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다면, 이런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다면, 연구원이 수행한 데이터가 "왜 내 생각대로 안 나오지" 라는 좌절에 빠지기 쉽고, 그 연구원 혹은 연구에 대한 불신이 커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자신이 몸으로 겪어 알고 가르치는 것이랑, 책으로만 알고 가르치는 것은 실제 연구에서 상당히 큰 차이를 가져 옵니다.
또 하나는 "비교 심리"입니다. 연구를 하면서 임상을 하는 "의사"라면 주변에 임상으로 돈을 버는 의사와 비교 심리가 상대적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다 큰 성인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크게 후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주변을 보았을 때, 이런 고민, 비교를 많이 하는 시기는 임상 펠로우 2-4년차 때 쯤이더군요.
풍요 속의 빈곤은 절대적 빈곤보다 항상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 빈곤(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성취감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누적되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한편으로 조금 더 편한 삶을 살고자하는(예를 들면 페이닥이나 임상만 하고 연구는 하지 않는) 욕구가 생각보다 많이 생깁니다.
가족도 지치고, 나도 지치면, 자신이 처음 가졌던 연구 의지를 계속 이어나가기가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원이나 필드로 나가는 삶이 연구와 비교해서 안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더 멋지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병원에 틀어 박혀서 주말에도 나와서 무언가 일을 하면서 위에 교수에게 쪼이는 삶과 주말마다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족과 온전히 48시간을 딴 생각 없이 즐기면서 행복하게 보내는 삶. 과연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요? 답은 자신의 가치관에 있겠죠.
나는 왜 밤늦게 가족들도 보지 못하면서 연구 데이터를 붙잡고 논문을 쓰고 있는가... 나는 왜 수술도 해야하고 논문도 써야 하고, 환자 케어도 해야 하는가... 친구들은 주말마다 가족들과 어디 놀러간다고 하는데, 나는 왜 주말마다 병원에 나와서 중한 환자를 봐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그들보다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 모두가 없는가... 이런 비교는 자신이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이를 견딜 수 없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 혹은 임상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따라서 무턱대고 자신의 꿈을 Naive하게 "임상을 보면서 환자에게 유용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대 교수가 되기"로 설정하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Naive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고민은 간접적으로 경험해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냥, 힘들지만 "나는 하겠다 혹은 할 수 있다"는 수준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현실에 도달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친듯이 많은 업무량과 아래 위에서 쏟아지는 스트레스. 그리고 가족들의 희생.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 새벽에도 나와서 일하는 상황. 주말에도 회진을 돌아야만 하는 의무감.
과연 이런 것을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서도,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다른 여유로운 삶을 내팽개치면서 까지 "연구를 할 수 있는가"는 절대 간접적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상을 하는 Scientist의 삶은 결코 비참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실패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실패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다르겠다고 보겠습니다.
제가 만난 진짜 과학자들은 (아직 저도 그 단계까지 못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특히나 MDPhD인 분들은 과 특성상 실용적인 가치 때문에 그 길에 근접하기가 상당히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사실 발견" 그 자체에 기뻐하더군요. 그 것이 주는 명예와 논문은 그들에게 결코 중요해 보이지 않더군요.
결과가 좋고, 멋지고 fancy해서 사회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으면 상대적인 풍요감으로 과학자로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것이 다는 아니더군요. 대외적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 즐기는 과학자들은 과정 자체를 즐기고, 결과 자체에 아주 큰 흥미를 가지더군요.
(굿닥터 소아외과 의사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죠.
문채원, 주원, 주상욱, 김민서, 천호진.. 대학병원내 임상 의사, 교수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성공한, 혹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임상의과학자 교수님들은 환자 자체에게 조금 더 나은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 대부분 만족하시더군요. 그에 따른 명예와 reputation은 자동적으로 따라 오거나, 거의 생각하시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이더군요. 물론 아닌 분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자신이 바라는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사시더군요.
academic하게 성공한 사람은 소신이 있더라 하는 것이 제 결론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신은 대부분 현실적인 목표나 금전적인 목표보다는 과학-의학적 재미나, 이타심이였던 것이 대부분이였습니다.
물론 그 안에 자신을 사랑하고, 더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을 순 있겠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소위 말하는 성공한 "과학자"의 틀이더군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희생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아울러 그런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에 크게 신경쓰지 않더군요. 성공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 역시 그 소신에 따른 삶을 살면 행복하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
간혹 보면, 브릭같은 곳에서 의대 교수 혹은 임상에 있는 교수라고 하면 무턱대고 까는 사람들이 있는데, 임상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멋지게 연구를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는 것은 그 결과이죠. 어떤 교수님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그런 랩을 가지고 있다는...결과. 과연 그 교수님이 그 결과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느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네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랩을 꾸릴 수 있는지. ^^ 그리고 임상을 하면서 레지던트 교육을 하면서, 연구까지 하면서 학회일을 보살피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