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xOculus입니다.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고민 많던 의대 시절 MDPhD.kr의 주옥 같은 글들을 읽으며 향후 진로에 대한 영감을 받았고, 먼저 이 길을 걸어가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품고 있기에, 여기에 글을 쓸 수 있음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필진으로 초대해주신 오지의 마법사님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첫 글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조금 부끄러우나, 제 배경을 이해하시면 앞으로 제가 쓰고자 하는 글들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대퇴골두 무혈관성 괴사라는 병을 진단 받고, 대퇴골의 일부분을 절단하고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은 후, 한 학기를 집에서 전신 기브스를 한 채 지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수학귀신'이라는 책을 접하고는 수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쭉 저의 장래희망은 수학자이었고, 대학교 정수론학 책을 구해서 읽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제 꿈은 에르되시 팔(Erdős Pál)이나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G. H. Hardy)와 같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확고했던 신념은 고등학교 시절 지루한 입시 수학 공부를 하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의대에 합격할 수 있는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 부모님의 설득 끝에 최종적으로 의대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다른 전공을 선택하였지만, 여전히 과학자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대학교 자기소개서에도 수학을 깊이 공부한 경험을 서술하였고, 의과학자로의 포부를 뚜렷히 밝혔습니다.
예과에 들어와 주로 화학과 수학 과목들을 재미있게 수강하였고,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의과학 과목들(생리학, 생화학, 해부학, 약리학 등) 또한 학구적인 교수님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즐겁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본과 3학년에 진입하면서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집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본과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의사가 되는 길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의학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의학자의 길'이란 각인이 새겨져 있었는데, 저는 그 길을 걸으며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내가 목표로 하는 의학자가 되어가는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본격적인 임상 교육을 받기 전에는 제 스스로를 의학자로서만 바라보았지, 임상가로서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과 2학년 2학기 때 임상 블록들을 배우면서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공부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니 저는 완전히 무방비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고체계와 임상가로서 필요한 사고체계는 다소 달랐습니다. 저는 연역법에 의존한 사고체계에 능했고, 임상 의학은 대부분 귀납적인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는 임상 문제를 마치 수학 문제 대하듯이 접근하였고, 이는 처절한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저에게 맞지 않았던 부분은, 임상의학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려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재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실천해내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행까지 제한이 많습니다. 저는 지식의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서, 과학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방황을 시작합니다. 임상 연구에 참여해보고, 생리학 실험실에 가서 실험도 해봅니다. 수학과로 전과하려고도 생각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유급도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든 의대를 재학하는 동안에는 한 달 이상의 자유 시간을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일단 졸업을 하고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무사히 국시에 합격하고 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이 다음 글에서는 제가 졸업을 한 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지렁이(C. elegans)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연구 기회를 얻었고, 어떤 식의 시행 착오를 걸쳐서,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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