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보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입시를 마치고, 수시든 정시든 의예과로 입학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고등학교 시절(혹은 재수시절)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학교에 합격한 것을 또는 의과대학에 합격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 곧 여러분들은 의대생이 됩니다.

 

물론 요즈음 재수를 해서 더 좋은 의대로 가고자 하는 드라이브가 있어서 수능 공부를 다시 한다거나 또는 수시를 다시 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희 때에 비해서 그런 이동이 조금 더 많이 늘어난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의대를 다니는 시절에는 재수로 다른 의대를 가고자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늘의 글은 재수를 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의예과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1) 조금 더 의예과 시절과 본과 시절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떠한 커리어가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2) 그에 따라 의예과 시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 강조하자면, 사실 이제부터 여러분의 인생에는 정답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의대 생활이 다른 과에 비해서  고등학교처럼 어느 정도 길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제부터 좀 더 주도적으로 본인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아마도 이 글을 보러 온 친구들은 아무래도 자기가 의예과에서 어떤 것을 해야 되는지 궁금해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보이고 적극적인 친구로 예상합니다. 그러니 이 글도 주체적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결국 요약하자면, 단기적으로 “의예과 2년”이라는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전체의 인생 또는 큰 흐름에서 의과대학 과정이 나에게 어떤 커리어를 줄지, 그리고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좀 더 파악하고, 큰 목표에 맞춰서, 의예과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조금 더 신경 쓰면 좋을 것 같아요.

 

노파심에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여러분들이 만나는 의예과 시절에 만나는 선배들은, 기껏 해봐야 1~2년 선배, 혹은 본과 선배(그래 봤자 본4) 또는 일부 아주 짤막한 시간으로 교수님 정도만 만나보기 때문에, 그들의 시각은 교수님을 제외하고는 단기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오늘의 글은, 좀 더 미래, 더 길게는 의대 입학 후 20년 정도의 커리어에 있는 사람이 하는 조언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기에 단기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알기 위해서 먼저 의대 졸업 후 전체적인 분포부터 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저는 의예과 시절, 본과 시절을 다 보내고, 결국은 현재 시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연구 생활을 진행하는 기초의학자로 (예전에는 일부 임상을 보는 대학교의 의사과학자 교수로서) 학교에 소속되어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커리어를 가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과대학의 통계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DALL.E가 그린, the illustration of a typical doctor in a medical setting, formatted in a 16:9 aspect ratio

첫 번째, 큰 틀에서 본다면 의대를 마치면 커리어 상, 아카데믹(일반적인 대학병원 혹은 의대 교수라 생각하면 됩니다), 로컬(개원가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이 보는 병원 의사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외 벤처캐피탈, 창업, 회사의 직원 이런 다양한 진로들이 요새는 있습니다. 다양한 진로는 여전히 아주 소수이고, 대부분은 아카데믹, 그리고 로컬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두 번째,결국 의대를 같이 들어온 제 주변 동기들은 99% 정도 임상을 하고 있습니다. 동기 중에 저만이 기초 의학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상의 커리어에서도, 임상 진료를 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대부분은 개원가(로컬)에 나가 있고 나머지 10-20% 내외가 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거의 이 비율은 비슷하거나, 약간 교수 비율이 높거나 낮은 정도로 분포되는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임상(대다수) 안에서, 개원가 로컬 의사(대다수), 임상교수 (10-20%), 임상이 아닌 기초교수(소수), 다양한 진로(극소수)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카데믹 안에 임상 교수기초 교수가 있고, 그 외 개원가 로컬과 다양한 분야 진로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의대를 졸업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개원가에 있는 로컬 의사들입니다. 로컬은 여러분들이나 가족들이 아프게 된다면, 제일 처음 찾아가는 병원의 의사를 생각하면 됩니다.

 

개원가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과가 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것입니다. 전문의 혹은 일반의로서 진료를 본다거나 등 다양한 형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료를 보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개원가에 있는 사람, 꼭 개원을 본인이 하지 않았더라도 페이닥으로 일을 하는 사람, 개원을 한 사람 등을 다 포함해서 “개원가 혹은 로컬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합니다.

 

개원가의 업무는 굉장히 직관적으로 본다면 “진료”가 다입니다. 연구를 한다거나 또는 개인의 취미생활을 한다거나 이러한 일로 자유로운 자신의 외부 혹은 여가 시간을 쓸 수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근무 시간의 90% 이상이 진료를 보는 데 할애를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대부분 연구에 큰 관심이 없고 진료를 보는 데 좀 더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라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연구를 한다기보다는, 어떤 특정 논문에 실린 최신 기법을 이해한다든지 또는 학회에 가서 다양한 발표를 듣는다든지 등 교육적인 차원에서 본인의 스킬을 연마해서 “진료”를 잘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어떤 전문 과목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진료의 양상은 다르겠지만 본인의 시간 대부분은 “진료”를 보는 데 사용하게 됩니다.

 

대부분 한 학년에 120-150명 정도 또는 작은 의대 같은 경우는 40명 정도라고 한다면 학교마다 성향의 차이는 조금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보수적으로 본다면 80% 정도 이상은 모두 개원가로 가게 됩니다. (아마도 90% 이상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대다수는 개원가로 본인의 커리어가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두 번째 다수를 차지하는 아카데믹으로 가는 길은 병원 내의 스탭 또는 교원, 즉 교수 요원이 되는 것입니다. 교수 요원은 통상적으로 큰 병원에서 특정 환자군을 보는 세부적인 전문의가 되거나 또는 기초 영역에서 기초의학 영역에서 연구를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임상 교수 혹은 기초 교수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DALL.E가 그린 임상 교수와 기초 교수 애니메이션

임상 교수인 경우에는 대부분의 시간에 환자들을 돌보고, 레지던트 전공의를 트레이닝하고,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서 기초 교수인 경우에는 기초의학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시간에서 임상을 보는 시간은 굉장히 적거나 아니면 거의 없이 연구만 수행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물론 이것은 교수마다 굉장히 다르긴 하지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한다면) 큰 틀에서 본인의 근무 시간을 100으로 본다면, 임상 교수인 경우에는 진료가 대략 한 50%~60%, 30% 정도가 연구, 그 외에 나머지 비율(10-20%)이 그 외의 일들(교육, 행정 등)로 이루어진다라고 생각하면 될 같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굉장히 임상에 훨씬 더 많이 포커스 되어서 진료를 90% 하는 사람도 있고, 논문에 훨씬 더 많이 포커스 되어서 70%까지 연구를 수행하는 임상 교수도 존재합니다.

 

그에 반해서 기초 교수인 경우에는 임상을 보는 사람인 경우에 대략 많아 봤자 10% 내외 또는 5일 중에 하루 정도, 그러니까 맥시멈 한 20% 정도(일주일에 4시간-8시간 정도)가 되는 것이 대부분 평균적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임상을 할 때는 일주일에 4시간 외래, 4시간 수술 혹은 8시간 수술로 주당 평균 8시간 내외로 임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임상을 아예 보지 않는 기초의사들(대다수의 기초교수)인 경우에는 사실상 100%의 시간을 연구에 할애한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기초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대학원 교육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행정이라든지, 학교 의과대학 자체에서 해야 되는 교육에도 조금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임상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을 100이라고 한다면 연구80% 교육에 대략 10%~15% 정도, 학교 행정5%~10%의 비율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사람에 따라서 교육에 훨씬 더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정가로서 학장님, 부학장, 센터장이라든지 이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연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겠지요. 그에 반해 행정과 교육을 최소한만 하고, 연구에만 90% 이상을 할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친구들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개원가 로컬아카데믹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연구”입니다.

 

개원가 의사가 진료, 병원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연구에 쏟는 시간이 거의 없는데 반해, 아카데믹으로 “교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은 “연구”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승부해야만 합니다. 이는 진료를 주로 보는 임상 교수도 예외는 아닙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임상 교수 또는 기초 교수 이 두 가지의 직업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연구의 위상이 상당히 크고, 그 연구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논문이 인생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굉장히 높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학교에 머무르는 교수들에게 연구 혹은 논문이 중요할까요?

 

논문이라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도구적 측면”에서 직접적으로 바라본다면, 결국은 본인이 승진을 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조교수에서 부교수, 부교수에서 교수 이렇게 높은 직급으로 승진을 하는데 논문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논문이 없으면 교수에서 잘리기도 합니다.

 

이는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기관이기도 하지만,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의 추세는 “교육”보다는 “연구”를 통해서 각 학교의 위상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런 연구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수준 높은 “논문"이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논문”을 생산하는 사람이 바로 “교수”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교수”에게 논문을 잘 생산하기 위해서 승진 요건으로 “논문” 요건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물론 승진에 논문-연구만 있는 것은 아니고, 교육, 지역 봉사 등이 있긴 하지만, “논문”이 가장 어려운 요건입니다)

 

즉, 어느 학교든지 간에 교수는 연구를 통해 나오는 “논문”이라는 객관적인 업적을 통해서 “내가 특정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또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었다, 이러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것을 평가하는 것이 내가 속한 직장인 “학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교수들은 연구를 통한 논문 생산이 단기적으로는 직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교수에게는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그에 반해 로컬은 진료 수익이 평가의 잣대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교수들이 승진만을 위해서 연구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영향력이라는 게 어쩌면 학교나 병원이 가진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가 교수들을 위해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어서, 좋은 교수들을 끌어당겨서 연구를 잘하게 만들면, 그 학교의 위상과 영향력이 높아지게 됩니다. 즉, 학교나 개인 교수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DALL.E,  an animated style illustration of researchers proudly standing on a winner's podium with their medals, each holding a pipette.

 

본인이 어떠한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서 수주할 수 있는 연구비의 규모라든지, 본인이 사회나 학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다릅니다. 더 크게 본다면, “세계적인 수준으로 내가 연구를 하느냐 또는 국내를 대상으로 연구를 하느냐 아니면은 그냥 자잘하게 본인의 분야에서만 연구를 하느냐” 하는 것들이 나의 학계 영향력을 다르게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에 따라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직업적 위상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많은 분들이 좋은 연구를 수행하고 싶어 합니다. 통상적으로 연구비의 수준에 따라서 연구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에, 좋은 연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좋은 연구를 통해서 경쟁이 심한 큰 연구비를 딸 수 있기 때문에, 연구를 굉장히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연구의 수준은 “논문”을 통해서 그래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를 예과생들 수준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그다음에 참가상 이런 식의 체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국가대표 그다음에 국가대표 상비군, 동네 조기축구회 수준 등이 있지요. 다양한 분야의 선수들이 있지만, 그들이 어떤 “객관적”인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서 연금이나 개인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연구도 비슷한 측면을 가진다고 보면 됩니다.

 

직접적인 경쟁이라는 운동과는 결이 다르지만, 어쨌든 연구 각각이 가지고 있는 수준과 임팩트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본인이 얼마만큼 연구비를 받을 수 있고, 그 연구비를 통해서 더 나은 연구를 해서 얼마만큼 큰 영향력과 새로운 발견,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는지 이러한 것들로 결정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를 잘하는 것은 교수들의 커리어에 상당히 중요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연구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인데, 이는 상당히 주관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서 많은 교수들이 위 두 가지의 “실질”적인 이유보다 연구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 때문에 연구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DALL.E가 그린  a group of joyful researchers celebrating their paper being featured on the cover of Nature

 

이러한 큰 틀에서, 이제 과연 의예과 2년을 어떻게, 그리고 본과 4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서 좀 더 조언을 해볼까요?

 

첫 번째로는 의예과 학생들 본인이 롱텀 커리어를 어떻게 쌓을 건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의예과 시절을 보내고 본과에 들어와 보니, 나름 놀았다고도 생각하지만 제대로 못 놀았다거나, 혹은 예과 시절을 조금 더 알차게 보냈으면 어떨까라는 아쉬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저도 그러했거든요. 미국으로 교환학생도 가고, 열심히 놀기도 했고, 공부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의 커리어로 본다면, 영어를 빼고는 좀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아요. 좀 더 깊게 연구 인턴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좀 더 기술적인 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컴퓨터 언어를 좀 더 빨리 접하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이건 지금의 제가 기초의학 교수로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에 본인이 로컬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완전히 다른 예과를 보내면 더 좋겠지요.

 

예컨대, 본인이 개원가로서 병원에 있는 직업인으로서 또는 개원을 하는 경영인으로 또는 의사로서 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제가 봤을 때 의예과 시절에 많은 에너지를 노는 데 써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아요.

 

논다는 것이 막 논다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상황에 처해도 보고, 자기랑 잘 안 맞는 사람과 맞춰가 보기도 하고 등등 말 그대로 본과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관계”를 경험해 보면서 대면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주인 로컬의 의사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즉, 획일화되지 않은 경험들을 많이 해보길 권장해요.

 

예를 들자면, 첫 번째의 조언에서 본인이 개원가 의사로 살아가겠다고 판단을 했다면, 경영학과의 수업을 듣는다든지,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등의 어떠한 형태로든지 본인이 개원가에서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것이지요.

 

만약에 이 당시에 조금 더 공격적인 친구들이 있다면 개원가의 진면목을 살펴보기 위해서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개원가의 생활을 일주일, 2주일 정도 또는 길게는 한 달 정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저의 경우에는 제 가족들 중에 의사들이 많기도 했고, 동문회와 동아리 등을 통해서 선배들을 직접 찾아뵙기도 하면서, 간접적으로 이런 경험들을 해보고는 로컬은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이런 참관을 환자들이 싫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문화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의대생이라면 민감한 진료(산부인과, 미용 등)를 제외하고는 아직은 관대한 경우가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개원가에는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이런 힘든 일을 내가 진짜 버틸 수 있는지 등을 직간접적으로 좀 경험하는 상황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본과에 들어가기 전 시간이 많은 의예과 시절에.

 

이런 경험을 왜 굳이 의예과, 특히 본과에서도 실습 참관 수업으로 할 수 있는데, 왜 의예과 시절에 해보라고 하냐면,

 

의예과 시절은

  1.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고민을 많이 할 수 있고
  2. 아직 투자한 시간이 많지 않은데 반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진로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시간적 여력이 됩니다.
  3. 그에 반해, 본과나 전문의를 마치고 나면, 본인이 임상에 투자한 시간들이 너무나도 많아져 버렸기 때문에, 매몰비용을 고려해서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그리고 본인이 고등학교 때 막연하게 생각한 의사의 삶과 실제 개원가의 삶을 날 것으로  보기에, 생각과는 다르거나, 또는 비슷하다면, 본인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져서, 추후 의대 생활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도 그러합니다.

세 번째로는 자신의 미래를 잘 모르겠다면, 무엇 하나에 미친 듯이 빠져 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컨대, 춤을 추고 싶다면, 대학 내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되어 보거나, 댄스 크루에 들어가서 다양한 커리어에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같이 공연을 해보는 것이지요. 게임을 하고 싶다면,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정말 즐기는 것을 넘어서, 최대한 잘하기 위해서 전략도 파보고, 과외도 받아가면서 게임을 해 보는 것이지요.

 

또는 과외를 한다면, 전설적인 과외선생이 되어 본다거나, 복수 전공을 통해서 수학을 해본다거나, 유튜브로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거나 등등. 무언가 공부 말고도 한 분야를 자신만의 노하우로 2년 동안 끝까지 파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부와는 조금 멀어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 끝까지 파보는 과정에서 각 분야가 가지고 있는 벽을 뚫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부 말고도 정말 한 분야에 탁월하게 자신의 시간을 녹여내어 전문가가 된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간”과 “전문인"에 대한 식견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 좀 더 독특한 형태의 대체 불가능한 의사가 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이 여러분을 성장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바쁜 본과나 전공의 시절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네 번째로는 연구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제안에서 좀 더 연구에 포커스를 두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냥 해본다 수준이 아니라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개원가로 갈지, 아니면 교원으로 갈지, 혹은 기초 연구자가 될지 임상가가 될지 모르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바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DALL.E가 그린  an illustration showing an individual deeply engrossed in their specific field or task, surrounded by the tools and signs of their dedicated work.

 

의대에서 연구를 잘하는 것을 고등학교 시절에 비유한다면, 딱 들어맞는다고는 볼 수 없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세특”과도 비슷합니다. 어떤 전문 과들은 논문이나 연구 영역을 내신보다 더 크게 평가하는 곳도 많기 때문에, 의예과 시절에 다양한 연구 경험을 쌓는 것은 추후 본과, 전공의 시절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연구라는 것이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의예과 시절입니다.

 

아울러, 연구를 잘하면 본인이 연구를 평생 하지 않고, 개원가로 간다고 하더라도, 좋은 전공과목의 전문의가 되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물론 전공의 과정은 종합적인 직업인을 뽑는 과정이기 때문에 한 가지로 평가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미국 의대생들이, 특히 경쟁이 아주 심한 “신경외과” 트레이닝의 경우에는 7년의 레지던트 과정에서 무려 2년을 연구를 수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외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2년 연구 수행을 위해서 본인의 연구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실제로도 연구를 잘하는 MDPhD 학생이나, 연구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지원하고 매치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경외과 전문의를 받고는 연구를 지속하는 비율, 더 정확하게는 교원으로 아카데믹으로 남는 비율이 2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즉, 연구 능력이 전공의 선택에서 자신의 미래인 개원가와는 큰 상관이 없지만, 지원 당시 자신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큰 병원에서는 연구 능력이 학업 성적과는 별도로 크게 평가받는 곳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6년의 의대 시절에 국한되어 MD.PhD.를 하지는 않고, 엑스트라로 짬을 내서 연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점점 많은 의과대학에서 이런 연구능력은 경쟁력 있는 지원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의예과 시절에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의예과 시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연구 커리어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의전원으로 들어와서 접한 의대생활...

첫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학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의학공부인 골학해부학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었죠.

제가 아는 분 중에 예과 2년 마친 후 골학 시작하고 힘들어서 약대로 가신 분이 계셨는데 합격 소식 들리자마자 골학에 대해 엄청나게 압박을 주셨었어요...


역시...  듣던대로 명불허전이였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시간도, 외울 시간도 없이 머리속에 넣는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였죠.

마치 온갖 산해진미를 씹지도 않고, 삼키지도 않고... 바로 Stomach으로 쑤셔 넣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그런 느낌... 익숙해서 만성이 되었지만... ^^;;;


학교마다 골학을 공부하는 방법이 다른데 우리 학교는 학생회에 주관 하에 모든 신입생이 골학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1년 선배가 튜터가 되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골학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본과 수업이 시작됩니다.


1학년 때는 대부분 기초 과목인 해부학, 태생학, 생화학, 생리학, 약리학, 면역학, 병리학과 미생물학 등을 배우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대생이라면 느끼셨겠지만... 본과 1~2학년이란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고, 매 과목마다 산처럼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1학년 수업의 꽃인 해부학... 이 꽃밭을 무사히 지나치기 위해서 필기 시험에 더불어...

 

심장이 쫄깃해지는 '땡시'가 있습니다. 


가운에 여분 볼펜 필수! 빨리 글씨를 쓰는 능력까지 평가 받는 시간이죠. 매일 반복되는 카데바 해부 실습[각주:1]에 수업에 공부까지... 1년 중 가장 빡빡한 수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나마 골학과 해부학은 보이는 것,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저로선 재미있는 과목이였습니다. 


그런데 해부학이 끝나고 생화학에 들어가니 정말 갈피를 못 잡겠더군요...


의학과에서 흔히 전공자라 일컫는 생물이나 화학 전공 관련 학부 출신이 아니었던 저는 새로운 공부에 Sudden attack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부 때 듣던 수업이 수학, 물리, 프로그래밍과 신호처리 관련 과목이 대다수 였는데, 생화학에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단위 까지 알아야 했고, 그렇게 작은 세포 안에 그렇게 많은 Signal이 있다는 사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학부 때 1년에 걸쳐 했다던 수업을 한달 안에 끝내니 해부학 때 쑤셔넣은 배움의 체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힘들더군요. 해부학 끝나고 선배들이 산 넘어 똥밭이라고 하더니 선배들이 했던 말들이 여실히 와 닿았습니다. 산은 힘들고.. 똥은 더럽듯...  전부 힘든 상황이지만 힘든 포인트가 조금씩 다르더군요.제일 충격이였던 건...


저보다 공부를 훨씬 안 하던 생명공학부 출신 친구가 저보다 더 빨리 습득하고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전공한 친구에게 교수님 강의를 한장 한장 넘기며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며 공부를 해 나갔습니다.

 <http://i3.kym-cdn.com/photos/images/original/000/250/567/0e6.jpg>


그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했던 말이 떠 오르는군요
"너무 조바심 내지마. 그래도 마치고 나면.. 의사가 될 수 있잖아." 라며... 서로를 위로했었던 말... ^^

근데 그 땐 공부를 할 수록 그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였죠...

전문가가 나와서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시간 관리를 잘 하는 방법을 예전엔 흘려 들었었는데 그 흔히들 말하는  공부 방법이란 것도 본과 1학년 들어와서야 적용해 볼만큼 저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아웅다웅 하였던 시간이였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겐 공부만큼이나 Sudden attack 이였던 학부때와는 다른 학교의 분위기!!!!

모두 함께 가자
!!!
 라는 느낌의 의대 분위기는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올라가기위한 노력은 아름다웠으나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었던 저에겐 모두 함께라는 미션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비전공자라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인식까지 박혀버렸는데 갈수록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 느낌인데다가 모두 같이 가자고 하며, 개인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 슬로건 덕분에 한 해 한 해 올라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절대 혼자할 수 없고 , 같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의대공부인 듯 합니다. 1학년은 나를 중심으로 일정을 짜는 것이아니라 학교의 일정에 나의 생활을 맞춘 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자고 마음 먹는 것이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1학년도 지나고 나니  뭐 그렇게 했었나 후회도 되고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도 남고 그렇네요.

그리고 지나고 보니 느껴지는 것은 학부 전공과 의대 성적은 상관관계가 크게 없다는 것! 학부 뿐 만아니라... 전적대 또한 학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 모두 말하죠... 의대오면 머리는 비슷하고 1등과 꼴찌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쌓이고 쌓이면... 큰것 같습니다만...^^;;)

비전공자들... 겁먹지 마십시오~!!! 지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체력과 지구력만이 1학년을 잘 버틸수 있는 Key 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 보기 위한 사이트! 

 

http://www.med-ed.virginia.edu/specialties/Home.cfm 를 소개합니다.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100가지 이상의 질문들로  자신에게 맞는 과의 리스트를 정리 줍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받다보면 나의 상황이나 사람들의 잣대에 휩쓸려 가기 쉬운데 의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적성에 맞는 과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벌써, 기나긴 의대 생활을 마치고, 인턴을 하고 있네요. ^^

  1. 카데바 - 사체 [본문으로]

 2014년 4월, 우여곡절 많았고 길기도 길었던 6년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생리학이라는 학문을 더 깊게 공부하며 평생 학문의 길을 걷기로 한지 벌써 두 달째가 되었습니다. 생리학 교실의 조교로서 본과 1학년 학생들을 실습과 수업시간에 자주 마주치게 되니 2010년의 제 본과 1학년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예과 때 동아리 행사나 동문회 행사등을 통해 만난 본과 선배님들은 항상 저희를 겁주셨었습니다.


  본과 생활은 '상상 그 이상' 일 것이라고.


  해부할 때 계속 맡게 될 포르말린 냄새가 매우 독하기도 할 뿐더러, 피부, 머리결도 다 망가질테니 그냥 포기하라고.


  공부량의 신세계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부학으로 본과 1학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들이 말씀하시던 것보단 할 만 했습니다.

  사실 해부학이 사체를 가지고 하는 수업이다 보니,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포르말린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해부하면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 말고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기증자분께 정말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가자고 다짐하고 열심히 실습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그 전리품으로 푸석해진 머리와 피부를 얻었고, 결국 해부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열심히 길렀었던 제 머리는 단발로 바뀌었죠...^^

 

  생리학, 생화학 등을 함께 배우고 공부하면서 처음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잠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밤을 못 샜습니다. 밤을 새면 다음 날에 좀비가 되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서 밤을 새지 않고 시험을 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뭐 제가 벼락치기 파였던 것도 있긴 하지만, 밤을 새지 않으면 시험 범위를 한번이라도 다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시험에 임하는 학생으로서 시험범위 만큼은 한번이라도 다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들과 열람실에서 서로 잠을 깨워주며 편의점을 들락날락 했던 기억이 납니다.

 

 

 

 

  5월 정도였던 것 같네요. 

  지금은 다 져 버린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랬죠. 저희 학교 캠퍼스도 나름 예쁘기로 정평이 난 학교인지라, 캠퍼스 곳곳에 참 사진 찍을 맛 나는 포토존이 많았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만큼 저와 제 친구들의 기분도 꽃가루처럼 둥둥 공중에 떠다녔었습니다만 시험과 실습에 치여 삼십분 정도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는 캠퍼스 나들이도 결국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해부학 실습과 수업이 모두 끝나고 기분 전환으로 같은 학번 동기들 다 같이 소풍 겸 해서 캠퍼스 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서 나름 신나게 봄을 만끽하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데, 다른 과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의대생들인가봐." 

 

 ????? 

 

  아니 우리가 얼굴이나 옷에 써붙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나 놀래서 주변의 동기들과 저를 돌아보았죠. 하... 그 이유를 알 만했습니다. 캠퍼스의 다른 사람들은 파스텔톤, 밝은 색의 옷들을 상큼하게 입고 있는데, 우리 동기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검은 색 옷인데다가, 옷 두께조차도 남달랐던 거죠.


한창 따뜻한 봄날씨인데도 추운 해부학 실습실과 강의실을 왔다갔다 하며 건물 안에서만 살다 보니 4-5월까지도 날씨 감각 없이 두꺼운 겨울옷을 입었던 겁니다. 아 그때 의대 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과 함께한 1쿼터와 함께 봄이 지나가고 2쿼터가 시작되어 3, 4 쿼터까지 면역학, 미생물학, 약리학 등 수많은 것을 배우면서 정말로 많은 양들을 머리에 구겨 넣었습니다.


오죽하면 "눈에 바른다"는 표현을 쓸까요. 정말로 눈에 한번 바르고 시험장 들어가서 그대로 시험지에 쓰고는 머리를 비우고 나오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원래 단순 암기에 약해서 이해를 통해 외우는 걸 최대한으로 줄여 공부하는 걸 제 방식으로 삼았었는데, 의대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더군요.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으니 하나하나 이해 하고 넘어가려면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엔 머리에 그 많은 지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도 없이 구겨넣을수밖에 없었던 거죠.


  처음에는 공부하면서 한 교수님께 최대한 이해해보겠다고 질문하러 가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나하나 파려다가는 성적 안 나온다고 그냥 외우라고 하시는 걸 듣고는 제 공부방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본과 1학년은 즐거웠습니다.^^

 원래 힘들수록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는 관계가 끈끈해지는 법이죠. 마치 고3때처럼요. 거의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투덜거리면서 동기들과 훨씬 더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열심히 해야 하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년에 얼마 안 되는 '비'시험기간에는 책표지도 펴 보지 않고 열심히 놀았기 때문에 나름 즐거운 기억도 많습니다. 진급만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신나게 놀 수 있었죠.


  비록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대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라기 보다는 의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라는 느낌이 드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로 '학문'의 길에 들어서려고 하는 지금에 와서는 '의학'을 하기 위한 인체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의 절대량이 많으니(비록 암기를 통한 지식이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싶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힘든 만큼 즐거웠던 나의 본과 1학년.  23살의 제 청춘이 문득 쪼끔은 그립네요.

  

   

 

  

입시공부 끝에 만난 대학생활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대학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지 하며 버텨내었던, 내 고등학교 생활이 허망할 정도로. 그 덕에 예과 때 맘껏 놀라는 본과 선배들의 말에 충실히 어영부영 예과 생활을 보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예과 2년동안 지내는 캠퍼스와 본과 4년 동안 캠퍼스가 지리적으로 달랐고, 그런 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커서 예과 때까지는 전혀 의대생이라는 자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장면까지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본과 캠퍼스 기숙사에 입사하며 이사를 한 후에야 내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자각과 중압감이 동시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입 후 처음 만났던 의대다운 학문은 모든 의대생들이 그렇듯이 골학이었다. 돌이켜보면 단순암기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 단순암기조차도 차후에 만날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하찮을 정도로 양이 작은 과목이었지만, 본과 수업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쏟아내고 하는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느끼며 배우게 된 과목이 생리학이었다. 생리학 또는 physiology, 이름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인 물리, physics랑 닮아있었고 과목 내용 자체도 그러했다. 의대 본과 1학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을 내 기준에서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은 형태에 대한 암기, 생화학은 핵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에 대한 암기(적어도 나에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라면 생리학은 세포, 기관,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는 과목이었다. 내가 생리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리학에서 배웠던 심장생리, 신장생리, 호흡생리 등등은 병리학, 더 나아가 임상과목 순환기학, 신장학 등등을 배울때 기반지식으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기생리 분야를 가장 즐겁게 공부했었는데, 전기화학평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막전압 방정식, 그러니까 Nernst 방정식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사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고 넘어가고 싶은데, "오지의 마법사"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짧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왼쪽항을 먼저 순서대로 살펴보면 몇가 이온인지 나타내는 z값, 1가 양이온 Na+라면 1, 2가 양이온 Ca2+라면 2, Cl-라면 -1 등으로 매겨진다. 전압 E은 세포막를 기준으로 양 쪽에 걸리게 되는 상대적인 전위차를 말하는데 이 세포막은 일종의 축전기같은 역할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전류가 직접적으로 흐르지 못하는 축전기나 인지질 이중막으로 이온이 잘 통과 못하는 세포막은 성격상 비슷하다. 패러데이상수 F는 단위가 C/mol로서 1몰의 전자가 가진 전하량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왼쪽항은 막 사이에 걸리는 전기적 에너지(전압x전하량)다. 

오른쪽항은 기체상수 R은 단위가 J/mol*k 이다. 1몰의 분자의 화학적 자유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온도 T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고, 세포막 안팎의 이온농도 C로 이루어진 항을 보면, 결국 농도차에 의해 생기는 세포막를 통과하려는 에너지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온의 전기에너지인 왼쪽항화학에너지인 오른쪽항평형에 이르는 지점을 찾는 방정식이다.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는 동시에 농도 구배에 영향받는 분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기화학적 에너지가 평형상태에 이른 상태의 평형전압, 또는 이온의 농도를 알 수 있다. 사실 아주 적은 농도의 이온 이동만으로 막전압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세포 안밖의 이온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평형전압을 알아내는데 쓰인다. 

이 방정식은 전기적 특성을 가진 이온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는 세포막을 만났을 때만 성립한다. 때문에 태초 생명 발생의 신비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초의 생명이 세포막으로 외부 환경과 구별짓고, 세포막 내부에 이온, 각종 단백질을 모아 생긴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시바다에서 최초로 생명체가 생성되려할때, 주변환경과 구별되는 경계를 세포막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포막 안에서는 유전체, 단백질 등을 구성했겠지. 그런데 이 물질들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음전하를 띠고 있다. 그래서 상보적인 양이온을 대량으로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하는데, 이게 K+ 이온이다. 그리고 세포막 바깥에는 원시바다에 풍부한 Na+ 이온과 Cl- 이온이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 상태의 세포는 K+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높고, Na+ 이온과 Cl-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낮다. 그 결과 안정상태의 세포의 막전압은 K+ 이온의 평형전압에 가깝게 된다. Nernst 방정식의 등장이다. Nernst 방정식에 세포 내의 K+ 농도 140mM, 세포 바깥 농도 5mM 을 넣으면 평형전압이 대충 -80mV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안정을 이룬 덕분에 세포는 삼투압으로 인해 세포막이 터지거나 하지 않고 외부환경과 분리된 내부환경을 이룰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불투과성인 Na+이온의 평형전압은 약 +40mV이상인데 (K+ 이온과 분포 양상이 반대이므로), 외부에 풍부한 Na+이온에 대해 투과성이 생기게 하면, 다른 말로 Na channel이 열리면 Na+ 이온이 세포 안쪽으로 유입되면서 세포의 막전압이 순간적으로 +40mV로 치솟게 된다. 이것은 전기생리나 신경생리에서 중요한 개념인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기전이다. 

여튼! Nernst 방정식은 생명 발생의 모습부터 활동전압이라는 개념까지 두루두루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자들이 행했던 노력들, 자연의 네가지 기본힘인 전기력, 중력, 강력, 약력을 통일하려 했던 그 노력들,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연상케 했다. 생명탄생의 신비 중 일부를 훔쳐본 마냥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님 말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마음 역시 수학,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생리학 수업 덕분이었다. 비록 공부를 더 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마음이 그렇게 쉽게 답을 내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뱀발. 요즘 신경과학의 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마음/뇌 문제는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서평을 쓰고 싶지만..읽는 속도가 영 느려서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달정도 읽어서 이제 180쪽 정도...OTL 아직 남은게 700여쪽...으하하하!


본과 1학년.

나의 본과 1학년은 1월부터 시작되었다.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의대 선배나 의대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골학OT[각주:1], 동아리에서 해주는 골학OT을 들으면서 예과 2학년 겨울방학을 보냈다. 예과 때 여유롭게 지냈던 다른 방학들과는 달리, 겨울 방학은 본과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언가 이제는 더이상 놀 수 없겠다라는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방학을 보냈던 것 같다. 동기들도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방학 때, 탐구 생활을 살펴보면서 방학 숙제를 하는 것처럼, 골학책(메뉴얼)은 본과를 곧 맞이할 예과 2학년들에게는 "탐구 생활" 책과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은 잠자리나 소금쟁이 대신 다양한 뼈 이름과 신경 다발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뿐. 탐구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골학책을 살펴 보면, 진짜 탐구할 것이 많긴 하다.

처음에는 이름도 외우기 힘들었다. 수많은 라틴어들과 정체모를 단어들. 해부학 용어와 짬뽕되어 있으면서도 알듯말듯한 단어들. 영어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에게도 의학 용어새로운 언어일 뿐이었다. 분명 영어로 쓰여져 있지만,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들을 접하면서 의학 용어를 깨달아 갔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골학은 해부학을 필두로 하는 의대 본과과정을 배우기 이전에 잠시 맛보는 시식 음식 같은 느낌이 있다. 다만, 맛보고 나서 맛이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인 시식 음식과는 달리, 본과 공부는 꾸역꾸역 집어 넣어야만 했다. 먹고 토할지언정 쏟아지는 정보를 온 몸으로 받아내어야만 했다.



골학은 말그대로 골학이다. 뼈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뼈들이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뼈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주변에 어떤 구조물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다. 골학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긴 하지만, 단순히 뼈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의대에서 쓰는 용어들을 배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학 용어의 틀은 대부분 이 때 완성되었던 것 같다.

아울러, 뼈는 어디까지나 인체의 기둥이 될 뿐. 그 외적인 부분, 예컨대, 뼈 주변에 붙은 근육들, 혈관계, 신경계 그리고 뼈가 담고 있는 내장기관, 뇌 등에 대해서도 간략히 배운다. "간략히" 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전혀 간략하지 않다. 골학을 공부하고 나면, 뼈에 대해서 다양하게 아는 것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피와 살이 되는 의학 지식을 배운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의대 학점에서 골학이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적다. 굳이 학점으로 따지면 0.1학점 혹은 0.5학점 내외일 것이고, 해부학에서도 차지하는 위상도 낮다. 하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골학을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이 해부학을 "초열심히"하는 현상은 그리 관찰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두쪽나지도 않는다. 골학은 어디까지나 골학이다. 자신이 의학에 처음 발딛는 학문이라고 본다면, 그 것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참고로, 난 골학때 선배가 가지고 있었던 두개골(skull)과 함께 2주를 살았었다. 지금은 인조 뼈로 공부하는 것 같던데, 당시만 해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사람 뼈를 전통처럼 가지고 있는 동아리나 고교 동문이 있었다. Skull 파트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골학 공부를 한창할 당시의 내 책상위에는 항상 두개골이 있었다. 누구 것인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책상 위에 Skull과 함께 Femur(장단지뼈)가 아주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Skull을 이리 돌리고 저리돌리면서 공부했지만, 내 동생은 항상 무서워 했다. 그리고 내가 없었던 하루, 그 skull 때문에, 동생은 혼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이 오기 전까지 하루 종일 밖을 배회했다. 미안하다 동생아. 지금에서야 사과한다.

상상해보라. 방 안에는 스탠드만 켜져 있고, 그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두개골 뼈를 들고 유심히 살펴 보고 있다. 책상 위에는 아주 긴 사람의 장단지 뼈가 놓여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스탠드만 켜져있는데, 방문이 아주 살짝 열려있고 당신이 그 걸 목격한다면. 빨리 도망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상황은 스릴러 속에서 범인을 보여줄 때 쓰는 장면 아닌가? "어떤 의대생이 방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면 당신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두개골에는 참 많은 구조물들이 있다. 구멍도 많고,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많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런 독특한 구조물 하나 하나마다 이름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사실은  그 이름을 무조건 다 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더 신기한 사실은 결국은 동기들 대부분이 그 구조물들의 이름을 다 외워서 서로 그 구조물에 대해서 농담을 하면서 논다는 사실이다. 너는 patella bone가 있네 없네, Zygomatic bone이 크네 작네... 하면서. 설마... 하겠지만, 본과 1학년이라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뼈를 가지고 보면서 모든 구조물은 나름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울러 어떤 사소한 구조물도 그냥 생긴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것이 생겨야할 조건을 수반한다. 예컨대, 뼈에 어렴풋이 발견되는 그루브(골-골짜기)이 있다. 대부분의 뼈에 있는 그루브는 정맥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자발적으로 피를 보낼 수 없는 정맥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뼈에 이런 중요 그루브들이 있다. 골학때는 이 그루브 이름을 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 중에 하나는 그 그루브가 왜 중요한지, 이유 역시 외워야 된다. 그냥 뭐든 말하면 외워야 한다. 외우다 보면 이해가 가더라... 누구는 그루브에 맞추어 리듬감 있게 춤을 추겠지만, 우리는 이 그루브에 맞추어 특정 정맥을 외워야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구조물에 이유가 있고, 나름의 설명도 있다. 충분히 재미도 있다. 설명을 곁들여 공부하면 아주 즐겁다. 하지만, 당신이 공부해야할 양은 "이해를 하고, 설명도 듣고, 교과서도 읽으면서 하기"에는 너무나도 양이 많다. 15시간을 공부해야만 모든 것을 한번 읽고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10시간밖에 없고, 그 시간안에 무조건 외워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의대 공부의 한계점이라면 한계랄까. 나도 글 읽을 줄 알고, 이해할 줄 알고, 설명을 곁들이면서 공부할 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의대, 병원... 모든 일들이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하루 24시간 동안 30시간 분량의 일을 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의대에서는 자연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겨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족보만 보고 공부하기에도 빡빡하다. 물론 "이런 것이 효율적이냐" 라고 한다면, 분명히 이론이 난무하고, 난상 토론이 될 것이다.  

그렇게 골학과 해부학이 지나가면, 벌써 봄이 끝나버린다. 남들은 벚꽃놀이도 가고, 봄의 따뜻한 온기를 즐기지만, 해부학 책만 파고 있는 의대생들에게는 봄이 없는 듯하다. 아니다. 가끔씩 이 힘든 상황에서 봄을 즐기고자 하는 외계인 무리인 "캠퍼스 커플"[각주:2]이 탄생하기도 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이 피어나는데 하물며 해부학 수업쯤이야.

  1. '골학'은 해부학의 입문과정으로, 뼈(골,bone)의 구조물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목이다. 선배들로부터 이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받곤 한다. [본문으로]
  2. 엄밀히 말하면 캠퍼스 커플(CC:Campus couple)이라기보다는 클래스 커플(Class couple)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본문으로]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과생활을 되짚어보는 일은 나에게는 정말 힘들었다. 특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했던 1학년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입학하기 전 나는 의학도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떠한 것을 공부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도 없겠다 싶다.) 사돈의 팔촌을 뒤져도 의사나 의료계 근처에서라도 일하는 사람도 없었고, 게다가 나는 문과계열 출신이다 보니 건너건너 아는 친구도 없었다

닥터몽 의대가다

(닥터 몽 의대 가다 프로그램 정도 수준만 되어도 본과 1학년 10번은 하겠다.출처 : (C) CJ E&M  All rights reserved.)


  몇 년 전 케이블 TV에서 지금은 튼튼한 임플란트를 장착하고 두문불출하고 있는 MC몽이 의대생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다. (실제 내가 경험해보니 그것은 실제 체험강도의 한 1/10 정도 되는 듯하다.) 내가 아는 의학도들의 생활은 TV에서 보는 그런 것들이 전부였고, 일반 대학생보다 조금 많이 힘들고 많이 공부해야 하는 학생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한 것 그 이상이 아닌 상상도 못한 생활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얼른 대학생이 되어서 자유를 만끽하고 살아야지

고등학교 때 수능시험과 내신의 압박을 받으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실제로 대학은 중고생들보다 훨씬 자유로운 곳일 수 있다. 우선 성인이 되어 많은 제약이 없어지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업의 압박,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의 압박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시간표도 내 마음대로 짜고, 수업시간도 많지도 않고, 오후 늦게까지 수업들을 일도 별로 없고, 야간 자율학습도 없고, 학교가 끝나면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방학도 길고, 배우고 싶은 다른 것들도 배우고이런 것을 상상했다면 실제의 대학생활에서도 가능하다. 물론 학문에 뜻이 있는 자는 여전히 도서관에서 하루 20시간을 보낼 것이고, 최근 취업 문이 좁아져서 많은 청춘들이 취업준비를 위해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대학생활의 본질은 자율성에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진학한 곳이 의과대학이라면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난다. 의대 본과생활은 당신이 성인이 되었다는 것과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3생활과 다를 것이 없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오히려 외워야 할 것, 공부할 것은 더 많아지고, 더 어려워진다. 더불어서 방학도 훨씬 짧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의대 본과 1학년을 상상한다면, 실제 생활은 어떤 것을 상상하든, 상상하는 것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서론은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본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본과 수업은 정해진 학습목표에 근거하여 공통적인 과목들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커리큘럼은 학교마다 다르므로 필자가 다닌 학교만을 기준으로 서술하겠다.


"수강신청 전쟁"은 어느 별 이야기?

의대가 아닌 대학교 학부강의와 가장 큰 차이점은 첫째, 내가 시간표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수업 구성에 있어서 자율성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보통 학부 수업은 졸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학기 수와(보통 8학기), 학점 수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시간표를 구성한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들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흥미 있는 과목 위주로 구성할 수도 있고, 관심도에 따라 특정 계열 수업은 더 듣거나 덜 들을 수도 있으며, 다른 과의 수업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 나아가서 복수전공부전공도 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시간표도 짜기 나름이라 3파 주4 하는 식으로 수업이 없는 날을 만들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학생들이 선호하는 인기강의, 인기교수, 인기강사들도 등장하고 수강신청 전쟁이라는 것이 매 학기 연례행사처럼 펼쳐진다.

동영상 전체보기 클릭

<사진설명 : 2013년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강신청 전쟁 동영상 한장면, 의대생에게는 별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나 의과대학의 본과수업은 이런 면에서의 자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처럼 시간표는 이미 정해져 있고 실습장비가 필요한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학생들은 그저 강의실에 앉아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시간마다 교수님이 바뀌어서 들어오신다. 말이 강의실이지 교실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하겠다

개설되는 모든 과목이 전공필수이므로 학생들은 좋든 싫든 모든 과목을 들어야 한다. 강의선택이 불가능하니, 인기강의와 비인기강의도 원칙상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수강신청 변경기간이나 수강신청 취소기간 같은 것도 없다 (학교에 따라서 간혹 임상실습 과목 중 일부를 선택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다. ) 완전 중고등학교네?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중고등학교는 그래도 1년마다 반이 바뀌어서 새로운 얼굴들과 수업을 듣고 함께 어울리지만, 본과생활은 졸업할 때까지 반도 안 바뀌고 같은 얼굴들과 계속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 그것도 4년 이상! (신중히 CC[각주:1]를 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매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전공 필수과목이나 인기과목들을 신청하기 위해 캠퍼스마다 벌어지는 수강신청 전쟁 같은 것은 의대에 존재하지 않는다각종 노하우와 심지어는 암거래도 오간다는 설이 들리는 수강신청 전쟁, 그것은 어느 별 이야기인가요?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 재수강? No, 유급

정해진 시간표라는 점 때문에 또 한가지 차이점이 발생하는데 과목 재수강과 유급에 관한 것이다. 의대가 아닌 학부에서는 F가 나온 과목이나, 혹은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과목이 있으면 다음 학년에서 시간표를 조정해서 그 과목만 재수강을 할 수 있다. 아니면 듣다가 영 아닌 과목은 수강 포기 기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 계절학기를 통해 학점을 보충할 수도 있다. 즉, 몇 개의 과목에서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지 못하거나 F를 받았다고 해도 8학기 내에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생기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학점을 일찍 채운 경우 7학기, 빠르게는 6학기만에 학부과정을 마치는 조기졸업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대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불가능하다. 학부에서 졸업학기의 변동 없이 재수강과 학점 올리기가 가능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시간표를 학생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년 8학기 동안 내가 신청할 수 있는 학점이 졸업에 필요한 학점보다 많으므로, 몇 개의 과목을 다시 들어서 일부 학점을 포기해도 필수 학점을 채울 수 있으며, 어느 학년에 무슨 과목을 들어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이 일반 대학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대에서는 필요한 필수 학점으로만 수업 시간표가 짜여 있다. (참고로 이것만 하기도 버겁다.) 따라서, 시간표를 한 번 놓쳐버리면, 다시 수업을 들을 기회는 이론적으로 다음해나 가능한데 학년을 진급하면, 그 수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재수강과는 다른 유급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출처 : 엔하위키미러 유급 관련 정의 클릭! 

잘 안 와닿는다면, 고등학교를 생각해보자.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고등학교는 시간표를 학생이 정할 수 없다. 내가 2학년 때 수학 과목의 점수를 60점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내 성적은 종료 된 것이지, 3학년에 올라가서 3학년 수업을 모두 들으면서, 동시간에 진행되는 2학년 수학 수업을 다시 들을 수는 없다. 정 듣고 싶다면 2학년 수학과목 시간에 2학년 교실을 가서 강의를 듣고, 그 시간에 진행되는 3학년 한 과목을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고등학교라는 단어를 의대 본과로 바꾸면 정답이다. 한마디로 제 때 학교를 다니면서 재수강은 불가능하다. 고등학교처럼 1학년 때만 들어야 하는 과목, 2학년 때만 들어야 하는 과목이 정해져 있고, 시간표는 5 빠짐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받은 성적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때 잘해야 한다. 한 번 흘러간 성적은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의대 성적표의 특징이기도 하다. 

유급은 다음 학년으로 제 때 진학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의대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흥미 있으신 분들을 링크한 엔하위키에서 '유급'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출석미달로 같은 학년을 다음 해에 또 다니는 학생들을 속된 말로 

‘1년 꿇었다’ 

라고 표현했는데 비슷한 개념이다. 대신 의과대학에서는 출석미달뿐만 아니라 성적미달로 다음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유급이 된다. 내가 다닌 학교의 경우는 해당학기 성적이 평점 4.5만점에 2,0 미만(평락)이거나 한과목이라도 F(과락)를 받은 학생이 유급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그대가 1학년 1학기에 한 과목을 F를 받고, 나머지 과목들을 모두 A를 받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대는 아무리 다른 과목들을 잘했어도, F를 받은 그 한 과목 때문에 2학년에 진급하지 못한다. 같이 입학한 동기들이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그대는 다시 1학년이 되어야만 하고, 결과적으로 학교를 1년 더 다녀야만 한다. (물론 등록금도 다시 내야겠지.)  만일, 그대가 의대 본과생이 아닌 다른 학부생 이었다면 다음해에 2학년에 올라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고 4학년 되기 전까지 아무 학기에나 그 F받은 과목을 다시 재수강하면 될 텐데 말이다

여기서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학교생활은 무관심하고 음주가무에 빠지거나 정말 공부를 못하는 사람만이 유급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적이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같이 공부를 열심히 했어도 줄서기처럼 1등부터 꼴찌까지 매겨질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학교마다 매해 유급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있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정해진 기준을 그 학기에만 채우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본과 1학년 때 우리 동기들 중에서 10% 2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유급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 모두 대부분의 과목을 B이상의 성적을 받았는데 특정 한 과목만 F를 받아서였다. 그들 모두 결석 없이 매일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리고 해당과목은 늘 10%이상 학생들에게 F를 할당하는 과목이었다. 성적표가 나오자 학년 전체가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그 학생들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노라고 제발 D-라도 달라고 사정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생은 길기 때문에 1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막상 재학중인 학생들에게는 비싼 등록금을 더 내야 하는 문제 등과 맞물려서 큰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유급 문제이다 

이게 의대생들이 시험에 쪼여가며 빡시게 공부하는 본질적인 이유다. 한 과목이라도 GG치면 1년을 다시해야한다는 부담감

 

별나라에서 사는 본과생들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오는 외계인인 도민준(김수현)도 본과 1학년을 유급 걱정하면서 덜덜 떨면서 공부하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의과대학이 다른 과들과 함께 종합대학의 일부로 소속되어 있지만, 이렇게 특징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합동아리 활동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과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기도 힘들고, 여러분야의 학문과 활동을 접할 기회도 적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배타적인 캠퍼스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현재 문제가 되는 의사라는 집단과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을 가져오는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본과 1학년을 되짚어 본다는 것이 너무 장황한 이야기로 진행됐다. 그저 하고싶은 말은 본과생활은 기본적인 대학 시스템과 다른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 때문에, 학업 자체뿐만 아니라 외적인 것들까지 여러 가지 힘든 기억이 많은 시절이었다. 보통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다시 말하지만 본과 1학년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단호하게 

“No, thank you.”

되시겠다

  만일 그대의 친구가 현재 의과대학이나 의전원 본과에 재학중이라면? 술 한잔 마시자고 부르는데 안 나온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말자. 그 친구도 나오고 싶어서, 온몸이 들썩거리지만 두꺼운 책과 강의자료에 파묻혀서 다음학년에 무사진급하기 위해 속을 태우고 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의대는 개설된 강의를 모두 들어야 하는 관계로 다른 학부보다 학기는 길고 방학은 짧다. 평균 한달이나 될까?  그나마 그 방학동안 동아리며 봉사활동이며 학과 생활로 치인다. 대학생들의 방학기간에 그 친구는 방학이 아닐 수도 있다!

 

P.S. 

의과대학 본과의 학제 시스템에 대해 예상보다 길게 설명했는데, 그 이유는 얼마 전 이 MDPHD.kr 블로그의 방명록에서 누군가가 의대 진학 후 생물학을 복수전공을 하려고 한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의대의 학제를 일반적인 다른 학부의 학제와 같다고 알고 있었다면 그러한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의과대학은 독립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타과 수업을 가서 듣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복수전공까지 하기 위해 다른 학과의 강의를 다량으로 이수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각주:2]


  1. CC는 일반적으로 Campus Couple을 뜻하나, 의대에서는 엄밀한 의미로Class Couple을 의미한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본문으로]
  2. 영국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의대 과정 중에 다른 과목을 부전공하는... 여기 필진 중 한명인 EveningTea가 있는 영국 Wellcome Trust sanger 연구소에서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수학을 부전공한 교수가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의과학자 팀블로그 MDPhD.kr 편집장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의과대학생, 그리고 의사들에게 본과 1학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대 생활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이기도 하죠. 아울러, 본과 1학년때 대부분은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 미생물학, 병리학 등 현대 의학의 근거가 되는 "기초 의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됩니다.


한창 놀았던 예과 2년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삶. 빡빡한 시간 일정과 시험에 대한 압박은 본과 1학년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하지만,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견뎌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당시에 배웠던 지식들이 본과 2학년, 3학년, 4학년 지식의 밑거름이 되고, 저희와 같은 길을 걷는 의과학자들에게는 더욱 더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대부분의 필진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조교로, 포닥으로, 교수로 본과 1학년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 느꼈던 지식들과 현재 느끼는 지식이 주는 느낌이 다릅니다. 고통보다는 추억이 더 많이 남겨진 시점에서 바라보는 본과 1학년 생활. 영화에서 삽입되는 회고 장면처럼, 각자가 현재의 시점에서 본과 1학년 생활을 생각하면서, 글 연재를 구상하게 되었고, 5월부터 [우리들은 본과 1학년]이라는 시리즈물로 각각의 필진이 자신의 본과 1학년 경험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본과 1학년 해부학책들입니다. 대부분의 의대에서 본1을 맞이할 때 처음 접하는 학문이죠)


현재 본과 1학년인 사람들은, 이제 5월이 되어서 살짝 여유가 생길 타이밍일 것이고, 본과 2,3,4학년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은 "나도 그랬었지" 하면서 추억을 되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댓글로 남겨 주시면 훨씬 더 풍성한 글타래가 될 듯 합니다.


예과생들이나 의전원, 의대 입시 준비생들은, 본과 1학년 때, 이런 생활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시면서 자신의 계획을 잡으면 좋을 듯 합니다.현대 의학을 표방하고 있는 치대는 다른 치대 본과 학년 생활과는 달리, 본과 1학년 생활이 대동소이[각주:1]하기에, 치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자신의 경험이나 희망을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그 역시 기록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의대 생활과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의대생들이 이런 생활을 하는구나, 이런 과목을 배우는구나" 하면서 간접 경험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는 본과 생활을 다루지는 않기에,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의대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잘 모르는 용어나, 궁금한 점 역시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관련 글을 작성한 필진이나 다른 필진들이 답변을 달 것입니다.


실제로, 아주 고통스럽게 본과 1학년 생활을 끝낸 사람도 있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저공비행으로 본과 1학년을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패턴으로 본과 1학년을 보내기에, 여기에 적힌 글들이 모든 본과 1학년 생활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기에, 모든 생활에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경험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저희의 조그마한 경험들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저희로서는 글을 쓴 필진으로 아주 만족하면서 기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본과 1학년] 필진들의 글 연재를 시작합니다.


                      


(해부학 atlas의 최고봉인 CIBA를 그린 "Medicine's Michelangelo" 네터 선생님-

Frank H. Netter. 클릭하시면 네터 선생님의 소개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1.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제가 본과 1학년때 친한 치대생에게 자료를 빌려서 공부하기도 했고 제 자료를 공유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일단 의대라는 곳은 인체에 대해서 현재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업 공간인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의대는 예과에서 배우는 자연과학, 본과 1학년에서 배우는 기초 의학, 그리고 본과 2학년부터 졸업까지 배우는 임상 의학 다각도로 인체에 대해서 공부하고, 질병에 접근하는 시각을 그 어느 곳보다 잘 제시한다는 점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배경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by SendakSeus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본과 1학년은 전세계적으로 어디를 가나 비슷합니다. ^^ 

의대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교육 과정의 편차가 가장 적은 학과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인체의 질병에 대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연구라는 것은 하나를 깊게 매진하는 것인데, 의학은 그 학문 체계가 워낙 방대하여서, 의대 과정동안 하나를 자세하게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는 동안은 아주 자세하고 깊게 배우긴 하지만, 절대적인 할애량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모든 과정을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사들도 본격적인 연구는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관심있는 학생은 본1때부터 진행하기도 합니다.)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졸업과 동시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고, 임상 의학을 선택하면 빠르면 레지던트 3-4년차, 혹은 펠로우에 즈음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PhD가 대부분 학부 4학년때 혹은 석사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한다면 다소 늦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서 의대 학위는 환자를 대면하고 진료할 수 있다는 "의사" 라이센스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학문, 의학, 인체를 접근하는 틀과 다른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에 큰 장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작게는 주변 의대 동기, 선후배 등이 다 임상 의학을 하면서 진료 일선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고, 크게는 연구에서 임상까지 접근하는 Translational Medicine (중개 의학 - 링크)을 아우를 수 있습니다. 


pieces of you.
pieces of you. by NatShots Photography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해부학 책 중 하나인 Gray's anatomy)


물론 장점만 본다면 어느 곳이든 쉬워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기초 의학 자체가 의대 내에서 소수인 집단 (MDPhD.kr의 기초의학 글-링크) 입니다.  따라서 연구를 하는 시행착오 역시 오롯히 자신의 몫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임상을 하는 친구들과의 괴리감 역시 상대적으로 큽니다. 


아울러, 연구를 메인으로 하는 연구 중심 대학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포스텍) 등과 비교할 때, 교육에 대한 부담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더불어, 경제적인 측면 역시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절대적으로 본다면 일반 대학에 있는 대학원생과 비슷할 수 있지만, 자신과 의대 6년을 같이 공부한 동기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상황 (갈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짐)에 초연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울러, 정해진 임상 길과는 다르게, 모든 길을 자신이 개척해야하는 안개 같은 상황도 개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유로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사람은 한 학년에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의 기초 의학 전공자들이 중도 포기를 하고, 임상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전 그 선택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중도 포기와는 별개로, 기초 의학의 다양한 툴을 이용하면 임상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거든요. 아울러 위에 언급한 단점들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구요. 다만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은 있겠죠.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by phalinn 저작자 표시


따라서, 자신이 의대를 졸업하고 연구를 혹은 기초 의학을 선택한다면, 정으로 자신이 좋아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수가 되겠다.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단순한 생각입니다. 또 소위 말하는 뽀대(?)나 주변 시선을 신경쓴다면 더욱 이 길을 선택하면 안됩니다. 연구에서만큼은, 인생이라는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리턴이 결코 돈이나 지위와 같은 외부적인 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단순히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자신이 위와 같은 성향을 가졌다면, 임상을 선택했을 때 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예전 70-80년대에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교의 교수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의과 대학에서는 연구나 진료보다 학생 교육이 중심이었고(현재도 그러합니다만) 의사인 기초의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교육에 더 적합한 인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연구"가 의과 대학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무조건 기초 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의과대학 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그런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PhD가 의과대학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연구에서 강점이 크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의과대학에서 PhD를 교수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y estherase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따라서 연구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의대를 들어오지 않아도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시간이 많이 걸려도 인체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한 곳만 깊게 파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2000년도 이후에는 의대 자체를 들어오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에, 자신이 그 커트라인을 넘어서 의대를 들어올 수 있느냐도 위와 같은 선택의 변수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의사가 되어 기초 의학을 연구하고 싶어도 의대에 입학하지 못하면 MD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일종의 차선책인 셈이죠. 과연 재수 삼수를 해서 의대를 들어가야 하느냐? 현재로서는 그건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초 의학을 진로로 정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고민한 뒤에 진로를 선택하라는 것이고, 자신이 보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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