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na.co.kr/view/AKR20160518127200014

 

軍, 이공계 전문인력 활용방안 모색…병역특례 폐지 후속대책 | 연합뉴스

軍, 이공계 전문인력 활용방안 모색…병역특례 폐지 후속대책, 김귀근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16-05-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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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병역 의무를 완료한 사람으로, 사라져야할 제도 중 하나가 바로, 징병제라고 생각하고, 군에서 이공계를 "활용"한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큰 우려를 표하는 바입니다.

 

말이 좋아서 탈피오트이지, 사실상 바보 만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국방부에서 젊고 파릇파릇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할 20대 젊은 남자를 데리고 가서 "시다바리" 시키고, 바보 만들어서 제대 후 경직된 사고를 제거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 그리고 창의적인 사고와 유연한 사고를 할 기회를 빼앗는 기회 비용을 따지고 본다면, 저는 현재의 징병제는 아주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군인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도 등장할테고, 아무리 쪽수가 많아봤자, 제대로 만든 미사일이나 폭격 한 방에 훅 가는 것이 현대 전투인데, 지금 별달고 "장군"하는 사람들이 70년대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살고 있으니, 이런 대책이 나오는 거 아닌가 싶네요. 물론, 주변에 딸랑이들도 많겠죠.

 

사실상 국방의 의무는 남녀 차별의 가능성도 존재하고, 모든 무기들이 현대화되고, 기술의 첨병을 달리고 있는 전투에서는 1년-2년짜리 발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병제를 통해서 숙력되고, 제대로 된 군인을 만들어서 장기적으로 활용한다는 관점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답답한 마음 뿐입니다.

 

눈이 오면, 삽질을 군인들에게 시키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눈을 치울 수 있는 장비를 "제대로!!!" 사주고, 이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면 됩니다. 그러면, 100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2명 정도면, 많아도 5명 정도면 충분히 100명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돈만 쓰면, 뭐든지 제대로 할텐데 말이죠.

 

지금 군인은, 눈 치울 장비와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눈 올 때는 삽질하고, 비 올 때는 천막치고, 평소에는 내무반을 청소할 "SCV"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가끔 군인 코스프레하면서 완전무장하고 뺑뺑이 돌... SCV

사람이 많아 보이면 뭔가 있어보이고, 없으면 "가오"가 안서서, 사람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발상. 이제 접을 때도 되지 않았나요. 예전 6.25때는 인해전술이다 뭐다 했지만, 이제는 백병전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아요.

 

화장실 청소도 군인들 시키고, 빨래도 손빨래 시키고, 바느질도 군인이 하고, 내무반 청소도 군인이 하고, 모든 것을 군인이 하게 만드는 "군인 정신"을 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들을 모아 놓고, 한달 만에 바보를 만들어 버리는 "군인 정신"을 말이죠.

가장 창의적인 인재들이, 세상에서 가장 수동적으로 변신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똑똑한 "발통들"을 자기들 편하자고, 쓸데없어 보이는 반복적인 노가다에 넣어서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결과를 얻는 "군인 정신"을 보았죠.

 

나라를 지켜주는 일은 아주 고마운 일입니다만, 그거 다 우리 세금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 아시죠. 기껏 나무 침상 현대화하려고 6조 8000억원 준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아셔야 합니다. 국방부 한 해 예산은 39조입니다. 이게 얼만큼 큰 돈이냐 하면, 3년만 모으면, 코스닥 시장에 있는 모든 기업을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감이 안오신다면, 자동차로 유명한 "페라리" 라는 회사를 4개나 살 수 있는 금액이구요.

 

서울에 있는 제2롯데월드를 10개정도 지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그래도 실감이 잘 안오죠.

 

국민 모두에게, 오늘 태어난 신생아부터 시작해서, 100살 먹은 할머니까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80만원짜리 아이패드 혹은 갤럭시 s20 신형을 공짜로 줄 수 있는 금액이 바로 39조입니다. 4인 가족이면, 한대가 아니라 4대에요. 이런 금액이 바로 국방부가 한 해 쓰는 예산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매일 국방부 예산이라는 미명 아래, 저 "군인 정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일년에 한번씩, 아이패드 혹은 갤럭시 s20 하나씩, 갓난 애기까지 포함해서, 100살 먹은 할머니까지, 세금으로 바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뻘짓하는 거, 자기들만 생각하는 거,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건장한 젊은이들 착취(?)하는 거. 이제는 보고 있기가 힘드네요..

 

 

그리고 이에 관한 두번째 글..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6/05/351714/

 

[단독] "이공계 병역특례 2023년까지 폐지" - 매일경제

국방부가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이공계 출신들에게 부여해온 병역특례제도를 2023년까지 전면 폐지키로 결정했다. 특히 이공계 박사 과정 학생들이 꾸준한 연구를 위해 선택하는 전문연구요원 박사 과정에 대한 병역특례는 2019년

www.mk.co.kr

 

스타크래프트를 하는데 최고의 전략은 적절한 유닛들을 적시 적소에 만들고, 그들을 조화롭게 만들어서, 적의 기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바보들은, 주구장창 서플라이 디폿과 배럭만 만들어서 200이 꽉 찰때까지, 마린과 메딕만 만들어서 떼로 공격하기도 했다.

 

더 바보같은 사람들은 마린만 미친듯이 만들어서, 돌격 앞으로 하기도 했다.

 

그러다 뭐.. 다크템플러 같이 안보이는 유닛으로 공격하면, 뭐 할 말 없이 바보가 되거나, GG치는 것이지.... 그리고 친구들한테 평생 병-신 이라는 소리를 가루가 되도록 들을 것이다.

 

제대로 하려면, 사이언스 베슬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요새 국방부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 마린보다 못한 "저글링"들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눈덮힌 산에 삽질할 인력.

 

그리고 부대 청소만 하고자 하는 인력. 가끔씩 똥을 치우는 인력.

 

아.. 맞다. 이런 아이디어라면, 저글링 조차도 필요 없을테지.... 그냥 SCV나 드론 정도로 200 채울 분위기~

 

정말 인재를 대우해주고, "쪽수"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닌, 효율과 융통성을 발휘해서 고급으로 적절하게 쓸 수 있는 제도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교수’ 라는 타이틀에 마음이 가있는 경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법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오늘의 주제는 ‘영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영어는 의과대학 입시, 본과 진입, 대학원 석박사 졸업 등 몇가지 단계를 제외하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영어로 된 원서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 등을 포함하여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수준의 영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그러나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아무리 잘 가르치고, 아무리 연구능력이 뛰어나고, 아무리 진료실적이 우수해도 ‘논문’이라는 장벽을 넘을 수 없으면 시작할 수 없고, 설령 시작하더라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교수라는 타이틀입니다.

 

근래 외국에서 살다온 경험을 가진 의대생들도 많고, 영어공부에 대한 강조가 계속 되어 와서 지금의 의대생들 영어실력은 제가 의과대학 입학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합니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영작문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수려한 문장을 자랑하는 우리말 한문단을 번역했는데 영어로 두세줄 되는 경험.. 다들 있지 않으신가요? ^^


서론이 길었네요. 오늘 제가 올리는 글의 주제는 한국사람이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할 때 '영어'는 그 본문(논문)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비중(기여)을 차지하는 걸까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중엔 이른바 논문 영어 교정 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해 보신 분이 계실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영어 교정에 대해서는

 

1) 단과대학 혹은 대학차원에서 지원하는 경우
2) 저널(특히 국내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의 경우) 편집국에서 지원하는 경우
3) 개인적으로 투고 전후에 (영문법에 대한 리비전도 있음) 사설 영문교정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안그래도 논문 저자에 대한 기여도 문제가 뜬금없이 정계 진출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슈가 되곤 하는데..
1) 만약 어떤 사람이 1인이 순전히 이 논문의 영어화 에만 기여했다면 저자가 될 수 있을까요?
대개 논문의 팀으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다섯 명이서 논문을 썼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이중 한명은 논문을 영어로 쓰는 작업에 100% 기여하고 다른 기여는 없다고 가정해봅시다. 이사람은 논문의 저자인가요 아닌가요?

 

1) 번의 경우에서 이 사람을 논문 저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다음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다섯 명이 실험결과는 멋지게 나왔는데 영어가 서툰 다섯 사람입니다. 이들이 대충 영문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사설 영문 교정업체에 교정을 맡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어가 틀린곳이 많아서 대폭 수정된 결과를 받았고, 이를 다 반영하여 투고했다고 해보죠. 2) 이런 경우 사설 영문 교정업체에서 이 논문을 수정해준 사람은 이 논문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2) 번의 경우가 헤깔리는 경우 좀 더 세분해서 생각해 봅시다.
3-1) 영어가 너무 서투른 나머지 우리말 논문을 쓰고 이의 번역 자체를 업체에 맡긴 경우
3-2) 서투르나마 아무튼 저자 5인의 손으로 영어 논문을 쓰고 업체에서 대폭 (50% 이상의 문장을 수정?) 뜯어 고친 경우
3-3) 영어 논문을 써서 교정을 맡겼는데 소폭 (10% 미만?) 교정의 결과가 와서 반영한 경우
위의 세가지로 대충 간략히 나눠봤는데 이런 경우는 교정업체의 교정자가 논문에 대한 기여도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3-1)의 경우는 이런경우를 생각해보죠. 국제 학술지에 투고하는데 1인 투고를 가정하고, 이사람이 논문의 내용은 다 만들었는데 영문은 전문 번역업체에 맡겨서 투고했다면 이를 1인 논문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영문으로 번역한 사람에게 저자로서의 기여를 인정해서 2인 저자 논문으로 해야 연구윤리에 위배되지 않는건지..


여기까지는 사설 번역업체 이야기만 한건데요. 논문을 투고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메이저 리비전, 마이너 리비전이 오는 경우 지적사항 중에 영어가 부실하다 손좀 봐라 라는 지적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영어가 부실하면 대개의 경우 내용 읽지도 않고 리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내용이 아주 성실하고 괜찮은데 읽기가 힘든 수준의 영어다 그러면 아주 착한 리뷰어가 문장 하나 하나 고쳐가면서 메이저 리비전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어가 부실한데 마이너 리비전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논문 투고 했는데 메이저 리비전이 왔고, 메이저 리비전으로 선정된 주 이유가 영문법에 대한 사유로 정말 친절한 리뷰어가 거의 논문을 뜯어 고치다시피, 원래 투고한 사람의 문장이 거의 안남게 빨간펜 교정을 해주는 경우도 드물게 있습니다.

 

이런 경우 내용은 원저자의 것이지만 글은 리뷰어의 수정사항을 거의 반영하게 되지요. 거의 리뷰어가 써준거나 다름 없는 경우라고 봐도...

 

자, 3번과 마찬가지 상황을 여기서도 적용해보죠. 리뷰어가 아주 조금 손봐준 경우부터 리뷰어가 한 50% 정도의 문장에 손을 댄 경우까지 가정했을 때 이 리뷰어는 저자입니까?


이렇게 놓고 생각해보니 왠지 영어 문장을 손봐준 교정업체, 리뷰어 혹은 한글 논문을 번역해서 영문으로 만들어준 번역가 는 논문의 ‘저자’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논문의 저자 목록에 있는 사람 중에 순전히 논문의 영어화에만 기여한 사람은 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영어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말 논문을 완성한 후 번역업체에 맡겨서 영어 논문을 만들어 투고한 사람들은 영어 논문의 저자인가요 아닌가요? 저자들의 논문이 되려면 팀 안에 누군가가 영어 초안이라고 내 놓아야 인정될까요? 아니면 우리말로 된 논문 초고가 있으면 저자들의 논문일까요? 또한 번역자의 기여는?


언젠가 일본에서는 영어를 거의 모르는 과학자를 위해 논문 투고를 전문으로 도와주는 시스템 (일문 - 영문의 번역 및 교정)이 있다고 들은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모국어로 논문을 쓰라고 하면 쓸 수 있는 많은 좋은 표현들이 영문 투고를 위해 날아가는 경험을 다수 해보다가 뜬금없이 생각나서..


마지막으로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노벨상을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본의 과학자 이야기를 링크 걸어봅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472562.html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2008년 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 카이스트 100% 영어수업에 빗대 트위터 등에서 다시 화제 수상식 참가 전까진 여권도 만든 적 없어…소감도 일어로

www.hani.co.kr

 

200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교토산업대)는 영어 논문의 작성은 공저자인 다른사람에게, 불가피하게 본인이 작성한 경우는 알파벳이 틀릴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노벨상 수상시까지 여권을 가져본적도 없고, 노벨상 수상식에서 처음으로 일본어로 연설했다고 하네요.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들.

 

1)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논문의 주된 아이디어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영어로 논문을 쓰는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겠지요. 이쪽 바닥에서 공용어로 쓰이는 것이 영어이다보니, 당연히도 다른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논문을 쓸 수 밖에는 없을테이고, 그래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국가의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영어논문작성이 큰 산으로 다가오는 것일텐데, 이를 위해서 많은 사설 영문교정업체들이 생겨났고, 많은 도움들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교정을 해주었다고 해서 저자에 넣느냐는 너무 오소독스한 이야기인것 같아요. 사설 교정업체에게는 영문교정을 해준 댓가를 이미 지불한거기 때문에 논외로 해야할 듯 싶습니다. 이외 단순히 영작을 해줬다고 저자목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반대합니다만, 이건 교신저자의 마음이겠죠. 정말 저자 중 영문작성을 담당한 사람의 표현을 통해서 연구결과를 보다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줬다면야 교신저자의 재량에 따라 저자에 넣을 수도 있고, acknowledgement에 감사인사를 할 수도 있는거고. 만일 리뷰어가 논문첨삭을 해줬다면야 백번 감사할 일이지만, 현재의 peer-review 시스템상 저자로 참여할 수는 없는 상황 아닌가요?이런 경우에는 감사의 편지와 함께 떡이라도 한상자 택배로 보내면 될 듯 싶기는 합니다만.

 

2)

추가로, 논문 저자의 핵심은, 논문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발견의 "지적 기여"입니다. 영어가 분명 지적 기여로 간주될 수는 있지만, "새로운 발견"을 하는데 이용된 것은 아니지요. 분명히 실험을 하고, 그 실험을 분석하고, 그림을 만들어 내고, 글을 쓴 사람에게 저자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애매한 것 하나가, 언급하신 예시의 리뷰어처럼 영어로 "비판적"인 지적 기여가 들어가서, 새로운 발견의 가치가 올라간 상황입니다. 이 부분은 교신저자의 철학과 개인적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3)
쓰다보면, 사람들이 특히 학생들이 "영어"로 논문을 잘 못 쓰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논리력 부분에서 허점이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에 부담을 느낀다고 착각하지만, 실제 논문의 뼈대나 문장력은 "영어" 글쓰기와는 별개로 학습되어야 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사실 우리나라가 유난히 공저자 기준이 관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따지고 보면, "영어" 하나로는 공저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결국 저자의 결정은 교신저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현재 저자에 대한 관대함 때문에 생겨난 일이지, 결코 일반적인 일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한국에서도 한글로 글을 작성하고, 전문 번역업체에 맡겨서 논문을 쓸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개인이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은 전적으로 "선택"에 맡겨야 하겠지만...

 

5)

영어는 당연히 아무런 비중이 없죠. 의사전달의 툴에 불과하고 논문의 영어 문장을 작성한 것은 서비스의 일종이지 논문의 아이디어나 실행이 아니기 때문에.

 

6)

10000% 공감합니다. 자신의 모국어로 논리적인 사유를 할 수 있고 논리정연한 깔끔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곧 영어(외국어)로도 작문을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7)

 Acknowledgment 섹션이 그래서 편리한 것 같아요. 저자로 넣기 애매한 사람들 이름 우르르 다 밀어넣을 수가 있으니..

 

가만히 보면, 어떤 일이든 집단의 힘이 개인의 힘보다 더 강력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시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의사들에게 "밥그릇"과 관련한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이 생겼었죠. 가깝게는 최근 "한의사 의료기기" 문제라든지, 조금 멀게는 "의약 분업"이라든지..그리고 심심찮게 들여오는 보험 청구 삭감이라든지, 의료 수가 인하 등등 의사들 내부와는 다르게 외부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치기도 합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런 일이 있을 때 마다, 결국 찬바람은 의사가 맞습니다. 의사 나쁜놈. 의사 개객기.. 돈만 밝히는 의사... 의사 다 때려 죽여라. 의사 수를 늘여라~~~ 등등.

 

나는 나름 의사로서 세상에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내 똘망똘망한 아이 먹여살리고, 내 가정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 인턴 레지던트 때, 윗사람 눈치보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밤잠도 못자고, "좀비"처럼 5-6년을 보냈는데.. 세상은 의사를 파렴치한 집단으로 몰고 있고 진짜 세상에 없어져야할 "좀비"처럼 여기고 있는 상황을 보면 너무나도 허탈하죠.

 

진료 일선에서 물러나서, 파이펫만 잡고,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로 연구를 하는 겉모습만 "의사"인 저이지만, 한 때 의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뼛속부터 "의사 코스프레"를 하는 저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 찬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동고동락했던 동기들, 제가 의대를 들어갈 때, 자랑스러워 했던 의사 가족, 친지들, 그리고 먼 곳에서 밤잠을 설쳐가면서 묵묵히 레지던트를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레지던트 아내를 바라볼때면,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미국에 와서 제 3자로서, 의사가 아닌 한 명의 연구자로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니깐,

 

대충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가 아주 조금은 보이더라구요. 결국은 집단의 힘이더라구요. 그리고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힘이더라구요.

 

어떤 사안이 있을 때, 의사 집단과는 다르게, 다른 직종들, 예컨대, 한의사, 약사, 공무원 등등의 집단은 정말 "불심으로 대동단결"할 때 보다 더 똘똘 뭉쳐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부딪히더라구요. 그들은 더군다나 똑똑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전방위 공격(?)과 방어를 합니다.

 

예컨대, 다양한 정치인들과 영향력 있는 기업인들과 세미나를 열어서 왜 이런 일이 필요한지 당위성을 설명하고, 추후에 있을 일에 대한 강력한 우군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의견을 댓글이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서 하나의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거나 침범한다고 생각하면, 법적인 고소나 절차도 서슴치 않습니다. 추가로, 관련 직종의 사람들이 본연의 임무(?)를 하지 않고, 힘 있는(?) 다른 직종, 예컨대 보건직 공무원이라든지, 국회 라든지에 진출해서 물꼬를 틀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이 몇 십년간 누적되다 보니깐, 결국, 의사와 그들 직종이 대립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의사들은 "개객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어떤 일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셈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논리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맞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이성이 들어갈 여지조차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리고 그런 상황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금 비판적이고, 우호적이지 않는 여론은 단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참고로, 미국은 저 일을 몇십년동안 아주 잘 해 두어서, 의사라는 직업이 경제적인 리턴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지위와 명예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불심(?)으로 대동단결"(기독교인들은 싫어할 수 있겠지만, 일종의 패러디이고,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란 걸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네요.)해도 최소한 10-20년 정도가 걸리는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인지하고, "내 후세대 후배 의사들은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든다"라는 생각으로 대동단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의사일수록, 이런 부분에 더 신경써서 자신의 앞일을 도모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배의사들이야 돈 잘 벌고 은퇴하면 끝이에요. 근데, 이제 막 의사가 된 사람들은 몇 십년간 의사를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대동단결하는지는 각자의 철학에 맞게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것이 되어야 겠지요.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일인 것 같아요.

 

참 이상한 것이, 제 주변에는 다들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들인 것 같은데, 왜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직종이 되어야 하는지.. 너무 안타깝네요.

 

 

마취를 하고 "머리 속이 지우개"가 된다는 환자들의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논문입니다.

사람들의 일반 상식(?)으로 보면,

 

"마취약은 독하고(?), 사람을 잠자게 만들고 뇌활동을 저하시키니깐, 분명히 머리를 나쁘게(?) 만들꺼야."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얼핏 생각해보면, 나의 최근 건망증이, 일전에 있었던 수술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학은 이런 상식(?)에 도전하는 학문입니다. 그냥 카더라, 좋더라가 아니라, 엄격히 검증하고, 비교해보는 학문이라는 말입니다.

 

요번 논문 역시, 최소 소아에 있어서, 마취후 뇌 기능 저하는 우려일 뿐이라는 것을 대규모 연구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특히, 한국에

 

"카더라. 그리고 아님 말고~ , 또는 내가 해보니 되더라..." (어느 직종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요.) 라는 도전(?)정신이 만연한데..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데이터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이성적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메시지는 "소아가 수술로 인해 전신 마취하더라도, 뇌에는, 인지 기능에 문제 없음" 이 되겠습니다.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2815%2900608-X/fulltext?elsca1=etoc&%3Belsca2=email&%3Belsca3=0140-6736_20160116_387_10015_&%3Belsca4=Public+Health%7CInfectious+Diseases%7CHealth+Policy%7CInternal%2FFamily+Medicine%7CGeneral+Surgery%7CLancet&fbclid=IwAR0w4m6YtKQISquhXwFnHYaayYF_UPMk0fotEZJf7lUR-4ruYMtBPYRAgrU#.VpxBoh4rK0A.facebook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isori&id=8682&fbclid=IwAR1hgBPFuk2G4rrrRAh7ldCNkyXKK4WqFi5eHpmrse3b6q4VCLyHxMx4uSQ

 

정말 의대/의전 가면 생명공학 연구가 쉽나요?

쭉 글들을 읽어보니까 이렇게 결론나더라구요... 1. 의대나오면 연구실적, 연구능력은 생명공학과 출신보다 떨어진다.&...

www.ibric.org

한국 최고의 생명과학 커뮤니티인 브릭에서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쭉 글들을 읽어보니까 이렇게 결론나더라구요...

1. 의대나오면 연구실적, 연구능력은 생명공학과 출신보다 떨어진다.

2. 그렇지만 교수는 더 쉽게 된다.
정말인가요...?

충격이네요... 정말 헬조선인듯... 실적보다 간판이라니... "

여기에 개인적으로 답변을 달았습니다. 아래는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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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 "의대"를 나와서 "기초"를 하고, 외국에 나와서 다양한 PhD 선생님들과 함께, 포닥을 하고 있는 MD 중 한 명입니다.

 

사실상 이제, 기초 의학 분야에서 MD와 Non MD의 경계는 무너졌다고 봅니다. 연구를 잘하는 MD도 있고, 연구를 못하는 non-MD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연구력이 뛰어난 non-MD를 우대하는 의대들도 많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쉽다는 것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고, 단순하게 하나의 잣대로 결정지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얼핏 보기에, 저 사람이 연구력이 떨어져 보이고, MD라는 이유로 된 것 같은 사람도 존재하지만, 그 사람이 그 과정에 올라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본인이 아니고서는 폄하할 수 없는 것이 이 바닥인 것 같습니다.

 

작성자분은 상위 대학에 있는 교수님들만 보시는 것 같은데, 전국에 아주 많은 수의 대학들이 존재하고, 그 안에 자연대가 존재하고, 생명공학과나 생물학과들의 교수님들로 표본을 늘이게 되면, 작성자 기준에서 "연구실적, 연구능력이 의대 출신보다 못하는" 교수님들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연구실적이 더 뛰어날 수도 더 뛰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스톤 동네에 있는 "지방대"인 M대학이나, H 대학 기준에서 본다면, IF 10이상인 논문인 한빛사를 보면서, 실력도 없는 것들이 한국을 빛낸다고 자축한다고 볼 수도 있고(물론 그러지는 않겠죠), 아프리카 어느 대학 기준에서 보면, 아주 잘사는 나라에서 먹고 사는 일에 힘쓰지 않고, 귀족 과학을 한다고 부러워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MD든 non-MD든 연구력으로 진검 승부 보는 상황이 연출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글들이 본인의 입지를 더 고립시킬 가능성이 없는지 뒤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저 역시도, 그 안에 들기 위해서 포닥 나와서 "non-MD" 교수 밑에서 PhD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설프고, 주관적인 글로 상대방 집단을 내린다고 해서, 자신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억울하다고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지도 않구요.

 

개인적으로 MD, PhD 과정을 하면서, 의대 들어오는 것이 제일 쉬운 일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연구를 대하고 있고, 글쓴이의 지나가는 글로 인해 도매급으로 매도되면 안타까움이 크다고 느낄 정도로 진지하게 연구를 대하고, 고군분투하는 MDPhD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주변에 아주 많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사람"이 되는 것은 아주 쉬워 보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정자-난자가 만나는 것도 엄청난 경쟁을 거쳐서 들어온 성공자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사람"이 된 것만으로 만족하기도 하고, 남들과는 다른 역량으로, 사회를 바꾸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왜 저런 인생을 사냐면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받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http://mdphd.kr/148

 

기초 의학을 선택한 의사라고 해서 모두가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

Hibrain.net에서 기초 의학을 선택하면 무조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쓴 글입니다. 일전에 교수가 되려면 "무조건 의대에 가서 의대의 "비 인기과"인 기초 의학을 선택하면 100% 교수가 될 수 있다"는..

mdphd.kr

http://mdphd.kr/120

 

(진로) 기초 의학자의 길. 과연 의대를 들어와서 연구를 해야하는가?

안녕하세요.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일단 의대라는 곳은 인체에 대해서 현재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업 공간인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의대는 예과에서 배우는 자연과학, 본과 1학..

mdphd.kr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isori&id=8682

 

정말 의대/의전 가면 생명공학 연구가 쉽나요?

쭉 글들을 읽어보니까 이렇게 결론나더라구요... 1. 의대나오면 연구실적, 연구능력은 생명공학과 출신보다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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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

오늘은 혈액형에 근거해서 판단한 성격의 허구성을 의학에서 이용되는 더블 블라인드 테스트(이중 맹검 검사)와 논문 출판 프로세스로 논하고자 한다. 항상 다 쓰고 깨닫는 것이지만, 페북에서 읽기에는 글이 항상 길다. 나를 아주 사랑해주는 와이프도 가끔 읽다가 지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길다 싶으면, 그냥 "좋아요" 누르고 넘어가길 추천한다.(뭥미???) 그럼 누군가는 본다. (????)

 

뭐 혈액형 말고도,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경우는 많다. 예컨대,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서울 사람 등등 지역이나 출신에 근거한 성향들.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미국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의 성격 등.. 그리고 남, 녀의 차이 등등..

 

세상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기억 속에 쓰여진 "편견"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존재한다. 이 괴물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가끔은 자신의 결정을 뒤엎기도 하고, 때로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카더라 혹은 일부 예가 확대 편향되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을 다니던 시절, 싸이월드에서는 유난히 혈액형에 근거한 성격론이 난무했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이를 토대로 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어딜가나 B형 남자는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떠들고 다니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워 보였다. 그리고, 생명과학과 의학이 최첨단을 달리는 현시점에도, 여전히 이런 것들이 심심찮게 페이스북에 보이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혈액형에 근거한 성격 평가는 개소리라고.

 

그리고 이런 혈액형 뿐만 아니라, 많은 카더라 식의 근거없는 주관성 역시 개소리라고 하겠다. 근거는 이러하다.

의학에는 다른 학문과는 다르게 치료법을 철처히 검증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바로 더블 블라인드 테스트(double blind test)라는 것이다. 이중 맹검 시험이라고도 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약 준 사람, 먹는 사람 둘다, 진짜 약인지 가짜 약인지 모르고 테스트하는 상황을 말한다.

 

어떤 약이 만들어 졌을 때, 그 약이 특정 질병에 진짜 효능이 있는지를 확인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의사가 아주 많은 수의 환자 군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테스트한다. 약을 준 그룹과 가짜 약을 준 그룹.

 

단순히 이 약을 주니깐, 잘 낫더라가 아니라, 이 약을 준 사람들과 이 약을 안 준 사람들을 비교해 보니깐, "안 준 사람보다 준 사람들이 훨씬 더 병이 빨리 낫더라"라는 결론은 만드는 것이다. 이 이유는 가끔씩, 가짜 약을 줘도, 심리적으로 반응을 하는 환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니 체했다고 손을 따기도 하지... 에구구.. )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니깐, 의사의 편견이 들어갈 수가 있다. 예컨대, 의사가 이 약은 진짜 약, 이 약은 가짜 약이라고 알고 있는 상태에서 환자에게 약을 주면, 의사 역시 "진짜 약을 준 그룹이 더 효과가 좋을 거야" 라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환자의 경과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도 생긴다.

 

그래서, 이 부분 역시 차단하기 위해서, 의사에게도 진짜 약인지 가짜 약인지 알려주지 않고, 똑같은 형태로 약을 준다. 그러면, 의사는 약을 줄 때, 이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약을 진짜 혹은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의사의 편견이 들어갈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물론 이를 역추적하는 컨트롤 타워가 있다.)

 

이 두 가지 상황, 즉, 환자가 진짜 약을 먹는지를 의사도 모르고, 환자도 모르는 시스템을 더블 블라인드 테스트라고 한다. 물론, 이 시스템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편견을 막을 수 있는 현존하는 시스템에서 가장 완벽한 시스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고,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 짓는다는 결론은 얻으려면 최소한 이런 "테스트"는 해야지 믿을만 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 혈액형 근거를 실험으로 수행한다는 예로 들어 보자. (사실 이런 연구는 말도 안된다. 성격을 판단한다는 그 변수가 너무나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이라는 이름하에 이 말도 안되는 연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한 개인이나 연구자가, 충분한 수(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적어도 1000명 이상은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4그룹으로 나눈다. A,B,AB,O 형 네 그룹으로 250명을 할당한다. 개인적으로는 RH+/-까지 변수로 넣어서, 총 여덟 그룹으로 나누고 싶지만,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접자(?). 이렇게 각 그룹에 250명을 할당한 후에, 이 할당된 사람의 혈액형 정보를 지운다. (물론, 나중에 다시금 연구자가 분석하기 위해서 이 지운 원본 데이터는 보존한다. 이거 까지 날리면, 다시 찾아볼 수가 없으니 연구 자체가 삽질이 된다)

 

그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성격을 객관화시킨다. 이 부분이 사실상 제일 어렵다. 성격이라는 factor 자체가 multiple factors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단순히 하나의 객관화 시킬 수 있는 종속 변수로 귀결되면, 훨씬 더 쉽겠지만, 그렇게 되면 통계적 유의성이 없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여하튼, 성격을 최대한 객관화시켰다고 우기자.

 

그리고 나서, 주변인들을 설문 조사해서, 성격을 최대한 조사 한다고 해보자. 이 부분 역시도 문제가 있다. 주변인들이 그 사람을 느끼는 정도가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 사람의 성격을 엄마의 경우라면, "우리 애가 까칠하긴 해도 성격이 참 좋아요" 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고, 그 사람과 원수인 사람은 "그 새끼 개객끼" 라며, 오히려 부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학술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주변 탐구해서 결론 내놓은 한 사람의 성격 자체의 통계적 유의성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 성격인지 "객관화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성격이라고 인정받는 이상적인 인간이 있다고 치자. 어찌 되었든, 그런 인간들을 1000명 모았다고 치고, 그 성격에 대한 분포도를 그리고, 어떤 특정 "성격"의 분포 그룹을 만들어 보자.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 때, 연구자는 혈액형 분포를 모른다. 이 때 연구자가 분포도를 들여다 보고 성격 분포도를 만드는 순간 편견이 간섭한 것이다.

 

그 이후에 할 일은, 그 분포 그룹이 특정 혈액형 집단과 연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까칠한 성격을 가진 그룹에서 A형 모두가 완벽하게 소속되었다든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다른 그룹과 구별될 정도로 다수가 소속되어 있다든지.. 등등

 

사실, 이 연구에서 이런 결론을 얻기 위해서 사용되는 통계학적 도구들이 결국 그 학자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고, 궁극적으로 연구의 질적 수준으로 귀결된다. 그냥 대충, 오~ 비슷하던데... 오~ 상관 관계가 있는데... 이런 수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우겨서, 그렇게 연구를 해서 특정 연관 관계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논문에 서브미션 했다고 쳐보자. 수준이 높은 저널일 수록, 이런 연구가 과연 근거가 있는 연구이며, 연구 결과가 가치있고, 의미있는 학문적 발전을 이루어 놓은가에 대해서 집요하게 따져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연구를 해서, 수준 높은(이 역시도 아주 주관적이지만,) 논문에 던지면, 당연히 이 연구는 흥미는 있으나, "우리 저널이랑은 안 맞아요" 라는 점잖은(이라고 쓰고 변명이라고 읽는다) 거절 의사가 온다. 왜냐하면, 혈액형과 성격이 연관성이 있을 수 있을만한 기존 연구가 없으며, 상식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근거 없는 연구를 시작해서, 전혀 엉뚱한 포인트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임상적 의의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대부분의 논문에서는 거절 의사를 밝힐 것이다. 아무리 창의적인(?) 연구라고 해도, 연구 시작 전에 수준 높은 지적 근거가 있어야지, 그런 것이 없으면, 전혀 황당무개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선풍기 바람에 사망한 어처구니 없는 주장처럼.

 

여하튼, 또 어떻게든 우겨서 논문에 잘 제출했다고 치자. 이까지 올때, 꽤나 과학적이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오 더블 블라인드. 제대로된 4그룹. 연구 좀 되겠는데.. 하면서,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논문을 제출한 이후에는, 그 분야 전문가들이 리뷰를 하게 된다. 만약 내가 리뷰를 하게 된다면, 저 혈액형 그룹이라는 변인에서, 제대로 그룹을 나누었는지를 먼저 확인할 것 같다.

 

즉, 모든 조건이 동일하게, 예컨대, 나이, 성별, 체중 등 기본적인 사항과, 성격을 형성할 수 있는 가족 사항, 학문적 배경, 사회적 배경, 수입 등등 한 사람의 성격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이 저 혈액형 A,B,AB,O 네 가지 그룹에 동일하게 통제되었는지를 제일 처음에 물을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성격이라는 주관적 요소를 최대한 잘 객관화 하였는지, 편견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지 등에 대해서 물어볼 것 같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그렇게 그룹을 나누고 분석을 한 결과가 통계적으로 잘 수행되었는지를 물어볼 것 같다.

 

딱 보면 알겠지만, 처음 물어본 그룹이 잘못되어 있으면, 두번째, 세번째는 거의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 연구는 처음 순간 제대로 계획하지 않으면, 모든 과정이 삽질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가 처음 상황에서 "한번 해보자"라는 보스의 어처구니 없는(?) 아이디어로 시작하고... 하다보니깐 어 안되네... 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다가 결론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저 변인 통제 부분이 사실상 아주 어려운 부분인데, 연구자에 따라서, 이것 저것 우기고,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을 같다고 가정하고,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임에도, 줄 수 없는 것처럼 가정하는 행위들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된 리뷰어라면, 이런 부분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Harsh한 리뷰가 오게 된다. 어... 리뷰어의 의견대로라면, 연구를 아예 새로 해야할 것 같은데... 라는 리뷰를 받았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 자신이 간과한 것들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결국은 리젝션을 먹게 된다. 물론, 모든 리젝셕인 이런 것은 아니다. 출판사 페이지 한계도 있고, 정치적인 이유도 있고.. 다양하다. 단, 지금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괜히 자신의 이야기로 감정 이입하거나 몰입하지 마세요. 

 

그렇게 리젝션을 몇 번 먹다 보면, 그저 그런 논문에 실리게 된다. 그리고 신문사에는 대문짝만하게, "국내 연구진 세계 최초로 혈액형과 성격의 연계성 보고, A,B,AB,O형 모두 다 까칠할 수 있다(???뭥미???)"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니깐, 저 신문 기사만 보고, 아 내가 알던 그 까칠한 놈이 A형이였지. 역시 그 녀석은 혈액형대로 까칠했어.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혈액형과 성격의 연계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논문은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나온다고 해도, 그 퀄리티는 낮을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는 신빙성 없는 연구일 것이다. 물론, 아주 수준 높은 연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논문의 결론은 "통계적으로 의미 없음"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까지는 그런 논문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혈액형에 관해서 누가 "성격을 보면, 너는 혈액형이 B형일 것 같아." "넌 의외로 꼼꼼한데, 혈액형은 또 의외로 O형이네" 라는 드립을 날려준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자.

 

"현존하는 실험 결과로 보았을 때, 혈액형과 성격에 관한 논문들 중에서 엄격하게 더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실험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성격은 다양한 변수를 모아놓은 주관적인 집합체이기 때문에, 종속 변수로 상정하기 힘들고, 아울러, 혈액형 외적으로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인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니가 한 말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라고 이야기 해주자.

 

그러면 상대편은 똥씹은 얼굴을 하면서 "이 무슨 개소리야!!" 하고 답변할 가능성이 크다. 단, 간신히 잡은 소개팅에서는 그러지 말자.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 결국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가진 다양한 성격 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맞는 것만 취사 선택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더블 블라인드라는 지식 체계를 갖춘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늘을 먹으면 피가 맑아진다느니.. 죽염을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느니... 고문서에 적힌 약초나 이집트 시대 치료법들은 가차없이 더블 블라인드 탈락인 셈이다.

 

그렇다고 무작위로 이게 효능이 좋다고 더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것 역시 국력과 세금의 낭비이다. 과학적, 의학적으로 검증된 근거있는 실험을 통해서 엄선하고 정제되어도 탈락하는 것들이 많은 것이 연구이고, 신약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어떤 게 몸에 좋다. 사실 몸에 좋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주 주관적이다. 어떤게 좋은건지???? 나는 몸이 좀 아파서 학교 결석하고 집에서 만화볼 때가 제일 좋던데 

 여하튼, 결론은

 

더블 블라인드가 아니라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말 것 (근데 콩으로 메주를 쓰는 건 믿어도 될 듯).
그 데이터 안에서도 어떤 변수(통제 변인)가 결론이 될 만한 변수(종속 변인)를 건드릴 여지가 있다면, 의심하고 볼 것.

그리고 혈액형으로 성격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려줄 한 마디는 꼭 기억해 두자.

 

"개소리 하지마~ 이 고조선에 태어나서 청동기 숟가락으로 밥 퍼 먹을 무식한 놈아~(때로는 "년"이 될 수도 있다. 뜬금없이 병신년 새해복~) 혈액형 성격은 더블 블라인드 테스트를 안 했어!!! 그러니믿을 게 못된단다~"

 

P.S. 여기에 혈액형 성격 분석만 넣어 두었지만, 지역별 사람 성향, 민족별 사람 성향, 나라별 사람 성향 등 역시 딱히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특정 지역이나 나라에 국한된 문화로 인해서, 그런 성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역시, 더블 블라인드로 변인 통제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아요. 아울러, 사람 역시, 제가 직접 그 사람을 겪지 않았다면, 좋은 소문은 참고하지만, 나쁜 소문이나 좋지 않은 루머들을 가급적이면 저는 믿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그것 역시 그 사람을 겪은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그러해요.

 

이 글을 많이 퍼가도 됩니다. 개인적으로 혈액형 성격 분석은 일제 시대 유물 청산보다도 더 사라져야 하는 엉터리 과학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러해요.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newscd=2015122400004

 

[칼럼]한국의료에서 가정의학과 역할에 의문을 던진다 - 청년의사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우리나라 전문의 양성 체계를 보고 있으면, 이해 가지 않는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인구 구조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

www.docdocdoc.co.kr

 

한번 쯤은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김철중 의료 전문 기자의 모든 사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논의되어야할 문제입니다.

 

제 주변에도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많은 수의 동기가 있고,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습니다. 한해 전공의만 300명이니, 충분히 많은 숫자입니다. 그래서 언급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만.. 해야할 건 해야하니깐요.

 

현재 우리나라의 가정의학과가 하는 역할은 1차 주치의로서 "가정"의 의학을 보살피면서, 전문과로 의료 전달을 해준다는 목적보다는, 다른 과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소화기 내과가 하고 있는 내시경을 하고 있거나, 피부과가 하고 있는 피부-미용을 하고 있다거나, 순환기 내과 혹은 영상의학과가 하고 있는 초음파를 본다거나...굳이 말한다면, 초기 질병의 예방과 스크리닝을 하고 있는 건강 검진이 가정 의학과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네요. 물론, 개인적으로 저렇게 내시경, 피부-미용, 초음파를 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충분히 경험이 쌓이고 숙련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런 가정의학과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을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의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적인 시스템의 부재와 우리나라의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의료 사회적인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 의학과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의료 전달 체계라는 관점에서 한국은 이미 망가져버린지 오래입니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뛰어난 인재들의 낭비라고도 볼 수 있고, 환자들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설명을 잠시할께요. 일반인들도 분명히 알아야할 사안이니깐요.

 

우리 나라처럼, 의료의 접근도가 높고, 다양한 전문과들이 동네에 적어도 두 세개 씩 있는 곳에서는 잘 느끼기 힘들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환자와 의사(그리고 보험회사 혹은 정부) 서로가 윈윈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의료 전달 체계를 잘 수립하는 것이 의료 사회적인 방향에서 바른 방향입니다. 통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는 이러합니다.

 

1) 환자가 아프다.

2) 아픈 환자를 비교적 자주(여기서 자주 라는 말은 아플 때 병원을 바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찾아 갈 수 있는 "수가가 낮은" 그렇지만,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는 일차 진료의(경우에 따라서는 의대만 졸업한 General practioner, 혹은 분과를 하지 않은 내과 전문의, 가정의학과, 소아과 등)를 찾아 갑니다. 이 때, 일차 진료의들은 동네 병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1) 이 때, 핵심은, "비교적 자주"와 "수가가 낮은" 그리고 "다양한" 입니다.
2-2) 기본적으로 환자들은 무조건 예외없이(보험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아프면, 일차 진료의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위 의료 기관 이용은 높은 진료비라든지, 긴 대기 시간이라든지 하는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3) 일차 진료의는 자신의 병원에 온 "다양한" 과의 환자들을 의료 전문성을 기반으로 스크리닝합니다. 예컨대, 따로, 전문과가 필요한지, 아니면 자신의 선에서 진료가 가능한지. 혹은 응급인지를 판단하고, 그 판단은 항상 존중됩니다.
3-1) 이 때, 일차 진료의가 전문과 컨설트(상담 혹은 전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보험에서 승인이 바로 나서 환자 부담이 줄어듭니다.
3-2) 응급의 경우에는 바로 응급실이나 그를 치료할 수 있는 대학 병원에 전원을 합니다.

4) 전문과 컨설트가 필요한 환자는, 일차 진료의의 진료 의뢰서를 들고 "수가가 높지만", 전문적으로 "특화 환자"를 볼 수 있는 전문 병원에 찾아 갑니다.
4-0) 이 때, 핵심은, "수가가 높지만"과 "특화 환자" 입니다.
4-1) 예컨대, 피부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그리고 내과 중에서도, 소화기 내과, 순환기 내과 등의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는 병원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전문의가 없는 병원이 거의 없어요)
4-2) 이 때, 전문 병원은 이 질환에 특화된 환자만 보기 때문에, 전문성이 높으며,이 전문성을 토대로 진료를 하기 때문에, 깊이 있고 숙련된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5) 전문과 컨설트로도 해결이 되지 않거나, 특수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 혹은 아주 흔하지 않는 희귀 케이스의 경우에는 "수가가 아주 높은" 그렇지만, 다양한 "분과가 협진 가능"하고 "전문성이 높은" 대학 병원으로 전원됩니다.
5-0) 이 때, 핵심은 "수가가 아주 높은", "협진 가능한" 그리고 "전문성 높은"입니다.
5-1) 물론 예외적으로, 응급이거나 교통 사고, 외상 등은 당연히 위 전달 체계를 겪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높은 수준의 대학 병원을 이용하고 싶다는 이유로 환자 아플 때 찾아간다면, 아주 높은 의료비가 청구됩니다.
5-2) 위와 같은 특수한 환자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깔때기처럼 모여서), 대학 병원이라는 곳에서 임상적 보고와 새로운 치료법 시도 등의 학문적 역할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일차 진료의-> 전문의(전문 병원)-> 대학 병원 으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의료 전달 체계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사실상 일차 진료의의 존재가 부재하고, 바로 전문의가 진료하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발생한 전문과가 바로 가정 의학과인 셈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일차 진료의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로 넓은 범위의 "많은 환자"를 보아서 어느 정도의 수입을 유지하고, 전문의나 대학 병원은 절대적인 "환자수는 적지만", "높은 수가"로 어느 정도의 수입을 유지해서, 비교적 의사 사회에서도 격차가 적은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는 환자 입장에서 전문성 있는 치료를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의사의 입장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하고, 여유로운 진료를 한다는 큰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환자 입장에서 보면, "일차 진료의" 없이 전문의를 바로 볼 수 있는 구조가 저런 복잡한(?) 일차 진료의를 보는 전달 체계보다 더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첫번째로, 의대만 졸업하면 치료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전문의를 이용해서 치료하기 때문에, 치료 비용이 높아집니다. 모든 전문과의 하향 평준화.

 

두번째로, 자신이 어떤 과를 찾아가야하는지, 본인이 직접 전문과를 선택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일차 진료의에게 의존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 인터넷등으로 구전된, 혹은 마케팅에 현혹된 병원을 찾아가게 됩니다. 즉, 전문성 없이, 광고만 하는 의사를 찾아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잘 된 의료 전달체계에서는 환자가 굳이 이를 찾아갈 필요가 없으며 무분별한 광고 조차도 필요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출되지 않는 광고비는 의료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세번째로, 잘된 의료 전달 체계에서는 일차 진료의가 대부분의 기본적인 진료를 보기 때문에, 전문의들은 선별된 환자들에게 오히려 질적으로 높은 치료를 할 수 있게 되는데,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단순 치료 환자들까지 봐야하기 때문에, 전문과에서 질적으로 높은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한됩니다. 즉, 정작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하는 환자는 기본적인 진료가 필요한 다수의 단순 치료 환자들 때문에 5분 진료밖에 보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네번째로, 의사들 역시, 아주 간단한 질환부터, 전문성을 요구하는 치료까지 모든 부분을 커버해야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뿐만 아니라, 기초 치료까지 공부해야하는 의료 보수 교육 등을 소홀히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는 결국 의료 서비스 질의 하락을 발생시키거나, 전문성이 계속 담보되는 대학 병원으로 전원이 증가하게 되어, 세번째 문제가 대학병원까지 넓어지게 됩니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단점이 있는데, 바뀌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역시 알고 있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일차 진료의의 양성은 의료 전달 체계에서의 교통 정리, 신호등같은 역할을 하는 전문성있는 집단은 키우는 문제인데, 사실상 왜곡된 현재 의료 상황에서 이 집단이 자리잡는 것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가도 이런 단점보다는 당장 전문의에게 치료받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 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보통 의대가 아닌 다른 친구들에게 이를 설명할 때 수학을 예로 들어서 설명합니다.

 

수학에는 초등학교 산수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수준, 고등학교 문과 수준, 그리고 이과 수준. 그리고 대학 수준으로 들어오게 되면, 통계, 선형 대수학, 공대에서 필요한 심화 미적분학 등 다양한 수준의 수학과 분야가 있고, 이를 심도 있게 공부하는 대학원 역시 존재합니다.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는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의료, 보건, 예방 의학 등으로 보건소가 주로 맡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문과 수준의 수학, 그리고 비교적 쉬운 이과 수준은 일차 진료의, 그리고 대학 수준으로 존재하는 통계, 심화 미적 등은 일반 전문과들. 그리고 대학원 수준이나, 각 분과는 대학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심화 미적분을 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이, 초등학교 산수나 중고등학교 문과 수준의 수학을 못풀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가르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다거나,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지 않는 이유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발전과 각 분야의 전문성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연계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직업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생에게 바른 수학적 기초를 잡아준다는 의미가 있고, 이들은 어찌보면, 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수학 천재나 대학원생들보다, 오히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더 적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부 교수들은 교수법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다면.. 오히려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모두가 다 통계, 심화 미적분 등을 공부하는 것은 또 한편으로 시간의 낭비이기도 합니다.

 

수학적 기초만 잡아주면 충분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든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공대에 필요한 심화 미적을 필수적으로 공부하고, 평생동안 꾸준히 테스트한다는 것은 어딜보나 과잉 공부(?)이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어려운 말로만 설명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디까지가 적정한 수준의 공부이고, 어디까지가 서비스가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냐가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이 과잉 공부를 하는 낭비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수학이라는 학문과 의료 체계는 분명히 다르지만, 의료의 과잉 서비스, over-qualifying 문제는 환자 개인과 의사의 관점에서는 기껏해봐야 3-4년 정도의 전문의 과정 낭비(?)이거나, 필요악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 입장에서는 더 좋아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들 모두를 합해 본다면, 정말 큰 인재와 시간, 비용의 낭비입니다.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환자에게 낭비일 수 있고, 의료비 과잉이라는 측면에서도 과잉인 셈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정은, 전문의를 하면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안하면,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90% 이상이 전문의) 굳이 살아가는데 대학 교육이 필요없는데, 모두가 대학을 가기 때문에 안 가면 손해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가는 우리나라 사정과 비슷한 상황인 셈입니다.

 

뭐.. 앞서 언급했지만, 단시일내에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최소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큰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져 보는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여담이지만, 의사를 너무 나쁜 사람들로만 몰아가지 마세요. 이들도 다 주변 동네 아저씨들이고,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엄마입니다. 돈벌이다 밥벌이다 하는 측면만 보시지 마시고...시스템 자체가 잘못되었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6250/special&utm_source=fb?fbclid=IwAR3uNpZ2jdx77GUCE3Jvs1XfK_9Lg5IM9DeIDE1wb8qx5vI45eRlAY-aBUo

 

양자역학 도약 이끈 슈뢰딩거방정식은 ‘간통’ 덕분?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화양연화’왕가위 감독의 2000년 작품 ‘화양연화’는 간통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62년 홍콩.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공동주...

dongascience.donga.com

 

재미있는 동아 사이언스 기사이네요. 간략하게 정리하면, 과학계 간통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몰랐던 사실이라 흥미롭네요.

 

가끔씩 미국이나 유럽에서 들리는 이런 소식들을 보면서, 어찌 이들 서양 사람들은 과학적 업적(?)과 개인 사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찌보면, 과학적 발견이랑 업적은 개인의 사생활과는 별개로 다루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관점에서 본다면 맞는 이야기 같아 보이고, 반대로, 우리 나라나 동양의 인식으로는 이런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완전 때려 죽일 놈이 되는 것이지요.

 

아마도, 슈뢰딩거 같은 케이스가 한국에서 나온다면, 노벨상을 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아고라나 네이트 판에서 불륜으로 엄청 털리고, 언론에서 엄청 또 한 번 털리고, 다음에서 교수직 박탈 서명 게시판이 열리고, 나무 위키에서 자세한 사건 사고 소식으로 정리가 되면서 결국, 기자 회견과 함께 교수직 사임, 전혀 관계가 없는 연구비 회수, 연구비 횡령 조사, 세무 조사 등등으로 털리겠죠. 생각해보면, 연구 업적과 개인 사생활의 영역인 불륜(?)은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일종의 연좌제(?)인 셈이죠.

 

불륜이라서 조금 감정이 고양될 수 있어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이렇게 개인 사생활 영역과 연구 업적을 많이 연관시키는 사례는 우리 나라에서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에요. 예컨대, 위 슈뢰딩거 사건이 불륜이 아니라, 식당 내 갑질 사건으로 변환 시켜도, 위 이벤트가 반복될 것 같아 보이고, 개인의 영역에 있는 어떤 문제를 대입해도, 결국 사람들은 화가 나서, 교수직이나 연구직을 박탈하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크게 본다면, 과연 이런 상황이, 즉 개인의 영역에 있는 사생활 문제가 공적인 부분이 연구 영역과 합쳐서 평가되고, 징벌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의 가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겪은 미국이나 유럽도 저런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리를 해서 적용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예컨대, 불륜설이나 염문설로 화려하게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하지만, 이런 개인 사생활의 문제가 프랑스 대통령 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인식하는 일반 프랑스 시민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적 업적 혹은 직업적 생활과 개인의 사생활. 과연 함께 다루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분리해서 업적은 업적, 개인 사생활은 사생활 영역으로 두고 나누어 다루는 것이 맞을까요? 그리고 만약 두 개를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런 나눔(?)에 대해서 준비되어 있나요? 누군가 개인 사생활 문제가 있을 때, 사생활과는 별개로 업적을 인정하고, 과학적 가치를 존중해 줄 수 있을까요?

 

예컨대, 내 동료가 슈뢰딩거고, 저런 짓(?)을 하고 있다면, 양자역학의 토대가 되는 방정식은 방정식대로 인정하고, 개인 사생활은 별개라고 말하면서 신경쓰지 않을 수 있나요?


여담이지만,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커플로 대변되는 open relation 혹은 open marriage에서는 저런 슈뢰딩거와 아내 안네마리의 관계가 서로간에 합의가 된 관계이기에 정상(?)이라고 합니다. 도덕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죠. 슈뢰딩거는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이런 생활이 나의 창의성을 활성화하는데 더욱 큰 도움이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일반인이 보기에 부적합한 개인 사생활이 궁극적으로 과학적 업적의 무궁한(?) 발전을 이루어 낸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슈뢰딩거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 아래 기사 발췌------------------------

 

슈뢰딩거는 거의 평생 끊임없이 새로운 연인을 만들었는데, 그 자신이 간통을 해야 창조력이 생겨 연구가 잘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1925년 비엔나에 사는 오래 전 여자 친구(끝내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와 함께 스위스 아로사로 크리스마스 밀월여행을 떠나 현지에서 완성한 게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만일 슈뢰딩거의 간통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 난해한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으로 양자이론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슈뢰딩거가 이처럼 대놓고 이 여자 저 여자와 바람을 피울 수 있었던 건 역시 자유분방했던 아내 안네마리와 당시 유럽대륙의 사회적 분위기 덕분이다. 안네마리도 벡터의 개념을 정립한 천재 수학자 헤르만 베일과 간통에 빠져 있었다(베일의 아내도 다른 남자와).

 

한 걸음 더 나가 패보는 마크를 연구소로 영입할 계획을 세운다. 패보의 요청으로 린다는 남편에게 간통사실을 고백하고 마크는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다. 즉 사생활과 연구를 구분하기로 한 것. 1998년 라이프치히에서 연구소가 문을 열 때 마크와 린다 모두 연구원으로 와 있었다. 패보는 스토네킹 가족과 한 집에서 살며 린다와 애정을 키웠고 마크는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 2005년 패보와 린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 뒤 마크와 린다는 우호적으로 이혼했고 2008년 패보와 린다는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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