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구하는 분야 이야기 4 - 따뜻한 부검, somatic mosaicism의 소중한 도구

2026. 2. 12. 17:00Ph.D : Medical Scientist/연구 이야기 및 연구 자료들

따뜻한 부검(warm autopsy)은 사망 직후,
아직 조직이 완전히 식기 전에 시신에서 세포를 얻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부검”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과는 다르게,
이것이 죽음을 관찰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점입니다.

사망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세포는 빠르게 무너집니다.

단백질이 변성되고, 막이 깨지고, 핵이 흐트러지지요.

그러니 따뜻한 부검은 시간이 곧 정확도인 연구입니다.

몇 시간의 차이가 결과를 갈라놓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인간이라는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배운 인간은 “한 사람, 한 유전체”라는 단순한 상식 위에 서 있습니다.

수정란이 만들어지고, 그 한 장의 설계도가 그대로 복사되어 몸 전체가 구성된다는 그림입니다.


" 하지만 실제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완벽하게 복제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오류(돌연변이)가 생기고, 그 오류는 그 세포의 자손에게 전달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몸 안에는 서로 다른 유전체를 가진 세포들이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somatic mosaicism입니다.

같은 사람인데, 세포들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리고 그 “조금씩”이야말로 인간 발생과 노화, 질병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흔적이 됩니다.

따뜻한 부검은 이 somatic mosaicism을 관측 가능한 형태로 끌어올리는데 아주 중요한 방법입니다.

단순히 조직을 갈아서 DNA를 뽑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세포를 분리하고, 한 개의 세포를 얻고,
그 세포를 배양해 같은 세포 집단을 만들어냅니다.

그다음에 유전체를 봅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체세포 변이는 대부분 빈도가 낮고,
조직 전체를 섞어서 보면 쉽게 희석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단일 세포 혹은 클론 수준으로 보면, 희석되지 않은 상태로 변이가 드러납니다.

somatic mosaicism은 단지 “변이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계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변이는 아주 초기에 생겨서 몸 전체에 넓게 퍼져 있고,
어떤 변이는 늦게 생겨 특정 부위에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변이는 시점을 기록하는 바코드가 됩니다.

세포가 어디서 왔는지, 언제 갈라졌는지,
어떤 조직이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지, 이런 질문들이 가능해집니다.

인간 발생을 한 번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분기와 선택의 연속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부검은 그 분기의 흔적을 가장 선명하게 잡아내는 창입니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가 보통 질병에서만 의미를 찾던 변이를 정상의 영역으로 끌어온다는 데 있습니다.

암은 극단적으로 확대된 모자이크 현상입니다.

하지만 암이 아니어도, 인간은 이미 모자이크입니다.

정상 조직에도 변이가 있고, 그 변이는 우연이 아니라 생애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정밀하게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암과 노화를 “갑자기 생긴 사건”이 아니라 “오랜 축적의 결과”로 이해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어떤 조직이 왜 특정 질병에 취약한지,
왜 같은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병이 되고 누군가는 버티는지 같은 질문도 새롭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부검은 결국 인간을 다시 정의하는 방식입니다.

사람을 하나의 완성된 개체로 보지 않고,
수십조 개의 세포가 만들어낸 역사로 봅니다.

세포들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완전히 같은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이죠.

우리는 그 차이를 오랫동안 무시해 왔고, 그래서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해 왔습니다.

somatic mosaicism은 그 단순함을 깨뜨리는 개념이고,
따뜻한 부검은 그것을 현실의 데이터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 조합이 열어주는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인간은 한 장의 설계도가 아니라,
수십조 개의 미세한 변이가 겹쳐 만든 세포들의 생물학적 역사입니다.



P.S. 다시 한번 숭고한 정신으로 본인의 몸을 기증하신 분들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