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보니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내일이 박사 학위 논문 최종 심사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저녁에 진한 더치를 한잔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더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짙은 향이 가득 밴 쓴 맛 때문이다.


나는 커피에 민감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카페인에 민감하다고 해야 하겠다. 본과 1,2학년 때 시험치기 전날, 펩시 콜라 1캔을 마시고 밤을 새곤 했다. 우연히 커피를 마신 날이면, 완전 초인이 되어 눈을 부릅뜨고 밤을 지새웠다. 그렇지만, 학위 과정을 하면서, 박사 과정의 쓴 맛보다는 다소 달콤한 커피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종종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다양한 커피 원두의 독특한 향에 빠지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 학회 준비와 학위 과정 준비로, 커피를 거의 마시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는 그 날은 괜찮지만, 그 다음 날부터 몰아치는 리바운드 때문에, 커피를 일부러 멀리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오늘 커피의 민감도가 높아진 것 같다. 더치 한잔에 이렇게 잠을 자지 못하다니...


이 블로그의 이름이 MDPhD.kr 이긴 하지만, 나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PhD가 없다. 그러니깐,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 시점이 2007년 학위를 시작할 즈음이니깐, 시작할 때부터 학위는 받는다고 가정하고 시작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박사 과정이 길 줄은 크게 예상하지 못했지만...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커피의 쓴 맛 만큼이나 가슴에 쓴 맛을 남겼던 경험들... 미국 빅가이 랩에 포닥 고용 계약까지 완료하고, 비행기표까지 다 준비했는데, 학교측의 행정 미숙으로 해외 포닥 및 공동 연구 기회의 좌절된 일. 학위를 마치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부속 연구소를 병역지정업체로 신청했으나, 2번이나 연거푸 떨어져서 박사 과정이 길어진 일. 결국, 지정되었지만....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전문 연구 요원이었던 내 신분 때문에 발생한 일이니깐,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공식적으로는 전문연구요원이다.) 하지만, 덕분에 병역에 관해서는 정말... 정말 자세하게 알게된 것이 하나의 성과라면 성과랄까. 몰라도 좋았을 것을.... ^^ 


돌이켜 보면, 참으로 다양한 연구비 프로젝트를 썼었고, 보고서도 많이 썼다. 또한 임상에 갔으면 하지 못했을 다양한 경험을 했었다. 실험이 잘 된 날도 있었고, 실험이 안 되서 미친듯이 술을 마신 날도 있었던 것 같다. 가설과 맞지 않는 실험결과를 보면서, 몆 번이고 다시 실험했던 내 모습도 기억나고, 맞지 않는 그 결과를 결국은 받아들였던 내 모습도 기억난다. 하지만 결국 그 실험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줘서, 새로운 가설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가 생각하는 가설을 혼자 흥분해서 카메라로 녹화했던 모습도 기억난다. 


기초 의학을 하는 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항상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항상 미안할 뿐이다. 앞으로 더 잘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여유가 생기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박사를 시작할 때는, 학위를 마치면,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이 몰아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물론 박사 학위를 하는 동안에 잠시, 그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주변의 환경과 세월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항상 더 복잡한 상황과 그에 따른 고민이 등장했다. 


현재하고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 새로운 주제로 포닥하는 것, 전혀 다른 업종으로 진출하는 것, 임상으로 가는 것, 창업하는 것 등등 .... 박사를 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알게 되었고, 그 기회 모두가 내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 신중해졌고 또 다른 고민은 계속되었다. 내가 가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된다. 다시 한번 사춘기가 온 것 같다. 다행히 여드름이 나지는 않는다.


혹자는 그 선택에서 "재미"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하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이야기해 본 많은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 달랐다. 나 역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떤 길이 내가 원하는 방향에 더 가깝게 갈 수 있을지에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의대 시험 중에, 마치 대충 알고 있는 문제에 답을 찍는 듯한 느낌이랄까? 조금 더 공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한된 시간 때문에 다 보지 못하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맞이하게 된 그런 문제랄까? 내 박사과정 동안 미친듯이 치열하게 살았다면 고민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데, 그래도 부족했던 것일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다 맞출 수는 없었던 의대 시험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1번과 4번이 아니란 것 알겠지만, 3번과 5번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의대 시험과는 다르게 어떤 길을 가든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결코 내가 틀린 답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그리고 결국은 내 꿈에 도달하도록, 나를 채찍질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 발표를 잘 해야 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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