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omething the lord made 에 나온 두 주인공이죠.

Dr. Alfred Blalock and Dr. Vivien Thomas

편의상 알프레드와 비비안이라고 칭하고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Cardiac surgery pioneers Alfred Blalock and Vivien Thomas


이번 포스트에서는 알프레드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들의 연구 업적, 그리고 그들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싶습니다. 

Dr. Alfred Blalock. 그는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학위를 받고 수련을 받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중에 하나는 알프레드가 내과학의 전설(?)로 알려진 해리슨과 아주 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입니다.테니스 복식조로 Nashville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Harrison이죠 ^^ 책을 펴면 제일 앞에 나오는 ^^)



 (해리슨은 내과학에서 세실과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는 교과서 이름 중 하나죠. 거의 매년 업데이트되고 내과학 교과서로 명성과 공신력이 대단하죠.)

Edi poses as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Edi poses as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by ragesoss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홉킨스에서 수련을 마치고 벤더빌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서 본격적인 의학 연구에 돌입합니다. 이 때 주로 연구한 것은 Shock에 대한 것이지요. 예전에 쇼크에 대해서 포스트를 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혈액이 적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재는 쇼크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치료가 수혈이나 수액 보충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입니다만, 당시 1930년도만 해도 외상으로 인한 출혈성 쇼크에 대해 마땅한 치료가 없었죠. 쇼크에 대한 초기 연구를 수행한 사람이 바로 알프레드였던 것이죠.

영화에도 잠시 언급이 되지만, 외상이나 출혈로 인해서 혈압이 낮아졌을 때,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의학적으로 처음 밝힌 것이 그였죠.(정확히 따지자면, 처음 밝혔다기 보다는 치료적 방법론 설정이 더 정확한 표현일껍니다)

 당시 수혈이 외상성 쇼크의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동물(개)모델을 이용해서 처음 보여 주었고, 그 연구는 후에 2차 세계 대전에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전쟁 중에는 외상으로 인해 출혈성 쇼크를 나타내는 환자가 많았고, 그 환자들을 수혈함으로써 살릴 수 있었던 것이죠.

안타깝게도 그는 밴더빌트 대학에 있는 동안 결핵에 걸리게 되고, 죽음 직전까지 간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런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 결국 그를 더욱 더 의학에 매진하게 하였겠죠.

1941년 그는 비로소 존스 홉킨스 의대로 초청받아 오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다양한 외과 기술을 이용해서 순환기 계열 질환을 치료하게 됩니다. 당연히 비비안도 같이 와서 다양한 실험을 같이 진행하게 됩니다.

ToF.AVSD
ToF.AVSD by HeartBabyHome 저작자 표시비영리


Tetralogy of Fallot (팔롯사징-TOF)이라는 선천성 심기형을 치료하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심장에 칼을 댑니다. (실제로 심장에 칼을 대는 것은 아니고, 그 주변부에 일늘 subclavian artery와 pulmonary artery를 연결하죠) 여하튼 선천성 심질환인 TOF를 "수술"로서 극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현재는 이 수술(Blalock-Thomas-Taussig shunt)는 더이상 이용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수술이였죠.

이 수술을 기점으로, 흉부 외과라는 과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심질환을 내과적 치료가 아닌 외과적 수술로 극복하는 개념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지요. 현대 흉부외과의 효시인 셈이지요.


이 수술로 1954년도에 임상 의학 부분으로 라스커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토마스 비비안은 빠져 있죠.
 



그리고 현재 존스 홉킨스 병원에는 그의 이름을 딴, Alfred Blalock Clinical Science Building도 있죠. 그리고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는 Helen B. Taussig-Alfred Blalock Research Prize로 명명된 상도 있죠.

한 분야에 대해서 효시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은 정말 명예로운 일인 것만큼은 사실이죠. 그리고 알프레드는 흉부외과의 선구자로, 의학자로서 그 명성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당시 존스 홉킨스로 몰려온 선천성 심장질환 소아 환자가 아주 많았습니다. 이는 결국 "세계 최고의 의대가 어느 곳이냐" 하는 논쟁에서 존스 홉킨스 의대가 하버드 의대를 한발짝 앞서 나간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한가지의 임상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서 사실 대단히 많은 실험적 증거가 필요하고, 당시 심장질환의 외과적 접근 역시 당연히 실험적 근거에 기반해서 수행되었습니다. 물론 현재보다는 훨씬 적은 수의 실험에서 수행되었지만, 당시에도 동물 실험과 같은 근거는 필수적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수술 역시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성공하였습니다. 집도의 개인의 실험적 근거 확신, 그리고 근거가 있는 도전에 대해서 관대한 교육적 문화, 의학과 환자 치료에 대한 열정을 가진 다양한 사람이 결국은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알프레드는 실제로 조금은 shy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시야로 현대 흉부 외과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의과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임상의학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근거 없는 경험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를 가진 과학으로 임상을 다룬 알프레드.

"당신의 열정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Alfred Blalock M.D.

(1899.4.5 - 196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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