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생신분으로 생리학 강의를 들은 것이 10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2007년도에 생리학교실에 조교로 남아 실습강의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3년째 신경생리와 신장생리 부분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생리학강의와 공부접근법에 대해 학생 때 느낀 점과 현재 입장에서 느끼는 점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본과 1학년 때 저는 해부학보다는 생리학을 더 좋아했습니다. 저는 암기보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부분이 더 공부하기가 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의를 해주시는 교수님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원서를 읽어서 인체생리를 이해하기에는 시간도 없었고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부분은 공부 잘 하는 친구에게 의존하거나 족보에 의존하였습니다. 사실 족보만 다 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했으니까요

(생리학 교과서 중 하나인 가이톤(Guyton))

저는 생리학에서 특히 세포막 채널, 전기생리학 그리고 신장생리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또한 생리학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순환생리부분 시험을 치를 때 보상반응 전 상황으로 시험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야 할지, 아니면 보상반응 후 상황으로 시험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야 할지 모호한 부분이었습니다.

본과 3, 4학년이 되면서 생리학이 정말 중요한 과목이였음을 느꼈고, 아마도 다들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과 3, 4학년 때는 다시 생리학 책을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PK실습준비와 국시준비로 다시 생리학 공부를 하기가 어려웠던 부분도 있고, 본과 1학년 때 생리학 교제라든지 정리본들을 모두 잃어버려, 생리학 원서를 보기에는 너무 힘든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 처음 조교가 되어 생리학 강의를 다시 들어보니, 훨씬 이해가 잘 되었고 기억에 남았지만, 한 가지 느낀 점은 교수님들께서 너무 많은 내용을 다 알려주시는 것은 아닌가, 또 너무 기초적인 부분까지도 자세히 강의하시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초의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생리학의 기초적인 내용인 세포막 채널, 전기적 성질, 세포내 신호전달 등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과연 본과 1학년 학생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의사로써 꼭 알아야할 내용인지 등이 의심도 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신경생리와 신장생리를 강의하면서 이러한 자세한 기초적인 내용은 간략하게 강의하고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대신 전체 신경생리와 신장생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를 쉽고 간략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 본과 1학년 후배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교수님마다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과 강의스타일이 다르니,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 다 외우려 하지 말라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정부분 생리를 이해하고 큼직큼직한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한글판 인체생리학 책을 잘 이용하라입니다. “이석강 또는 김영규 저, 인체생리학 (고문사)”김기환, 엄융의, 김전 저 생리학 (의학문화사)” 책이 좀 오래되긴 하였지만, 나름 한글로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다양한 한글판 인체 생리학 책들)

세 번째는 강의록에 기록을 잘 해두던지, 공부 잘 하는 친구의 노트를 복사해두던지, 아니면 자신만의 정리노트를 만들어보라입니다. 이런 습관을 들이면 과목이 진행되어갈수록 전체를 볼수 있고, 진급을 하고나서도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생기게 됩니다

마지막은 첫 번째 내용과 비슷합니다만, 의사가 될 사람으로서 생리학에서 꼭 기억하고 이해해야할 내용이 무엇인지 잘 선별하여 공부하고 기억하라입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겠지만, 모든 의과대학 과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방대한 모든 지식을 다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 이를 위해서는 수업을 주의 깊게 잘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도 시험기간이라 밤새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보이네요. 저는 생리학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의과대학 공부는 항상 얕고 넓게 아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다시 반복과 반복을 하면서 살을 붙여나가야 합니다

시험기간전에 일주일동안 한 과목을 한번 보았다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임상과목 공부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주 얕고 넓은 지식을 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시험범위 전체를 공부하고 (반드시 하루만에), 그 과정을 적어도 다섯 번 이상 반복을 하면서 조금씩 살을 붙여가야 하겠습니다 (반복할수록 오히려 속도가 느려지겠지요). 이러한 공부방법이 국시공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교육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의 경험담과 느끼는 점들이 의과대학생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계명의대 생리학교실 연구강사 박재형



안녕하세요.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일단 의대라는 곳은 인체에 대해서 현재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업 공간인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의대는 예과에서 배우는 자연과학, 본과 1학년에서 배우는 기초 의학, 그리고 본과 2학년부터 졸업까지 배우는 임상 의학 다각도로 인체에 대해서 공부하고, 질병에 접근하는 시각을 그 어느 곳보다 잘 제시한다는 점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배경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by SendakSeus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본과 1학년은 전세계적으로 어디를 가나 비슷합니다. ^^ 

의대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교육 과정의 편차가 가장 적은 학과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인체의 질병에 대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연구라는 것은 하나를 깊게 매진하는 것인데, 의학은 그 학문 체계가 워낙 방대하여서, 의대 과정동안 하나를 자세하게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는 동안은 아주 자세하고 깊게 배우긴 하지만, 절대적인 할애량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모든 과정을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사들도 본격적인 연구는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관심있는 학생은 본1때부터 진행하기도 합니다.)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졸업과 동시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고, 임상 의학을 선택하면 빠르면 레지던트 3-4년차, 혹은 펠로우에 즈음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PhD가 대부분 학부 4학년때 혹은 석사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한다면 다소 늦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서 의대 학위는 환자를 대면하고 진료할 수 있다는 "의사" 라이센스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학문, 의학, 인체를 접근하는 틀과 다른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에 큰 장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작게는 주변 의대 동기, 선후배 등이 다 임상 의학을 하면서 진료 일선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고, 크게는 연구에서 임상까지 접근하는 Translational Medicine (중개 의학 - 링크)을 아우를 수 있습니다. 


pieces of you.
pieces of you. by NatShots Photography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해부학 책 중 하나인 Gray's anatomy)


물론 장점만 본다면 어느 곳이든 쉬워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기초 의학 자체가 의대 내에서 소수인 집단 (MDPhD.kr의 기초의학 글-링크) 입니다.  따라서 연구를 하는 시행착오 역시 오롯히 자신의 몫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임상을 하는 친구들과의 괴리감 역시 상대적으로 큽니다. 


아울러, 연구를 메인으로 하는 연구 중심 대학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포스텍) 등과 비교할 때, 교육에 대한 부담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더불어, 경제적인 측면 역시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절대적으로 본다면 일반 대학에 있는 대학원생과 비슷할 수 있지만, 자신과 의대 6년을 같이 공부한 동기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상황 (갈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짐)에 초연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울러, 정해진 임상 길과는 다르게, 모든 길을 자신이 개척해야하는 안개 같은 상황도 개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유로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사람은 한 학년에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의 기초 의학 전공자들이 중도 포기를 하고, 임상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전 그 선택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중도 포기와는 별개로, 기초 의학의 다양한 툴을 이용하면 임상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거든요. 아울러 위에 언급한 단점들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구요. 다만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은 있겠죠.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by phalinn 저작자 표시


따라서, 자신이 의대를 졸업하고 연구를 혹은 기초 의학을 선택한다면, 정으로 자신이 좋아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수가 되겠다.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단순한 생각입니다. 또 소위 말하는 뽀대(?)나 주변 시선을 신경쓴다면 더욱 이 길을 선택하면 안됩니다. 연구에서만큼은, 인생이라는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리턴이 결코 돈이나 지위와 같은 외부적인 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단순히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자신이 위와 같은 성향을 가졌다면, 임상을 선택했을 때 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예전 70-80년대에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교의 교수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의과 대학에서는 연구나 진료보다 학생 교육이 중심이었고(현재도 그러합니다만) 의사인 기초의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교육에 더 적합한 인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연구"가 의과 대학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무조건 기초 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의과대학 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그런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PhD가 의과대학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연구에서 강점이 크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의과대학에서 PhD를 교수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y estherase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따라서 연구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의대를 들어오지 않아도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시간이 많이 걸려도 인체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한 곳만 깊게 파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2000년도 이후에는 의대 자체를 들어오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에, 자신이 그 커트라인을 넘어서 의대를 들어올 수 있느냐도 위와 같은 선택의 변수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의사가 되어 기초 의학을 연구하고 싶어도 의대에 입학하지 못하면 MD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일종의 차선책인 셈이죠. 과연 재수 삼수를 해서 의대를 들어가야 하느냐? 현재로서는 그건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초 의학을 진로로 정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고민한 뒤에 진로를 선택하라는 것이고, 자신이 보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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