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상호라고 합니다. 현재 정신과 의사 봉직의이며 보통 페이스북에 글을 끄적대는 편인데, 블로그 주인장께서 이곳에도 글을 올려보라고 추천해 주셔서 처음으로 올려봅니다. 보통 제 글에는 깊은 내용은 없고요. 저질스러운 내용들도 많아서 큰 기대하지 마시고 심심풀이 땅콩 삼아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우리의 고등학교 입시 때를 생각해보면 자기 점수로 어느 대학 간판을 딸 수 있을지만 따져보았지, 전공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게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의대야 의사가 되는 게 확실했으니 두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기계과, 컴퓨터공학과, 토목과, 건축과, 기초과학 분야등 그 쪽으로 전공을 선택했을 때 어떤 진로가 앞에 기다리고 있는지 사실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 우리 스스로도 크게 알려고도 한 것 같지도 않다. 

대학에 들어가면 교수들이 고교 선생님들처럼 끌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대학들도 웃기는 게 입시생들에게 명확한 진로를 제시해 주는 목적의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수능 점수 좋은 아이들을 뽑아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잡고 행동을 했다. 

예컨대, 서울공대의 경우, 과 이름들을 원래보다 더욱 모호하게 만들어 버려서 선택에 더욱 혼란을 주는 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토목과면 토목과지, 지구환경시스템 공학과는 뭐임? 그거 알아보려면 전문가의 설명을 또 들어야한다. 입시 시절 거기에 원서를 넣으려다가 서울공대 출신 교수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그곳이 어떤 종류의 공부를 하는 곳인지 알게 되었다. 


그 과가 나쁘다라는 게 절대 아니라,

괜히 모호하게 포장을 했을 때, 

애매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는 거다. 


결국 진로의 가능성을 더 넓혀준다는 착각을 주는 것인데, 나는 그런거 전혀 동의를 못하겠다. 무엇이든 명확한 게 좋다. 잠시 옆으로 새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에 진심으로 충고를 해주고, 제대로 된 자료를 손에 쥐어줄 수 있는 멘토가 시스테믹하게 곳곳에 포진되어야 좋은 환경이다" 라는 것이다. 

우리 고등학교 때만해도 무조건 서카포연고 숫자 놀음이나 했지 진지한 인생 충고를 해주신 분은 극소수였다. 기억에는 딱 한분의 선생님, 우리 고딩 동기의 아버지. 평소 굉장히 무뚝뚝하신 분이지만 그 분은 제대로 말씀해주셨다. 더 넓고 길게 보도록. 아마 아버지의 마음으로 충고를 해주신 것 같다. 지금도 그분이 보통의 서연고카포 외치던 분들과 다른 주장을 하시던 게 생생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우리에겐 진로 선택에 고민할 시간도 너무 적었고, 제대로된 충고를 해주는 분도 거의 없었다. 아마 지금의 고딩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덫붙이는 이야기 이지만, 한때 한의대에 진학을 했던 성적 우수자들이 한의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았다면 과연 그 길로 진학을 했을까? 해답은 자명하다. 결국 정보의 부족이 가져온 참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진을 클릭하시면 동영상 링크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두개의 버전이 살짝 다릅니다. KBS)


의대 시절 본과 2학년 때 들었던 정신과 수업에서 아주 중요한 야마(족보) 중 하나가  "진료를 할 때는 의사는 항상 "문 가까이"에서 환자를 "안쪽"에 두어라. 그리고 가급적이면 문을 살짝 열어 두어라" 라는 것[각주:1]이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정신과 환자 특성상, 환자가 난폭해지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 두라는 핵심 명제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 그러니 환자가 설마 의사를..."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본과 2학년 학생으로는 아주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정상인과는 약간 다른 사고 형태를 가질 수 있는 정신과 환자에게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사를 부리는 주폭(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이 많은 응급의학과 뿐만 아니라, 1:1로 환자를 대면하는 피부과, 내과, 비뇨기과 등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동영상 링크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두개의 버전이 살짝 다릅니다. SBS  버전)


과연 이런 살인미수의 상황에서 의사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댓글을 보면 다수는 아니지만, "의사는 당해봐야 한다느니.. " "쌤통이다.." 등등 말도 안되는 "배설물"들이 넘쳐 흐른다. 과연 칼부림할 정도로, 사람을 죽일 정도의 일인가.. 잘못하면 한 사람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데, 그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자기 친구나, 자기 가족이 이런 상황을 맞이한다해도 과연 이렇게 댓글을 달 수 있을까?






사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그리고 그 의사가 백번 양보해서 정말 정말 잘못 했을 "수" 도 있다.(여러 정황 상 의사 입장에서 잘못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가격적인 면에서 정상보다 깍아주고, 컴플레인할 때 시술도 추가로 한번 더 진행하고 환불로 해줬다는 점을 봤을 때, 환자를 배려하는 센스가 있을 것이라 유추할 뿐이다. 관련 기사는 링크) 그렇다 해도 이런 반응은 정말 아니다.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시고 싶으신 분은 사진을 클릭하시면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찔린 선생님 인터뷰하는 것을 보니, 다행히도 중요 부위는 비켜 가서 회복을 하시는 중인 것 같다. 


이런 일의 방지는 사실 의사 뿐만 아니라, 환자 입장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사람을 만나고, 의사가 사람을 치료하는데, 그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한데, 내 앞에 있는 환자가 "잠재적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가정" 하나로 모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모든 환자가 사실상 "정신과 환자"가 되는 셈이다. 환자에 대한 배려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위가 확보된 상황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환자에 대해서 꼬투리가 안잡히기 위해 방어 진료를 하게 되고, 잠재적으로 "진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정신과 수업 시간에만, 문단속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의대 임상 교육 전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문단속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진료실에서 문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그 때 환자는 어디에 있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호신술도 선택실습으로 넣고, 의료법 강의 시간에, 폭력과 살인미수에 대한 법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아울러 그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와 어떻게 대처할지를 다루는 변호사법에 대해서도 배우자. 끝으로 잠재적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구분할 수 있는 관상학도 의사 국시 한 두문제에 넣도록 하자. 끝으로, 칼에 찔렸음에도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무한히 용서할 수 있는 해탈의 마음가짐도 예과 때 가르치자. 


단순히 살인 미수 사건 하나가 아니라, 의사가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는 상황이 사라지는 현 실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대면해서 환자를 히스토리하다 보면, 혹은 환자를 한 두번 만나거나 이야기해 보면,  그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충 예상할 수 있지만, 그 것이 내 목숨을 내 놓을 정도라면... 그 것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족들과 마지막 유언조차 하지 못하고, 평생 이별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말 의사라는 직업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1. CCTV를 잘 보면 알겠지만 이 의사는 문을 등지고 있었던 셈이라서 환자의 공격에 피할 수 없었다. 작정하고 찌르려고 덤비는 환자에게서 피할 수 없었던 것은 문이 어디에 있었느냐가 중요한 점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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