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동면의 자태.


우동 가닥을 집어 후루룩 빨아들이면, 투명할 뽀얀 면발이 춤추듯 입술을 때리며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면은 탱탱하고 탄력이 있어 이빨을 밀어내는 기분좋은 반발력을 느낄 있지만, 결코 씹을 힘이 들어갈만큼 단단하진 않죠. 매끄럽고 탱탱하게 만든 우동을 먹을 느끼는 즐거움은 관능적이라고까지 말할 있을 정도입니다.

쫄깃한 우동을 맛보는 쾌감...!!![각주:1]

그렇다면 면의 쫄깃함이 쾌감[각주:2]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진 음식에 대한 본능적인 선호도는, 보다 유익한 먹이[각주:3] 섭취하고 해로운 먹잇감은 기피할 있도록 하는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맛이나 지방의 고소한 , umami[각주:4] 등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은 먹이가 가진 주요 영양소를 적극적으로 섭취할 있도록 인류가 진화해 왔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반면 쓴맛은 자연에 존재하는 알칼로이드 계열 독극물 등을 피할 있도록 불쾌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이는 뿐만 아니라 식감에도 적용이 되는데, 채소나 과일의 아삭아삭한 식감은 충분한 수분을 함유하고 있고 세포벽이 파괴되거나 변성되지 않은, 신선하고 미생물의 침입을 받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시사하므로 식욕을 돋우는 것이 합당하지만, 물컹물컹하거나 끈적끈적한 식감은 반대로 미생물이 번식하여 단백질이 변성, 파괴되고 세포벽등의 구조가 무너졌다 신호이므로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맛있는 것에 끌리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면이 가진 쫀득쪽득한 탄력을 쾌감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있겠습니다. 음식이 탄력을 가질 있는 것은 콜라겐 등의 탄성 단백질 덕분인데,  우리가 낙지 볶음을 먹고 쫄깃함을 느낄 있는 것은 낙지의 탄성 단백질 파괴되지 않고 사슬, 나선 혹은 그물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좋은 음식물이 가져야 하는 두가지 조건, 영양소가 풍부하며 신선하다 두가지 조건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탄력있는 식감인 것이죠.

 

찰지구나.[각주:5]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본능에 따라 음식을 섭취하는데 그치지 않고, 음식이 주는 쾌감을 보다 편리하게 극대화할 있도록 노력합니다. 설탕, 소금 천연 재료를 정제 혹은 농축해서 조미료를 만들고 발효를 통해 umami 주는 아미노산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절임 등의 저장방법을 통해 아삭한 식감을 오래 유지할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가 음식에서 느낄 있는 쾌감을 계절, 산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집에서 간편하게 느낄 있게 된것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쫄깃한 식감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 탄성 단백질의 구조에서 나오는 것으로 재현하기, 보존하기 쉬워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러한 쫄깃한 식감을 재현할 단서를 아주 오랜 세월 전에 찾아냅니다. 바로 글루텐이죠


글루텐의 구성


Glutenin gliadin으로 구성되는 단백질인 글루텐은 밀이 가진 단백질이며, 밀가루를 반죽하면서 gluten분자는 사슬 결합구조를 이루면서 탄력이 생기게 됩니다. 글루텐 분자가 hydration되면서 탄성은 커지죠.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국수는 무려 4천년전 것이라고 하는데, 이미 사람들은 밀이라는 곡식을 탈곡하고, 도정하고, 제분해서 물과 함께 반죽하면  이렇게 탄력이 생겨 국수를 만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응용했다는 뜻입니다. 때부터 이미 인류는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쫄깃한 식감 즐길 있게 것이죠. 면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말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국수 이외에도 인류의 놀라운 식문화 유산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국수가 만들어져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국수가 생겨났지만, 앞서 말한것처럼 우동의 식감은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동의 쫄깃함이란건 인간이 만들어낸 식감이지만, 기분 좋은 탄력에 비할만한 것은 천연 식재료 중에서도 얼마 없지 않을까요.

탄력에 비할 있는 것으로 제가 떠올릴 있는 것은 센불에 빠르게 볶아낸 낙지나 미디엄 정도로 절묘하게 삶은 꼬막, 데쳐서 얼음물에 헹궈 탄력을 살린 새우 정도….?? (왠지 떠올리다 보니 많이 생각나는 느낌도쿨럭)

게다가 우동은 물과 밀가루, 소금만 있으면 만들수 있다는 압도적인 가격 접근성의 메리트를 가지고 있지만…. ‘국물이, 끝내줘요.’ 하는 오래 인스턴트 우동 광고 에서 보듯이,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우동 자체보다는 국물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이고 정작 주인공인 우동 면은 함량 미달인 곳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요즘에 들어서는 일본 본토 수준에 가까운 우동집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같은데요.


이제 면발도 좀 끝내줍시다.


우동 면이 국물에 떠있는 탄수화물 덩어리 건더기가 아닌, 주인공의 역할을 당당히 보여주는 그런 우동집이 제가 한국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밤, 쫄깃쫄깃한 글루텐을 생각하면서 우동 한 그릇 어떨까요?


  1. https://www.youtube.com/watch?v=NjVugzSR7HA [본문으로]
  2. Pleasure. 영문 위키에서는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이 경험하는 긍정적이고, 즐거우며 추구할만한 정신적 상태를 총칭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신체에 주는 채찍과 당근 중 당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죠. [본문으로]
  3. 이 때는 인류로 진화하기 전이므로 음식이 아니라 먹이를 먹습니다. [본문으로]
  4. http://ko.wikipedia.org/wiki/%EA%B0%90%EC%B9%A0%EB%A7%9B [본문으로]
  5. http://blog.naver.com/undernation/130100558497 [본문으로]

입시공부 끝에 만난 대학생활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대학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지 하며 버텨내었던, 내 고등학교 생활이 허망할 정도로. 그 덕에 예과 때 맘껏 놀라는 본과 선배들의 말에 충실히 어영부영 예과 생활을 보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예과 2년동안 지내는 캠퍼스와 본과 4년 동안 캠퍼스가 지리적으로 달랐고, 그런 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커서 예과 때까지는 전혀 의대생이라는 자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장면까지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본과 캠퍼스 기숙사에 입사하며 이사를 한 후에야 내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자각과 중압감이 동시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입 후 처음 만났던 의대다운 학문은 모든 의대생들이 그렇듯이 골학이었다. 돌이켜보면 단순암기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 단순암기조차도 차후에 만날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하찮을 정도로 양이 작은 과목이었지만, 본과 수업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쏟아내고 하는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느끼며 배우게 된 과목이 생리학이었다. 생리학 또는 physiology, 이름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인 물리, physics랑 닮아있었고 과목 내용 자체도 그러했다. 의대 본과 1학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을 내 기준에서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은 형태에 대한 암기, 생화학은 핵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에 대한 암기(적어도 나에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라면 생리학은 세포, 기관,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는 과목이었다. 내가 생리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리학에서 배웠던 심장생리, 신장생리, 호흡생리 등등은 병리학, 더 나아가 임상과목 순환기학, 신장학 등등을 배울때 기반지식으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기생리 분야를 가장 즐겁게 공부했었는데, 전기화학평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막전압 방정식, 그러니까 Nernst 방정식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사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고 넘어가고 싶은데, "오지의 마법사"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짧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왼쪽항을 먼저 순서대로 살펴보면 몇가 이온인지 나타내는 z값, 1가 양이온 Na+라면 1, 2가 양이온 Ca2+라면 2, Cl-라면 -1 등으로 매겨진다. 전압 E은 세포막를 기준으로 양 쪽에 걸리게 되는 상대적인 전위차를 말하는데 이 세포막은 일종의 축전기같은 역할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전류가 직접적으로 흐르지 못하는 축전기나 인지질 이중막으로 이온이 잘 통과 못하는 세포막은 성격상 비슷하다. 패러데이상수 F는 단위가 C/mol로서 1몰의 전자가 가진 전하량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왼쪽항은 막 사이에 걸리는 전기적 에너지(전압x전하량)다. 

오른쪽항은 기체상수 R은 단위가 J/mol*k 이다. 1몰의 분자의 화학적 자유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온도 T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고, 세포막 안팎의 이온농도 C로 이루어진 항을 보면, 결국 농도차에 의해 생기는 세포막를 통과하려는 에너지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온의 전기에너지인 왼쪽항화학에너지인 오른쪽항평형에 이르는 지점을 찾는 방정식이다.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는 동시에 농도 구배에 영향받는 분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기화학적 에너지가 평형상태에 이른 상태의 평형전압, 또는 이온의 농도를 알 수 있다. 사실 아주 적은 농도의 이온 이동만으로 막전압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세포 안밖의 이온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평형전압을 알아내는데 쓰인다. 

이 방정식은 전기적 특성을 가진 이온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는 세포막을 만났을 때만 성립한다. 때문에 태초 생명 발생의 신비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초의 생명이 세포막으로 외부 환경과 구별짓고, 세포막 내부에 이온, 각종 단백질을 모아 생긴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시바다에서 최초로 생명체가 생성되려할때, 주변환경과 구별되는 경계를 세포막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포막 안에서는 유전체, 단백질 등을 구성했겠지. 그런데 이 물질들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음전하를 띠고 있다. 그래서 상보적인 양이온을 대량으로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하는데, 이게 K+ 이온이다. 그리고 세포막 바깥에는 원시바다에 풍부한 Na+ 이온과 Cl- 이온이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 상태의 세포는 K+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높고, Na+ 이온과 Cl-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낮다. 그 결과 안정상태의 세포의 막전압은 K+ 이온의 평형전압에 가깝게 된다. Nernst 방정식의 등장이다. Nernst 방정식에 세포 내의 K+ 농도 140mM, 세포 바깥 농도 5mM 을 넣으면 평형전압이 대충 -80mV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안정을 이룬 덕분에 세포는 삼투압으로 인해 세포막이 터지거나 하지 않고 외부환경과 분리된 내부환경을 이룰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불투과성인 Na+이온의 평형전압은 약 +40mV이상인데 (K+ 이온과 분포 양상이 반대이므로), 외부에 풍부한 Na+이온에 대해 투과성이 생기게 하면, 다른 말로 Na channel이 열리면 Na+ 이온이 세포 안쪽으로 유입되면서 세포의 막전압이 순간적으로 +40mV로 치솟게 된다. 이것은 전기생리나 신경생리에서 중요한 개념인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기전이다. 

여튼! Nernst 방정식은 생명 발생의 모습부터 활동전압이라는 개념까지 두루두루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자들이 행했던 노력들, 자연의 네가지 기본힘인 전기력, 중력, 강력, 약력을 통일하려 했던 그 노력들,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연상케 했다. 생명탄생의 신비 중 일부를 훔쳐본 마냥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님 말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마음 역시 수학,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생리학 수업 덕분이었다. 비록 공부를 더 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마음이 그렇게 쉽게 답을 내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뱀발. 요즘 신경과학의 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마음/뇌 문제는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서평을 쓰고 싶지만..읽는 속도가 영 느려서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달정도 읽어서 이제 180쪽 정도...OTL 아직 남은게 700여쪽...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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