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이은 2012년도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입니다.


지난 번에 야마나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존 거든 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존 거든 경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입니다. 기사작위 이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죠.


공식 명칭은 Sir John Bertrand Gurdon, Fellow of the Royal Society (FRS)입니다. 


2012년도에 노벨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 이전에도 아주 대단한 과학자였습니다. 영국 출신의 과학자로서는 대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받은 과학자입니다.


Sir 이라는 칭호는 영국 왕실에서 직접 하사하는 기사 작위이구요. FRS는 영국 과학자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추천과 업적 인정을 통해서 선정하는 것입니다. 명예의 전당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또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연구소 이름이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까지 가지고 있는 과학자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노벨상까지 수상했으니,스포츠로 따지면 그랜드슬램을 한 셈입니다.


이정도만 봐도 이 사람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가를 유추할 수 있겠지만, 이 사람이라고 좌절이 없었겠습니까? ^^


야마나카 교수 역시 정형외과 의사로서 아주 큰 좌절을 느꼈듯, 이 사람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아주 큰 좌절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남들이 보았을 때, 좌절이였겠지만, 거든은 그걸 실패로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전교 꼴찌를 한 성적입니다. 



존 거든 경은 영국에서 명문인 이튼 스쿨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부터 거든은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공부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저 호기심이 있을 뿐 기존에 어떤 것이 해결되었는지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과학 과목은 꼴지를 도맡아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이 이 사람이 명문인 옥스퍼드(Oxford)에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처음에 생물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고, classics (고대 그리스 라틴학 인 것 같습니다) 을 전공했습니다.


영국의 자세한 입시 제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당시에는 문과 학생 입시 선발에는 이과 과목을 전혀 보지 않았거나 (이해찬 교과부 장관 시절, 우리나라에서 시행했었다가 처절한 비판을 듣고 접었었죠. 아직도 그들은 이해찬 세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당시 1950년대에 대학 진학을 하는 사람이 아주 적었던 상황이였을 것이라 유추해 봅니다만, 여하튼 거든 경에게는 아주 큰 행운이였던 것이죠.


당시 거든 경이 다니는 옥스퍼드는 현재도 그러하지만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 세계 일류를 달리고 있었고, 정신 차린(?) 거든 경의 왕성한 호기심을 만족시킬 공간이였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부단히 생물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던 것이지요.


사실 어떤 학문이든 일정 수준 이상을 가게되면 처음부터 정해진 답은 없고, 퍼즐처럼 그걸 풀어낼 연구 방법들만이 존재하고 있죠. 거기에다가 사람이 가진 가설을 추가하면 결과적으로 답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즉, 거든 경 주변(Oxford)에 연구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죠.


그렇게 박사과정을 마치고,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준 논문을 1958년도에 Nature에 냅니다.

Gurdon, J. B.; Elsdale, T. R.; Fischberg, M. (1958). "Sexually Mature Individuals of Xenopus laevis from the Transplantation of Single Somatic Nuclei". Nature 182 (4627): 64–65. doi:10.1038/182064a0. PMID 13566187


이 논문을 내고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칼텍(Caltech)으로 박사후과정(일명 포닥)을 하러 갑니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죠. 자신이 칼텍에 가 있는 동안에도, 1958년도에 만든 개구리가 충분히 잘 자랄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잠시 미국에 다녀와도 된다고 하면서 미국을 간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칼텍에서 돌아온 거든은 이번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근거가 되는 논문을 씁니다.


Gurdon, J. B. (1962). "The developmental capacity of nuclei taken from intestinal epithelium cells of feeding tadpoles". Journal of embryology and experimental morphology 10: 622–640. PMID 13951335


간략하게 설명하면, "체세포로 분화된 세포의 핵만을 핵이 없는 세포에 넣어주니깐, 마치 갓 수정한 세포처럼 변한다." 라는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쓴 것이지요.


황우석 사건 때 한창 논란이 되었던 체세포 핵치환의 시작점이 되는 아주 중요한 논문인 셈이지요.
이 논문을 통해서, 분화된 세포라 할지라도, 조작을 가하면 초기 리셋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고, 그 증명은 이언 월머트에 의해 복제양(포유류)을 만드는 근거 역시 제공하였습니다. 물론 거든 경 이후 35년, 성공률 1/227 (약 0.5%)의 확률이긴 했지만, 여하튼 리셋되어 개체가 태어난 것 만큼은 사실인 셈이죠.


그 이후, 거든은 옥스퍼드에서 10년 정도를 보내곤, 캠브리지(Cambridge)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캠브리지 의과학 브랜드 발전에 큰 기여를 한 Wellcome/CRC Institute for Cell Biology and Cancer (later Wellcome/CR UK)을 설립하고,  2004년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거든 연구소(Gurdon Institure)까지 생겨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국가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학교 측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셈이였지요 영국의 두 명문 라이벌을 말하자면 Oxford와 Cambridge인데, 두가지 모두를 겪은 행운아인 셈이지요. 결과적으로 Cambridge에서 거든 경이 노벨상을 수상하였으니, 캠브리지가 훨씬 마무리를 잘한 셈이지만, 옥스퍼드 역시 거든 경의 호기심을 무한히 충족할 수 있는 버퍼를 제공한 셈입니다.



언론에 나오 거든 경의 소개 사진을 보면, 대부분, 이 사진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사진을 보고, 스트리트 파이트에 나오는 가일을 많이 닮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닮았나요? ^^ 제가 보기엔 똑같습니다. ^^


저 역시 지난 번 포스트에 이 사진을 이용하긴 했습니다만, 위에 소개한 거든 연구소 사진들 처럼 훨씬 준수(?)한 사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진을 통해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이런 사진을 허락할 정도(?)로, 거든 경은 유머가 넘치는 유쾌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썰렁한 농담도 많이 하기 때문에, 과연 이 사람이 과학자가 맞나 싶은 적도 있다곤 하지만, 같이 일하면 즐겁다는 점은 과학자로서 정말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학 대가들은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유머가 있어서 대가가 된 것인지, 아니면 대가라서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대가들은 즐겁고 밝습니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 능력이 과학자에게 필요한 능력 중 하나라서 그런가 봅니다.. 



그의 연구실 한켠에 항상 꼴찌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고등학교 성적표까지 붙여 놓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대인배(?)인지 상상이 가시는지요?


자신의 꼴지성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한국에서도 꼴찌가 보란 듯이 성공하고, 주변에서 그것을 폄하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욱 더 퍼져서, 거든 경과 같은 성공 스토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 실수는 그냥 실수일 뿐이고, 그 실수는 다음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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