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버드에서 본 일이다.

 

늙은 포닥 하나가 대학 도서관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꼬깃꼬깃한 논문 한 편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논문이 SCI인지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도서관 사서의 입을 쳐다본다. 도서관 사서는 포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중국인이 공유한 SCI 엑셀 파일을 두들겨 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논문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행정실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논문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SCI급 논문입니까? " 하고 묻는다.

 

행정 실장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논문을 어디서 훔쳤어?" 포닥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SCI 논문을 그냥 주나요? 서브미션하면 피어리뷰는 안 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포닥은 손을 내밀었다. 행정 실장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논문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논문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공동기기실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클린 벤치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논문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1저자는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논문을 줍니까? PCR (Polymerase Chain Reaction) 사진 한 장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논문 코멘트 한 마디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세포 하나 하나 비교해 가며 Immuno 사진을 한 장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In vitro Figure 10장으로 In vivo 마우스 데이터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논문 (論文)' 한 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논문을 얻느라고 여섯 번 리비전이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논문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논문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논문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알파카 MD and PhD 페이스북에 있는 원글

 

BGM


↑ 클릭하면 움직여요. 움짤이야.

간만에 문화산책입니다. 매드맥스:분노의 포닥이 곧 극장가를 강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IBS 문제는 처음 시행될 때 부터 말들이 많이 나왔죠. 정부에서는 재원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 개인연구자들에게 가는 피해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연구자들이 실제 체감하는 연구비 사정은 조금 다른 듯 싶어요. 

노벨상을 타기 위해 개인에게 연간 100억씩 준다는 발상이 참 해괴망측하기도 하고, 연구에 자본주의의 잣대를 들이대는 꼬라지가 우리나라 천민자본주의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IBS 단장님들이 꼭 반드시 노벨상을 타시기를 매일 매일 정화수 떠놓고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거 없어지면 내가 가끔씩 이렇게 깔 께 없어져서 심심해져요.)


연구실을 방황하는 연구자를 위한 안내서


연구실 안에서 박사과정 학생들은 자신들이 가장 지적능력이 탁월하며, 모든 실험을 관장한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는 하는데, 사실 연구실 안에서 그들은 네번째로 똑똑한 존재들이다. 은하계의 현인들인 생쥐들은 실험실에서 두번째로 똑똑한 존재들이다. 인간보다 우월한 지적능력을 가진 개체들은 이들은, 애써 세운 가설과 다른 정반대의 행동을 보임으로써 연구자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보이는 행동을 관찰하는 실험을 세우고는 한다. 따라서, 연구실에서 지적능력에 따라 순위를 나누어 보자면, 생쥐 - 포닥 - 박사 - 석사의 순이다. 


애석하게도 교수라 불리우는 생물들은 순위에 들지 못한다. 그들은 주로 작은 녹색 종잇조각들을 연구실로 모아오는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하는 낮은 지적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들은 바로 E. Coli이다. 

우주를 히치하이킹 하기 위해서는 안내서와 타올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연구실에서는 조금은 다른 것이 필요한데, 바로 킴와이프스와 안내서이다. 킴와이프스는 가루가 날리지 않는 휴지의 한 종류로써, 실험실 기기 청소에도 탁월하지만, 티슈가 없을 경우 화장실에서 사용하기에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엄격하게 치질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만 사용을 권유한다. 현재 당신이 읽고 있는 바로 이 책인 연구실을 방황하는 연구자들 위한 안내서는 방대한 지식과 역사의 at the bench 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더 유명한 책인데, 그 이유는 한글로 적혀있다는 점과 책의 생김새가 전공서적과 비슷하여 실험실에 간혹 출몰하는 교수라는 생물체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 


먼저, Research Tips에서는 논문을 읽고/요약하는 법 부터, 과학연구결과의 발표법 및 연구비조달을 위한 연구계획서 작성법/연구비 수주를 위한 프리젠테이션 등에 대한 내용. 그리고, 효과적인 논문쓰기를 위한 여러 어플리케이션 소개 및 기타 실험실 생활에 관련된 여러 팁들을 소개하고, 

영문논문작성법 코너에서는 mimi zeiger의 "essentials of writing biomedical research papers"를 바탕으로 영문으로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해서 소개하려 한다. 


만일 길거리에서 이 책을 습득한다면,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줄 필요는 없다. 아니, 사실 실물로 된 책을 습득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 모르겠다. 여하간, 당신의 건투를 빈다. Don't panic




이번 글에서는 제가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 중, 지난 글(http://mdphd.kr/153)에 이어서 학교와 연구분야의 선택부터 지원에 필요한 다양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준비하였던 경험담에 대하여 다루어 보겠습니다.


4. 학교의 선택과 연구분야의 선택

학교의 선택과 연구분야의 선택은 지원서 작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특정 관심 연구분야가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면 이 부분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관심사가 넓고 다양한 연구를 해 보고 싶은 경우에는 학교 선택과 랩 선택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연구의 큰 카테고리 정도만 정해두었을 뿐 세부적인 연구주제는 넓게 열어두었으며, 이로 인하여서 조사하여야 할 정보의 양이 방대해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학교 선정은 US News 웹사이트(http://www.usnews.com/best-graduate-schools)에서 제공하는 학과 별 랭킹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애초에 유학의 목적을 설정할때부터 가장 뛰어난 연구환경과 가장 뛰어난 동료들 틈에서 연구해보고 싶은 열망이 컸기 때문에, 학과별로 참고할만한 지표를 제공하는 US News 학과별 대학원 랭킹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한 학교들을 중심으로 지원할 곳을 선정하였습니다. 참고로 또 다른 대학원 랭킹 자료로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아카데믹 서치(http://academic.research.microsoft.com) 사이트의 랭킹 정보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US News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랭킹을 정하기 때문에 순위가 다릅니다. 특히 어느 교수로부터 얼마나 많은 저널이 나오고 있는지, 주로 어디에 퍼블리쉬 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점이 장점입니다.

두번째로 나의 관심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가 있는가 라는 기준으로 학교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선정한 학교 중 70% 정도의 학교가 남게 되더군요. 이 과정과 동시에 각 학교별로 제가 contact 해야 할 교수(연구그룹) 목록을 확보하였습니다. 제 나름의 연구그룹 선정 기준으로는 (1) 연구분야가 흥미롭고 유용할 것, (2) 그룹의 책임자는 가급적 부교수(associate professor) 포지션 이상일 것, (3) 최근 5년간 매년 일정량 이상의 연구성과가 있는 연구그룹일 것 등이었습니다. 부교수 포지션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첫째로 정년보장이 되지 않는 조교수(assistant professor)에 비해 갑자기 학교를 떠날 확률이 비교적 낮다는 것과, 둘째로 나를 선발할 권한을 가진 선발위원회(admissions committee)의 일원일 가능성 등을 고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원한 학교에서 입학 허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하는 전략적인 방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제 시험 성적으로 지원 불가능한 학교를 제외했습니다. 시험 성적이 충분하지 못하여서 딱 두개의 학교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가장 가고싶었던 학교 중 하나도 TOEFL 성적 때문에 포기하여야 해서 그 당시에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었습니다.


5. Curriculum Vitae 작성하기

Curriculum vitae, CV는 이력서의 일종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력서를 나타내는 영어 표현인 resume와 동의어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문적 배경과 저널 논문 실적 등 학술적인 이력, 그리고 본인의 학문적 경쟁력 (수상, 장학금 수여실적 등) 등을 빠뜨리지 않고 상세하게 나타내는 형태의 이력서를 resume와는 구분지어서 CV라고 표현합니다.

CV를 작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샘플 CV를 구해다가 비교하면서 저만의 CV를 작성하였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구한 CV 샘플 중에서는 박사과정 지원자의 샘플과 포닥(post-doc) 지원자 샘플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지원 전에 직장에서의 연구경력이 있기 때문에 경력사항이 길게 나열된 포닥 지원자들의 샘플이 제 상황과 더 잘 맞았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수많은 박사과정 지원자들의 CV 샘플을 보면서 연구경력이 많지 않거나 전혀 없는 지원자들도 의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유학 준비를 하다보면 남들은 다들 나보다 특출난 것 같이 생각될 때가 많고, 이로 인하여 온갖 걱정거리가 머리속을 어지럽힐 때가 많습니다. 저도 저만 못난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창 마음이 힘들던 시기가 있었는데, 한때 나만큼 못난 것 처럼 보였던 사람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학술적인 커리어를 잘 쌓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걱정거리를 이겨내기도 하였습니다.

CV에 들어가는 내용들은 모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순서로 나열할지, 어떤 것을 강조할지, 어디에 배치할지 등을 통하여서 나의 경쟁력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수논문상, SCI 논문 등 내세울만한 핵심적인 사항들은 앞으로 다 끌어모으고,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해 봤다는 류의 지루하게 나열할 내용들은 뒤로 밀었습니다. 직장에서 수행한 다양한 프로젝트 경력 때문에 다섯 페이지나 늘어지는 긴 CV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페이지 안으로 다 넣으려고 노력했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편리했던 점 하나는, 지원하는 학교 중 CV 분량제한이 있는 학교에 제출할 때에 다시 작성하지 않고 첫 페이지만 떼어서 제출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6. E-Mail 보내기

제가 속하고자 하는 연구그룹의 PI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목적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그 그룹에 채용하고자 하는 빈자리가 있는지, 그리고 그 그룹에서 나를 채용해 줄 수 있을지 의사를 알아보는 것이 주요 목적입니다. 또한 연구그룹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였을 경우 학생 연구자에게 research assistantship (RA) 형태로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데, 재정지원을 요청하고자 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외에도 학교에 공식적으로 지원하기 전에 이메일을 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더 있습니다. 먼저 혹여나 이메일을 받는 대상이 선발위원회의 일원일 경우,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학생이 이메일을 보내었다면 우선적으로 선발해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학업배경을 지닌 학생이라면 선발위원회에 공식적으로 그 학생에 대한 선발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알리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메일을 보낸 교수의 랩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추후에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로 발전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참고로 유학 준비를 함께 한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하면, 입학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나도 메일 답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마음이 참 불안해지더라고요. 하지만 엄청난 연구업적을 가진 학생이어서 교수가 조바심을 낼 정도가 아니라면 답장이 오지 않는게 일반적이라고 하니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입학허가를 받기 전에 이메일 10통 넘게 써서 딱 두개의 답장을 받았고, 지금 가기로 최종 결정한 학교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던 학교입니다. 게다가 저에게 온 답장 중 하나는 "지금은 너랑 할 얘기 없으니 나중에 혹시 우리학교에서 입학허가를 받게 된다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라는 다소 불친절한 말투와 내용의 답장이었습니다. 결국은 그 학교는 3월 초가 되자마자 저에게 입학 거절을 통보했습니다.

엉엉 차라리 답장을 받지 않는게 좋을뻔 했어요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은 개개인의 메일을 쓰는 성향에 따라 다르고, 분야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의사표현 방법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어떠한 연구그룹의 일환이 되기 위하여 나를 어필하는 전략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간결하게 작성해서 첫 두세 줄을 읽고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다 파악할 수 있도록 작성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7. Statement of Purpose 작성하기

기존에 이수한 학업성적과 저널, 컨퍼런스 페이퍼 등 연구업적은 변하지 않는 개인 능력의 정형화된 지표인데 반하여 SOP와 추천서 등은 지원하는 시점에서 본인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따라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글을 작성하여야 합니다.

먼저 Statement of Purpose, 줄여서 SOP는 (1) 나는 누구이고 왜 이 학교를 지원하는지, (2) 내가 이 학교에 진학한 후에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 (3) 내 연구를 통해서 향후 어떠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4) 그래서 궁극적으로 학위를 받은 후 내가 하고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문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기소개서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나에 대해서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우리나라 개념의 자기소개서와는 상당히 다른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SOP는 철저히 혼자 작성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동의하시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교정가들과 컨설턴트들이 활동을 하고 있고, 대부분의 유학 준비생들은 최소한 원어민 교정가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 정도입니다. 이러한 점을 부정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저도 컨설턴트의 손을 거치기도 하였고 원어민을 통해서 최종 교정도 하였습니다. 다만, 초안을 작성하는데 있어서는 철저히 혼자 작성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많은 SOP들을 읽어보면 많은 경우 서로서로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사자들은 매년 수많은 SOP를 보아왔을테고, 남들이 하는 이야기랑 크게 다르지 않은 SOP를 따로 골라서 우선적으로 선발할 대상으로 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 경우에는 남들과는 차별화된 나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다른 자료들을 다 덮어놓은 채, 워드프로세서만 띄워놓고 몇날며칠 혼자 고민해가면서 초안을 영어로 바로 작성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 SOP를 잘 작성하기 위해서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 정도는 숙지를 하였습니다. SOP에서 논리를 전개하는데 핵심이 되는 나만의 이야기와 나만의 경쟁력을 어필하기 위해 힘썼고, 또 어느 SOP 작성 가이드에서 읽었던 Example, Example, Example! 이라는 것을 항상 떠올리면서 적절한 예시를 통해 나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방법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여러 학교들에서 제공하는 SOP 작성 가이드 자료를 보면 최소한 3사람 이상 읽도록 하고 교정을 받아서 완벽한 글을 만들라는 조언이 꼭 빠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국 학생들조차도 에디터를 고용하여서 글을 교정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따라서 초안이 완성된 후에는 지인을 활용하든지 전문적인 컨설턴트나 교정가를 활용하든지 꼭 교정을 받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도 초안이 완성된 후에는 컨설턴트를 통해 약간의 가공을 거치고, 컨설턴트가 추천하는 전문 원어민 교정가를 통하여 최종 교정을 받았습니다. 교정을 거친 글을 읽어보면 내 영어실력으로는 도무지 표현하기 어려운, 굉장히 자연스러운 말로 내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나간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베테랑 교정가들의 손을 거친 경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학교별로 SOP의 분량이나 요구하는 글의 내용이 상이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한가지 버전의 긴 SOP를 작성하고 학교별 요구사항에 맞추어 줄이는 형식으로 준비하였습니다. Single-spaced로 세 페이지나 작성된 긴 글을 어떤 학교의 경우에는 한 페이지 미만으로 줄이기도 하였습니다. 내용을 줄일 때 나의 배경에 대한 핵심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은 과감하게 삭제하였더니 분량을 줄이는데 아주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떠한 학교들의 경우에는 분량 제한이 너무 빡빡해서 하고싶은 이야기조차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네요. 가장 심했던 곳은 최대 500단어 이내로 맞추라고 되어 있었는데, 사실 도저히 그렇게 나오지 않아서 분량제한을 조금 넘겨서 (MS Word의 단어세기 기능으로 약 530 단어) 작성했습니다. 약간의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아직 드네요.


경험담을 나열하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지고 있네요. 두편으로 끝낼까도 생각했는데, 다음 편 글을 또 작성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양질의 추천서 확보하기, 박사과정 원서 제출하기, Admission 결과 및 최종 결정, 그리고 펀드(장학금/학비/생활비) 확보하기에 대하여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최대한 열심히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포닥 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 포닥이 막 쪼이였다. 내가 점심을 먹고 실험을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였다. 실험실에 들어가려니까 등 뒤에서, 포닥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옆 실험실 박사과정과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교수네 박사(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인데, 이번에 impact factor가 10점도 넘는 논문을 냈다)이 케이온의 미오가 프린팅된 티셔츠를 입은 뚱뚱한 우리 포닥을 함부로 해대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대는 것이 아니라, 클린벤치를 쓰고 뒷 처리를 잘 안 했다며 쪼고 물러 섰다가 또 CO2 incubator에서 곰팡이가 난다면서, 또 쪼아대었다. 그러면 이 못난 오덕 놈은 쪼일 적 마다 연신 땀을 흘려대며, 헉헉댈 뿐이였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 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 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파이펫을 메고 달려들어 점교수네 박사를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 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교수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 놈의 교수놈이 요새로 들어서서 1년마다 재계약하고 있는 연구교수인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렁거리는지 모르겠다. 


나흘 전 연구비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고놈의 조교수가 논문을 썼으면 썼지, 남 실험하는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실험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도 교수회의에서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척만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도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 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조교수가 남 웨스턴 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디?”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연구하기 좋니?”


또는,


“2월이나 되어야 연구재단 연구비 공고가 뜨는데, 벌써 연구계획서를 쓰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대인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실험실에 에어컨이 들어오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연구노트를 할끔할끔 돌아보더니, 파일에서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언제 땄는지는 몰라도 일반연구자지원사업 여성과학자 협약서가 손에 쥐였다.


“느 연구실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 소리를 하고는, 제가 연구비를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릉 써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여성과학자 연구비가 개꿀이란다.[각주:1]” 


“난 연구비 안 쓴다. 너나 써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글러브낀 손으로 그 협약서를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 때서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실험실에 들어온 것이 근 삼년 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교수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협약서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교수 휴게실로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학장님이, 


“너, 얼른 부교수 되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될 때 되면 어련히 될라구....” 


이렇게 천역덕스레 받는 점교수였다. 본시 부끄러움을 타는 교수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내 실험실의 디프리저를 한번 모지게 후려때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연구비를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연구실에는 이런거 없지?”는 또 뭐냐? 그렇잖아도 저희는 전임이고 나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실험을 하느라 일상 굽실거린다. 내가 이 학교에 들어와 연구실이 없어 곤란으로 지낼 제, 벤치를 빌리고 그 위에 센트리퓨지 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교수네 실험실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교수님도 실험할 때 연구비가 딸리면 점교수네 교실 가서 부지런히 빌려다 쓰면서, 인품 그런 교실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흔이나 된 것들이 수군 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학교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교수님이였다. 왜냐 하면, 내가 점교수하고 공동연구를 했다가는 점교수네 교실이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연구비도 떨어지고, 연구실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였다. 


그런데 이놈의 점교수놈이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계속)


  1. 여성과학자 연구비를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소설의 비유상 특정 집단만 신청할 수 있는 연구비 종류를 선정하다 보니, 여성 과학자 연구비가 선택되었습니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의과학자 팀블로그 MDPhD.kr 편집장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의과대학생, 그리고 의사들에게 본과 1학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대 생활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이기도 하죠. 아울러, 본과 1학년때 대부분은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 미생물학, 병리학 등 현대 의학의 근거가 되는 "기초 의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됩니다.


한창 놀았던 예과 2년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삶. 빡빡한 시간 일정과 시험에 대한 압박은 본과 1학년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하지만,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견뎌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당시에 배웠던 지식들이 본과 2학년, 3학년, 4학년 지식의 밑거름이 되고, 저희와 같은 길을 걷는 의과학자들에게는 더욱 더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대부분의 필진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조교로, 포닥으로, 교수로 본과 1학년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 느꼈던 지식들과 현재 느끼는 지식이 주는 느낌이 다릅니다. 고통보다는 추억이 더 많이 남겨진 시점에서 바라보는 본과 1학년 생활. 영화에서 삽입되는 회고 장면처럼, 각자가 현재의 시점에서 본과 1학년 생활을 생각하면서, 글 연재를 구상하게 되었고, 5월부터 [우리들은 본과 1학년]이라는 시리즈물로 각각의 필진이 자신의 본과 1학년 경험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본과 1학년 해부학책들입니다. 대부분의 의대에서 본1을 맞이할 때 처음 접하는 학문이죠)


현재 본과 1학년인 사람들은, 이제 5월이 되어서 살짝 여유가 생길 타이밍일 것이고, 본과 2,3,4학년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은 "나도 그랬었지" 하면서 추억을 되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댓글로 남겨 주시면 훨씬 더 풍성한 글타래가 될 듯 합니다.


예과생들이나 의전원, 의대 입시 준비생들은, 본과 1학년 때, 이런 생활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시면서 자신의 계획을 잡으면 좋을 듯 합니다.현대 의학을 표방하고 있는 치대는 다른 치대 본과 학년 생활과는 달리, 본과 1학년 생활이 대동소이[각주:1]하기에, 치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자신의 경험이나 희망을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그 역시 기록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의대 생활과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의대생들이 이런 생활을 하는구나, 이런 과목을 배우는구나" 하면서 간접 경험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는 본과 생활을 다루지는 않기에,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의대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잘 모르는 용어나, 궁금한 점 역시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관련 글을 작성한 필진이나 다른 필진들이 답변을 달 것입니다.


실제로, 아주 고통스럽게 본과 1학년 생활을 끝낸 사람도 있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저공비행으로 본과 1학년을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패턴으로 본과 1학년을 보내기에, 여기에 적힌 글들이 모든 본과 1학년 생활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기에, 모든 생활에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경험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저희의 조그마한 경험들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저희로서는 글을 쓴 필진으로 아주 만족하면서 기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본과 1학년] 필진들의 글 연재를 시작합니다.


                      


(해부학 atlas의 최고봉인 CIBA를 그린 "Medicine's Michelangelo" 네터 선생님-

Frank H. Netter. 클릭하시면 네터 선생님의 소개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1.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제가 본과 1학년때 친한 치대생에게 자료를 빌려서 공부하기도 했고 제 자료를 공유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으로]

미국에 와서 일기처럼 매일 글을 쓰고 있긴 하다. 글 쓰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논리를 생각하고, 그림을 생각하고, 잘 안 되는 한글(?)을 쥐어짜 내는 것. 모든 환경이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on-off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아~~~ 쉽지 않다. ^^ 

 

오늘은 일기같이 생각의 흐름을 그냥 쓸 생각이다. 주제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어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대다수의 한국인처럼, 나 역시도 내 분야가 아닌 영어에는 그리 밝지 못하다. 예를 들면, 채소 같은 것. 상추와 배추는 미국인 입장에서는 초등학생 수준[각주:1]만 되어도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인데, 내 기억으로 배추는 배운 적이 있어도, 상추는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이런 예들은 많다. 나 혼자 가서 장을 볼 때는 내가 굳이 상추가 "lettuce"인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상추가 무엇인지 모양도 알고, 맛도 알고 있고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추를 설명하거나, 상추 심부름을 외국인에게 시키려고 하면, 상추가 lettuce인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다양한 야채들. 나는 무슨 맛인지도 알고, 가격도 알고, 어떤 요리에 넣어야 하는지도 아는데, 용어를 몰라서 사오라고 시킬수가 없다.)


생각보다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참고로, 공인 영어 점수가 그 사람의 영어 실력을 완벽히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반영은 한다고 본다는 측면에서 나의 토플 점수와 토익 점수는 아주 높다. 자랑 같지만, 거의 만점에 근접하기 때문에,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 하고, 제대로 알아듣는다. 그리고 부당하게 느끼는 점이 있으면 따지는 것까지 충분히 한다. (얼마 전에도 항공사와 관련하여 일이 있어서 강력히 클레임을 걸었다.) 아울러, 그 분야가 학습이거나 내 분야를 다루는 것인 경우에는 거의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토플의 목표가 바로 영어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외국인과의 대화 중에 상추와 같은 단어가 있으면, 가끔씩 바보가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상추 말고도 그런 예는 많다. 식물 이름(예를 들면 밤나무, 상수리나무, 전나무, 고목 등등), 동물 이름(개미핥기, 도롱뇽, 뱀 말고 방울뱀, 청설모, 두더지 등등), 음식 이름(펜실베이니아 더치, 프렌치토스트) 채소 이름 (대파, 쪽파, 부추 등등[각주:2])등은 원어민 입장에서는 아주 기초적인 초등 수준의 단어[각주:3]이지만, 한국에서 나는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이런 단어가 대화 사이에 끼이면, 나는 크게 공감할 수가 없고 알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필요할 때마다 학습해서 배울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배울 수는 없다는 점이 한계라면 한계인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생활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일하는 것에도 큰 불편함은 없다. 굳이 상추를 몰라도 연구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진지하게 나랑 같이 일하는 애들(대학원생,석사생,학부생)을 모아 두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겠지만,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결론이 났었다. 

 

충분히 교육받은 사람들은 내가 외국인(한국인)이기 때문에 상추의 실체는 알지라도, 영어 이름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아울러,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은 내가 사고하는 방법이랑, 내가 연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것만 충분히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역시 그들은 처음 내가 일을 시작한 시점부터, 6개월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팀 리더인 "상추를 모르는" 나와 같이 일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팀이 현재 랩에 있는 팀들 중에서 가장 promising 한 결과를 내고 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  

 

물론 이제는 "상추"와 같은 용어까지 알아서, 영어로 농담 따먹기 하는 수준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고,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는 듯하다. 영어는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중요한 것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로서 Identity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실체는 영어보다 과학, 연구에서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이는 절대 영어만 잘 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참고하세요~ 채소와 그에 맞는 영어를 덧붙입니다. 모르는 채소도 많지만, 재미있기도 해요. 특히 가지는 영어로 계란식물 ^^)


따라서, 나는 영어를 native speaker 만큼 못해도, 비교적 당당한 편이다. 나는 영어로 교육받지 않았고, 한글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그 교육의 실체는 알고 있다"는 입장을 항상 견지하기 때문에, 최소한 영어로 주눅 들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것을 영어로 교육받고,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원어민 연구자들을 보면 부럽긴 하다. 

 

도구를 갈고 닦으면 더 멋지게 보일 수 있고, 영어가 좋으면, 내용물을 조금 더 좋게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포장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 도구에 신경을 아예 안 쓴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너무 도구에만 신경 쓰면 영어만 잘하는 미국 노숙자(?) 신세[각주:4]가 될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미국에 있는 노숙자들은 "그들의 의사"를 완벽하게 영어로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노숙자"가 되기보다는 영어를 잘 못해도 내용물로 꽉 찬 "학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이다. 내 평생의 대부분을 한국어로 의사소통 해왔기 때문에, 영어를 미국인보다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반해, 나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하지 않는가? 당당해 지자.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날카로운 글쓰기완벽한 발표 영어를 더 잘 하고 싶다. 더 노력하고 나를 갈고닦아야겠다. 결국 시간과 노력이 모든 것을, 아니 대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참고로, 한국 나이로 올해 5살 먹은 아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웬만한 채소 이름을 아는 걸로 보아, 대부분의 채소 이름은 초등 수준 이하의 단어임이 틀림없다. [본문으로]
  2. 만약 여기에 언급된 단어를 영어로 알고 있다면, 우연히 알게 되었거나, 경험으로 알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교육으로는 접하기 힘든 단어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조금 더 수준을 높이면, 수학 공식(미분,편미분,방정식, 원주, 마름모, 평행사변형 등등)과 물리 용어(유체역학, 전자기 유도, 전자기장, 상대성이론 등등)이 있다. 영어로 이 분야를 학습하지 않는 한, 일반적인 영어 교육에서는 이런 영어 단어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노숙자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직업성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을 지칭하는 맥락에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본문으로]

지난 포스팅에서 예고한 바 대로 과학자라는 직업을 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자. 그리고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글의 대부분은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라는 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neuroclimber의 생각도 섞여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책을 읽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를 선택하는 동기에는 금전적 동기 외에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는 것, 명성과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는 욕구가 동기가 된다고 말한다. "내가 이 분야에서는 짱이야." "내가 이건 처음 발견했어" 등의 욕구다. 그리고 그렇게 "최초의 발견"만이 인정되는 과학계는 승자독식 현상이 자연스레 생길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로트카법칙, 매튜법칙 등으로 발현된다. 

승자독식 현상은 단순히 논문발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자라는 직업군이 형성되는 과정 더더욱 살벌한데, 대학원생->교수가 되는 과정은 피라미드형태의 인적구조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경쟁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BK21사업이후 대학원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그 양태가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각주:1]. 간단히 말하면 박사학위 소지자는 많은데, 취직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박사학위 소지자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원생이 임시직의 형태를 띠는 것은 더욱 문제이다. 대학실험실을 하나의 일터, 직장이라고 볼때 모든 대학원생은 임시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각주:2] 그리고 그 인력을 유지하는 비용은 정부 또는 산업계에서 나오는 연구비로 충당된다.


         덕분에 (좀 과장되긴 했지만) 이런 웃기고도 슬픈(웃픈)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전부터 미국에서는 과학계의 인적구조에서 최하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지원금과 졸업생 연봉을 공유하고자 한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또는 교수들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그 이유는 대학원생이나 대학원졸업생 대부분이 박봉의 임시직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MBA 졸업생 연봉정보는 아주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이런 박봉의 임시직을 견디고,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교수임용이라는 험난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 박사 후 과정의 70~80%가 교수직을 희망한다. 하지만 25%만이 교수가 된다. 그 중 tenure를 받는 종신교수의 비율은 35~40%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여성인력과 외국인 인력이 대거 유입된 것과 과학계 인력이 부족하다는 대학과 교수들의 적극적 요구로 인해 대학원생 지원금이 증가된 것이 주요 요인이다. 더욱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졸업 후 취직할 곳이 줄어들자, 학부졸업생 중 대학원생 비율을 더욱 증가되었다. 그에 비해 대학에서는 tenure 교수 연봉에 대한 부담때문에 비정규형태의 교수직을 늘리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증가하고 있는데, 괜찮은 일자리를 줄고 있다

그렇다보니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박사후과정(post-doc, 포닥)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1980년에서 2008년 사이 공식적으로 집계된 박사후연구원의 수는 1만3000명 수준에서 3만6000명이상으로 3배로 성장했다. 이런 성장세는 고용인(교수)의 입장에서 박사후연구원은 대학원생에 비해 비교우위의 인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은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를 추가로 지원해줘야 하지만, 박사후연구원은 적절한 연봉을 주면 되고, 뭣보다 연구실적을 쌓아 더나은 직장을 구하려는 동기가 뚜렷한 경우가 많아 열심히 실험하고 논문을 쓸 뿐더러, 당연하게도 그 일을 대학원생에 비해 잘한다. 박사후연구원 입장에서는 교수자리나 산업계의 좋은 취직자리가 생기길 기다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인력시장 상황이 좋지 않거나,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자리가 나지 않는다면 그 기간이 터무니 없이 (때론 10년까지도) 길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학력소지자인데도 불구하고 임시직의 불안정한 자리다 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해, 미국의 경우 2003년에 전미박사후연구원협회(NPA)를 결성했다. 그외도 각 대학별 노동조합 형태로 대학과 교섭을 진행해 복리후생과 일자리 전망 같은것을 논의하는 등 박사후연구원의 처지를 스스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수들은 대학원을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기 보다는 과학자로서의 장미빛 미래만을 언급한다. 또한 언제나 인력이 부족하다며, 학위과정생을 더 받으려고 하고, 대학원생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과학계 인력이 부족한지, 과학자 자체가 정말 부족한 건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이 되기로 맘먹었다면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더라도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과학자라는 직업자체가 주는 재미(수수께끼 풀이, 명성)를 다른 직업에서는 느끼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난 할 수 있다. 난 달라'라는 주문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덕적 해이로 인한 교수의 꼬드김(?) '넌 잘할거야, 넌 내가 키워줄게'가 더해진다. 

요약하자면, 과학이라는 학문이 주는 재미에 이끌리고 자신감도 있는 학부생, 또는 취직할 곳이 없어 대학원 밖에 갈 곳이 없는 학생이 교수가 보여주는 전망에 따라 학문의 세계에 발딯는다. 하지만 임시직 형태의 대학원과정, 그리고 박사후과정을 밟게되는데, 이 과정의 독특한 점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다 밟는다 하더라도 교수 또는 괜찮은 정규직 연구원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럼 다음 포스팅에서는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BK 21(Brain Korea) 사업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업으로 인해 박사 학위자 과잉 양성이라는 현상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 것의 장단점은 논외로 하고 말이다. [본문으로]
  2. 여기 대학원생집단을 직업군 또는 노동자로 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대학원을 배움의 연장선 상으로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laboratory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 대부분의 연구과 실험은 지식 '노동'으로 이루어 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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