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를 관통해서 흐르는 트렌드(Trend)라는 것이 존재한다. 패션에서는 유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언론에서는 뉴스-사건이 트렌드의 촉매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과학에서도 트렌드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기존과 다른 것. 기존의 것을 획기적으로 보완한 것,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 열광한다. 1990년대의 의과학 흐름이 게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에 있었다고 한다면, 2000년대는 줄기세포(Stem cell)라 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 = ES cell)부터 시작해서, 유도 만능 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 iPS cell) 그리고 오늘의 STAP 세포(Stimulus 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t Cell)까지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트렌드를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과학에서도 트렌드라는 메이저 리그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트렌드 있는 연구가 항상 과학 발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트렌드는 트렌드일 뿐이다.
자연 과학은 얼핏 보면, 유행이라는 것이 현존하는 사회 과학과 별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연 과학은 사회 과학과 생각보다 많은, 그렇지만 직접적으로는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연관 고리를 가진다. 다만 그 연결 시간이 길뿐이다.
의과학에서는 제한효소를 예로 들 수 있겠다. DNA의 특정 부분을 잘라낼 수 있는 효소인 제한 효소를 이용해서 다양한 동물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인간에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의과학을 넘어 사회 과학의 문제인 셈이다. 질병의 진단에서만 활용할 수도 있고, 치료에도 활용할 수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질병이 없는 슈퍼 인간 탄생에 접근할 수도 있는 셈이다.
사실, 과학적 트렌드 역시 알게 모르게 사회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과연 어떤 임팩트를 가지고, 인간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냐에 초점이 어느 정도 맞추어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과학적 발견이, "과연 새로운가"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진부한 질문인 셈이다. 오히려, 이 발견이 진정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고, 영향력이 큰 연구인가가 과학적 발견의 새로운 준거가 되었다.
의과학도 사실은 그렇다. 이 발견이 "인체의 혹은 인간에게 얼마나 도움 될 수 있는가"가 발견 그 자체보다 때로는 더 강조된다. 궁극적으로 바이오 연구의 최종 목표는 지식의 생산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적용해서 더 나은 인간 사회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것에 너무 초점을 둔 나머지, 영향력을 과장하거나, 연구 부정이 생기기도 한다.
순수한 과학이 좋다. 당연하다. 하지만, 적용될 수 있는 과학도 좋다. 그리고 이왕이면 사람들이 관심 가져줄 만한, 트렌드가 있는 연구도 좋다. 하지만, 나의 연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예정과는 다른 무리수를 두게 되고, 억지로 끼워 넣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연구는 안타깝게도 트렌드가 지나버리면 쓸모없는 연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러면서 과학이 발전하기 때문에,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일본은 그런 면에서 강점이 있는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 사회 전반을 흐르는 메가 트렌드라는 것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해온 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다. 트렌드에 끼워 맞추는 연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고, 자신만의 연구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해파리 연구를 하고 있다면, 세상에는 관심 없이 해파리에만 순수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셈이다. 비록 그것이 주류가 아닐지언정.
우리가 무작정 일본을 따라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는 연구만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히려 트렌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것 역시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일기를 마친다. 여러분의 생각을 어떤가요?
1) 과연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해파리 연구를 가장 잘하는 연구자를 키워낼 환경은 될까?
2) 해파리 연구를 세계적으로 가장 잘하는 과학자를 키워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연구를 지속하게 만드는 환경은 될까?
3) 과학도가 자신은 "세계적으로 가장 해파리 연구를 잘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환경은 될까?
4) 부모님이 혹은 친구들이 너는 똑똑하니까, 해파리 연구를 하지 말고, 의대에 가서 돈을 버는 의사가 되어라고 하지는 않을까?1
참고로, 시모무라 오사무라는 과학자는 전 세계에서 해파리 연구를 가장 잘 한 일본 출신 미국 해양생물학 교수이다. 해파리에 존재하는 GFP(Green Fluorescent Protein- 녹색 형광 단백질)을 발견한 공로로 2007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과연 이 사람이 과학 트렌드를 따랐을까...
- 참고로, 이제 의사가 돈많이 번다는 상식은 접을 때가 되었습니다. ^^ 호시절을 다 가고, 앞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 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