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DSM 진단 체계의 그 업데이트 성패여부는 어떻게 하면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일정한 바운더리의 진단 카테고리 안에 예쁘게 잘 묶어주느냐에 달려있다. 이러한 시도는 치료자들이 진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치료를 용이하게 하도록 도와주기 위함인데, 때때로 인격장애 환자들은 그런 카테고리로 묶어 자신을 진단하거나 재단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와 같은 방식이 최선일 수 밖에 없는게, 정신과에서 피검사나 유전자 검사 혹은 영상의학적 검사로 진단을 내리는 방법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며칠전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하버드, 스탠포드 동시 합격의 김모양의 케이스는 그런 면에서 정신과 의사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왜냐하면 DSM 체계 내에서 바로 떠오르는 병명을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주위의 정신과 의사 5~6명과 그녀에 대해 잠시 토론을 해보았지만, 딱 이 병이다라고 자신있게 진단 내리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망상 장애, 인격 장애 등 몇몇 병명들이 나왔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런 병들의 성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서 성급하게 진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녀에 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관련 글들을 기사별로, 블로거별로 여럿 읽다보니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The talented Mr. Ripley"라는 미국의 소설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톰 리플리가 재벌의 아들인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죽이고서, 죽은 친구로 신분을 속여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범죄소설이다. 거짓을 감추기 위한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리플리의 행동은 완전범죄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죽은 그린리프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진실이 드러난다. (출처 두산백과)


타인을 속이는 정신의 상태가 topographical한 측면에서 의식의 수준이라면 "Catch me if you can"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가 될 것이고, 좀 더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진 사기라면 거의 망상에 "가깝고" 이는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확고한 망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리플리 증후군에서 가장 특징되는 정신 병리는 pseudologia phantastica(공상허언증)인데, 자신의 거짓말을 자신이 믿어버리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 병리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질환은 소위 꾀병이라고 불리는 Munchausen syndrome이다. 이 질환의 환자는 오직 sick role을 하기 위해 병을 만들어 내며, 2ndary gain이 없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리플리 증후군에 있어서는 그 거짓 믿음의 목표가 sick role이 아니라 인정과 동경을 받고자 하는데에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정신과 의사들 보다는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인 이다해 씨가 리플리 증후군에 있어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연기했다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일본의 술집 접대부였던 여 주인공이 동경대 출신으로 학벌을 속이고,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등 자기 자신을 허위로 포장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유명한 실례로는 신정아를 들 수 있겠다.


정신과 진단명으로는 망상 장애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인 망상 장애와 차이점을 꼽아 보자면 우선, 망상의 목적성 유무이다. 일반 망상장애 환자들은 망상에 뚜렷한 목적이 없으나, 리플리 증후군의 경우는 자기 자신을 포장하고 그로인해 주위로 부터 인정과 동경을 받고자하는 목적이 뚜렷하다. 둘째, 일반 망상장애 환자는 망상의 단서가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리플리 증후군의 경우는 스스로 학력을 위조한다든지 수상 경력을 만들어 낸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그 단서들을 만들어 낸다. 셋째, 앞서 지적한 거짓 믿음의 수준이 의식의 레벨인가 무의식의 레벨인가이다. 망상장애의 환자는 완전한 무의식의 레벨인데, 리플리 증후군의 경우는 좀 더 의식에 가까운 레벨에서 거짓 믿음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개인적으로 남을 속이는데 성공한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환자를 한번 상담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런게 극히 드문 케이스라서. 성공한 리플리 케이스라면 이미 왠만한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유명인사가 되어버리니.). 위 세가지 차이점에서 리플리 증후군은 망상 장애보다는 연극성 인격장애 쪽이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아니, 연극성 인격장애와 망상장애가 합쳐진 '창의적 망상장애(creative delusional disorder)'라 부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망상 장애와 의도적 사기꾼 사이, 그 중간 쯤의 상태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 그래서 어떤이는 리플리 증후군 상태의 사람을 비난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동정하기도 한다. 그 경계상에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이와 같은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본인 역시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전문가의 적절한 진단 및 직면을 통한 통찰력 함양, 충동성 조절 치료 등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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