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8. 21:09ㆍMD : Doctor/Medical Doctor
요즘 "방탈출카페" 가 핫하다고 들었다. 사실 나도 무척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못가봤다. 근데 오늘 갑자기 훨씬 더 핫한 아이템이 생각났다.
이른바 "수술방탈출카페"~! 끌리지 않는가???
컨셉은 이렇다.
수술방에서 의사들이 해야하는 job으로 구성된 계속되는 미션들을 순차적으로 클리어해야만 수술방에서 빠져나올수 있는 것이다.
수술방탈출카페에는 몇가지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
요즘 방탈출카페는 몇 만원을 주고서도 1시간밖에 즐길 수 없던데, 여긴 하루종일 체험하면서도 돈을 안 내도 된다.
원한다면 오히려 돈을 좀 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
미션의 난이도와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아주 간단한 미션도 있고, 힘을 써야하는 미션도 있고, 머리를 써야하는 미션도 있고, 마음을 컨트롤해야하는 미션도 있고, 도저히 답을 알수없는 미션도 있다.
수술방탈출카페의 가장 쉬운 버젼인 "인턴 코스"를 구상해보았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수술방에 출근하는 것으로부터 미션은 시작된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차가운 실내온도를 참아내는 것도 하나의 미션이다. 수술방에 들어가면 겁나 뻣뻣한 플라스터(반창고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열심히 찢어서 방 구석 벽에 예쁘게 붙인다. 손가락 피부가 약해 부르터도 그 정도는 참아줘야 성공으로 인정.
이런걸 하다 보면 간호사님들이 하나씩 미션을 추가한다. 이름도 생소한, 혹은 본적도 없는 수술장 물품들을 복잡한 수술장 안 어디에선가 찾아내야 한다. 그게 당장 써야만 하는 물품이라면, 이 미션의 긴장감은 배가 된다.
이 와중에 새롭게 추가되는 미션콜. 다른 건물에 있는 기계를 수술장으로 옮겨야 한다. 이때 머리를 잘 써서 적절한 동선을 확보하는 것이 미션의 관건. 엘리베이터 타기가 힘들거나,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은 피하면서도 최단경로를 계획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애타는 시간동안 짜증을 내면 이 미션은 만점을 받을수 없다.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다음 미션은 수술방탈출카페의 최고 핫 아이템인 수술 스크럽이다. "손 씻고 와"라는 지령이 울리면 3분동안 무균적 손씻기를 한것과 같은 효율로 더 짧은시간에 손을 씻고 들어간다. 무균적으로 가우닝을 하고 나면 수술 필드에 들어간다.
이때부터는 미션이 더욱 복합해지고 세분화된다. 일단 마스크를 쓰고계신데다 발성이 좋지 않고 발음도 명확하지 않은 교수님의 말을 단번에 이해해야 한다. "웅웅웅웅" 소리가 들렸다면, 눈치껏 알아서 기구를 들고 피부를 제껴 땡기거나, 가위를 들고 대기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네?"라고 되묻는 순간, 감점을 면할수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마음의 눈으로만 볼수있는 무균적 공간의 경계를 파악해서 균이 있는 공간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도 중요한 미션이다. 단, 모르는 사람들이 볼때는 정말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 두 공간을 경계로 사람들의 행동은 아주 달라져야만 한다.
수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기구로 조직을 당기고 있는 것도 육체적 난이도가 꽤 있는 미션이다. 힘이 매우 많이 들겠지만, 당기면서 팔을 떤다든지 하여 힘든 티를 내면 카페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은근 지루한 일이라서 어젯밤 당직이라도 했다치면 졸음이 쏟아질 수도 있지만, 참아야 한다. 아니면 졸면서도 일정하게 기구를 당길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무난하게 미션 클리어.
스크럽 도중에 병동에서 콜이 오는데, 폰이 내 엉덩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간호사에게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며 "여기 가운 안에 이쪽 주머니에 폰좀 꺼내주세요"를 마스크 위로 빼꼼 나온 눈만으로 말해야 한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해서 계속 전화벨이 울리게 놔두다간 곧바로 쫓겨날 수도 있다.
내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타이나 수쳐를 해야하는 미션도 옵셔널하게 주어진다. 모른다고 두 눈 꿈뻑꿈뻑거리면 바로 탈락. "이것도 아직 안해봤어? 휴..." 이런 심사평은 덤.
가위를 들고 실을 컷할때는 "5mm"라고 주어지면 딱 그만큼으로 잘라야한다. 실수하면 "이게 5mm야? 자로 재볼까?" 얘기를 들으면서 미션에서 낙오될 수도 있다.
여차저차해서 스크럽이 끝나면 환자 카(침대)를 챙겨와야 한다. 머나먼 중환자실까지 가서 모니터링 물품을 챙겨와야 하는 변형 미션도 있다. 깜빡하고 하나라도 놓고오는 순간 미션 수행시간은 2배가 될테니, 뭘 빠뜨리진 않았는지 계속 생각해야 한다.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수술방탈출 후 '유시진' 같은 남자가 기다린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누워있는 환자와 걱정하는 보호자분들만이...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 발버둥치는 손발과 온 몸을 붙잡는 것도 만만치 않은 미션. 각종 장치들을 떼어버린다든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신의 몸무게가 50kg이지만 100kg가 넘는 환자가 미션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야박하다고 생각 말자. 스스로 택해서 들어온 곳인데, 할건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 와중에 병동에서 콜은 계속 된다. 환자가 가슴이 아파요, 소변을 못봐요, 드레싱 부위가 젖었어요, 퇴원해야 하는데 약이 없어요, 검체를 나눠 담아서 검사 내야해요, 등등... 이 소형 미션들은 잊을만해지기 전에 끊임없이 나타나서 다른 미션들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시간 십분 줄테니까 밥 먹고 와" 미션은 그래도 그 중 반가운 미션이다. 십분이라는 시간이 다소 야박하다 생각할수 있으나, 빨리 해두면 결국은 나의 탈출시간을 앞 당길수 있으므로 참고하자.
수술장에서 환자 위에 펼쳐진 드렙 밑으로 기어들어가 소변줄 연결부위가 멀쩡한지, 심전도 리드가 떨어지진 않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드렙 밑에서 소변줄을 뒤적거리며 "우리 엄마가 내가 이러고 있는걸 알기나 할까.." 싶은 서러운 마음이 들어도 울지는 말자.
울 엄마들은 자식들이 수술방탈출카페 갔다고 어디 모임가서 신나게 자랑하고 계실수도 있다.
아침에 나온 수술방 일정표를 보고 탈출이 임박했다고 속단하지는 말자. 다시 표를 찾아보면 응급 수술이 두세개 더 달려있을수도 있다. 욕심을 버리면 칼퇴를 잃지만, 대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여차저차해서 마지막 수술까지 잘 끝났다면, 끝이 보인다 싶겠지만, 아직 아니다. 일단 아수라장이 된 수술방에서 다시 기구들을 정리해야 한다. 내일 스케줄을 보고 내일 수술들도 준비해놔야 한다. 이것까지 끝나면 대략 수술방탈출카페 1일분 코스가 끝나고,
수술방탈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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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줄 알았나?
아직 아니다. 당직실로 겨우 올라와 침대에 몸을 뉘었으나, 눕자마자 "선생님. 수술방에 접수 안 된 검체 (수술시 환자 몸에서 나온 조직) 있어요" 콜이 온다. 다시 수술방으로 내려가라. 거침없이 내려가라. 냉장고에 들어가지도 못한채 열 받고 있는 검체를 불쌍히 여겨라. 그래야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 탈출하고파서 들어온 곳 아니었나! 내 생각엔, 열렬한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에게 잘먹히도록 그럴싸한 설명 추가하면 이거 대박날수도 있다.
"당신의 자녀가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가?"
"surgeon의 진면목을 보고싶은가?"
-그렇다면 '수술방탈출카페'로 오라! -
P.S. 이 글은 현재 S병원 ENT R1년차 S.J. 선생님께서 쓰신 글로 동의를 구하고 본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아이디어 판권이나 글의 저작권은 S.J. 선생님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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