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전에는 메탈 매니아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쿵쾅대는 시끄러운 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이나 이소라, 김광석 등이 부르는 가슴이 짠해지는 멜로디의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너무 이런 음악만 골라서 듣다보니 궁상맞다고, 옆에서 듣는 사람도 나른해 진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슬픈 음악이 우울 기분에 악영향을 미치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노!”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슬픈 음악은 오히려 우울한 사람의 마음에 공감을 해주고,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는 연구들은 많다 (http://www.dailymail.co.uk/…/Feeling-listen-SAD-music-Melan…).
우리가 우울했을 때를 상기해보자. 우울할 때 슬픈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기분이 더 우울해진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 오히려 기분이 차분해지고,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는가. 슬픈 음악 때문에 사람이 더 슬퍼졌다면, 그런 슬픈 음악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혹자는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글루미 선데이 모르세요? 그 노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살했는지 몰라요?”
안 그래도 자살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후배의 오더를 받고 이제껏 이름만 들어왔던 그 유명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감상하게 되었다. 배경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주인공으로는 아름다운 헝가리안 걸, 유태인 식당 주인, 우울하게 생긴 피아니스트, 헝가리안 걸을 짝사랑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정통 아리안 독일남 이렇게 4명이 등장한다.
주인공 세 남성의 공통점은 이 아름다운 헝가리안 걸에게 홀딱 빠져있다는 점이다. 외모, 행동, 인성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이 여인을 두고 세 남자는 우정과 질투 사이의 경계선을 왔다갔다 넘나들며 경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작곡하게 되는데, 이 곡이 너무나 슬퍼서 그 음악을 듣다가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을 한다.
실제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자살 사건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여 주인공도 정말 아름답고).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이런 의문이 들지는 않았나?
"정말로 사람들이 자살을 했던 것이 이 음악 때문이었을까?"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나? 슬픈 노래를 들었으니 슬퍼져서 자살을 했겠지라는 생각은 너무나 일차원적이고, 이치에도,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무언가 맞지 않다고 의심이 되지 않나? 그렇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자살 사건들은 음악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원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진 곳이고,(헝가리의 별명이 자살 공화국이다), 우연찮게 이 음악(당시 굉장한 히트를 쳤으니 축전기가 있는 집에서는 다들 이 앨범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을 듣다가 자살한 사람 몇몇이 있었고, 호사가들이 들러붙어서 사람을 죽이는 음악으로 ‘글루미 선데이’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마치 영국의 한 찌라시 신문이 투탕카멘의 저주 ‘구라’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자살은 여러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 계획적 자살, 충동적 자살,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무통제적 자살 등등 학자와 학풍에 따라 세분화가 된다. 어쨌든 이타적 자살(카미카제 등)을 제외한 모든 것이 우울증과 관련이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자살을 한 사람들을 부검 해보면 뇌간과 전두엽피질에서 세로토닌과 그 대사물인 5-HIAA가 줄어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자살 전에도 뇌척수액에서 5-HIAA가 줄어들어있음이 보고되었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계열의 약을 써서 세로토닌의 농도를 올리는 시도를 한다. 글루미 선데이가 자살을 일으키는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있는데, 이 SSRI도 마찬가지로 자살 누명을 덮어쓴 적이 있다. 자살한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SSRI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인데, 이게 어떤 종류의 오류인지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잘 아실 것이라고 믿는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가수 김광석이나 이소라의 음악들 등등 슬픈 음악은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려있다. 그런데 이런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의 자살 성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 중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실제로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이 있는지? 만약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그 음악과는 별개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는 바이다.
글루미 선데이에게 씌여진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
슬픈 음악은 자살 촉매제가 아니라 치료제이다.
'생각들 > 일상의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에 관한 변주곡... (0) | 2015.11.10 |
---|---|
글루미 선데이. 그리고 폴리아모리스트의 삶. (3) | 2015.05.29 |
공존 지수에 대한 생각들. 사람을 대하는 18가지 바른 방법 (0) | 2014.08.18 |
The best is yet to be.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의 총합. (0) | 2014.07.22 |
질병, 통증 그리고 주관적 고통 (0) | 2014.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