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좀비, 정찬성 그리고 통증과 인식
(승리의 포효를 날리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
코리안좀비 '정찬성'. 격투기의 메이저리그라 불리는 UFC에서 한국인, 아니 동양인의 위상을 드 높이고 있는 선수입니다. '더 파이팅' 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입문배경 1, 계속되는 이변을 필연으로 만들어버리는 실력까지 정말 우리 시대 격투기의 주인공이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선수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만화죠 "더 파이팅")
그런 그의 캐릭터 '좀비'는 사실 그리 좋은 뜻에서 유래한 것만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기술 없는 선수" 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가드도 허술하고, 자세도 정석이 아니고, 특출난 장기도 없는 막무가내 느낌. 하지만 투지를 가진 좋은 선수이고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선수에게 '좀비'라는 별명을 달아주는 것일까?
(워킹 데드(Walking Dead). 전미 시청률 1위를 사수하고 있는 미드죠)
먼저 "좀비"의 뜻을 알아봅시다. 몇 대쯤 맞어도 전혀 아파하지 않는, 심지어 총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생명체,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시체라서 썩어 있기도 한 것" 2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주2. )
하지만 여기는 의과학자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조금은 과학적으로 좀비에 대해서 접근해보겠습니다.
왜 좀비는 총에 맞아도 아프지 않는 걸까요?
우선, 무엇보다도 '뇌'가 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비는 시체를 부활 시킨 것이고, 시체라는 말에는 "우리 몸의 장기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뇌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물론 다른 기능도 많이 있겠지만, 감각의 '인식' 이 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아파하지 않는 것입니다.
(TV-송수신-방송국 : 뇌-말초-감각기관)
그렇다면 뇌만 살아 있다면 좀비도 통증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통증이라는 '감각'은 대뇌에서 인식하는 것이지만, 피부나 근육, 소화기관 같은 각종 장기에서 들어오는 신호가 없다면 대뇌는 '인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예를 들어, TV를 생각해보겠습니다.
TV를 켜서 화면이 잘 나오려면 TV(뇌)가 멀쩡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송신(각종 장기의 신호)이 잘되어야 합니다. 만약 TV는 멀쩡한데 방송국(피부, 근육)에 문제가 있어서 송신(신경을 통한 신호의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면 TV(뇌)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좀비의 경우는 TV에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TV가 멀쩡하다 하더라도 방송국, 송수신 장치등에 전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결국 통증(신호)을 인식(송수신)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좀비는 통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는 분명 TV도 멀쩡하고, 방송국도 멀쩡하고, 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람'인데 그런 격렬한 싸움속에서 어떻게 통증을 견딜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딘가 고장난 것은 아닐까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파이터는 통증의 고통이 없기 때문에, 무서움 없이 싸움을 걸 수 있죠.)
이해를 돕기 위해 정찬성선수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공이 울린다. 두 선수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잽을 날릴 것인가, 파고 들 것인가, 서로의 날카로움을 느끼며 날을 한 것 더 세운다.
태고적부터 내려 온 바로 그 순간. 잡아 먹히느냐 먹느냐의 상황.
통증 '따위'에 괴로워하는 시간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벼운 고통들은 모두 무시하고 도망칠 것인지 싸울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처럼 긴장된 상황에선 가벼운 통증은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뜨겁게 운동하고 있는 순간에 살짝 까진 정도의 상처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운동이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하는 순간 통증이 덮쳐옵니다. 이런 현상을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 "긴장에 의해 유발된 진통" (Stress induced analgesia)라고 합니다.
진화적으로 보면 아마도 먼 옛날 고인돌이 세워지던 시절에, 동물들과 먹고 먹히는 전쟁을 하던 시절에, 아니 그 보다 더 오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성립된 그 순간부터 생겨났을 것입니다. 무릎이 아파서 잡아 먹히는 것 보단, 무릎이 고장 나는 편이 훨씬 생존에 유리할테니 말입니다.
원래 통증의 기능은 이상이 있는 장기를 이상이 자연 치유되는 동안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선생님께서 글(좀비는 왜 당신을 공격하는가)을 쓰셨습니다.
이렇듯 몸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몸을 '고장'나게 만들어 진통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라톤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도 그렇고, 고통을 참기 위해서 분비되는 엔돌핀(Endorphins - Endogenous morphine)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링 위의 긴장감,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등이 코리안 '좀비'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뇌에는 '용량'의 제한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용량을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하는 일들로 가득 채워 버린다면 통증을 '인식'하는데 나눠줘야 할 용량이 모자라게 되고, 통증을 인식하는데 장애가 오게 됩니다. 그런 '장애'가 바로 진통효과를 일으킵니다.
한창 싸우고 있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는 그 모든 용량을 상대방에 집중하고, 다른 감각들을 날카롭게 세우느라 통증을 인식하는데 써야 할 뇌가 앵꼬(?)가 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좀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뇌가 죽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목표 혹은 본능에 이끌려 통증을 느낄 뇌의 빈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를 통해 바라본 통증의 본 모습은 당신이 원래 알던 것과 많이 다르진 않던가요? 우리가 인식하는 '객관적인'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게 변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사실이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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