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실 좀비에 대해서 잘 모른다. 무섭고 역한 장면 시청을 꺼려하는지라, 이번 주제 탐구를 위해서 찾아 본 ‘Warm bodies(2013)’라는 영화가 내가 집중하고 접한 유일한 좀비물이다. 이 영화는 좀비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한 로맨틱 코미디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초반부에 좀비들이 사람들의 생살을 뜯어먹는 장면이 보고 있기 괴로웠다. 따라서 필자가 좀비 자체에 대한 식견은 없다는 점을 양해드리며, 그래도 내가 느낀 좀비의 독특한 특성을 과학자적 시각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좀비(Zombie)에 대한 고전적인 기술을 찾아가보자면, 좀비의 어원은 콩고(kongo)어에서 '영혼'을 뜻하는 'nzambi'에서 유래되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미 대륙으로 이주되면서 아이티(Haiti)의 흑인 사회에서 부두교 (Vodou)가 생겼고, 'zonbi'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두교의 강력한 사제인 boko가 시체에 주술과 마법을 걸어서 영혼이 없는 노예인 'zonbi'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림1-1).


 반면, 우리가 영화 등에서 접하고 있는 좀비의 prototype을 만든 것은 조지 로메로 (George A. Romero) 감독의 1968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이다. 이 영화에서 로메로 감독은 좀비에게 흡혈귀의 특성을 가미하여 공포의 존재로 만들었고, 이후의 영화 등에서도 그러한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로메로 좀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림1-2)


, 우리가 접하는 좀비는 로메로 좀비이며, 나의 과학적 고찰도 로메로 좀비의 특성에 대한 것이다. 고전적 좀비와 달리 로메로 좀비는 주술과 마법이 아닌 방사능, 바이러스 감염등에 의해 좀비로 만들어지고, ‘노예가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는 파괴자이다.

 

 

영화 속에서 좀비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먹는다고 이야기 한다. 아마도 그러한 섭취가 그들이 ‘living dead’로서 ‘living’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일 것이다. 우리 같은 생명체가 음식을 먹으면 (ingestion) 소화기에서 효소(enzyme)를 이용해 소화(digestion)가 되고 glucose 등의 기본단위 영양소들이 세포로 전달되어 미토콘드리아에서 ATP(adenosine triphosphate)를 만들어서 생명현상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그림2). 


하지만 좀비는 기본적으로 대사(metabolism)’가 없다. 혈액순환이 없어서 총을 맞아도 피가 나지 않고, 상처가 생겨도 그 모양 그대로 남을 뿐이다. , 음식을 통해서 에너지 생산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Warm bodies(2013)'에서 좀비 'R'이 사람 '줄리'를 좀비들 사이에서 숨겨주기 위해 "좀비인 척 해"라고 해서, 줄리가 과도하게 팔다리를 뻣뻣하게 하고 걷자, 귓속말로 "오바 하지마"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이러한 영화 속 좀비의 뻣뻣한 팔다리는 아마 사후경직(postmortem rigidity)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2-1)


그림 2-1. Warm bodies에 나오는 사후경직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생명체의 모든 현상은 주로 미토콘드리아에서 생산되는 ATP라는 에너지 화폐를 사용하여 일어나게 되고, 근육의 수축과 이완도 물론 ATP를 사용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생명체가 죽으면 ATP 생성이 되지 않으므로 근육 섬유인 myosinactin에 수축상태로 붙어있는 형태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사후경직이다


근육을 다시 이완 상태로 돌리기 위해서는 ATP의 결합에 이은 ADP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어서 칼슘이온(Ca2+)이 전달되면 ADP가 떨어지면서 myosin이 수축하며 actin에 붙게 된다  (그림3). 이렇게 근육은 ATP 사용량이 많기 때문에 muscle fiber 주변에 ATP공장인 미토콘드리아들이 무수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 속 좀비들은 좀 뻣뻣하긴 해도 잘 움직이고, 때로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움직이기도 한다. ATP를 생산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그들의 에너지 "화폐"는 ATP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죽어있는 좀비의 ‘living’은 이렇듯 생명체의 ‘living’ 기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쨌든 걔네들이 어떻게 ‘living’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한 비과학적인 상상을 조금 해보자. 아마도 생명체의 원리와는 다른 3의 에너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좀비는 도대체 어떻게 에너지를 얻을까?


추측의 단서로서, 영화 속 좀비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먹는다. 심지어 사냥을 할 때 일단 대상의 숨통을 끊고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의 생살을 뜯어 먹는다. 좀비는 이런 신선한 생명체의 생살에서 에너지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ATP일 수도 있겠고 다른 무언가 일 수도 있겠다 (그림4)


다만 ATP는 음식물의 영양소처럼 섭취되어 온 몸으로 전달되는 개념이 아니라, 각 세포 단위에서의 자체수급을 하는 구조이므로 말이 안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단백질 등을 섭취하는 것이라고 해도, 좀비는 소화를 시킬 수가 없고, 소화된 영양분을 온 몸의 세포로 전달시킬 혈류 (blood circulation)’ 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아무튼 그러한 생살 섭취가 좀비의 ‘living’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로인해 섭취되는 것은 어쩌면 '활력(vitality)' 같은 무형의 에너지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혈류'가 없는 좀비가 그렇게 섭취한 에너지를 온 몸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혈류 이외의 3의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는 좀비의 'living'을 통제하는 중심부에 대한 추측을 해보자. 영화 속에서 좀비의 ‘living’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head shot’ 등으로 머리를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좀비가 깨문 사람은 기본적으로 또 하나의 좀비가 되지만, 좀비가 희생자의 를 먹는 경우, 뇌가 없는 희생자는 좀비가 되지 않는다고 설정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봤을 때, 좀비도 생명체와 비슷하게  ‘living’ ‘control tower’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상상의 존재인 좀비에 대해서 과학적인 고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죽어서 생명이 없음에도 ‘living’을 하고 있는 좀비에 대한 고찰이 오히려 생명체와 생명현상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고찰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도 같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그리고 통증과 인식

(승리의 포효를 날리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

  코리안좀비 '정찬성'. 격투기의 메이저리그라 불리는 UFC에서 한국인, 아니 동양인의 위상을 드 높이고 있는 선수입니다. '더 파이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입문배경[각주:1], 계속되는 이변을 필연으로 만들어버리는 실력까지 정말 우리 시대 격투기의 주인공이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선수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만화죠 "더 파이팅")

  그런 그의 캐릭터 '좀비'는 사실 그리 좋은 뜻에서 유래한 것만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기술 없는 선수" 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가드도 허술하고, 자세도 정석이 아니고, 특출난 장기도 없는 막무가내 느낌. 하지만 투지를 가진 좋은 선수이고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선수에게 '좀비'라는 별명을 달아주는 것일까?

(워킹 데드(Walking Dead). 전미 시청률 1위를 사수하고 있는 미드죠)

  먼저 "좀비"의 뜻을 알아봅시다. 몇 대쯤 맞어도 전혀 아파하지 않는, 심지어 총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생명체,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시체라서 썩어 있기도 한 것"[각주:2]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2. )

  하지만 여기는 의과학자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조금은 과학적으로 좀비에 대해서 접근해보겠습니다

왜 좀비는 총에 맞아도 아프지 않는 걸까요?

  우선, 무엇보다도 ''가 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비는 시체를 부활 시킨 것이고, 시체라는 말에는 "우리 몸의 장기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뇌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물론 다른 기능도 많이 있겠지만, 감각의 '인식' 이 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아파하지 않는 것입니다.


          (TV-송수신-방송국 : --감각기관)

  그렇다면 뇌만 살아 있다면 좀비도 통증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통증이라는 '감각'은 대뇌에서 인식하는 것이지만, 피부나 근육, 소화기관 같은 각종 장기에서 들어오는 신호가 없다면 대뇌는 '인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예를 들어, TV를 생각해보겠습니다

TV를 켜서 화면이 잘 나오려면 TV()가 멀쩡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송신(각종 장기의 신호)이 잘되어야 합니다. 만약 TV는 멀쩡한데 방송국(피부, 근육)에 문제가 있어서 송신(신경을 통한 신호의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면 TV()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좀비의 경우는 TV에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TV가 멀쩡하다 하더라도 방송국, 송수신 장치등에 전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결국 통증(신호)을 인식(송수신)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좀비는 통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는 분명 TV도 멀쩡하고, 방송국도 멀쩡하고, 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람'인데 그런 격렬한 싸움속에서 어떻게 통증을 견딜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딘가 고장난 것은 아닐까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파이터는 통증의 고통이 없기 때문에, 무서움 없이 싸움을 걸 수 있죠.)

  이해를 돕기 위해 정찬성선수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공이 울린다. 두 선수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잽을 날릴 것인가, 파고 들 것인가, 서로의 날카로움을 느끼며 날을 한 것 더 세운다

태고적부터 내려 온 바로 그 순간. 잡아 먹히느냐 먹느냐의 상황

통증 '따위'에 괴로워하는 시간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벼운 고통들은 모두 무시하고 도망칠 것인지 싸울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처럼 긴장된 상황에선 가벼운 통증은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뜨겁게 운동하고 있는 순간에 살짝 까진 정도의 상처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운동이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하는 순간 통증이 덮쳐옵니다. 이런 현상을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 "긴장에 의해 유발된 진통" (Stress induced analgesia)라고 합니다

진화적으로 보면 아마도 먼 옛날 고인돌이 세워지던 시절에, 동물들과 먹고 먹히는 전쟁을 하던 시절에, 아니 그 보다 더 오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성립된 그 순간부터 생겨났을 것입니다. 무릎이 아파서 잡아 먹히는 것 보단, 무릎이 고장 나는 편이 훨씬 생존에 유리할테니 말입니다

원래 통증의 기능은 이상이 있는 장기를 이상이 자연 치유되는 동안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선생님께서 (좀비는 왜 당신을 공격하는가)을 쓰셨습니다.

이렇듯 몸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몸을 '고장'나게 만들어 진통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라톤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도 그렇고, 고통을 참기 위해서 분비되는 엔돌핀(Endorphins - Endogenous morphine)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링 위의 긴장감,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등이 코리안 '좀비'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뇌에는 '용량'의 제한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용량을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하는 일들로 가득 채워 버린다면 통증을 '인식'하는데 나눠줘야 할 용량이 모자라게 되고, 통증을 인식하는데 장애가 오게 됩니다. 그런 '장애'가 바로 진통효과를 일으킵니다

한창 싸우고 있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는 그 모든 용량을 상대방에 집중하고, 다른 감각들을 날카롭게 세우느라 통증을 인식하는데 써야 할 뇌가 앵꼬(?)가 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좀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뇌가 죽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목표 혹은 본능에 이끌려 통증을 느낄 뇌의 빈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를 통해 바라본 통증의 본 모습은 당신이 원래 알던 것과 많이 다르진 않던가요? 우리가 인식하는 '객관적인'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게 변화 될 수 있다는 사실, 객관적인 사실이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셨기를 바랍니다.

  1.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친구들이 괴롭혀서 각종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2. 들녘, 환상동물사전 중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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