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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의료에서 가정의학과 역할에 의문을 던진다 - 청년의사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우리나라 전문의 양성 체계를 보고 있으면, 이해 가지 않는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인구 구조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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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쯤은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김철중 의료 전문 기자의 모든 사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논의되어야할 문제입니다.

 

제 주변에도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많은 수의 동기가 있고,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습니다. 한해 전공의만 300명이니, 충분히 많은 숫자입니다. 그래서 언급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만.. 해야할 건 해야하니깐요.

 

현재 우리나라의 가정의학과가 하는 역할은 1차 주치의로서 "가정"의 의학을 보살피면서, 전문과로 의료 전달을 해준다는 목적보다는, 다른 과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소화기 내과가 하고 있는 내시경을 하고 있거나, 피부과가 하고 있는 피부-미용을 하고 있다거나, 순환기 내과 혹은 영상의학과가 하고 있는 초음파를 본다거나...굳이 말한다면, 초기 질병의 예방과 스크리닝을 하고 있는 건강 검진이 가정 의학과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네요. 물론, 개인적으로 저렇게 내시경, 피부-미용, 초음파를 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충분히 경험이 쌓이고 숙련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런 가정의학과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을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의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적인 시스템의 부재와 우리나라의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의료 사회적인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 의학과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의료 전달 체계라는 관점에서 한국은 이미 망가져버린지 오래입니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뛰어난 인재들의 낭비라고도 볼 수 있고, 환자들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설명을 잠시할께요. 일반인들도 분명히 알아야할 사안이니깐요.

 

우리 나라처럼, 의료의 접근도가 높고, 다양한 전문과들이 동네에 적어도 두 세개 씩 있는 곳에서는 잘 느끼기 힘들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환자와 의사(그리고 보험회사 혹은 정부) 서로가 윈윈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의료 전달 체계를 잘 수립하는 것이 의료 사회적인 방향에서 바른 방향입니다. 통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는 이러합니다.

 

1) 환자가 아프다.

2) 아픈 환자를 비교적 자주(여기서 자주 라는 말은 아플 때 병원을 바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찾아 갈 수 있는 "수가가 낮은" 그렇지만,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는 일차 진료의(경우에 따라서는 의대만 졸업한 General practioner, 혹은 분과를 하지 않은 내과 전문의, 가정의학과, 소아과 등)를 찾아 갑니다. 이 때, 일차 진료의들은 동네 병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1) 이 때, 핵심은, "비교적 자주"와 "수가가 낮은" 그리고 "다양한" 입니다.
2-2) 기본적으로 환자들은 무조건 예외없이(보험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아프면, 일차 진료의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위 의료 기관 이용은 높은 진료비라든지, 긴 대기 시간이라든지 하는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3) 일차 진료의는 자신의 병원에 온 "다양한" 과의 환자들을 의료 전문성을 기반으로 스크리닝합니다. 예컨대, 따로, 전문과가 필요한지, 아니면 자신의 선에서 진료가 가능한지. 혹은 응급인지를 판단하고, 그 판단은 항상 존중됩니다.
3-1) 이 때, 일차 진료의가 전문과 컨설트(상담 혹은 전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보험에서 승인이 바로 나서 환자 부담이 줄어듭니다.
3-2) 응급의 경우에는 바로 응급실이나 그를 치료할 수 있는 대학 병원에 전원을 합니다.

4) 전문과 컨설트가 필요한 환자는, 일차 진료의의 진료 의뢰서를 들고 "수가가 높지만", 전문적으로 "특화 환자"를 볼 수 있는 전문 병원에 찾아 갑니다.
4-0) 이 때, 핵심은, "수가가 높지만"과 "특화 환자" 입니다.
4-1) 예컨대, 피부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그리고 내과 중에서도, 소화기 내과, 순환기 내과 등의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는 병원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전문의가 없는 병원이 거의 없어요)
4-2) 이 때, 전문 병원은 이 질환에 특화된 환자만 보기 때문에, 전문성이 높으며,이 전문성을 토대로 진료를 하기 때문에, 깊이 있고 숙련된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5) 전문과 컨설트로도 해결이 되지 않거나, 특수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 혹은 아주 흔하지 않는 희귀 케이스의 경우에는 "수가가 아주 높은" 그렇지만, 다양한 "분과가 협진 가능"하고 "전문성이 높은" 대학 병원으로 전원됩니다.
5-0) 이 때, 핵심은 "수가가 아주 높은", "협진 가능한" 그리고 "전문성 높은"입니다.
5-1) 물론 예외적으로, 응급이거나 교통 사고, 외상 등은 당연히 위 전달 체계를 겪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높은 수준의 대학 병원을 이용하고 싶다는 이유로 환자 아플 때 찾아간다면, 아주 높은 의료비가 청구됩니다.
5-2) 위와 같은 특수한 환자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깔때기처럼 모여서), 대학 병원이라는 곳에서 임상적 보고와 새로운 치료법 시도 등의 학문적 역할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일차 진료의-> 전문의(전문 병원)-> 대학 병원 으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의료 전달 체계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사실상 일차 진료의의 존재가 부재하고, 바로 전문의가 진료하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발생한 전문과가 바로 가정 의학과인 셈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일차 진료의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로 넓은 범위의 "많은 환자"를 보아서 어느 정도의 수입을 유지하고, 전문의나 대학 병원은 절대적인 "환자수는 적지만", "높은 수가"로 어느 정도의 수입을 유지해서, 비교적 의사 사회에서도 격차가 적은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는 환자 입장에서 전문성 있는 치료를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의사의 입장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하고, 여유로운 진료를 한다는 큰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환자 입장에서 보면, "일차 진료의" 없이 전문의를 바로 볼 수 있는 구조가 저런 복잡한(?) 일차 진료의를 보는 전달 체계보다 더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첫번째로, 의대만 졸업하면 치료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전문의를 이용해서 치료하기 때문에, 치료 비용이 높아집니다. 모든 전문과의 하향 평준화.

 

두번째로, 자신이 어떤 과를 찾아가야하는지, 본인이 직접 전문과를 선택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일차 진료의에게 의존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 인터넷등으로 구전된, 혹은 마케팅에 현혹된 병원을 찾아가게 됩니다. 즉, 전문성 없이, 광고만 하는 의사를 찾아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잘 된 의료 전달체계에서는 환자가 굳이 이를 찾아갈 필요가 없으며 무분별한 광고 조차도 필요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출되지 않는 광고비는 의료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세번째로, 잘된 의료 전달 체계에서는 일차 진료의가 대부분의 기본적인 진료를 보기 때문에, 전문의들은 선별된 환자들에게 오히려 질적으로 높은 치료를 할 수 있게 되는데,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단순 치료 환자들까지 봐야하기 때문에, 전문과에서 질적으로 높은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한됩니다. 즉, 정작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하는 환자는 기본적인 진료가 필요한 다수의 단순 치료 환자들 때문에 5분 진료밖에 보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네번째로, 의사들 역시, 아주 간단한 질환부터, 전문성을 요구하는 치료까지 모든 부분을 커버해야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뿐만 아니라, 기초 치료까지 공부해야하는 의료 보수 교육 등을 소홀히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는 결국 의료 서비스 질의 하락을 발생시키거나, 전문성이 계속 담보되는 대학 병원으로 전원이 증가하게 되어, 세번째 문제가 대학병원까지 넓어지게 됩니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단점이 있는데, 바뀌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역시 알고 있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일차 진료의의 양성은 의료 전달 체계에서의 교통 정리, 신호등같은 역할을 하는 전문성있는 집단은 키우는 문제인데, 사실상 왜곡된 현재 의료 상황에서 이 집단이 자리잡는 것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가도 이런 단점보다는 당장 전문의에게 치료받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 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보통 의대가 아닌 다른 친구들에게 이를 설명할 때 수학을 예로 들어서 설명합니다.

 

수학에는 초등학교 산수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수준, 고등학교 문과 수준, 그리고 이과 수준. 그리고 대학 수준으로 들어오게 되면, 통계, 선형 대수학, 공대에서 필요한 심화 미적분학 등 다양한 수준의 수학과 분야가 있고, 이를 심도 있게 공부하는 대학원 역시 존재합니다.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는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의료, 보건, 예방 의학 등으로 보건소가 주로 맡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문과 수준의 수학, 그리고 비교적 쉬운 이과 수준은 일차 진료의, 그리고 대학 수준으로 존재하는 통계, 심화 미적 등은 일반 전문과들. 그리고 대학원 수준이나, 각 분과는 대학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심화 미적분을 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이, 초등학교 산수나 중고등학교 문과 수준의 수학을 못풀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가르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다거나,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지 않는 이유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발전과 각 분야의 전문성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연계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직업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생에게 바른 수학적 기초를 잡아준다는 의미가 있고, 이들은 어찌보면, 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수학 천재나 대학원생들보다, 오히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더 적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부 교수들은 교수법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다면.. 오히려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모두가 다 통계, 심화 미적분 등을 공부하는 것은 또 한편으로 시간의 낭비이기도 합니다.

 

수학적 기초만 잡아주면 충분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든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공대에 필요한 심화 미적을 필수적으로 공부하고, 평생동안 꾸준히 테스트한다는 것은 어딜보나 과잉 공부(?)이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어려운 말로만 설명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디까지가 적정한 수준의 공부이고, 어디까지가 서비스가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냐가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이 과잉 공부를 하는 낭비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수학이라는 학문과 의료 체계는 분명히 다르지만, 의료의 과잉 서비스, over-qualifying 문제는 환자 개인과 의사의 관점에서는 기껏해봐야 3-4년 정도의 전문의 과정 낭비(?)이거나, 필요악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 입장에서는 더 좋아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들 모두를 합해 본다면, 정말 큰 인재와 시간, 비용의 낭비입니다.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환자에게 낭비일 수 있고, 의료비 과잉이라는 측면에서도 과잉인 셈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정은, 전문의를 하면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안하면,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90% 이상이 전문의) 굳이 살아가는데 대학 교육이 필요없는데, 모두가 대학을 가기 때문에 안 가면 손해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가는 우리나라 사정과 비슷한 상황인 셈입니다.

 

뭐.. 앞서 언급했지만, 단시일내에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최소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큰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져 보는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여담이지만, 의사를 너무 나쁜 사람들로만 몰아가지 마세요. 이들도 다 주변 동네 아저씨들이고,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엄마입니다. 돈벌이다 밥벌이다 하는 측면만 보시지 마시고...시스템 자체가 잘못되었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평생을 연구만 하는 사람 혹은 앞으로 연구만 할 사람이다. 의사이긴 하지만, 임상 진료를 업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 보험의 실제 폐해에 대해서는 몸소 겪어본 적이 없다. 특히나 보험 심사를 통해서 진료 청구 후, 청구 금액이 삭감되거나, 환수된 경험은 더군다나 없다. 가끔씩 환자를 보기도 하고, 연구 기간 동안 환자를 보기도 했지만, 개원을 했거나, 개원가에서 일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의사로서 현장에서 뛰고 있는 내 가족들과 내 주변 동기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있다. 현재 나는 한국에 있지 않고, 한동안 한국에 들어갈 예정은 없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연구하는 입장으로 다양한 코웍과 임상 현장을 느끼면서, 여기는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대표 편집인인 "오지의 마법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조금은 한국 의료계에 시사적인 글을 쓰고자 한다. 내 의견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내 의견이 무조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칫하면 넘길 수 있는 혹은 현재까지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조금은 "꼬집어가면서 의식하는 일"이 의료계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남기고자 한다.

가족이 연계되어 있고, 나 자신이 의사이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성 혹은 중립성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임상 진료를 하지 않는 기초 연구자로서 혹은 제 3자로서의 시각이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동료 의사들의 입장보다는 "조금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형태가 올바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니, 생산적인 비판이나, 댓글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오늘은 시작하는 글로 노환규 전임 회장의 "의사, 환자 정부 그리고 민간 보험 회사"에 대한 슬라이드와 "과학자의 중립성 그리고 깨어있는 생각"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의료 시스템이라는 곳에서 희생을 하고 있다. 의사도 그러하고, 환자도 그러하다. 일견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내재된 문제는 안 보인다 뿐이지, 항상 존재한다. 마치 통증을 겪기 전에 전이되고 퍼지는 암처럼. 다만, 섣불리 건드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와버렸고, 갑자기 고치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있고, 더군다나 많은 돈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애써 안 보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다. 

항상 윤리란 것은 상대적이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을 것 같은 윤리에서 "옳고 그르다는 것이 상대적이다" 라는 말은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여기 미국에서는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많이 하면서, 모든 것이 상대적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고 윤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대부분의 가치들은 비슷하고, 한국에서 괜찮은 놈들은 미국에서도 괜찮고, 미국에서도 괜찮은 놈들은 한국에서도 괜찮은 놈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사, 환자, 정책 입안자(정치인) 그리고 보험 회사)이 걸려있는 의료 시스템에서의 "어떤 것이 더 올바른가"에 대한 윤리는 훨씬 더 복잡하다. 모두들 한꺼번에 만족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 전임(!) 의사협회장이신 노환규 선생님의 슬라이드가 있다.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단지 하나의 슬라이드일 뿐이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명확하게 문제를 꼬집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밥그릇보다 더 큰 밥그릇을 가진 사람들은 무대 뒤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만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의사도 보지만, 궁극적으로 환자도 보게 된다.

대한민국 의사들 왜 투쟁하는가 from Hwan-Kyu Roh 화살표를 클릭하시면서 넘기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확대해서 보시길 권장합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라도 꼭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이 곳이 의과학자 블로그인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보면 시사적인 혹은 의료 시스템을 꼬집는 글이 블로그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의과학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언젠가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알아야할 정보라 언급했다. 아울러, 연구를 하는 혹은 하고자 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환자가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과학은 항상 객관적인 근거로 승부하고,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이용하는 사람은 중립적이지 않을 가능성을 언제든 내포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것이 과학 정책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라는 이유로, 또는 중립적이고 싶다는 이유로, 그 정책을 만드는 것에 의견내는 것을 외면한다면, 내가 중립적으로 만든 결과로 타인이 미래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너무 정치 편향적인 과학자도 옳지 않지만, 너무 무관심한 과학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항상 깨어있는 생각. 거창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항상 깨어있을 필요도 없다. 가끔씩 나를 스쳐가는 사안에, 조금의 생각을 보태는 것. 단, 그 생각에는 고민이 있고, 근거가 있고, 대안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할 것은 변한다. 하지만, 내 사소한 생각 하나가, 미래 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촛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014.5.25 나비 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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