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쓸데없는 연구를 하다 보면, 그 중에, 아주 놀랄만한 발견이 있고, 설사 그 발견을 그 당시에는 몰랐더라도, 재미 삼아 연구하다 보면, 누군가가 그 재미를 확장시키기도 합니다.

 

참고로, 유전학으로 아주 유명한 멘델조차도, 당시에 그 유전학 논문이 그리 큰 파급을 가지고 올 줄은 전혀 예상 못했을 것입니다. 단지, 콩이 무언가 독특한 룰을 따르네... 그 룰을 한 번 파 보면 재미있겠다~ 정도 였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무료한 수도원 생활을 보내기 위한 하나의 취미 생활이였지 않았을까요?(실제 이 논문을 내기 위해서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거 연구해서 뭐하게? 라는 질문보다, 이거 하면 재미있을까? 를 생각하는 과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발췌 ----------------------------------------------

과학을 통한 부의 창조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아주 예전에 Nature 저널에 실린 논문 중의 하나인데 기억이 잘 안나지만, 랩저널클럽에서 '모두들 이거 연구해서 뭐하게?'였던 것 같다.

 

내용은 기억하기로, 메뚜기의 날개쪽 근육의 운동을 관장하는 특정 유전자의 역할? 같다. 이 유전자를 망가뜨리면 날개를 움직이는 근육운동이 잘 안되어 배에 있는 숨구멍과의 조합이 안맞아 메뚜기 소리가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메뚜기의 짝짓기를 위한 구애소리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왜 돈이 될 수 있나면? 이 유전자의 단백질 기능을 저해할 수 있는 농약 개발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뚜기떼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는 미국이나 호주의 경우, 메뚜기가 특정 시간동안 짝짓기를 못하게 하면 개체수를 급격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역으로 회사에서 메뚜기 제거약을 창조적으로 개발해봐?하면 이런 걸로 아이디어 낼 수 있을까? '메뚜기 소리를 다르게 하려고 근육세포조절 단백질을 찾고자 합니다.'하면 땅에서 이런 결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 같은가?

그래서, 한 곳에 몰아주는 연구가 아닌 다양한 연구가 풍성하게 되도록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의학은 조금 딱딱한 학문이다. 학문 자체가 주는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무조건 외우고, 나름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혹은 메커니즘을 이해해서 외운다고 해도... 어찌되었건 외워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최소한 본과 4년간 지속되고, 심한 경우에는 그 이후에도 지속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배우면 배울 수록, 의학의 언어로 농담을 하고, 그 농담을 더 재미있게 느낀다는 점이다. 이상한 습성이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고난이도 유머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쨋든 배경지식이 필요한 농담을 동기들끼리 종종 하곤 했다. 특히 정신과를 배울 때는 극에 달했던 것 같다. 누구는 OC 같고, 자기는 Borderline disorder 같다고.. 


연구를 하면서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그리고 실험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반복의 연속"이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유희가 필요하다. 유희가 없으면, 지루하다. 그 유희는 연구자들끼리도 필요하고, 외부에게 설명할 상황에도 필요하다. 나만 재미있어도 좋지만, 다른 사람도 재미있으면 좋지 않을까?


뭐.. intro를 거창하게 썼지만, 한마디로 하면 인생에는 "재미"가 필요하다. 재미가 없으면, 돈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다. 뭐 돈 그 자체를 좋아해서 돈버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긴 하더만... 여하튼, 여기에 있는 필진들은 연구에 재미를 느낄랑 말랑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간헐적 단식처럼 가뭄에 콩 나듯이 느끼는 사람도 있고, 미친년(?) 춤추듯이[각주:1]매일 매일이 재미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여하튼, 결론은 재미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어떨까 하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필진 모두들 연구라는 생업이 있기 때문에, 매일 매일 글을 쓰긴 힘들지만, 최소한 2달에 한 번 정도는 ventilation을 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가 조금은 비틀어 볼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해서, 각자의 시각을 보여주면 어떨까?


그게 의학적 background를 곁들일 수 있는 주제여도 좋고, 완전 연구랑은 상관없는 주제여도 좋겠지만,필진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 글을 풀어보자는 것이 "For Fun Project"의 목적이다. 


다분히 필진들의 Ventilation이 목적이지만, 주제는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선정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재미를 느끼고, 읽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 



MDPhD.kr 의과학자들의 For Fun Project. 지금 시작합니다.


  1. "이외수씨 표현을 빌린 것입니다. 아불류 시불류에 나오는 "미친년 방언 터지듯 시를 줄줄줄 써 제끼는 넘 ..." https://twitter.com/oisoo/status/7847993240 [본문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뺏기는 것이 사실이다. 블로그 관련된 대부분의 시간은 글쓰기, 글읽기에 투자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을 때, 정말 잘 쓴 글을 읽을 때면, 글 읽기 자체로도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 아울러, 여러 운영의 묘와 인사이트를 얻는 것은 덤이다. 모든 노하우나, 좋은 점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배울 수 있는 일부는 습득하고자 노력하는데, 언제나 현실과 이상은 은하철도 999의 안드로메다 거리에 있다. 


하지만, 그 중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재미있게 글을 쓰는 재주인 것 같다. 간혹 글을 읽다 보면, 어찌 그리 재치있게 잘 썼는지. 글을 읽다가 절로 웃음이 나오는 유쾌한 글이 있다. 무게감은 다소 떨어지는 글도 있긴 하지만, 무게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글 안에 재치가 녹아 들어 있는 것이 어찌나 부러운지. 정말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내공이 상당한 것 같다. 글을 가볍게 쓰면서도 정보성을 잃지 않고, 읽는 이를 즐겁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뛰어난 능력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보수적인 사람이 대부분인 의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또 증거가 없으면 잘 안 믿으려고 하는 과학자 집단에 소속된 사람으로, 재미난 글을 읽을 기회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의학 혹은 과학적인 글들은 내용의 표현보다는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글들이 딱딱하고, 정보 중심적이다. 물론, 과학적인 글이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문체나, 표현 방법보다는 내용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논문을 생각해보면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문체를 따라 가게 되는 것 같다.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꽉찬 서재 같은 느낌의 글을 본보기로 삼고, 글을 쓰고자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외수 작가와 박경철 원장의 글을 좋아 한다. 재미있게도 이 두 사람, 이외수 작가와 박경철 원장의 글은 앞서 언급한 두가지 문체를 크게 대변하는 것 같다. (이외수 작가의 정치적인 성향, 개인적인 사생활은 여기서 논의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니 접어 두자.) 


집필실 창문 앞에 있는 개복..
집필실 창문 앞에 있는 개복.. by pieliny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글만 보자면, 이외수 작가의 글은 촌철살인과 번뜩이는 재치가 있다. 글이 유쾌하고, 즐겁다. 내공의 정수가 느껴지는 짤막한 글부터 시작해서, 길게 늘여 쓴 글이라 해도, 항상 글에 재치가 녹아들어가 있어 가볍게 읽기에 적절한 것 같다. 재미있는 표현과 글을 읽는 맛이 어쩔 때는 상큼한 오렌지 같고, 어쩔 때는 갓 구운 빵을 먹는 느낌이다. 먹는 것으로 따지자면, 주전부리를 먹는 듯한 느낌이다. 리듬감 있게 술술 읽히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에 반해,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의 글은 다소 현학적이다. 모든 글에 논리가 들어가 있고, 사용되는 용어가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경우가 많다. 글이 무겁지만, 논리의 정수가 느껴진다. 짤막한 글보다는 "통"으로 전체를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글에 재치가 들어간 경우도 있지만, 웃음을 유발하기 보다는, 공감을 유도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먹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예절을 지켜서 먹어야 하는 궁중 음식 같은 느낌이다.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하지만, 읽고 나면, 내가 업그레이드 되어 있는 듯 하고, 나를 변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글이다.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by 서형원 저작자 표시비영리


두 사람의 글의 문체가 극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글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글 모두가 재미있다. 


나를 돌이켜 보면, 나만의 문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다소간 있기는 하지만, 굳이 "류"라고 부를 정도로 정형화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때에는, 재미있게 글을 쓰고자 했는데, 최근 들어 재미있는 글보다는 논리가 있는 글을 쓰고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글 위에 재치를 올리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왠지 모르게 가볍게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색한..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든다.


길게 보면, 모든 것이 내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논리와 재치를 동시에 살리고자 하는 글을 쓴다면, 그런 방향으로 고심하면서 글쓰는 연습하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어렵고 무거운 주제라고 할지라도, 내 문체로 내용을 녹아내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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