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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도약 이끈 슈뢰딩거방정식은 ‘간통’ 덕분?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화양연화’왕가위 감독의 2000년 작품 ‘화양연화’는 간통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62년 홍콩.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공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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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동아 사이언스 기사이네요. 간략하게 정리하면, 과학계 간통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몰랐던 사실이라 흥미롭네요.

 

가끔씩 미국이나 유럽에서 들리는 이런 소식들을 보면서, 어찌 이들 서양 사람들은 과학적 업적(?)과 개인 사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찌보면, 과학적 발견이랑 업적은 개인의 사생활과는 별개로 다루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관점에서 본다면 맞는 이야기 같아 보이고, 반대로, 우리 나라나 동양의 인식으로는 이런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완전 때려 죽일 놈이 되는 것이지요.

 

아마도, 슈뢰딩거 같은 케이스가 한국에서 나온다면, 노벨상을 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아고라나 네이트 판에서 불륜으로 엄청 털리고, 언론에서 엄청 또 한 번 털리고, 다음에서 교수직 박탈 서명 게시판이 열리고, 나무 위키에서 자세한 사건 사고 소식으로 정리가 되면서 결국, 기자 회견과 함께 교수직 사임, 전혀 관계가 없는 연구비 회수, 연구비 횡령 조사, 세무 조사 등등으로 털리겠죠. 생각해보면, 연구 업적과 개인 사생활의 영역인 불륜(?)은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일종의 연좌제(?)인 셈이죠.

 

불륜이라서 조금 감정이 고양될 수 있어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이렇게 개인 사생활 영역과 연구 업적을 많이 연관시키는 사례는 우리 나라에서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에요. 예컨대, 위 슈뢰딩거 사건이 불륜이 아니라, 식당 내 갑질 사건으로 변환 시켜도, 위 이벤트가 반복될 것 같아 보이고, 개인의 영역에 있는 어떤 문제를 대입해도, 결국 사람들은 화가 나서, 교수직이나 연구직을 박탈하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크게 본다면, 과연 이런 상황이, 즉 개인의 영역에 있는 사생활 문제가 공적인 부분이 연구 영역과 합쳐서 평가되고, 징벌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의 가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겪은 미국이나 유럽도 저런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리를 해서 적용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예컨대, 불륜설이나 염문설로 화려하게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하지만, 이런 개인 사생활의 문제가 프랑스 대통령 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인식하는 일반 프랑스 시민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적 업적 혹은 직업적 생활과 개인의 사생활. 과연 함께 다루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분리해서 업적은 업적, 개인 사생활은 사생활 영역으로 두고 나누어 다루는 것이 맞을까요? 그리고 만약 두 개를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런 나눔(?)에 대해서 준비되어 있나요? 누군가 개인 사생활 문제가 있을 때, 사생활과는 별개로 업적을 인정하고, 과학적 가치를 존중해 줄 수 있을까요?

 

예컨대, 내 동료가 슈뢰딩거고, 저런 짓(?)을 하고 있다면, 양자역학의 토대가 되는 방정식은 방정식대로 인정하고, 개인 사생활은 별개라고 말하면서 신경쓰지 않을 수 있나요?


여담이지만,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커플로 대변되는 open relation 혹은 open marriage에서는 저런 슈뢰딩거와 아내 안네마리의 관계가 서로간에 합의가 된 관계이기에 정상(?)이라고 합니다. 도덕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죠. 슈뢰딩거는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이런 생활이 나의 창의성을 활성화하는데 더욱 큰 도움이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일반인이 보기에 부적합한 개인 사생활이 궁극적으로 과학적 업적의 무궁한(?) 발전을 이루어 낸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슈뢰딩거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 아래 기사 발췌------------------------

 

슈뢰딩거는 거의 평생 끊임없이 새로운 연인을 만들었는데, 그 자신이 간통을 해야 창조력이 생겨 연구가 잘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1925년 비엔나에 사는 오래 전 여자 친구(끝내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와 함께 스위스 아로사로 크리스마스 밀월여행을 떠나 현지에서 완성한 게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만일 슈뢰딩거의 간통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 난해한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으로 양자이론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슈뢰딩거가 이처럼 대놓고 이 여자 저 여자와 바람을 피울 수 있었던 건 역시 자유분방했던 아내 안네마리와 당시 유럽대륙의 사회적 분위기 덕분이다. 안네마리도 벡터의 개념을 정립한 천재 수학자 헤르만 베일과 간통에 빠져 있었다(베일의 아내도 다른 남자와).

 

한 걸음 더 나가 패보는 마크를 연구소로 영입할 계획을 세운다. 패보의 요청으로 린다는 남편에게 간통사실을 고백하고 마크는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다. 즉 사생활과 연구를 구분하기로 한 것. 1998년 라이프치히에서 연구소가 문을 열 때 마크와 린다 모두 연구원으로 와 있었다. 패보는 스토네킹 가족과 한 집에서 살며 린다와 애정을 키웠고 마크는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 2005년 패보와 린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 뒤 마크와 린다는 우호적으로 이혼했고 2008년 패보와 린다는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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