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글을 처음으로 들어온다면 지난 포스팅을 참고해 보자.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1)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2)

자 이제 대안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는 호기롭게 7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1. 취업정보를 공유한다.

2. 연구비에서 교수급료로 지출되는 것을 제한한다.

- 미국의 경우 non-tenure 교수 연봉은 학교에 주는 것이 아니라 연구비에서 직접 가져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한국은 따로 교수급료를 연구비에서 가져갈 수 없으니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3. 연구-훈련의 연결고리를 약화한다. 

- 인력양성소인 대학원과 연구를 위한 연구소 분리하자는 것이다. 물리학의 경우 페르미, CERN 등 유명한 연구소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GIST, DGIST 등등이 역으로 대학원, 학부기능까지 하거나, 하려하고 있다.

4. 대학원 지원금을 개편한다.

5. 연구자원센터 등 과학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정책을 만든다.

6. 공동연구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한다.

- 이것은 노벨상을 겨냥한 것인데, 3명까지만 공동수상자로 선정되는 웃기지도 않는 제한때문이다.)

7. 연구비 예산 사용처를 구체화한다.

보다시피 꽤나 현실적인 대안들이다. 몇가지 토를 달아보자. 

취업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나라 BK21사업이후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다. 당연하게도 BK21사업을 통해 대학원생들에게 인건비 지원을 한 정부가 그 대학원생들이 졸업하고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문제는 대학원생들의 취업이 졸업 직후에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도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사 졸업 후 바로 정규직 취업이 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박사 후 연구원이라는 다소 불안정한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이후까지 구체적으로 추적할 필요가 있다. 몇년 동안 박사 후 과정을 거쳐 어느 대학, 또는 어느 연구소에 어떤 직급으로 취업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분야를 막론하고 이공계 석박사 통틀어 취업 조사해 통계 발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분야 별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궁금하다면 KISTEP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라)  물리, 수학, 화학, 생물, 공학 등등의 계열 별로 말이다. 그래야 각 분야에 있는 학생, 대학원생들이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며 과학도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원센터의 경우 아이디어는 괜찮은데, 개인적으로는 정부기관의 특성상 빠르게 기술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학 연구 중 글로벌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high-end 급의 연구에 대한 자원을 적시에 적절히 지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연구와 실험을 하다보면 지금 당장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항목을 미리 예상하여 신청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고, 그 지원이 연구와 발견 선점에 필수적인데, 그렇기 때문에 개별 연구자들은 정부기관을 통해 지원 받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경로를 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좋은 생각이며, (개인적으로 이용해본 경험은 없지만) 실제로 생물학자원센터가 있기도 하다.  각 대학의 연구기관이 모든 장비와 모든 형질전환 쥐를 관리할 수는 없고, 과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며 매번 구비하기도 어려우므로 국가 차원에서 이런 자원을 구비하고 관리하는 것은 필요할 것 같다. 

참고로 미국에서 포닥을 하고 있는 오지의 마법사 이야기를 빌리자면, 미국은 이런 코어 형태의 연구자원센터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깝게는 학교 내에서 구성될 수도 있지만, 최소한 각 주별로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는 마우스 facility가 이런 형태로 운영되어서 효율적으로 연구 자원을 적시에 공급하고 별도의 비용을 청구한다. 그 비용은 결코 싸지 않지만 개별적으로 구성하는 것보다는 시간적으로 그리고 비용적으로도 비교 우위에 있기 때문에 자원센터 자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한다. 

연구비 예산 사용처를 구체화하는 것은 국가 단위에서는 필요할지도 모르지만,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이야기하자면, "개개 과학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구와 실험의 특성상 앞으로 예산 사용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괄적인 틀자체를 설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인건비를 제외한, 재료비, 설비비, 회의비 등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쪼개고 항목별로 구성하는 것은 연구 능력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지금도 재료비, 설비비 등으로 나눠진 연구비를 1년 단위 결산할때 억지로 맞춰 쓰고, 맞지 않으면 용도 변경 신청을 하는데 생각보다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맞춰서 집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업체에 영수증 항목을 외상으로 이용하고 이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과학이라는 학문이, 또는 분야가 사회와 동떨어져 그들만의 객관적이고 우아하고 소위 과학적인 논리로 굴러가고 있지 않고, 도저히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필자의 서평은 성공이다. 

그런 관점에서 책에서 제시된 대안들, 그리고 필자가 단 투덜거림들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 또는 그에 버금가는 기관에 의해 주도되는, 또는 주도될 수 밖에 없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그 발전 양상을 보면, 그리고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이라는 것이 국가와 결부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는 과학을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파악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연구비 투자한다. 그렇기때문에 과학을 수행하는 주체가 표면적으로는 과학자들로 보이지만, 실상 깊이 들어가 보면 국가의 의지가 상당히 반영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주체는 국가[각주:1]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약간 관점을 바꿔보자. 과학의 결실, 그리고 부산물의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 모두, 즉 시민들이고 그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 대학원생들 역시 시민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생각을 바탕으로 과학의 주체를 시민으로 재설정해서 태어난 개념이 시민과학 또는 대안과학이다. 과학의 주체를 시민으로 놓고자 하는 개념 또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언뜻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개념이 생소하다면, '독립'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무언가를 생각해보라. 독립영화, 독립구단, 독립예술 등등. 국가나 자본에 귀속되지 않고, 수행하는 주체 또는 영향받는 사람들만을 오롯이 위한 무언가. 이제 감이 오는가? 과학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공학에서는 제 3세계를 위한 '적정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천문학에서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성과로 알려지기도 했고, 환경 보건 분야에서는 '시민단체'들의 보고서나 성과로 알려지기도 한다. 이들 모두 주류과학계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 주류 과학자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정치적인 영역이거나 사적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주류과학 역시 완전히 순수한 지적 영역에 속할 수 없고, 국가 또는 연구비 지급 기관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라는 면에서 충분히 '정치'이다. 

과학은 '양날의 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고전적이고 닳고 닳아 빠진 그런 흔한 얘기로 덮어서는 안된다. 과학은 저 멀리 앞서 달려나가고, 그 결실을 정치가나 산업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된다는 진부한 얘기는 과학자들의 주체성을 몹시 훼손하는 것과 동시에 과학을 하는 행위의 정치성을 가려버리고 만다. 과학은 수행되는 순간, 아니 그 이전 단계부터 그 검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봐야한다.

그런 과학의 정치성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과학자가 취할 수 있는 입장과 층위는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험실에서 논문을 쓰고, 파이펫을 쥐고 실험을 하는 행위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질질 끈 서평포스팅을 마친다. 


  1. 가만히 고등학교 시절 문과와 이과를 생각해보자. 국가의 의지를 수행하는 행정관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시절 문과를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과학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을 것 같은 "문과"로 대변되는 행정관이 역설적으로 과학 연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오지의 마법사입니다. 


일단 의대라는 곳은 인체에 대해서 현재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업 공간인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의대는 예과에서 배우는 자연과학, 본과 1학년에서 배우는 기초 의학, 그리고 본과 2학년부터 졸업까지 배우는 임상 의학 다각도로 인체에 대해서 공부하고, 질병에 접근하는 시각을 그 어느 곳보다 잘 제시한다는 점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배경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What Medical School is Like -or- Studying for Anatomy by SendakSeus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본과 1학년은 전세계적으로 어디를 가나 비슷합니다. ^^ 

의대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교육 과정의 편차가 가장 적은 학과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인체의 질병에 대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연구라는 것은 하나를 깊게 매진하는 것인데, 의학은 그 학문 체계가 워낙 방대하여서, 의대 과정동안 하나를 자세하게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는 동안은 아주 자세하고 깊게 배우긴 하지만, 절대적인 할애량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모든 과정을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사들도 본격적인 연구는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관심있는 학생은 본1때부터 진행하기도 합니다.)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졸업과 동시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고, 임상 의학을 선택하면 빠르면 레지던트 3-4년차, 혹은 펠로우에 즈음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PhD가 대부분 학부 4학년때 혹은 석사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한다면 다소 늦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서 의대 학위는 환자를 대면하고 진료할 수 있다는 "의사" 라이센스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학문, 의학, 인체를 접근하는 틀과 다른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에 큰 장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작게는 주변 의대 동기, 선후배 등이 다 임상 의학을 하면서 진료 일선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고, 크게는 연구에서 임상까지 접근하는 Translational Medicine (중개 의학 - 링크)을 아우를 수 있습니다. 


pieces of you.
pieces of you. by NatShots Photography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해부학 책 중 하나인 Gray's anatomy)


물론 장점만 본다면 어느 곳이든 쉬워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기초 의학 자체가 의대 내에서 소수인 집단 (MDPhD.kr의 기초의학 글-링크) 입니다.  따라서 연구를 하는 시행착오 역시 오롯히 자신의 몫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임상을 하는 친구들과의 괴리감 역시 상대적으로 큽니다. 


아울러, 연구를 메인으로 하는 연구 중심 대학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포스텍) 등과 비교할 때, 교육에 대한 부담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더불어, 경제적인 측면 역시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절대적으로 본다면 일반 대학에 있는 대학원생과 비슷할 수 있지만, 자신과 의대 6년을 같이 공부한 동기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상황 (갈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짐)에 초연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울러, 정해진 임상 길과는 다르게, 모든 길을 자신이 개척해야하는 안개 같은 상황도 개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유로 기초 의학을 선택하는 사람은 한 학년에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의 기초 의학 전공자들이 중도 포기를 하고, 임상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전 그 선택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중도 포기와는 별개로, 기초 의학의 다양한 툴을 이용하면 임상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거든요. 아울러 위에 언급한 단점들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구요. 다만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은 있겠죠.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by phalinn 저작자 표시


따라서, 자신이 의대를 졸업하고 연구를 혹은 기초 의학을 선택한다면, 정으로 자신이 좋아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수가 되겠다.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단순한 생각입니다. 또 소위 말하는 뽀대(?)나 주변 시선을 신경쓴다면 더욱 이 길을 선택하면 안됩니다. 연구에서만큼은, 인생이라는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리턴이 결코 돈이나 지위와 같은 외부적인 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단순히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자신이 위와 같은 성향을 가졌다면, 임상을 선택했을 때 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예전 70-80년대에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교의 교수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의과 대학에서는 연구나 진료보다 학생 교육이 중심이었고(현재도 그러합니다만) 의사인 기초의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교육에 더 적합한 인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연구"가 의과 대학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무조건 기초 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의과대학 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그런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PhD가 의과대학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연구에서 강점이 크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의과대학에서 PhD를 교수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ug for today: staphylococcus aureus by estherase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따라서 연구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의대를 들어오지 않아도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시간이 많이 걸려도 인체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한 곳만 깊게 파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2000년도 이후에는 의대 자체를 들어오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에, 자신이 그 커트라인을 넘어서 의대를 들어올 수 있느냐도 위와 같은 선택의 변수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의사가 되어 기초 의학을 연구하고 싶어도 의대에 입학하지 못하면 MD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일종의 차선책인 셈이죠. 과연 재수 삼수를 해서 의대를 들어가야 하느냐? 현재로서는 그건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초 의학을 진로로 정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고민한 뒤에 진로를 선택하라는 것이고, 자신이 보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