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구하는 분야 이야기 1

2026. 2. 19. 17:00Ph.D : Medical Scientist/연구 이야기 및 연구 자료들

저는 지금도 제 연구 분야가 무척 흥미롭고, 꽤나 직관적이며, 기본 개념만 이해하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실제로 제가 다루는 질문들은 대부분 단순하고 본질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껏 풀어온 질문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답은 제일 아래에 해두겠습니다)


1. 수정란이 첫 번째 세포분열을 거치면서 만들어지는 두 개의 자손세포는
과연 우리 몸 전체에 각각 얼마나 기여할까?

2. 우리의 몸은 언제쯤 좌우로 나뉘기 시작하는 걸까?

3.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 같은 세포운명은 어떤 시점에 정해질까?

4. 태반의 기원은 몇 번째 분열에서 결정되는 걸까?


위 문제들은 제가 랩을 꾸린 2016년도부터 하나씩 풀어내서 답을 세상에 알린 문제들입니다.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이런 질문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인간 존재를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학부생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완전히 다른 분야의 교수님들과 연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분야가 결코 만만한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들의 반응 속에는 생소함과 복잡함, 그리고 어떤 경우엔 막막함까지 묻어나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너무 익숙해져 무뎌졌던 이 분야의 ‘난이도’를 다시 인식하게 됩니다.
(꼭 어렵다고 더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서서 제 분야를 곰곰이 바라보면,
실상 이 학문은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다양한 학문이 교차하는 접합점에 존재하며,
여러 분야의 전문 지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설득력 있는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며,
무엇보다 직관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에서 이 분야의 특수성이 드러납니다.

한 분야의 깊숙한 지식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연결고리를 이해해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그런 학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분야를 깊게 파는 대부분의 과학 방향과는 조금 다른 결이 있습니다.

그게 주는 재미가 제 스스로에게는 상당히 큰 편이나,
학생들과 다른 과학자들에게는 꼭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로 다루는 분야는 Somatic mosaicism, 즉 체성 모자이크 현상이며,
이를 통해 인간 발생 초기의 세포계통도를 재구성해
이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평생을 살아왔는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post-mortem human embryonic lineage tracing,
즉 사망자에게서 얻은 시료를 기반으로 인간의 발생과정을 세포 단위에서 역추적하는 접근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때때로 줄기세포 연구나 노화 연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발생의 시간축과 노화의 시간축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생명이라는 동일한 궤도 위에서 함께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의 가장 큰 매력은 질문 그 자체가 단순하고 직관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과학적 사실을 다루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아주 본질적이고 단순한 물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풀고자 하는 질문들은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도 여전히 본질적입니다.

예컨대,

각 장기는 도대체 언제부터 스스로 ‘나는 간이야’,
‘나는 심장이야’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는 걸까?
장기의 좌우는 장기 운명보다 먼저 갈라질까, 아니면 반대일까?
팔다리는 언제부터 ‘나는 팔’ 혹은 ‘다리’가 되겠다고 결정하는가?
뇌는 어떤 세포 집단과 함께 발생학적 운명을 공유하는가?
그리고 장기에 존재하는 혈관과 신경은 그 장기가 형성된 후 나중에 이주해 들어오는 것일까,
아니면 장기 자체가 생성되면서 함께 만들어지는 것일까?
즉, 이들은 동일한 조상세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전혀 다른 계통에서 출발했을까?

이런 물음들은 겉으로는 단순한 호기심 같지만,
실상은 인간 생명구조의 근간을 이루는 아주 본질적인 질문들입니다.

이처럼 우리 연구의 질문들은 얼핏 보기엔 단순하고 쓸모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답을 내기 위해서는 실로 다양한 학문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우선, 시신에서 조직을 얻기 위해서는 정교한 해부학 지식이 전제되어야 하며,
특정 조직 단위로 접근하고 이를 해석하려면 조직학적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이후에는 이 조직으로부터 살아있는 단일세포를 분리해 배양하고 클론을 만들어야 하므로,
줄기세포 및 세포생물학에 대한 숙련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으로, 이들 클론화된 세포들의 유전체를 다양한 차세대 시퀀싱(NGS) 기술로 분석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기계 운용 능력만이 아니라, 어떤 분석 방법을 선택할지,
어떤 library preparation 방법이 가장 적절할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초 이론과 경험이 함께 요구됩니다.

각각의 시퀀싱 기술이 가진 장단점, 민감도, 오류율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과정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시퀀싱을 통해 얻은 raw data를 해석하려면, 컴퓨터를 활용한 생물정보학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수십억 개의 염기서열 가운데 진짜 체성돌연변이를 걸러내는 고차원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지 계산능력이 아니라, 생화학적 기반지식, 돌연변이에 대한 유전학적 이해,
그리고 복잡한 데이터 패턴을 통계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체성 돌연변이 세트를 기반으로 계통도를 구성하고,
인간 발생 과정을 재구성하려면 결국 발생학이라는 커다란 틀 위에서 데이터를 해석해야 합니다.

이때는 단지 결과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데이터 간의 의미적 연결고리를 분석하고,
수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가장 타당한 해석을 찾아내는 ‘가설의 정반합’ 과정이 반복적으로 요구됩니다.

이처럼 이 연구는 단순한 실험이나 분석을 넘어선, 해석과 통찰의 학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과정은 한 사람이 실험적으로 온전히 수행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랩 안에서 역할을 나누고, 각자 맡은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자의 분야를 넘어서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이해도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다루는 실험 결과가 전체 연구의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결과의 의미도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부분’과 ‘전체’의 균형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소화하느냐가 연구력과 직결됩니다.

그리고 이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입니다.

모두가 바쁘고, 실험은 기다려주지 않기에,
서로의 분야를 공부하고 소통할 여유가 잘 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학부생들이 인턴으로 연구실에 들어오면,
제한된 시간 안에서 아주 작은 파편적인 업무만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연구의 일부만 보고는 전체를 오해하거나 흥미를 잃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전체 구조를 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고, 너무 제한된 경험입니다.

반면, 석박사 과정 3년 차쯤이 되면 이 분야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개념과 방법들이 점차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전체 그림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미친 듯이 재미있어지고, 연구가 스스로의 내면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이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다른 전공자들이 우리 연구의 매력과 의미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단지 논문이나 연구 성과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심지어 이 분야는 매스컴도 잘 다루지 않고(유전자 가위처럼 직관적이지 않죠),
연구하는 사람도 국내외에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와 철학,
질문에 대한 저변 확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질문으로, 우리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건 연구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저는 이 여정의 첫 발걸음을 이미 내디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랩을 꾸리면서 마음 먹은 것이 여러 개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들과의 미팅을 제일 우선하겠다와,

또 하나는 누군가 저를 초청한다면
가급적 거절은 하지 않고 가서 발표해서 내 분야를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요새는 정말 시간이 나지 않아서 강연 타이밍이 밀리거나 더블 부킹이 되어서
고사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긴 하지만, 가급적 저 두 개의 룰은 지키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하기만 했던 somatic mosaicism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졌고,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자들의 입에서도, 학부생들의 호기심 속에서도 이 단어가 등장하는 걸 볼 때마다,
제가 걸어온 길이 조금씩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질문을 해답으로 연결하는 여정은 복잡하고 깊습니다.

저는 그 여정의 한가운데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든 이 분야에 관심가는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있다면 환영입니다!

Somatic mosaicim과 human lineage tracing이라는 분야를 많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푼 문제들

1. 수정란이 첫 번째 세포분열을 거치면서 만들어지는 두 개의 자손세포는
과연 우리 몸 전체에 얼마나 기여할까?

답) 통상적인 반-반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66:33으로 비대칭적임

2. 우리의 몸은 언제쯤 좌우로 나뉘기 시작하는 걸까?

답) 현재 시점에서는 대략 3번째 분열 이전에 좌우운명이 결정된다고 보임

3.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 같은 세포운명은 어떤 시점에 정해질까?

답) 아직 논의 중이나, 외배엽이 가장 먼저 운명이 결정되는 것 같고,
대략 3개 배엽은 10-17번째 분열에서 운명이 결정됨

4. 태반의 기원은 몇 번째 분열에서 결정되는 걸까?

답) 3번째 분열 결과 나오는 8개 세포 중 5개가 태반, 나머지 3개가 사람이 됨.
이 걸 보면 운명에 있어서 개체 생존보다 그걸 먹고 살리는 태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