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26. 17:00ㆍPh.D : Medical Scientist/연구 이야기 및 연구 자료들
저는 늘 교과서가 주는 확실성에 매혹되곤 했습니다.
두꺼운 해부학 교과서, 세포생물학 교과서, 분자유전학 교과서에는
세상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체세포는 동일한 DNA를 갖는다.”
― 아주 단순하고 아름다운 문장이죠.
이 선언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유전적 동일체(genetic identity)’로 묶어주는 구심점처럼 작동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뇌세포이든 간세포이든 피부세포이든 간에, 그 근간에는 똑같은 설계도가 있다는 것.
교과서의 언어는 오랫동안 흔들림 없는 진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과학사의 여러 순간이 늘 그랬듯, 이 ‘진리’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후반부터 드러난 수많은 연구들은,
세포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나둘 보여주었습니다.
염색체 이상을 보이는 세포들, 체세포 돌연변이를 축적하는 조직들,
암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발달 과정 속에서도 일어나는 변화들.
그러면서 하나의 개체 안에도 서로 다른 유전적 풍경이 존재한다는 개념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somatic mosaicism, 체성 모자이크 현상입니다.

1. 교과서의 문장과 현실의 균열
역사적으로 보면, 모자이크 개념은 처음부터 암 연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왜 어떤 세포만이 돌연변이를 쥐고 폭주하는가? 왜 특정 조직에서만 발병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세포들이 동일하지 않다”는 직관을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암을 벗어나 일반적인 조직으로 시선을 확장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든 세포가 같은 DNA를 가진다는 단순한 신화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죠.
이 신화는 교육적으로는 분명 유용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세포는, 마치 타일이 일정하지 않은 색깔을 띠며 깔려 있는 바닥처럼,
작은 차이와 변이를 곳곳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변이는 때로 무해하게 지나가지만, 때로는 특정 조직의 기능을 규정하거나,
노화의 경로를 바꾸기도 합니다.
2. 왜 교과서는 “모든 세포가 동일하다”라고 가르쳤는가?
1) 기술적 한계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생명과학은 세포 단위의 정밀한 DNA 차이를 들여다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염기서열 분석은 대규모 시료와 대량의 DNA가 있어야만 가능했고,
한 개의 세포가 가진 변이를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하나의 수정란 → 동일한 게놈 복제 → 수조 개의 세포”라는 모델을
기본 전제로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변이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보여줄 증거도, 기록할 방법도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기술적 한계가, 단일 게놈 패러다임을 ‘사실’로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드물게 관찰된다 하여도, 그냥 그건 특수한 현상으로 치부되거나 "실수"로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세포는 아주 강력한 proofreading mechanism이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2) 암 중심 시각
게다가 유전적 변이는 오랫동안 암 연구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체세포 돌연변이란 곧 암을 일으키는 병리적 사건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세포와 조직 속에 존재하는 작은 차이는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변이는 곧 질병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무시 가능한 잡음”으로 치부되었습니다.
따라서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단순하고 명확한 그림을 제시하기 위해 “모든 세포는 동일하다”는 서술을 선택했습니다.
교육적으로도 혼란을 줄이는 편이었고, 연구의 패러다임에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이는 멘델리안 유전법칙과 더불어, "변이는 기능을 꼭 가진다"처럼 해석되었습니다.
(제가 강연을 하면 꼭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 변이들의 기능은 하찮을 수도 있습니다)
3. Somatic mosaicism의 전환점
21세기 들어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개체 내부의 ‘불일치’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의 뇌 속 신경세포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니,
각각이 저마다의 돌연변이 레퍼토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Walsh C., Cepko C.L. (Science, 1992)
“Widespread dispersion of neuronal clones across functional regions of the cerebral cortex.”)
피부, 혈액, 장기, 어디를 보아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몸은 유전적 단일체가 아니라, 다양한 변이들이 얽힌 모자이크적 구조물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단순한 지식의 수정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 = 한 게놈”이라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의 정적 설계도가 아니라, 매 순간 새겨지고 수정되는 동적 기록물이었던 것입니다.
4. 역사적 맥락 속의 나의 연구
저는 이 흐름 속에서, somatic mosaicism을 인간 발생학과 연결 지어 탐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인의 몸을 기꺼이 기증하신 분들의 유지를 받들어
시신에서 세포를 탐구해 출생 시점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post-mortem human embryonic lineage tracing이라는 접근을 통해,
개체가 어떻게 발생했고 그 안에서 어떤 유전적 분화가 축적되어 왔는지를 실증적으로 추적합니다.
이를 개념적으로 처음 제시한 논문은 Behjati S. et al. (Nature, 2014)
“Genome sequencing of normal cells reveals developmental lineages and mutational processes.”인데,
당시 최신 기술인 organoid를 이용해서 마우스에서 전장유전체를 이용해
처음으로 수정체부터 개체까지의 lineage를 재구성했습니다.
(2마리에서 12개, 13개의 세포로 재구성)
기존 교과서식 서술이라면 “수정란 → 동일한 분열 → 동일한 게놈의 체세포”라는
직선적 그림만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첫 분열에서부터 이미 비대칭성이 존재합니다.
이후의 발달 과정에서는 세포마다 다른 돌연변이 패턴이 쌓여, 계통도가 세분화됩니다.
제 연구는 이 계통도의 파편을 모아 다시금 “인간이라는 모자이크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5. 교과서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언젠가 새로운 세대의 교과서에는 이렇게 쓰이지 않을까?
“모든 체세포는 동일한 DNA를 갖는다” 대신
“모든 체세포는 동일한 기원을 가지되, 체세포 돌연변이로 인해 서로 다른 유전적 기록을 간직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문장 하나의 수정이 아닙니다.
생명의 정체성, 질병의 기원,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이해까지 새롭게 짜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Somatic mosaicism은 단순히 작은 예외를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창(window)이자,
앞으로 우리가 인간과 의학을 바라보는 뷰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체성 돌연변이 모자이크 현상은 분명히 있는 사실이지만,
교과서의 서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개념들이 필요하고,
단순하게 본다면 기존 개념들과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직은 cutting edge에 있는 연구자들만이 이 분야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과서가 1900년도보다 훨씬 더 두꺼워 많은 지식을 담고 있듯,
시간이 지나면 이 모자이시즘에 대한 간극 역시 교과서가 두꺼워 지면서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6. 결언.
그래서 저는 오늘도 질문을 던집니다.
1) 뇌 속 수십억 신경세포가 각기 다른 변이를 지닌다면, ‘나’라는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저는 뇌 연구는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 하고 싶지 않지만,
이 분야는 뇌와 암 분야가 연구를 주도해왔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2) 장기별로 다른 모자이크 패턴은, 질병의 발생 확률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3) 발생의 시간축에 새겨진 작은 차이들이, 어떻게 평생의 노화와 질환으로 이어질까?
4) 우리 심장은, 그리고 신장은, 폐는 언제 자기가 각 장기가 될 줄 알았을까?
5) 각 장기에 존재하는 돌연변이는 어떻게 다를까?
6) 암 세포는 언제 암세포가 될까?
7) 전이암 세포는 언제 전이가 되고 전이되는 세포들은 어떤 계통을 가질까?
이 질문들은 단순히 교과서의 틀을 깨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새로운 교과서를 쓰는 과정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더 근원적인 탐구의 출발점입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그 지식의 일부에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너무나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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