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희망이 있는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연하게 후배님의 페북 링크를 보다가, 재미난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미리 결론을 말씀드리면, 사고로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분들에게 아주 희망적인 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공장 기계에 눌려서, 혹은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로 팔을 잃은 소식을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실제 제 주변에는 이런 분을 아직 개인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지만, 동기들이나 정형외과에 간 친구들, 그리고 정신과 선생님들까지, 이런 환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경우를 종종 들었습니다.

 

사지를 포함한 신체 일부가 절단된 환자들은 사고 당시의 상황 뿐만 아니라, 수술 전, 수술 후, 그리고 한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동안, 생각보다 많은 고통을 안고 살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컨대, 한쪽 팔이 절단된 환자의 경우에는, 수술 후 한동안, 그림자 통증 혹은 환상 통증(phantom pain - 팬텀 페인)이라는 것을 겪는데, 이게 일부의 경우에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할 정도로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이 펜텀 페인은, 기본적으로 팔이 없어졌다는 것을 신경계가 인지를 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통증 신호를 보내는 신체의 부조화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데요. 이런 고통은 결과적으로 환자를 힘들게 만드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통증 자체가 무언가 조치를 취하라고 만든 인체의 신호 현상인데, 팔이 잘려나갔기 때문에, 더이상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면, 이런 신경계의 신호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잘려나간 신체의 말단 부위에 아직 신경계가 살아있고, 이를 이용한 인공팔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를 이용한 것이, brain–computer interface (BCI), mind-machine interface (MMI), direct neural interface (DNI), brain–machine interface (BMI) 로 불리는 기술들입니다. 이 경우에는 뇌에 직접적으로 무언가 조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direct neural interface (DNI) 라고 불러야 하겠지요.

 

즉, 신경계가 보내는 신호를 인지하고, 그 인지된 신호를 분석하여, 기계 혹은 로봇을 움직이는 모든 과정이 바로 brain–computer interface (BCI)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론적으로는 이 부분이 너무나도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이 부분은 아주 까다롭습니다. 기본적으로 절단된 부분 혹은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 자체가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잡음(Noise)도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신호를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신호 분별력, 의도 파악 등, 생각보다 고려할 사항이 많고, 그 사항을 하나하나 개선시키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단 한번에 진행할 수도 없으며, 개인별로 신호가 다르기 때문에, 이 과정은 기본적으로 한 명의 환자와 대략 2-3년 정도의 훈련을 하면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토대로 분석하고, 다시 신호를 개선 시키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머신 러닝 기술과 컴퓨팅 능력, 신호를 증폭시키고, 이를 해석하는 알고리즘의 발달. 전폭적인 연구비 지원과 로보틱스의 발전이 결과적으로 현재와 같은 발달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이 동영상은 세계 최고의 의대와 병원 연구팀이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 팀에서 만든 영상인데, 처음부터 대략 5분간 이 기술이 어떻게 환자에게 적용되어 왔고, 어떤 가능성이 있으며, 환자가 어떻게 로봇을 생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이 비디오가 거의 1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조금 더 개선되었겠죠.

아무쪼록, 이런 기술은 공학의 발전 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응용이 합쳐져야 가능한 것이지요. 공학의 발전, 의학의 발전, 그리고 자연과학의 발전. 저 위에 있는 행정가 공무원들이 자주 이야기처럼, 이분법적으로 분야를 나눌 시기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술자체는 임상, 의학, 공학, 신경 과학 모든 분야가 총체적으로 망라된 기술이고, 이런 관점으로 접근해야만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수 있고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https://youtu.be/9NOncx2jU0Q

A Colorado man made history at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Applied Physics Laboratory (APL) this summer when he became the first bilateral shoulder-level 

 

 

때는 2014년 2월이었습니다. 
국시를 치르고 나서 미국 LA에 있는 LAC+USC Medical Center에서 종양학 실습을 하는 동안 Amir Goldkorn, M.D. (이하 금옥수수 교수님) 을 만났습니다. 금옥수수 교수님과 함께 일주일 동안 신장요로 종양 병동을 회진하고, 병례 토의를 하고, 토픽 발표를 하는 등 많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그 분이 본인의 연구실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여러 임상 시험들을 진행하면서, 또 많은 시간을 연구실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금옥수수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저도 교수님처럼 환자를 보면서도 연구를 활발히 하고 싶습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고, 교수님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나는 박사 과정을 밟지는 않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임상 수련을 마칠 때까지 6년 정도를 연구실에 있었어. 생각해보니 6년이면 박사를 받을 수도 있었겠네. (웃음) 일단 충분한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그리고 매우 바쁘게 살 각오를 해야해.

알고보니 그 분은 UCSF 혈액종양 내과에서 임상 펠로우 트레이닝을 받은 후, 추가로 3년을 Elizabeth Blackburn, Ph.D.[각주:1]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각주:2]으로 있었습니다. 지금 교수님은 텔로미어를 합성해내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스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금옥수수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미국에서는 의대에서 교수가 되어 연구실을 운영하는데 박사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과[각주: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학위 과정에 맞먹는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야 한다는 점입니다.[각주:4]


이 대화를 밑거름으로 저는 박사를 지원할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도, 우선 연구원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 일하고 있는 연구실을 찾은 계기와 인터뷰 내용, 그리고 펀드를 받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1. 2009년 텔로미어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양쪽 끝에 위치한 핵산과 단백질 복합체로, 염색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으로]
  2. Postdoctoral Researcher. 우리말로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 번역하지만, 사실 doctorate degree는 Ph.D.나 D.Phil.과 같은 research doctorate과 M.D., J.D., D.V.M.과 같은 professional doctorate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M.D. 학위만을 가진 사람도 post-doctoral researcher로 일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다만 한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박사 학위가 있지 않으면 교육부 인가 교수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4. 의대에서 받는 다양한 학위가 궁금하시면, http://mdphd.kr/100, http://mdphd.kr/105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xOculus입니다.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고민 많던 의대 시절 MDPhD.kr의 주옥 같은 글들을 읽으며 향후 진로에 대한 영감받았고, 먼저 걸어가시는 들에 대한 존경심 있기에, 기에 글을 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진으로 대해주신 오지마법사님께 감사드리는 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하고자 니다. 글부터 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조금 부끄러우나, 경을 이해하시면 으로 제가 고자 하는 글들을 이해하시는데 도움 것이기에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등학교 대퇴골두 무혈관성 사라는  진단 받고, 대퇴골의 부분을 절단하고 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은 후, 한 학기를 에서 신 기브스를 한 지냈습니다. 이 기간 안 '수학귀신'이라는 하고는 수학의 매력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로부터 저의 장래희망수학자이었고, 대학교 정수론학 책을 해서 읽을 정도로 정적이었습니다. 제 은 에르되시 (Erdős Pál)이나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G. H. Hardy) 같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했던 신념은 고등학교 시절 지루한 입시 수학 부를 하며 들리기 시작했고, 의대에 합격할 수 있는 확률이 다고 생각한 부모님의 설득 최종적으로 의대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다른 전공을 선택하였지만, 여전히 학자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대학교 자기소개서에도 수학을 이 공부한 경험을 서술하였고, 의과학자로의 부를 뚜렷밝혔습니다. 

과에 들어와 주로 학과 수학 과목들을 재미있게 수강하였고, 과 1학년 때 배우는 의과학 과목들(생리학, 생화학, 해부학, 리학 등) 한 학구적인 교수님들의 가르침 래에서 즐겁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본과 3학년에 진입하면서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집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본과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의사가 되는 길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의학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의학자의 길'이란 각인이 새겨져 있었는데, 저는 그 길을 걸으며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가 목표로 하는 의학자가 되어가는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본격적인 임상 교육을 받기 전에는 제 스스로를 의학자로서만 바라보았지, 임상가로서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과 2학년 2학기 때 임상 블록들을 배우면서 '이건 내가 아하는 공부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니 저는 전히 무방비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고체계와 임상가로서 필요한 사고체계는 다소 달랐습니다. 저는 연역법에 의존한 사고체계에 했고, 임상 의학은 대부분 귀납적인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는 임상 제를 마치 수학 문제 대하듯이 접근하였고, 이는 처절한 배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저에게 았던 부분은, 임상의학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려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재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실천해내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무엇보다도 자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행까지 제한이 많습니다. 저는 지식의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서, 과학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사람이 되고 었습니다. 

그래서 전 방황을 시작합니다. 임상 연구에 참여해보고, 생리학 실험실에 가서 실험도 해봅니다. 수학과로 전과하려고도 생각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유급도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든 의대를 재학하는 동안에는 한 달 이상의 자유 시간을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일단 졸업을 하고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 무사히 시에 합격하고 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이 다음 글에서는 제가 졸업을 한 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지렁이(C. elegans)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연구 기회를 얻었고, 어떤 식의 시행 착오를 걸쳐서,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liaison psychiatry : consultative psychiatry 라고도 함. 정신과 의사가 병원 내에서 다른과에 있는 환자의 내외과적 상황에 따라서 정신과적 도움 및 협진이 필요할 때, 환자와 상담을 하러 가는 것. 예컨대,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 자살을 시도한다거나 우울한 상태가 강할 때, 그 환자의 주치의는 정신과 의사에게 협진을 의뢰함.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환자의 익명성 유지를 위해 이름과 학교는 OO을 썼음을 밝힙니다.)

"상호야, 내 좀 도와도"

소아과 전공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osteosarcoma[각주:1]로 항암 치료를 받는 중학생 남자 아이가 있는데 항암제가 잘 먹히지가 않아서, 아무래도 amputation[각주:2]을 해야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내가 뭘 해주꼬?"

"어... 그러니까, 다리 잘라야한다는 이야기를 좀 해줘...응?"

"야!! 그건 주치의가 해야지 내가 왜 하냐?"

"내가 못하겠으니까 니보고 해달라는 거 아니냐.. 어? 상호야, 어? 니는 정신과잖아."

"아.... 야.. 나도 이런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에휴, 모르겠다. 컨설트[각주:3] 날려라. 어데 있노, 걔는?"

이렇게 해서 그 아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병실을 찾아가보니 까까머리 중학생이 침대에 누워 낑낑대고 있다. 

"어... 안녕. 요새 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그래서 주치의 샘이 많이 걱정하더라. 나한테 상담 부탁하길래 왔다. 기분은 어떻노?"

"예, 몸이 아파가지고요. 가끔씩 열도 나고 그래요. 몸이 힘들어요. 다리도 아프고"

".... 그래. 아이고. 참 고생이 많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가? 학교는 어데 다니노?"

"OO중학교요."

"아, 맞나? 나는 OO고등학교 나왔다. 반갑다, 야. 따지고 보면 같은 학교에서 댕깄네~"

"아, 예.."

첫번째 면담을 마치고 바로 소아정신과 담당 교수님을 찾아갔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책을 꺼내 주시면서 소아 환자의 amputation 설명 부분을 복사해 주신다. 절대로 직접 그 신체 부위를 가르키며 '이렇게 잘릴거다'라고 설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며칠 뒤 두번째 면담을 가졌다. 

"기분 어떻노?"

"예, 뭐 그저 그래요."

"앞으로 치료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 뭐. 잘 모르겠는데요?"

"....."

드디어 이야기를 해야한다. 병실 밖에는 소아과 주치의와 환아의 부모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왜 내가 해야하지? 이 중요한 이야기를...

"OO아, 니 지금 항암치료 받고 있잖아."

"예"

"그런데 그게 잘 안들으면, 수술 해야한다. 암을 잘라내야하는데... 자, 여기 봐라. 이게 사람 몸이잖아. 이렇게. 알겠나? 이렇게 다리를 잘라야 할 수도 있다."

".... 예."

"괜찮나?"

".... 예."

".... 어... 그래, 니는 요새 누워서 뭐하노? 책 읽나?" 

"아니요. 책도 눈에 안들어옵니다. 집중도 안되고요. 열도 많이 나고 해서요."

"아, 그래. 뭐 심심하면 부모님한테 닌텐도라도 사달라고 그래. 그거 재미있어."

닌텐도라니, 닌텐도라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제안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별 달리 해줄 말도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붙잡고 애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주치의는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를 해서 애 상처안받게 다독여 달라고 사정을 하고. 그리하여 수술전날, 수술 당일날, 수술 후에도 자주 그 친구를 찾아가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의외로 담담하게 자기의 처지를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 놀라웠다는 기억이 든다. 단, 아이가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를 했을 때 그걸 귓등으로 흘러 넘겨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자책하시는 부모님들을 다독이는 게 오히려 더 큰 과제였다. 

참, 인생이란 어쩜 이렇게 잔인할까. 딸 다섯에 겨우 얻은 아들인데. 그 금쪽 같은 아들의 사지가 잘려 나간다니.요즘도 가끔씩 생각나는 일화다. 


도대체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뭘 해줬어야 했을까? 


이런 경우 전지전능한 신이 되지 않는 이상 의사는 언제나 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소아과나 정형외과나 정신과나 이 아이를 대했던 모든 의사란 의사는 전부 다 말이다.


도대체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뭘 해줘야했을까....


언젠가는 우연히 저 친구를 만날 날이 올 것 같다. 그 때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할까. 침대 위에 팔배게를 하고 누워서는 그런 상상을 한다. 재회했을 때 어떻게 인사를 건내야 할지를 말이다. OO아, 잘 지내고 있지?

  1. osteosarcoma : 골육종으로 뼈에 생기는 악성 종양 [본문으로]
  2. amputation : 사지 중 하나를 절단해야하는 것 [본문으로]
  3. consult ; 다른 과에 도움이 필요해서 협진을 의뢰하는 것. 의사들이 협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죠. 혼자서 막 하지 않아요. 간단한 방사선 보는 것도 컨설트 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도움이 됩니다. 이번 한방 의료 기기 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데.... 너무 밥그릇 싸움으로만 몰아가니 원... [본문으로]

아래의 글은 짧았던 제 인턴 경험을 토대로 작년에 썼던 일기입니다.

Ph.D의 길을 고른 제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임상을 보는 의사도 충분히 멋진 길이라는 걸 알려 드리기 위해서 씁니다.

The Stethoscope
The Stethoscope by Alex E. Proimos 저작자 표시비영리

신장내과로 턴을 시작한 첫날[각주:1]. 크기 7*7 cm에 깊이 3.5cm정도 되는 욕창 드레싱[각주:2]이 있었다. 하루에 세번(TID[각주:3])이나 드레싱을 해야하고, 크기도 컸기 때문에 많은 신경이 쓰였다. 거기다가, 환자분 의식은 드라우지(drowsy) 혹은 딜리리어스(delirious)[각주:4]했다. 한마디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보호자분(할머니)은 인턴에게 한없이 높아 보이는 교수님과 소리 지르며 싸울 정도로 날카로운 상황이었다. 그 것도 교수님께서 많은 레지던트를 대동하면서, 회진 도시는 중에 일어난 일이니, 이 보호자는 한 낱 인턴 따위가 상대해볼 사람이 아니였다. 

... 에휴 한숨만...... 어떻게 한달을 버티지.....

설상가상이라고, 남동생분도 한 분 입원해계시는데, 그 쪽은 더 가관이였다. 보자마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지나가는 강아지 부르듯, 턱짓으로 날 가리키더니, 명령조로 "드레싱 잘해"라고 하셨다. 다짜고짜 반말이다. 인턴을 하면서 납작 엎드린 자존심. 하지만, 인턴의 가슴 한켠에서 서서히 무언가가 올라온다. 인턴도 서비스에 종사하는 의료인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인격체다. 참기가 쉽지 않다. 허나, 어쩌랴....

애써 말을 무시하고[각주:5] 하던 일 하려고 했는데, 자꾸 뭐라고 반말로 말한다. 나도 모르게, "이 아저씬 뭐지?"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말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노발대발하며 "병원이고 나발이고, 교수 나와라, 과장 나와라"며 소리친다. 나중일을 생각하기 힘들기도 하고, 상황정리가 귀찮아 도주해버렸다. 

또 할머니랑도 몇일 후에 한판. 드레싱 하는데 뭐가 그리 불평이 많은지... 잔소리가 너무 많으셨다. 매일 매일 불평하는 사람 앞에 이길 사람 없다. 나도 모르게, "그럼 직접하시라고 난 모르겠다"고 소리 지르고 나와버렸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시작했다.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Medical/Surgical Operative Photography by phalinn 저작자 표시

그래도 인턴 시작하고 처음 맡아보는 병동일[각주:6]이고, 처음하는 드레싱이라 누가 뭐라고 하든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 항상 그 할머니에게 듣는 것은 불평, 불만 그리고 잔소리.. 

해본 사람만 알수있는데, 꼬리뼈쪽에 뼈가 밖에서 만져질 정도로 깊은 욕창 드레싱을 하는 건 정말 많은 정성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것도 베타딘(흔히 말하는 빨간약)을 거즈에 왕창 묻혀서, 욕창 부위를 가득채우고, 위를 덮는 것은 한 번만 해도 진이 다 빠질 정도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하루 세번... 아마 나도 처음이 아니였다면, 그렇게까지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하진 못 했을꺼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믿기기 못할 정도로 성실히 치료를 해줬다. 무언가 홀린 것처럼. 욕창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그렇게 욕창과 싸우길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그 깐깐하고 제멋대로이던 보호자가 "우리 선생님, 너무 열심히 해주신다"며 조금 마음을 열어 보였다. 그리곤 이어진 대화에서, 나에게 보호자로서 어려움을 토로하셨고, 별거 아닌 인턴 나부랭이인 나에게 지어지는 부담감과 함께 더 잘하고 싶다 작은 욕심이 생겼다.


여기저기 선배 의사나 아는 사람에게 욕창이 더 호전될 만한, 좋은 드레싱은 없는지, 물어도 보고, 내 인턴 생활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논문도 찾아보기도 했다.(비록 긴시간은 아니였지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지만 상처는 점점 누런 농만 차 가고 있었다. 

또다시 입에서 한숨만..에휴....

상처 부위가 낫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점점 의욕이 떨어져만 가고,무언가 한계 상황에 봉착한 느낌이었다. 더 열심히 치로를 하는데, 자꾸만 후퇴하고, 더 나은 대책은 찾기 힘든... 사면초가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아프다고 소리만 지르던 할아버지께서 드레싱이 끝나고 한 마디 작게하셨다. 너무 작은 소리라 듣지도 못했다. 그렇게 다 끝나고, 인사를 하고 가는데,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아들 할아버지가 선생님 수고 했어" 라고 말해주셨다.

Doctor greating patient
Doctor greating patient by hang_in_there 저작자 표시

영화라면 이쯤에서 왈칵 눈물이 나야겠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다만 하나 달라진게 있다면 정말로 진심으로 "할아버지가 낫기를" 바라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매일 매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담아서 환자가 낫기를 희망하며, 의사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썼던 글입니다. 페북에 올렸던 글을 옮기느라 약간의 어휘 수정과 어투를 손보긴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가능하면 손대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달 사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저 사이엔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가 글 솜씨가 부족한 관계로 간단히 썼습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경제적인 것과는 별개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충분히 멋지고 좋은 직업입니다.


이 글을 의대생 분들이 보실지 모르겠지만, 그 점 항상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하고 싶으신 분들은 Ph.D의 길로 오십시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1. (병원의 인턴들은 일의 숙련도와 원할한 일처리를 위해 4주 혹은 매달 과를 바꾸면서 일을 합니다. ^^) [본문으로]
  2. 욕창 드레싱 : "소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상처부위를 빨간약으로 닦아주는거죠 ㅎㅎ [본문으로]
  3. Tid (Three times a day, 즉 하루에 3번) [본문으로]
  4. 의식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용어로, 대략 "횡설수설, 헛소리 가끔하시고, 사람 잘 못알아보시는 상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5. 이거 중요! 인턴하다보면 정말 많은 경우를 겪는데,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일 하다 보면 대부분 이렇게 되요 [본문으로]
  6. 인턴은 주로 수술방/중환자실/병동/응급실로 배정이 됩니다. [본문으로]

사실 의대나 병원에 있으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과가 무슨 과에요?" 일 것입니다. 


묻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 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로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대답하기 난감한 혹은 곤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는 대체로


"기초 의학이라고 연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곤 합니다만... 뭔가 정답을 얻지 못한 듯한 표정을 보이시는 질문자를 보곤 합니다. 


그래서 시리즈물로, 의대를 들어오고 난 이후에, 겪는 일반적인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같은 의대생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학년에 따라서 예과생과 본과생이 나누어 있듯이, 의사라는 직업 안에서도 기초의와 임상의, 개원의, 교수 등 등 다양한 진로가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그에 관한 것이라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오늘은 의대 생활의 학년과 과정에 대한 글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의대 과정 일반에 대한 정보는 요기를 클릭하면 있습니다. ^^ 의대는 과연 몇 년 과정일까?  )


의대를 들어오는 방법은 현재 두가지가 있습니다. 의대와 의전원이 있습니다. 의대는 수능을 치고 난 고 3이 입학하는 것이고, 의전원은 4년제 대학을 마친 학부생이 입한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의대와 의전원의 차이는 크게 본다면, 예과 생활의 유무로 나누어 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의대에 준해서 작성됨을 먼저 밝히지만, 예과 생활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의대"를 들어오면, 일반적인 대학 생활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를 예과라고 부릅니다. 의대 예비 과정인 셈인데, 보통 2년이 걸립니다. 2년 동안은 실제적인 의학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인체를 다루기 전 과정과 다양한 교양 수업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주변에 의대생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예과생이나 본과생이냐에 따라서 의학 지식의 수준이 다릅니다. 예과생이 가진 의학 지식은 그저 "돌팔이 보다 조금 더 낫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돌팔이보다 못하다"라고 보는 것이 의료인의 "대세"입니다. 


예과 2년을 보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본과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고3생활 이상의 고통이 수반되는 고달픈 나날이 계속됩니다. 해부학부터 시작해서, 온갖 인체에 관계되는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통상적으로 본1때는 기초의학, 본2때는 임상의학을 배우게 됩니다. 


대체로 본과 1학년이라도 해도 의학 지식은 예과생보다 조금 더 나을 뿐, 본격적인 돌팔이를 벗어나진 못합니다. 본과 2학년부터 슬슬 돌팔이를 벗어나게 되는데, 이 것도 시험친 직후일 뿐, 대부분의 본과생 머리는 지식의 "순간 저장 창고"로서의 기능밖에 하지 못합니다. 기억하려고 해도 다른 지식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지식의 홍수 속에 허우적 거리는 것이 본과1,2학년의 모습입니다. 


(더 알아보실 분은 요기를 클릭하세요. 의대 과정. 왜 공부를 많이 해야할까?  (1-2학년 이야기))


본과 3학년을 진입하면 비로소 의사 가운을 입어 보게 됩니다. 실습생 혹은 PK 라고 불리는 시기인데 대부분 이 때, 가운을 입으면서 의대생으로서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병원 내에서는 가장 낮은 계급(예과부터 본과2학년 까지는 강의실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병원에 있는 사람 중에 가장 경험이 적습니다.)에 위치하기 때문이지만, 학생이라는 "무기"로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닐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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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본과 3학년 때는 생명과 연관된 임상 실습을 합니다. 학교별로 다르긴 하지만,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신과 등을 돌면서 환자에 대한 파악과 현장의 살아있는 강의를 교수님에게 듣곤 합니다. 학교 내에서는 비교적 높은 계급에 위치하기 때문에, 어깨를 펴고 다닙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가끔씩 찌들어 있는 인턴을 돕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파릇파릇하면서도, 얼굴이 좋아보이는 "의사같은" 사람이 있다면, 본과 3학년이거나, 레지던트 말년차일 가능성이 100%입니다.


본과 4학년이 되면, 마이너라고 불리는 과들(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비뇨기과 등)을 실습하면서 의사 국가 고시를 준비합니다. 한가지 꼭 알아야하는 사실은 아직까지 이들은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이고, 그 말인 즉 국가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돌팔이"라는 사실입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지식은 겨울 시험이 다가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집니다. 실습과 지식으로 무장한 그들은 가끔 레지던트 수준을 넘는 문제를 풀기도 하고, 대답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돌팔이"입니다. 


그렇게 국가 고시를 1월에 치면 비로소 "돌팔이"를 벗어나게 됩니다. 국가적으로 의사라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고, 졸업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맘때 쯤의 의대생에게는 졸업이란 사실이 그 어느때보다 뿌듯하지만, 졸업식을 참가하는 학생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바로 연결된, 병원생활 때문에, 졸업식에 모두다 참가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정리하면


예과 1학년 - 꼬꼬마, 고3을 마친 파릇파릇함. 의대의 발통. 모든 잡일의 시작점

예과 2학년 - 꼬꼬마의 형, 대학생의 파릇파릇함. 의대의 실질적 발통, 대부분 잡일의 실질적 수행

본과 1학년 - 꼬마. 의대생으로서의 찌듬. 발통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음. 잡일을 "조금씩" 시키는 사람

본과 2학년 - 초등학생. 본과 1학년을 마친자의 여유. 발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잡일의 대부분을 시키는 사람

본과 3학년 - 중학생. 병원에 들어가서 여유가 부족함. 병원의 발통. 잡일에 꼬투리를 잡는 사람. 

본과 4학년 - 고등학생. 본과 3학년을 보면서 웃음. 여전히 병원의 발통. 잡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경지. 국가적으로는 여전히 "돌팔이"


참고로, 용어 정리 

발통 -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수 있으면서,  그냥 할 때 보다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 가끔 문제가 생김


잡일 - 동아리나, 의대 생활 중에 생기는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지만, 꼭 모두가 해야하는 일은 아닌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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