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보면, 어떤 일이든 집단의 힘이 개인의 힘보다 더 강력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시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의사들에게 "밥그릇"과 관련한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이 생겼었죠. 가깝게는 최근 "한의사 의료기기" 문제라든지, 조금 멀게는 "의약 분업"이라든지..그리고 심심찮게 들여오는 보험 청구 삭감이라든지, 의료 수가 인하 등등 의사들 내부와는 다르게 외부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치기도 합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런 일이 있을 때 마다, 결국 찬바람은 의사가 맞습니다. 의사 나쁜놈. 의사 개객기.. 돈만 밝히는 의사... 의사 다 때려 죽여라. 의사 수를 늘여라~~~ 등등.
나는 나름 의사로서 세상에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내 똘망똘망한 아이 먹여살리고, 내 가정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 인턴 레지던트 때, 윗사람 눈치보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밤잠도 못자고, "좀비"처럼 5-6년을 보냈는데.. 세상은 의사를 파렴치한 집단으로 몰고 있고 진짜 세상에 없어져야할 "좀비"처럼 여기고 있는 상황을 보면 너무나도 허탈하죠.
진료 일선에서 물러나서, 파이펫만 잡고,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로 연구를 하는 겉모습만 "의사"인 저이지만, 한 때 의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뼛속부터 "의사 코스프레"를 하는 저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 찬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동고동락했던 동기들, 제가 의대를 들어갈 때, 자랑스러워 했던 의사 가족, 친지들, 그리고 먼 곳에서 밤잠을 설쳐가면서 묵묵히 레지던트를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레지던트 아내를 바라볼때면,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미국에 와서 제 3자로서, 의사가 아닌 한 명의 연구자로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니깐,
대충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가 아주 조금은 보이더라구요. 결국은 집단의 힘이더라구요. 그리고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힘이더라구요.
어떤 사안이 있을 때, 의사 집단과는 다르게, 다른 직종들, 예컨대, 한의사, 약사, 공무원 등등의 집단은 정말 "불심으로 대동단결"할 때 보다 더 똘똘 뭉쳐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부딪히더라구요. 그들은 더군다나 똑똑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전방위 공격(?)과 방어를 합니다.
예컨대, 다양한 정치인들과 영향력 있는 기업인들과 세미나를 열어서 왜 이런 일이 필요한지 당위성을 설명하고, 추후에 있을 일에 대한 강력한 우군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의견을 댓글이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서 하나의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거나 침범한다고 생각하면, 법적인 고소나 절차도 서슴치 않습니다. 추가로, 관련 직종의 사람들이 본연의 임무(?)를 하지 않고, 힘 있는(?) 다른 직종, 예컨대 보건직 공무원이라든지, 국회 라든지에 진출해서 물꼬를 틀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이 몇 십년간 누적되다 보니깐, 결국, 의사와 그들 직종이 대립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의사들은 "개객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어떤 일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셈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논리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맞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이성이 들어갈 여지조차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리고 그런 상황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금 비판적이고, 우호적이지 않는 여론은 단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참고로, 미국은 저 일을 몇십년동안 아주 잘 해 두어서, 의사라는 직업이 경제적인 리턴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지위와 명예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불심(?)으로 대동단결"(기독교인들은 싫어할 수 있겠지만, 일종의 패러디이고,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란 걸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네요.)해도 최소한 10-20년 정도가 걸리는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인지하고, "내 후세대 후배 의사들은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든다"라는 생각으로 대동단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의사일수록, 이런 부분에 더 신경써서 자신의 앞일을 도모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배의사들이야 돈 잘 벌고 은퇴하면 끝이에요. 근데, 이제 막 의사가 된 사람들은 몇 십년간 의사를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대동단결하는지는 각자의 철학에 맞게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것이 되어야 겠지요.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일인 것 같아요.
참 이상한 것이, 제 주변에는 다들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들인 것 같은데, 왜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직종이 되어야 하는지.. 너무 안타깝네요.
지금, 과학고와 영재고에서 이공계 Vs 의대, 이런 식의 대결구도를 만들고, 과학고와 영재고 학생 중에서 의대를 가는 학생에게 제한을 주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말 근시안적인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는데.. 페북 글치고는 좀 길지만, 제 썰 좀 들어 보시겠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중에 연구를 제일 잘하는 과학자 두 사람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다, 세계적인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몸소 그 사실을 연구 실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을 보면서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란 이런 것이구나를,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하는구나를 배웁니다. 이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주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따라가면서 연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구 중, 힘이 들때 전화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그 어떤 대화보다도 행복하고, 안구가 정화가 되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입니다.
자, 이 두사람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이 두 사람은 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의대를 나온 의사입니다. 하지만, 임상 의사의 길을 걷지 않고, 기초 의학을 전공하였고, 박사 과정 동안 정말 쟁쟁한 연구실적을 내고, 세계적인 랩으로 포닥을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의 미래 연구,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인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독립 연구자로서는 더 지켜봐야 하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확신에 가까울정도로, 이 두사람은 10년 내에, 한국에서 아주 자랑스러워할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벌써 이 둘을 현재 나이의 커리어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조금 자랑할만도 할 텐데, 두 사람 모두다 너무나도 겸손합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들리시겠지만, 실존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의대를 갔고, 의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둘은 제가 알고 있는 한, "과학고"라는 곳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소위 말하는 서카포 중에서 의대가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고, 의대에 편입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만큼, 연구를 열심히 하면서, 임상에서 환자들과 고군분투하면서, 세계적인 치료 지침을 만드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과학고를 나왔습니다. 네..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재 대한 민국 의학의 핵심 연구를 하는 인재들 중에서 과학고를 나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중에는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검정고시라는 우회 통로로 고졸을 마치고 의대에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왜 이런 영재고, 과학고 "의대 금지"라는 궤변이 나오는 것인지. 네. 잘 알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인 "구세대"에서는 의사들이 연구를 하기 보다, 임상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많았을테니깐요. 그리고,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의사는 임상가들로 이미지 메이킹이 되어 있으니깐요.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임상가도 존재하지만, 세계적인 연구를 하는 의사들, 의과학자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의학이라는 전쟁터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인재가 몰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임상이나 기초 의학은 개인적으로 인체라는 신비한 생명체를 다루는데 있어서, 모든 기술을 집합시킬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더 과학 같은 "과학"입니다. 의공학, 의생명학, 의과학, 의료기기, 약리학, 생리학, 면역학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과학이 아닌 것이 없고, 이공계보다 더 이공계스러운 집단이 바로 의학 연구입니다.
네, 임상을 하는 대다수... 의대를 나오면 대다수가 개원의가 되는 현실을 바라보라구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최고의 인재풀인 영재고와 과학고를 나온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인체에 대해서 탐구하고, 이공계 연구하듯이 인체에 대한 연구를 하면, 더 큰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 것입니까?
의대 지원서를 써주지 않는 영재고... 의대를 가기 위해서는 자퇴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너무 근시안적으로 상황을 바로보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벤치마킹하길 좋아하는 미국에서 조차, 뛰어난 인재들은 학부를 졸업하고 난 이후에, 의대를 선호하고, 그 의대를 나온 친구들이 세계적인 의학 기술을 선도하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까?
비록 제가 의대를 나오기는 했지만,저는 제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생각하고, 이공계라고 생각하는데...이런 글을 볼 때마다,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같은 생각같아서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의대 Vs 이공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자기 테두리 안에 뛰어난 인재들이 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실텐데.. 거국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면, 이 사안은 국가 인재가 적절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해서 한 분야의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이고, 궁극적으로 앞 날이 창창한, 국가 인재에 대한 배임 행위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권을 아주 강하게 침해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현재, 생명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에서 연구를 아주 잘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술들을 어떻게든 인체에 접목시켜서, 좀 더 큰 파급력을 가진 연구를 하고 싶어하시는 분들 역시 많이 봐았습니다. 모두가 연구비를 쓸 때, 지금 연구하고 있는 기술이,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파급력을 가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결국, 그 파급력이라는 것은 인체에 대한 치료 목적인, 의학 아닙니까?
뛰어난 인재가 의대를 가는 것은 막고, 내가 하는 연구는 의학과 접목시켜서 연구하겠다고 생각하는 건은 너무나도 이율배반적이고 옹졸한 생각 아닙니까?
당장, 가깝게는, 우리나라 김진수 교수님 팀에서 유전체 편집(혹은 교정) 기술로 최근에 Cell Stem Cell에 논문이 실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 자체는 혈우병의 치료 가능성을 보여준 아주 유용한 임상적 가치가 있는 연구입니다. 물론, 연구를 주도하신 분은 의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 가지는 영향력은 인체에 직접적으로 적용 가능합니다. 이공계라고 불리는 학교에 가서 이런 연구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반대로, 의사가 되어서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기초 의학부터 임상 적용까지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이끄는 학자를 만드는 것 역시 멋진 일 아닙니까?
그리고 더 가깝게는, 아산 병원에 박승정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 교수님은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주요 관상 동맥은 스텐트로 치료할 수 없다"는 기존 의학 패러다임을 바꾸어, 관상동맥질환으로 고생하는 전세계 몇 만명의 생명을 구한 의사이고 앞으로 이 파급력은 훨씬 더 클 겁니다.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세계 최고의 의학 학술지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에 논문을 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논문을 하나 낼 때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의사들은 치료의 지침을 바꿉니다. 이런 교수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과학의 꽃인 임상 의학에서 전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과학자입니다. 그리고 동네 골목 대장 수준이 아닌,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수 있는 학자입니다.
이제는 연구에 국경도 없고, 종래의 테두리로 불리던 학문의 경계도 점차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의학이 있다는 점을 제발 좀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의대가는 걸 막는다고 해서, 다른 과목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과에 가서 결국 돌고 돌아, 인체 적용을 발전시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하게 공학과 의학이 접목된 영상 의학 장비인, MRI, CT, PET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거 가천 의과대학에 있는 PhD 교수님이신 조장희 박사님께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노벨상을 바라볼 정도로 혁신적인 의료 기술 중 하나입니다.
꼭 이런 걸 의대 가지 말고, 자연대나 공대에 가서 개발하라고 할 껍니까? 의대에서 왜 이런 연구를 하면 안되는 겁니까? 의대는 이런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적어도 이분법적으로 너희는 이공계니깐, 우리는 안 받아들여 하면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학고 나왔다고 해서 배척하지도 않습니다.오히려 아주 환영합니다.
저는 의대를 꼭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하거나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시는 김빛내리 교수님과 같은 생명과학자들을 너무나도 존경하고 본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의대에서만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멋진 과학자들이 많습니까? 당장 저의 현재 보스만 하더라도, 의사는 아니지만, 의사보다도 더 많은 인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임상으로만 치부되고, 돈버는 인간으로만 치부되는 의사.. 소위 말하는 배고픈 학문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의사라는 직업.. 그리고 그런 인간들을 양성하는 의대... 이미지가 너무나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간과되었던 의학도 "과학"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분법적인 사고로 뛰어난 인재의 진로를 제한하는 말도 안되는 행정 역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른들의 근시안적이고, 말도 안되는 "의대는 이공계의 적이야!!!"라는 사고를 주입식으로 세뇌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의학을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공동연구를 마음 편히하면서 시너지를 내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가 궁극적으로 인체에 적용되는 것을 알게 되고, 의사가 되었으면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을텐데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당신들이 책임질건가요?
제발 뭐를 좀 막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알아서 놔두면 어느 순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진로를 결정하고, 의대가 지금처럼 광풍이 아닌 시점이 올겁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 손을 가슴에 놓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가진 의사들의 이미지는 그냥 돈을 버는 임상가가 아니었는지. 만약 그러하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국시를 치르고 나서 미국 LA에 있는 LAC+USC Medical Center에서 종양학 실습을 하는 동안 Amir Goldkorn, M.D. (이하 금옥수수 교수님) 을 만났습니다. 금옥수수 교수님과 함께 일주일 동안 신장요로 종양 병동을 회진하고, 병례 토의를 하고, 토픽 발표를 하는 등 많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그 분이 본인의 연구실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여러 임상 시험들을 진행하면서, 또 많은 시간을 연구실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금옥수수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저도 교수님처럼 환자를 보면서도 연구를 활발히 하고 싶습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고, 교수님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나는 박사 과정을 밟지는 않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임상 수련을 마칠 때까지 6년 정도를 연구실에 있었어. 생각해보니 6년이면 박사를 받을 수도 있었겠네. (웃음) 일단 충분한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그리고 매우 바쁘게 살 각오를 해야해.
알고보니 그 분은 UCSF 혈액종양 내과에서 임상 펠로우 트레이닝을 받은 후, 추가로 3년을 Elizabeth Blackburn, Ph.D.[각주:1]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각주:2]으로 있었습니다. 지금 교수님은 텔로미어를 합성해내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스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금옥수수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미국에서는 의대에서 교수가 되어 연구실을 운영하는데 박사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과[각주: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학위 과정에 맞먹는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야 한다는 점입니다.[각주:4]
이 대화를 밑거름으로 저는 박사를 지원할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도, 우선 연구원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 일하고 있는 연구실을 찾은 계기와 인터뷰 내용, 그리고 펀드를 받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2009년 텔로미어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양쪽 끝에 위치한 핵산과 단백질 복합체로, 염색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으로]
Postdoctoral Researcher. 우리말로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 번역하지만, 사실 doctorate degree는 Ph.D.나 D.Phil.과 같은 research doctorate과 M.D., J.D., D.V.M.과 같은 professional doctorate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M.D. 학위만을 가진 사람도 post-doctoral researcher로 일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다만 한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박사 학위가 있지 않으면 교육부 인가 교수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의대에서 받는 다양한 학위가 궁금하시면, http://mdphd.kr/100, http://mdphd.kr/105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본문으로]
처음으로인사드립니다. 고민많던의대시절 MDPhD.kr의 주옥같은글들을읽으며향후진로에 대한 영감을
받았고,먼저이길을 걸어가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품고 있기에, 여기에
글을 쓸수 있음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필진으로
초대해주신 오지의 마법사님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첫 글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조금 부끄러우나, 제배경을 이해하시면 앞으로 제가 쓰고자
하는 글들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대퇴골두 무혈관성괴사라는 병을진단 받고, 대퇴골의 일부분을절단하고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은 후,한
학기를집에서
전신 기브스를 한 채 지냈습니다.이 기간 동안
'수학귀신'이라는 책을 접하고는 수학의 매력에
흠뻑빠져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쭉 저의 장래희망은 수학자이었고, 대학교 정수론학 책을 구해서 읽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제 꿈은 에르되시 팔(Erdős Pál)이나
고드프리 해럴드하디
(G. H. Hardy)와 같은세계적인 수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확고했던 신념은 고등학교 시절 지루한 입시 수학
공부를 하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의대에 합격할 수 있는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 부모님의 설득끝에 최종적으로 의대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다른 전공을 선택하였지만, 여전히 과학자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대학교 자기소개서에도 수학을 깊이 공부한 경험을 서술하였고, 의과학자로의
포부를 뚜렷히 밝혔습니다.
예과에 들어와 주로 화학과 수학 과목들을 재미있게
수강하였고, 본과 1학년 때 배우는 의과학 과목들(생리학,
생화학, 해부학, 약리학등) 또한 학구적인 교수님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즐겁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본과 3학년에 진입하면서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집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본과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의사가 되는길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의학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는'의학자의 길'이란 각인이 새겨져 있었는데, 저는그 길을 걸으며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나는 내가
목표로 하는 의학자가 되어가는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본격적인 임상
교육을 받기 전에는 제 스스로를 의학자로서만 바라보았지, 임상가로서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과 2학년 2학기 때 임상 블록들을 배우면서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공부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니 저는 완전히무방비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고체계와 임상가로서
필요한 사고체계는 다소 달랐습니다. 저는 연역법에 의존한 사고체계에 능했고,
임상 의학은 대부분 귀납적인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는 임상 문제를
마치 수학 문제 대하듯이 접근하였고,
이는 처절한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저에게 맞지 않았던 부분은, 임상의학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려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재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실천해내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행까지 제한이 많습니다. 저는 지식의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서,과학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방황을 시작합니다. 임상 연구에 참여해보고, 생리학 실험실에 가서 실험도 해봅니다. 수학과로 전과하려고도 생각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유급도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든 의대를 재학하는 동안에는 한 달 이상의 자유 시간을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일단 졸업을 하고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무사히 국시에
합격하고 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이 다음 글에서는 제가 졸업을 한 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지렁이(C. elegans)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연구 기회를 얻었고, 어떤 식의 시행 착오를 걸쳐서,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윤홍균 선생님은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시고, 서울 마포구에서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고 계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의대에서의 공부량에 대해서 써놓은 글인데, 아주 큰 공감이 가서 저희 블로그에 포스팅합니다. 참고로, https://www.facebook.com/addictyoon 에 원글이 있습니다. http://yoonmaum.com/ 에 블로그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글을 쓰기는 사실 꺼려졌었다. 왜냐하면 요즘은 의대생이나, 의대생 아닌 사람이나 다들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의대를 다니던 시절,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나 청춘 드라마와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기에 이 글을 남긴다.
이 글에서의 의과대학에서의 공부량은 전적으로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것임을 밝힌다. 그동안 학제는 많이 바뀌었고, 학교마다 다른 커리큘럼이 있기에 경험은 모두 다를것이라는 점도 이해를 바란다. 나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다.
의대에 입학했다. 정확히 의예과에 입학했다. 예과과정에서 공부부담은 별로 없다. 그래도 중요한 과목이 한과목 정도 있다. 가령, '일반 생물학'같은 과목이다. 이 과목의 공부량은 나머지 공부량을 다 합친것 정도 된다.
만일 일반 생물학과 5과목을 첫학기때 만난다면, 나머지 다섯과목 합친게 일반 생물학과 비슷하다. 이런 일반 생물학을 '메이저'라고 부른다.나머지 그러니까 컴퓨터 실습이나, 영어회화같은 과목들이 있었다. 이런 과목들이 마이너였다. 평소엔 수업을 듣는등 마눈둥하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공부를 한다. 뭐 잘치면 잘치는 거고 말면 마는거다.
다음 학기가 되면 또 한가지 메이저 과목이 있고, 나머지 과목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그 마이너 과목들이 다 '일반 생물학'정도 된다. 그리고, 그 마이너들을 다 합친것이 '세포학'이라는 메이저 만큼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학기가 되면 또 메이저과목이 하나 생긴다. 마이나과목이 공부량은 또 그전 학기의 메이저 같은 것이다. 그런식으로 유전학이라는 메이저를 만나고, 뭐 그런식이다.
그러다가 본과에 진입한다. 예과를 벗어나서 의학과과정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진입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본과 첫학기에는 네개의 메이저를 만난다. 해부학, 생화학,생리학, 조직학. 공부 량은 해부학이 가장 많다.
그런데 해부학에서 공부해야할 양은 그냥 예과때 배웠던것 전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3학기 정도동안 외웠던 분량은 한과목에서 외운다. 물론, 생화학, 생리학, 조직학도 많다. 그외에 여러 기타과목들도 있다. 이런것들도 공부할것은 많다. 해부학 만큼은 아니지만, 예과 메이저보다는 훨씬 많았던것 같다.
본과 2학년이 되면 병리학이라는 학문을 만난다[각주:1]. 병리학의 분량은 1학년때 메이져였던 네과목을 합친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여러 기타과목들이 있다. 뭐 계속 그런식이다. 전학기보다 두배 정도씩 차곡차곡 쌓인다.
급기야 본과 4학년이 되면, 정말 눈을 의심할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첫시간에 평생을 어깨 수술만 하신것 같은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어깨수술 강의를 왜 한시간만 배정한거야?"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강의를 하신다.
그리고 두번째 시간에는 평생 손목 수술만 강의하신분이 들어오셔서 "손목 수술만 강의해도 하루를 잡아야되는데, 왜이렇게 시간이 없어?"하면서 엄청난 진도를 나가신다.
그런식으로 강의가 이어진다. 평생 혈액암만 연구하신분, 갑상선의 내과치료만 연구하신분, 갑상선의 수술치료만 하신분이 본인이 공부한 모든 것을 한두시간동안 적어놓고 나가신다.
한 교시가 끝날때마다 책이 한권씩 생긴다. 정말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범위도 잘 모르겠고, 내가 들은게 전 학기에 들은건지, 이번학기에 들은건지도 잘 모르겠더라.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어느새부턴가 필기는 포기하고 그냥 듣는 거 정도하다가, 말다가 했던것 같다.
필기를 해봤자, 그게 맞는말인지도 모르겠고, 적다보면 진도나가있고, "이건 해부학 시간에 배웠지?" 뭐 이러시는데 전혀 기억은 없고, 뭐 그런식의 수업이 이어진다. 아이고 글쓰다보니 심계항진이 오네.
어쨌든 그렇게 본과 4년이 지나간다. 결론은 공부할게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학문은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데, 의대 4년동안 모든 과의 지식을 한번씩을 훑고 가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것 같다. 뭐 어떻게 해야한다.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의과대학의 공부량은 엄청나게 많았다.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공부량이 많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라던가 그런말은 사실 현실적이지가 않다. 사실 그렇게 될지 몰랐고, 설마 그렇게 많아지겠어? 에이..하면서 분량이 점점 늘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도 싶었고,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뭐 따로 할것도 없어서 어쩔수 없이 졸업까지 떠밀려떠밀려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량이 많았다고 다 공부한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공부량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 것은 "공부해야할 양"을 적은 것이다. 공부한 양은, 저것보다 확연히 적었다고 생각한다. 기억나는 것도 사실 별로 없다. 그냥 아 되게 많았네. 정도. 그게 나의 양심고백.
제가 아는 분 중에 예과 2년 마친 후 골학 시작하고 힘들어서 약대로 가신 분이 계셨는데 합격 소식 들리자마자 골학에 대해 엄청나게 압박을 주셨었어요...
역시... 듣던대로 명불허전이였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시간도, 외울 시간도 없이 머리속에 넣는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였죠.
마치 온갖 산해진미를 씹지도 않고, 삼키지도 않고... 바로 Stomach으로 쑤셔 넣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그런 느낌... 익숙해서 만성이 되었지만... ^^;;;
학교마다 골학을 공부하는 방법이 다른데 우리 학교는 학생회에 주관 하에 모든 신입생이 골학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1년 선배가 튜터가 되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골학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본과 수업이 시작됩니다.
1학년 때는 대부분 기초 과목인 해부학, 태생학, 생화학, 생리학, 약리학, 면역학, 병리학과 미생물학 등을 배우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대생이라면느끼셨겠지만... 본과 1~2학년이란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고, 매 과목마다 산처럼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1학년 수업의 꽃인 해부학... 이 꽃밭을 무사히 지나치기 위해서 필기 시험에 더불어...
심장이 쫄깃해지는 '땡시'가 있습니다.
가운에 여분 볼펜 필수! 빨리 글씨를 쓰는 능력까지 평가 받는 시간이죠. 매일 반복되는 카데바 해부 실습[각주:1]에 수업에 공부까지... 1년 중 가장 빡빡한 수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나마 골학과 해부학은 보이는 것,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저로선 재미있는 과목이였습니다.
그런데 해부학이 끝나고 생화학에 들어가니 정말 갈피를 못 잡겠더군요...
의학과에서 흔히 전공자라 일컫는 생물이나 화학 전공 관련 학부 출신이 아니었던 저는 새로운 공부에 Sudden attack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학부 때 듣던 수업이 수학, 물리, 프로그래밍과 신호처리 관련 과목이 대다수 였는데, 생화학에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단위 까지 알아야 했고, 그렇게 작은 세포 안에 그렇게 많은 Signal이 있다는 사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학부 때 1년에 걸쳐 했다던 수업을 한달 안에 끝내니 해부학 때 쑤셔넣은 배움의 체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힘들더군요. 해부학 끝나고 선배들이 산 넘어 똥밭이라고 하더니 선배들이 했던 말들이 여실히 와 닿았습니다. 산은 힘들고.. 똥은 더럽듯... 전부 힘든 상황이지만 힘든 포인트가 조금씩 다르더군요.제일 충격이였던 건...
저보다공부를 훨씬 안 하던 생명공학부 출신 친구가 저보다더 빨리 습득하고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전공한 친구에게 교수님 강의를 한장 한장 넘기며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며 공부를 해 나갔습니다.
"너무 조바심 내지마. 그래도 마치고 나면.. 의사가 될 수 있잖아." 라며... 서로를 위로했었던 말... ^^
근데 그 땐 공부를 할 수록 그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였죠...
전문가가 나와서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시간 관리를 잘 하는 방법을 예전엔 흘려 들었었는데 그 흔히들 말하는 공부 방법이란 것도 본과 1학년 들어와서야 적용해 볼만큼 저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아웅다웅 하였던 시간이였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겐 공부만큼이나 Sudden attack 이였던 학부때와는 다른 학교의 분위기!!!!
모두 함께 가자!!! 라는 느낌의 의대 분위기는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모두가 함께 올라가기위한 노력은 아름다웠으나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었던 저에겐 모두 함께라는 미션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비전공자라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인식까지 박혀버렸는데 갈수록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 느낌인데다가 모두 같이 가자고 하며, 개인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 슬로건 덕분에 한 해 한 해 올라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절대 혼자할 수 없고 , 같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의대공부인 듯 합니다. 1학년은 나를 중심으로 일정을 짜는 것이아니라 학교의 일정에 나의 생활을 맞춘 후자기만의시간을 가지자고 마음 먹는 것이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1학년도 지나고 나니 뭐 그렇게 했었나 후회도 되고,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도 남고 그렇네요.
그리고 지나고 보니 느껴지는 것은 학부 전공과 의대 성적은 상관관계가 크게 없다는 것! 학부 뿐 만아니라... 전적대 또한 학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 모두 말하죠... 의대오면 머리는 비슷하고 1등과 꼴찌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쌓이고 쌓이면... 큰것 같습니다만...^^;;)
비전공자들... 겁먹지 마십시오~!!! 지식이 아니라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체력과 지구력만이 1학년을 잘 버틸수 있는Key입니다.
2014년 4월, 우여곡절 많았고 길기도 길었던 6년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생리학이라는 학문을 더 깊게 공부하며 평생 학문의 길을 걷기로 한지 벌써 두 달째가 되었습니다. 생리학 교실의 조교로서 본과 1학년 학생들을 실습과 수업시간에 자주 마주치게 되니 2010년의 제 본과 1학년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예과 때 동아리 행사나 동문회 행사등을 통해 만난 본과 선배님들은 항상 저희를 겁주셨었습니다.
본과 생활은 '상상 그 이상' 일 것이라고.
해부할 때 계속 맡게 될 포르말린 냄새가 매우 독하기도 할 뿐더러, 피부, 머리결도 다 망가질테니 그냥 포기하라고.
공부량의 신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부학으로본과 1학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들이 말씀하시던 것보단 할 만 했습니다.
사실 해부학이 사체를 가지고 하는 수업이다 보니,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포르말린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해부하면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 말고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기증자분께 정말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가자고 다짐하고 열심히 실습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그 전리품으로 푸석해진 머리와 피부를 얻었고, 결국 해부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열심히 길렀었던 제 머리는 단발로 바뀌었죠...^^
생리학, 생화학등을 함께 배우고 공부하면서 처음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잠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밤을 못 샜습니다. 밤을 새면 다음 날에 좀비가 되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서 밤을 새지 않고 시험을 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뭐 제가 벼락치기 파였던 것도 있긴 하지만, 밤을 새지 않으면 시험 범위를 한번이라도 다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시험에 임하는 학생으로서 시험범위 만큼은 한번이라도 다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들과 열람실에서 서로 잠을 깨워주며 편의점을 들락날락 했던 기억이 납니다.
5월 정도였던 것 같네요.
지금은 다 져 버린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랬죠. 저희 학교 캠퍼스도 나름 예쁘기로 정평이 난 학교인지라, 캠퍼스 곳곳에 참 사진 찍을 맛 나는 포토존이 많았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만큼 저와 제 친구들의 기분도 꽃가루처럼 둥둥 공중에 떠다녔었습니다만 시험과 실습에 치여 삼십분 정도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는 캠퍼스 나들이도 결국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해부학 실습과 수업이 모두 끝나고 기분 전환으로 같은 학번 동기들 다 같이 소풍 겸 해서 캠퍼스 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서 나름 신나게 봄을 만끽하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데, 다른 과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의대생들인가봐."
?????
아니 우리가 얼굴이나 옷에 써붙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나 놀래서 주변의 동기들과 저를 돌아보았죠. 하... 그 이유를 알 만했습니다. 캠퍼스의 다른 사람들은 파스텔톤, 밝은 색의 옷들을 상큼하게 입고 있는데, 우리 동기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검은 색 옷인데다가, 옷 두께조차도 남달랐던 거죠.
한창 따뜻한 봄날씨인데도 추운 해부학 실습실과 강의실을 왔다갔다 하며 건물 안에서만 살다 보니 4-5월까지도 날씨 감각 없이 두꺼운 겨울옷을 입었던 겁니다. 아 그때 의대 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과 함께한 1쿼터와 함께 봄이 지나가고 2쿼터가 시작되어 3, 4 쿼터까지 면역학, 미생물학, 약리학 등 수많은 것을 배우면서 정말로 많은 양들을 머리에 구겨 넣었습니다.
오죽하면 "눈에 바른다"는 표현을 쓸까요. 정말로 눈에 한번 바르고 시험장 들어가서 그대로 시험지에 쓰고는 머리를 비우고 나오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원래 단순 암기에 약해서 이해를 통해 외우는 걸 최대한으로 줄여 공부하는 걸 제 방식으로 삼았었는데, 의대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더군요.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으니 하나하나 이해 하고 넘어가려면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엔 머리에 그 많은 지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도 없이 구겨넣을수밖에 없었던 거죠.
처음에는 공부하면서 한 교수님께 최대한 이해해보겠다고 질문하러 가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나하나 파려다가는 성적 안 나온다고 그냥 외우라고 하시는 걸 듣고는 제 공부방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본과 1학년은 즐거웠습니다.^^
원래 힘들수록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는 관계가 끈끈해지는 법이죠. 마치 고3때처럼요. 거의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투덜거리면서 동기들과 훨씬 더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열심히 해야 하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년에 얼마 안 되는 '비'시험기간에는 책표지도 펴 보지 않고 열심히 놀았기 때문에 나름 즐거운 기억도 많습니다. 진급만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신나게 놀 수 있었죠.
비록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대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라기 보다는 의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라는 느낌이 드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로 '학문'의 길에 들어서려고 하는 지금에 와서는 '의학'을 하기 위한 인체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의 절대량이 많으니(비록 암기를 통한 지식이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싶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힘든 만큼 즐거웠던 나의 본과 1학년. 23살의 제 청춘이 문득 쪼끔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