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리뷰어 경험 공유

2025. 11. 11. 11:15MD : Doctor/Medical Student

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논문 리뷰어가 되는 경험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열정 페이’, ‘무료 봉사’라는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내 분야의 논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이 많고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수준 높은 저널일수록 논문의 컨셉을 선점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리뷰를 하면서 얻는 배움의 폭도 넓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첫 논문 리뷰는 박사과정 중 지도교수님의 요청으로
파일럿 리뷰를 작성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리뷰 트레이닝을 경험한 것은 포닥 시절,
지도교수님이 특정 논문의 에디터를 맡으면서 매주 리뷰를 해보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이를 통해 논문 리뷰의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논문을 평가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평균적으로 매주 한 편, 적으면 한 달에 한 편 정도의 논문 리뷰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요청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에 따라 분야, 논문 수준, 주제, 초록의 참신성을 기준으로
수락 여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한 달에 한 편 정도를 수락하는 것이 다른 업무와 동시에 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논문 리뷰는 정형화된 틀이 없고,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각 리뷰어마다 다른 스타일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다른 리뷰어들의 의견을 함께 볼 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참신한 시각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여 작성한 것이며, 다른 연구자들의 기준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배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리뷰 경험을 공유하고자 몇 가지 원칙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초록과 제목의 논지를 중심으로 리뷰하라

1) 대부분 논문에는 2~3명의 리뷰어가 배정되는데, 수준 높은 리뷰어들이라면
공통적으로 주요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요 수정 사항(Major Revision Point)은
대체로 논문의 
주요 주장(main claim)과 직결됩니다.

2) 따라서 논문을 읽을 때 초록과 제목을 여러 번 정독하고,
논문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제목이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면
이를 
주요한 리뷰 포인트로 삼아 지적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4) 논문의 주요 주장이 데이터로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minor revision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데이터가 많아도 논문의 주요 주장과 연관성이 부족하면
major revision이나 rejection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5) 리뷰 코멘트를 작성할 때는 논문의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하고,
제목과 주요 주장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지나치게 디테일한 오타 수정은 지양하라

1) 일부 리뷰에서는 논문의 주요 논점보다는 단순 실수를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학생이나 초보 리뷰어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자주 보입니다.

2) 물론 문법 오류나 오타를 지적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디테일한 피드백만 제공하면 에디터의 평가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3) 논문 저자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타가 많다면,
논문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대표적인 오류를 몇 개 제시하고,
전반적인 개선을 요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4) 리뷰어는 논문의 저자가 아닙니다.

논문의 큰 흐름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리뷰가 될 것입니다.

 

3. 누락된 참고문헌은 반드시 지적하라

 


1) 논문은 기존 연구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발견을 추가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일부 저자들은 경험 부족 혹은 의도적으로 주요 참고문헌을 누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 특히, 본인의 연구 결과와 유사하거나 반대되는 논문을 누락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러한 경우 반드시 이를 지적해야 합니다.

3) 누락된 참고문헌을 추가해야 하는 이유를 데이터와 함께 설명하면 논문이 더욱 풍부해지고,
리뷰어의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4) 리뷰 요청을 받을 정도의 연구자라면,
최소한 해당 분야의 주요 참고문헌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Introduction에 생소한 논문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를 검토하고,
맥락에 맞지 않는다면 이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4. 저널의 수준에 따라 리뷰 강도를 조절하되, 일관성을 유지하라

1) 연구자들은 각 저널의 수준을 대략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리뷰의 강도를 조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이처(Nature)나 사이언스(Science) 등의 저널에서는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반면, 
소규모 저널에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하지만 리뷰 코멘트와 최종 출판 결정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리뷰 코멘트는 논문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성하되,
출판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에디터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작은 저널이라 하더라도 논문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따라서 저널의 수준과 상관없이 논문의 핵심 논지를 중심으로
일관된 리뷰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필요하다면 에디터에게 confidential comment를 통해 저널 수준과 관련된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5. 논문 리뷰는 학문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과정이다

1) 논문 리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특히, 지인을 통한 요청이나 학회 활동을 통한 리뷰는 업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2)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학문 공동체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리뷰를 통해 직접적인 보상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논문의 질을 높이고
연구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4) 리뷰를 수락했다면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불가능할 경우에는 과감하게 거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무리하게 리뷰를 수락했다가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에디터와의 신뢰가 깨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딱 한 번 기일을 지키지 못하고, 마감을 하지 못해서 날라간 경우가 있었습니다. 에디터에게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이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6. 리뷰 경험은 빠를수록 좋다

1) 좋은 리뷰어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트레이닝이 필요하며,
이를 빠른 시기에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초보 연구자들은 리뷰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2) 리뷰 경험을 쌓기 위한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 이미 출판된 논문을 분석하며 주요 문제점을 파악하고, 연구자들과 토론해 보기
  • 논문의 교정(proofreading) 기회를 활용하여 리뷰 연습하기
  • 오픈 리뷰가 제공되는 논문(PLOS, eLife, Nature 등)을 검토하며 학습하기
  • 지도교수에게 리뷰 기회를 요청하고, 출판된 논문의 리뷰 코멘트를 분석하기

 

논문 리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일관된 원칙과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의미 있는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글이 리뷰어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성장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