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6. 15:20ㆍMD : Doctor/Medical Student
오늘은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느낀 것 중
기초의학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의예과부터 졸업까지 대략 6년의 시간 중 본과 4년.. 그중에서도 3년은 임상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환자를 보고 수술도 했으니, 임상을 완전히 모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 스스로를 임상 가라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임상의학을 논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기준에서 임상의학을 평가한다면,
다른 어떤 학문보다 아주 "보수적"이고 "안전"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의학은 특정 행위가 "환자를 치료해 줄 것이다"는 믿음 아래,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기에,
그 행위가 검증된 안전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방법이 개발이 되려면, 기존의 행위보다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하며 후유증이 없어야 새로운 치료로 인정받기에
치료 방법이 보수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의사들은 새로운 치료에 회의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의 목숨은 하나뿐이고, 기계와는 달리 대치될 수 없으며,
재생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장기들이 더 많아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게 따지면, 안전하고 보수적이고 확실한 치료 행위만 추구하는
임상의학에서 왜 기초의학이 필요할까?"
왜 1년이라는 본과 시간, 그리고 의예과를 포함하면
3년이라는 시간을 써서 의대생들을 가르치는 것일까?
때로는 기초의학이라는 것이 임상의학과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치료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연구를 왜 해야만 하고 배워야만 하는 것일까
많은 주변 임상가들과 의대생들은 여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5년 전에 시신을 활용한 발생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서서히 결과가 나오고
초청을 받아 발표를 했을 때를 돌아본 에피소드가 생각이 납니다.
유독 의대에서는, 응용이 없어 보이는 이 독특한 발생학 발표를 하면
그 연구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측면에 대해 묻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이 연구는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이 될까요?
이게 어떻게 사람에게 응용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아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되나요?
왜 이런 연구를 MD-Ph가 하는 것이지요?
라고 하는 질문을 들으면서, 반대로 저는 스스로에게
"왜 나는 의대에서는 쓸데없어 보이는 연구를 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나날을 고민하면서 제가 내린 개인적인 결론은 "재미와 호기심"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전으로 이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마치 생일 때, 누군가에게 받은 빨간 리본 달린 선물의 포장지를 뜯을 때의 두근거림처럼
자연이 포장해 놓은 현상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나 자신에게 과학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개인이 기초 연구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이지
의대에서 기초 의학을 배우거나 연구를 하는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순간 제가 연구를 그만둔다면,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지거나,
궁금한 점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변에서 본 많은 연구자들이 저와 비슷하게 재미와 흥미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기초의학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냥 재미있고 궁금해서 하는 것이었죠.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재미와 흥미 말고도 기초 의학은 그 자체가 가진
도전성으로 임상의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즉, 임상의학의 보수적이고 확실한 성질의 원을
미래에 더 큰 외연을 가진 원으로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기초 의학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아주 큰 파괴력을 가지기에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기초의학은 기본적으로 실패를 전제하고 도전한다는 측면에서
임상의학과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임상의학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서구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기초의학의 바탕으로 한 연구로 외연을 넓혔고
확실한 치료방법을 정립한 임상의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런 근거 중심 의학이 한국의학의 발전을 가져다준 것에는 동의하지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인간을 치료할 수 있고 그 효과를 재현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현재 한국 의과대학의 교육 목적은 서구와 아시아 계열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고
서구의 임상의학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특유의 손기술과 근면 성실함 등이 없었다면 이런 급속도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고,
현재 세계 유수의 병원도 없었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임상의학은 "안전"하고 "보수적"이고, 비교적 "재현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정확하고
확실한 프로토콜을 잘 만들어서 실천해 내는 것에 강점이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아주 큰 축복입니다.
다만 이런 것을 해내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든다거나,
새롭게 외연을 넓히는 것과는 결이 다른 것만은 분명합니다.
(임상 의학에서도 분명히 외연을 넓히는 발명과 연구들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 예컨대 IVF 같은 치료방법. 하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보았을 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의학을 외연을 넓힌다는 것은 상당한 도전을 필요로 하고, 필연적으로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외연을 넓히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어 내는 것은 대부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영어로 이러한 기술과 발견을 "cutting edge"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외연을 깎아내면서 무언가를 만들고 결과적으로 더 뾰족하게,
그리고 더 날카롭게 그 분야를 파고들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cutting edge technology'입니다.
이 기술들은, 임상의학에도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초의학의 테두리에서 이들 기술과 발견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기초의학은, 단순히 “의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자연, 생물계에 존재하는 “외연을 넓힐 수 있는 모든 분야의 학문”
그리고 그중에서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학문”이 큰 의미의 기초의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초의학 연구는 태생적으로 현시점에서 의미를 모를 수밖에 없는 연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요.
다음 글에서 기초의학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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